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임의경매 등기신청 건수가 3799건으로 집계됐다.
1년 전과 비교해 73%가 증가한 수치이다.
임의경매는 법원의 판결문을 전제로 진행되는 강제경매와 다르다.
채권자가 임의로 담보물을 경매로 매각하여 채권을 회수하는 집행절차이다.
금융 회사에 담보를 제공하고 대출을 받는 담보대출은 금융회사가 임의경매를 신청할 권리가 전제된 상품이다. 최근 임의경매 등기신청 건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은 금융회사들의 담보권 실행이 늘었고 그만큼 담보대출의 부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용대출보단 담보대출? 알고 보니...
소비자들은 신용대출보다 담보대출을 선호한다.
이자율이 낮기 때문이다. 그만큼 채무자에게 유리한 상품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상환이 어려워질 경우 담보대출은 순식간에 악마로 돌변한다.
담보대출을 3개월 이상 연체하게 되면 기한이익이 상실된다.
기한이익이란 채무자가 만기일까지 대출금을 나눠 갚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채무자가 갖는 이익을 말한다.
기한이익이 상실되었다는 것은 나눠 갚을 수 있는 권리가 상실되어 대출금 전체를 일시에 갚아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30년 만기의 1억짜리 담보대출을 가정해보자.
채무자는 1억 원의 대출금을 30년 동안 나눠 갚을 수 있다.
대출 금리는 5%이고 매월 원리금 균등으로 상환할 경우 53만 원 가량을 갚아야 한다.
사정이 생겨 원리금 53만 원을 3개월간 연체를 하게 되었다.
이 경우 기한이익이 상실되는데, 4개월 차부터는 53만 원씩 3개월 치가 연체된 것이 아니라 3개월 간의 원리금과 원금 1억 전체가 연체금이 된다.
연체이자도 3개월 이전에는 53만 원에 대해서 부과되지만 기한이익이 상실된 뒤에는 1억 대출금 전체에 부과된다.
말 그대로 연체이자가 폭탄이 된다.
이런 이유로 은행의 대출상품임에도 이자가 원금을 초과하기도 한다.
개인의 경우 담보대출에서 이자가 원금을 초과한 경우는 2016년 7565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5000 건 대를 유지하다 2020년에는 6418건을 기록했다. 원금 대비 이자는 2020년 기준으로 111%에 달했다.
4개월만 연체해도 임의경매로 집 빼앗겨
이 외에도 채무자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임의경매이다.
기한이익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채권자는 대출금 전체를 바로 회수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담보권을 실행해 임의경매에 부쳐 채권을 회수한다.
고작 연체 3개월 만에 채무자가 제공한 담보물은 더 이상 채무자의 것이 아닌, 금융회사의 것이 되는 셈이다.
설마 금융회사가 이렇게까지 할까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것이다.
국회 정무위에서 활동할 당시 이와 관련한 현황을 분석해 보았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 간 담보대출의 부실채권은 총 6만4870건이다.
이중 은행이 임의경매로 처분한 주택은 5만1243건으로 부실채권의 약 78%에 달했다.
이때 담보권이 실행된 3만517건을 연체 기간별로 구분해 보면,
3개월 이내 연체한 비중이 29%, 3~4개월이 20%였다.
임의경매로 처분된 담보대출의 절반 가량이 연체 4개월 이내의 채권이다.
몇 년을 열심히 갚았든 간에 연체가 시작되고 겨우 4개월 만에 채무자들은 집을 빼앗기게 된다.
기한이익 상실제도가 채권자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여러 선진국은 채무자를 보호하고 채권자에게 더 큰 의무를 부과한다.
영국과 호주는 신용 소비자 관련 법에 따라 '채권자는 연체 채무자와 문제 해결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의무가 있고 채무조정 협상을 완료하기 전에는 기한이익 상실이 불가능'하다.
미국 또한 소비자금융보호국(CFPB,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을 통해 연체된 담보대출에 대해 채권자가 채무조정 협상안을 제시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채무조정 기간에는 대출 채권을 매각하는 것이 금지되고 추심 또한 할 수 없다.
뉴질랜드의 경우에는 기한이익이 상실되어도 연체이자를 대출원금 전체에 부과할 수 없다.
몇 개월 연체했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채무자의 주택을 처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우리나라의 사정과 극명히 대비된다.
채권자에게 유리한 게임, 결국 위기를 증폭시킨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금리 상승으로 채무자들의 상환 능력이 크게 악화되었다.
채권자들의 임의경매 처분이 빠르게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현재 우리나라 주택담보 대출자의 평균 DSR(연간 소득에 대한 원리금상환액의 비율)은 60.6%이다.
주택담보대출을 갚고 있는 사람들이 매월 소득의 60%를 빚 갚는데 지출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을 보유한 차주 중 43.9%는 신용대출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들은 더 심각한 상황인데, 소득의 70%를 빚 갚는 데 지출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차주 수는 500만 명이 넘고 이중 절반에 가까운 220만 명 가량이 신용대출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소득의 70% 이상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버티는 이들도 있겠으나, 결국 연체 대열에 끼게 되는 채무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을 무시할 수 없다.
법원 경매정보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접수된 경매는 4만6476건으로 지난 5년 간의 통계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경매 낙찰율은 30%가 되지 않는다. 낙찰가격도 크게 하락하는 추세이다.
임의경매 건수는 늘고 낙찰율과 낙찰가율마저 떨어지게 되면 채권자 입장에서 채권 회수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부동산 시장의 가격하락을 견인하게 된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주택담보대출 차주의 채권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채권자에게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의 룰이 부동산 시장의 하락을 가속화하고 그로 인해 금융시장의 위기가 증폭된다.
최근 미국 월가에서 '민스키 모먼트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가 등장했다.
민스키 모먼트는 미국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가 주장한 '금융 불안정성'이론을 바탕으로 금융시장이 붕괴되는 시작점을 말한다.
그 시작점을 만드는 것이 바로 은행이다.
'화창한 날 우산을 주고, 비오면 우산을 도로 거둬가는' 잔인한 관행이 금융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소비자 보호를 등한시한, 금융의 룰이 채권자 스스로를 파산으로 내모는 금융위기의 주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