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가 사내를 바짝 추격하여 숲을 통과하자, 갑자기 눈앞에 궁전이 나타났다. 사내는 궁전 앞에 당도하자, 박도를 내던지고 사람들 틈에 섞여 버렸다. 사내가 보이지 않아 이규가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대전 위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이규는 무례한 짓을 하지 마라! 들어와서 천자를 알현하라!”
이규는 문득 깨달았다.
“여기가 문덕전이구나! 지난번에 송공명 형님을 따라 와 본 적이 있어. 바로 황제가 계신 곳이군.”
전상에서 또 말이 들렸다.
“이규는 빨리 엎드려라!”
이규는 도끼를 감추고 앞을 올려다보니, 황제가 저 멀리 전상에 앉아 있는데 많은 관원들이 배열하고 있었다. 이규는 단정한 태도로 세 번 절을 올리고 나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차! 절을 한번 빼 먹었구나!”
천자가 물었다.
“조금 전에 너는 왜 많은 사람을 죽였느냐?”
이규는 무릎을 꿇고 말했다.
“그놈들이 강제로 남의 딸을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이 분노하여 죽였습니다.”
천자가 말했다.
“이규는 억울한 일을 보고 나쁜 놈들을 없앴구나. 그 의기와 용기가 가상하여 죄를 사면하고 치전장군(值殿將軍)으로 삼겠노라.”
이규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생각했다.
“원래 황제는 이렇게 밝으신 분이었구나!”
연달아 10여 번 머리를 조아리고 나서 일어나 대전 아래에 시립하였다.
잠시 후, 채경·동관·양전·고구가 반열에서 나와 엎드려 아뢰었다.
“지금 송강이 병마를 거느리고 전호를 토벌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전진하지 않고 머물러 앉아서 종일 술만 마시고 있습니다. 황상께서는 그의 죄를 다스리십시오.”
이규는 그 말을 듣자 가슴 속에서 불같은 분노가 3천 길이나 치솟아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쌍도끼를 들고 달려 나가, 한 번에 한 놈씩 네 놈의 머리를 모조리 잘라 버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황제께서는 이 간신 놈들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우리 송공명 형님은 이미 연이어 세 성을 깨뜨리고, 지금 개주에 주둔하여 곧 출병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속일 수 있단 말입니까?”
이규가 네 대신을 죽이는 것을 본 문무관원들이 이규를 잡으려 하자, 이규가 쌍도끼를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감히 날 잡으려는 놈은, 이 네 놈같이 될 것이다!”
관원들은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규는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통쾌하다! 통쾌해! 이 네 놈의 간신들을 끝장내 버렸으니, 얼른 송공명 형님께 가서 알려야지.”
이규가 성큼성큼 걸어서 궁전을 나와 보니, 문득 앞에 산이 나타났다. 가만히 살펴보니, 아까 전에 선비를 만났던 산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선비가 산 앞에 서 있다가 이규를 맞이하며 웃으며 말했다.
“장군께서는 잘 놀다 오셨습니까?”
이규가 말했다.
“형씨께서 잘 가르쳐주셔서, 방금 간신 네 놈을 죽였습니다.”
선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랬군요! 나는 분주와 심주 사이에 살고 있는데, 근래에 우연히 이곳으로 놀러 왔다가 장군 등이 마음에 충의를 품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장군께 긴요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송선봉께서 전호를 토벌하러 오셨는데, 내가 열 글자로 된 요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대로 하면 전호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장군은 잘 기억하셨다가, 송선봉에게 알려 주십시오.”
그리고는 이규에게 요결을 읊어 주었다.
“요이전호족 수해경시족(要夷田虎族 須諧瓊矢鏃)”
‘전호의 무리를 평정하려면 반드시 경시족과 화합해야 한다.’는 그 말을, 선비는 대여섯번 읊었다. 이규도 왠지 그 말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여 열 글자를 잘 기억했다. 선비는 다시 숲속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노파 한 분이 숲속에 앉아 있습니다.”
이규가 몸을 돌려 보는 사이에, 선비는 사라져 버렸다. 이규가 혼자 말했다.
“그 사람, 빠르기도 하네! 어쨌든 숲속에 누가 있는지 가 보자.”
이규가 숲속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한 노파가 앉아 있었다. 이규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바로 자기 어머니였다. 눈을 감은 채 조용히 푸른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이규가 다가가 어머니를 끌어안고 말했다.
“엄마!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소? 철우는 엄마가 호랑이한테 잡아먹힌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여기 있었네!”
어머니가 말했다.
“얘야! 나는 원래 호랑이한테 잡아먹히지 않았다.”
이규는 울면서 말했다.
“철우가 이제 초안을 받아서 진짜 관원이 됐어요. 송공명 형님이 북쪽 성에 주둔하고 있으니, 철우가 엄마를 업고 성으로 모시고 갈게요.”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소리가 울리면서, 숲속에서 얼룩무늬의 맹호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맹호는 크게 포효하더니 꼬리를 흔들면서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이규는 도끼를 들어 맹호를 내리쳤다. 있는 힘껏 내리쳤는데, 도끼는 허공을 가르면서 이규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런데 고꾸라진 곳이 의춘포 우향정의 탁자 위였다.
