빗속에 찾은 수목원
삼일절 토요일부터 사흘 연휴를 보내고 맞은 화요일이다. 추위로 멈칫하긴 해도 매화를 완성하고 아침 시조로 지기들에게 보낼 ‘조매, 동박새를’을 남겼다. “귀엽고 앙증맞은 동박새 한 마리가 / 반쯤 핀 매화 앞에 연녹색 깃을 감싸 / 목덜미 갸우뚱거려 먹이활동 펼친다 // 향기와 무관하게 꽃잎만 보고 찾아 / 부리에 가루 묻혀 화심 속 꿀샘으로 / 유심히 들여다보고 맺어주는 연이다”
일요일은 김해 시내 두 곳 교정 피어나는 매화를 살펴봤다. 일제 강점기 김해농업고등학교 교정에 심어둔 ‘와룡매’는 고목으로 자라 앞다투어 꽃을 피울 기미였다. 그 학교는 근대화 과정에서 공업계로 바뀌었고 농업학교가 이전해 간 교정에 식재되어 핀 매화를 찾아온 동박새가 앞 단락 시조 소재였다. 휴일 교정은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이 머물지 않아 탐매에 여유로움을 가졌다.
어제는 이웃에 사는 대학 선배 내외와 열차 편으로 낙동강 강변으로 나가봤다. 삼랑진에서 물금에 못 미친 원동에 내렸다. 그곳에서는 해마다 이른 봄 매화 축제를 여는데 올해는 개화 시기 예측이 빗나가 주최 측과 지역민이 난감해했다. 지난달 입춘과 우수에 두 차례 덮친 한파로 부풀던 꽃망울이 꽃잎으로 벙글기를 머뭇거려서였다. 그래도 가야진사 공원에 피어나는 홍매를 봤다.
신학기가 시작된 첫날이다. 자연학교는 학기제 개념이 없는 연중무휴라 시업식이나 입학식은 갖지 않는다. 간밤까지 내린 비는 아침에도 그치지 않아도 아침 식후 등굣길에 올랐다. 우산을 받쳐 쓴 채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가 이웃 동에 꽃대감 친구가 가꾸는 꽃밭으로 가 봤다. 작년 봄 내가 미산봉에 자생하던 복수초 몇 포기를 업어놓았는데 겨울을 넘겨 싹이 트는 기미가 없었다.
초본에서 비교적 이르게 꽃을 피우는 히말라야바위취는 미미하지만 꽃눈이 트려는 낌새였다. 땅이 젖은 꽃밭에는 수선화가 뾰족한 순이 트는 중이었다. 새순이 솟으면서 노란 꽃송이를 달고 나오지 싶다. 시간이 일러 주인이 내려와 있지 않은 꽃밭을 객이 먼저 둘러봤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원이대로를 건너 스포츠파크 동문 앞을 지나 폴리텍대학 구내를 거쳤다.
교육단지 보도에 줄지어 자란 고목 벚나무는 꽃망울이 부푸는 즈음인데 투명한 빗방울과 함께 달려 있었다. 신학기 첫날을 맞은 교정엔 학생이나 교직원은 보이질 않고 주차장 자동차만 그득했다. 산기슭 창원도서관으로 향해 사서 출근과 같을 시각에 열람실로 들어 신간 코너에서 교직 10년 차 안팎으로 짐작된 여교사가 쓴 ‘우리들의 문학시간’을 뽑아 창가 자리로 와 일별했다.
도서관에서 온종일 보낼 여건이 못 되어 집에서 읽을 책을 한 권 대출했다. 상담심리가이자 문화심리학자인 박상미가 지은 ‘마음 근육 튼튼한 내가 되는 법’은 배낭에 챙겨 넣고 도서관을 나왔다. 우산을 받쳐 쓰고 교육단지를 꿰뚫는 보도를 따라 걸어 창원수목원으로 향했다. 생태연못 가에는 수양버들이 수액이 오르는 때였다. 가지는 옅은 연녹색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교과서에 나오는 나무’가 자라는 언덕에서 ‘동요의 숲’으로 내려섰다. 산수유는 비를 맞고도 노랗게 꽃술을 달았고 자두나무나 모과나무는 움이 트는 기미만 보였다. 오두막집 주변에 심어둔 매화는 꽃잎을 펼치기 시작했고 수형이 특이한 단풍나무와 뽕나무는 꽃보다 잎이 무성해질 수종이었다. 수목원답게 정원수에서 드물게 본 다양한 조경수들이 꽃눈과 잎눈을 틔울 준비를 했다.
내친김에 대원동 주택 정비지구 아파트단지를 지나서 창원천 대원교를 건너 창원시농업기술센터로 갔다. 청사 뜰에는 우람한 왕버들이 가지가 옹글고 비틀어져 아주 세력 좋게 자랐다. 아직 잎이 트는 기미가 없어도 달포쯤 지나면 유록색 잎이 눈부실 왕버들을 미리 그려봤다. 일전에 찾았던 마산합포구 묘촌과 같은 양묘 단지 비닐하우스에서는 팬지를 비롯한 갖가지 봄꽃이 자랐다. 25.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