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상항
유럽엔 점차 중앙집권화된 강력한 국가들의 힘에의해 정치적으로 좌지우지 되고 있었다. 농업의 증대는 식량생산을 끌어올렸고, 이는 유럽과 북미 전여게 걸쳐 신속한 인구 증가가 가능해졌다.
-계몽주의
이전 세기에 이루어진 과학전 진보로 인해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를 포함한 온갖 종류의 의문을 인간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이끌었으며, 이것은 경험과 세심한 관찰을 통해 추론함으로서 얻어졌다. 자연법칙에 대한 신념은 개개인이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과 국가의 역할이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했다. 계몽주의 운동에 동의했던 사람들은 교회보다 개인의 신념과 실제 도덕성에 가치를 두었으며,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을 선호하고 보편적인 교육과 점차 증가하는 사회적 평등을 장려했다.
일반적으로 계몽주의는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는데 관심이 있었고, 통치자들은 예술과 문학을 후훤했고 사회개혁도 촉구하였다. 인도주의적 이상과 보편적 형제애에 대한 갈망은 프리메이슨이라고 알려진 대중적인 운동이 세워지는데 근원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메이슨이라는 비밀스런 형제적 질서를 가르치는 집단으로 18세기 런던에서 설립되어 북미 전체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이 단체에는 괴테, 하이든, 모차르트 등이 속해 있었다.
-음악의 역할
몇 백년동안 음악의 스폰서 역할을 궁정과 교회가 지속적으로 해오기도 했지만, 음악가들은 점점 대중의 지지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도시에서 공공음악회 가 열렸고, 이는 연주자와 작곡가에게 모두 수입을 보완하고 청중에게 다가갈 기회를 부여했다. 또한 많은 음악가들은 아마추어 연주자들을 교습하며 돈을 벌기도 했다.
경제가 확대대고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여흥을 즐길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음악활동을 하는 아마추어의 수가 증가했다. 18세기 중반부터는 상당수의 아마추어 집단이 형성되어 출판업자들에게 새로운 풍부한 시장을 제공했다.
-공공음악회
당시 음악회는 사적인 음악회와 공공음악회로 나뉘었다. 사적인 음악회는 귀족 후원자가 모든비용을 떠안고 초대받은 사람만 올 수 있었다. 공공음악회의 경우 일정비용을 내고 가면 되었는데 상당히 비싼 가격으로, 부유한 사람들만 올 수 있었다. 대개 3시간 가량 공연이 있었으며, 합창, 협주곡, 독주 등 다양한 레퍼토리가 있었었다. 또한 자기기 관심있는 음악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필요하면 주변을 거닐거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침묵하는 관객은 19세기의 발명품이다.
- 대조적인 감정
고전음악이 가지는 가장 놀라운 특성 중 하나는 바로 인간심리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전망에서 도출됐다는 것이다. 17세기 데카르트와 다른 철학자들은 일단 분노, 공포와 같은 감정이 생길 때 또 다른 작용으로 마음이 움직여 다른 상태로 가기 전까지는 그 감정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크 시절의 자곡가들은 한 악장에서 단 하나의 분위기를 실으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혈액순환, 신경체계에 대한 지식과 심리학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자 감정은 수시로 예측할 수 없는 관계에서 끊임없이 밀치고 들어와 유입되는 것이라는 이해의 지평을 새롭게 넓히게 되었다. 감정이 항구적인 상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달라지고 때로는 자신이 겪는 경험이나 생각과 모순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는 개념이 등장함으로서 한 악장이나 부분에 단일한 감정을 싣는 바로크적 접근 방식은 시대에 뒤진 진부한 개념이 되어버렸다. 대신 작곡가들은 악장 내의 다양한 부분에서 심지어 주제 안에서조차 대조적인 부분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 18세기 초 중반
18세기 초중반에 등장한 새로운 음악어법은 성악음악 특히 희극오페라와 자국어 노래에 그 주요한 음악적 원천이 담겨 있었다. 관객을 즐겁게 하고 다양한 관객을 확보하려는 강한 욕구는 보다 효과적이고'자연스러운'표현 방법을 찾아 음악의 수단을 단순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명료하고 보편적으로 호소력을 갖는 음악에 대한 취향이 점차 증대되자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작곡가들은 처음들어도 바로 파악이 될수 있으면서도 음악적 아이디어가 논리적으로 조직되어 충만히 흐르는 음악을 개발했다.
바흐와 헨델의 바로크 시대의 전형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고전의 대가로 음악사 서술방식으로 인해 이 시기는 과도기 적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며, 영구적인 레포트리는 거의 없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의 음악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 18세기 중반기
18세기 중반기에 등장한 새로운 음악 어법은 일차적으로 오페라의 발전을 이끌었고 기악음악에 퍼쳐나갔다. 악구의 주기성, 노래하는 선율, 다양한 재료, 대조적인 짜임새와 양식, 극을 다루는 수법 등 기악음악은 이 모든 새로운 음악 어법과 쉽게 관련을 맺고 따라 갈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성악음악에서 차용한 음악어법을 통해 기악음악은 새로운 독립성을 획득했다.
귀족과 부유층계층의 저택에서는 저녁식사와 파티가 열리는 동안 필요한 연주를 위해 음악가들이 고용되었다. 때로 전문 연주자도 포함된 아마츄어 오케스트라는 개인이나 공공 음악회에서 연주하였고 전문가 집단도 연주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졌다.
하프시코드와 클라비코드는 19세기 초 까지 계속해서 연주되고 제작되었지만 두 악기 모두 피아노에게 점차 인기를 넘겨 주었다. 클라비코드 (현과 접촉하여 누르는 원리) 소리 들어보기 -> http://www.youtube.com/watch?v=9WuVVE2t-Vk
하프시 코드(현을 뜯는 원리) 소리들어보기 - > http://www.youtube.com/watch?v=71iUAFFQ8ik
- 실내 앙상블
앙상블 음악은 수많은 조합으로 작곡되었는데 처음에는 첼로나 플루트처럼 선율악기를 위한 작품이 건반, 하프, 기타가 반주를 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점차 건반악기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다른악기가 반주를 하는 경향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는 중간 또는 상류층 가족의 가정용 음악활동 중 건반 악기 음악이 차지하는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딸들은 건반악기를 능숙하게 잘 다루는 경우가 있었는데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주로 했던 아들들은 실제 연습에 헌신할수 없엇기 때문에, 여성을 휼륭한 전문적 기교가 돋보일 수 있는 작품이 요구되었다.
지금은 음악회장에서 연주되고 당시에도 그런경우는 있었지만 본래 소규모 편성의 실내작품들은 일차적으로 연주자와 그 친구들이 함꼐 즐기려는 의도로 만들어 졌다. 이러한 연주는 20세기 카드놀이와 마찬기지로 18세기 말의 사교 활동이었다.
참고음악 http://www.youtube.com/watch?v=0bUAM0ER-Dw - orfeo ed euridice http://www.youtube.com/watch?v=uZQxuRNgWNc - CPE bach(bach아들)의 실내악작품
글쓴이 :베토벨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