송강은 형제들과 지난날의 일을 한창 얘기하고 있었다. 처음에 이규가 탁자에 엎드려 졸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소리가 났다. 이규가 자고 있다가 두 손으로 탁자를 내리쳐 사발과 접시들이 다 엎어지고 국물이 튀어 두 소매가 다 젖었는데, 입으로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엄마! 호랑이가 달아났어!”
순간 이규가 두 눈을 뜨고 둘러보니, 등불이 휘황하게 밝혀져 있는 가운데 형제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규가 말했다.
“쳇! 꿈이었구나! 그래도 통쾌하다!”
두령들이 모두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꿈인데, 그렇게 기분이 좋은가?”
이규는 먼저 꿈에 어머니를 본 것부터 얘기했다. 어머니는 원래 돌아가시지 않았고, 그래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호랑이가 덤벼들었다는 얘기를 했다. 두령들은 모두 탄식하였다. 이규가 나쁜 놈들을 죽이고 술상을 발로 차 엎은 얘기를 하자, 곁에 있던 노지심·무송·석수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통쾌하군!”
이규가 웃으며 말했다.
“더 통쾌한 일이 있소!”
이규가 채경·동관·양전·고구 네 간신을 죽인 일을 얘기하자, 모두 박수를 치면서 일제히 소리쳤다.
“통쾌하다! 통쾌해! 그런 꿈은 꿀 만 하네!”
송강이 말했다.
“형제들! 그만 하게. 꿈속 얘기는 중요한 게 아니네.”
이규는 한창 얘기에 흥에 올라 소매를 걷고 주먹을 쥐면서 말했다.
“그만 하라고요? 참으로 일생에 이렇게 통쾌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기이한 일이 있었습니다. 꿈에 나타난 선비가 나한테 ‘전호의 무리를 평정하려면 반드시 경시족과 화합해야 한다.’는 요결을 일러주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이 열 자가 전호를 격파할 수 있는 요결이라고 했습니다. 나더러 잘 기억했다가 송선봉께 전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송강과 오용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때 안도전이 ‘경시족’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는데, 몰우전 장청이 눈짓을 했다. 안도전은 미소를 띠면서 입을 다물었다. 오용이 말했다.
“그 꿈이 제법 기이하구먼. 눈이 그치면 진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술자리를 파하고 모두 자러 갔다.
다음 날 눈이 그치자, 송강은 노준의·오학구와 의논하여 병력을 두 길로 나누어 동서로 진격하기로 하였다. 동쪽 길은 호관을 넘어 소덕·노성·유사를 취하고 적의 소굴 뒤를 돌아 큰 골짜기를 따라가 임현에 당도하여 병력을 합치기로 하였다. 서쪽 길은 진녕을 취하고 곽산으로 나가 분양을 취하고 분휴·평요·기현을 지나 위승의 서북쪽으로 가서 임현에 당도하여 병력을 합치기로 하였다. 그런 다음에 위승을 취하고 전호를 사로잡는다는 계획이었다.
양로의 부대는 다음과 같이 배정하였다. 정선봉 송강은 장수 47명을 거느린다. 군사 오용과 임충·삭초·서녕·손립·장청·대종·주동·번서·이규·노지심·무송·포욱·항충·이곤·단정규·위정국·마린·연순·해진·해보·송청·왕영·호삼랑·손신·고대수·능진·탕륭·이운·유당·연청·맹강·왕정륙·채복·채경·주귀·배선·소양·장경·악화·김대견·안도전·욱보사·황보단·후건·단경주·시천, 그리고 하북의 항장 경공이었다.
부선봉 노준의는 장수 40명을 거느린다. 군사 주무와 진명·양지·황신·구붕·등비·뇌횡·여방·곽성·선찬·학사문·한도·팽기·목춘·초정·정천수·양웅·석수·추연·추윤·장청·손이랑·이립·진달·양춘·이충·공명·공량·양림·주통·석용·두천·송만·정득손·공왕·도종왕·조정·설영·주부·백승이었다.
배정을 마친 다음 송강은 다시 노준의와 상의하였다.
“이제 여기서 병력을 나누어 동서로 진격할 건데, 아우는 어느 쪽으로 가겠는가?”
노준의가 말했다.
“장병을 파견하는 것은 형님의 엄명을 따를 뿐입니다. 어찌 감히 제가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천명을 한번 봐야겠네. 부대를 둘로 나누는 것은 결정했으니, 어디로 갈지는 제비를 뽑아 결정하도록 하세.”
배선을 불러 동·서 양쪽의 제비를 만들게 하고, 송강과 노준의는 분향하고 기도한 다음 송강이 먼저 제비를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