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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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그 율이 쎈 부산대 정치과에 입시때는 여학생들이 몇 있었지만 합격은 혼자하여 홍일점으로 다녔는데
그 수십명 남학생들이 하나같이 언니에게 구애를 펼쳐 도저히 살 수가 없다며 아버지를 졸라 드디어 자기가
좋아하는 서울로 가 한 대학에 편입학을 한다. 거기서도 정치과에 홍일점으로 같은 현상이 일어나 여자들만
있는 수도여사대(세종대 전신) 영문과 야간에 편입학하여 다녔다. 정치과는 어디나 모두 홍일점이 되어 귀찮아
도무지 다닐 수가 없다며. (그 여대엔 정치과가 없었다.) 그 때 언니는 깨닫는다. 부산남자들이 촌스러워서
그런게 아니라 남자들이란 부산남자든 서울남자든 다 똑같다는 것을.
그 2년제 야간을 졸업하던 바로 그 해 5.16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내려오라는 아버지의 특명이 떨어져 언니는
집으로 와서 서면에 있는 한 여자중학교에 영어과 교사로 취직한다. 언니는 이제 우리 집안을 위해 아버지
대신 가족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아버지는 부산대 교수직에 사표를 던지고 자신은 이제 서울로 가서 민족통일 운동을 해야한다시며. 부산대의
최고 명망높은 스타교수를 놓치기 싫었던 총장이 극구 말렸지만 아버지의 그 유명한 고집을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사표는 수리를 안해둘 테니 언제든 다시와서 교수직을 맡아달라 했다. 들은 체도 안하셨던 아버지는 그 서울
에서의 활발했던 활동으로 일년도 못가 박정희의 혁명재판소로 끌려가셨던 것이다. 부산대에선 아버지가 사형
구형도 받고 10년 선고를 받고하자 더 못기다리고 사표를 수리한다.
나는 그 해 서울로 가서 대학에 입학했고 그 때부터 나의 험난한 아버지 수발노동이 시작되었다. 간수 10년이
징역 5년이란 말이 있듯이 내 젊은 날의 화려해야 할 학창시절은 그 고된 징역생활로 불행하였다. 그 불행
이란 육체적인 것 뿐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그 모든 정치 사회 부조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고통으로 나는
우울병과 일종의 정신병을 앓았다. 그 영향은 그 후 나의 평생에 영향을 주었고 지금 껏 어디나 활발히 나서지
못하고 산비탈의 굴 속같은 생활을 하게 된 원인아닌가 싶다. 그리고 드디어 이제야 나는 편히 쉴 수 있는
편안함을 느낀다.
아버지가 구속되자 그 제자들 몇이도 부산에서 구속되어 서울로 압송되고 취조에 이어 감옥살이를 몇년 하게
된다. 미결수로 감방에 아버지와 같이 수감됐을 때 거기서도 사제간의 가르침은 계속되어 아버지를 둘러싸
앉은 그들에게 아버지가 강의를 하시던 광경은 바로 집에서 하던 그 강의모습의 연장이었던 것이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말로만 듣고 상상해 보건데 그들은 모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똑바로
앉아 스승님의 가르침을 경청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르침으로 그들은 모든 취조에 강인하게 버틸 수 있었
을 것이다.
구속되기 전에 도망다니던 제자들 중에 한분의 얘기를 나중에 들어보니 그분은 갓 결혼하여 백일이 다 된
아들이 있었는데 피신 중에 한번 그 아들과 아내가 보고싶어 사람을 넣어 마을안에 한 여관으로 잠깐 나오
라는 전갈을 보냈던 것이다. 국민학교 교사였던 그 아내는 아들을 들쳐 업고 그 여관으로 가서 그분은 그리던
아들을 가슴에 안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들이 들이닥쳐 그는 여관방의 작은 창문을 통해 맨발로 달아났던
것이다.
처음 만나자마자 현명한 그 아내는 '당신이 어디로 갈지 제발 내게 말하지 말아주세요'라 했고 그녀는 아기를
업은 채 경찰서로 끌려간다. 그로부터 그녀는 남편의 행방을 추궁당했는데 그 방법이 몇일 간을 잠을 재우지
않고 막무가내로 심한 추궁만 해대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녀는 내게 말하기를 만일 자기가 남편의 행방을
알았더라면 너무도 고통스럽고 정신이 없어 자기도 모르게 불었을 거라 했다.
요즘 자주 티비에 나오는 광고 중에 아기가 밤새 울어 한숨도 못잔 부부가 아침에 아기가 활짝 웃는 모습에
씻은 듯 모든 피로가 다 풀리고 행복해져서 아기엄마가 '이래서 모두 아기를 낳아 키우나봐요'라며 웃는 모습
인데 보건복지부의 아기 많이 낳으라는 광고로 내가 보기엔 최악의 광고로 보인다. 젊은이들은 아기를 가지려
하다가도 그 장면을 보고 아기를 낳으면 저런 고통을 당하는 거구나 싶어 단념할 것 같다.
나의 큰애도 몇번 그런 적이 있는데 한 사흘을 내리 밤에 안자고 우는 통에 아주 혼이 난 적이 있다. 아무리
달래도 울기만하고 아침이 되면 잠이 들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온종일 자기만 했다. 아침에 출근하던 애아빠
의 잠을 못자 벌게진 눈을 보면 내가 죄를 지은 듯 괴로웠고 솔직히 아이가 좀 미웠었다.
얼마전 티비엔 밤새 울어 잠을 못잔 아기의 아빠가 아침에 아이를 번쩍 들어 십여층 높이의 아파트 베란다
에서 내던져 살인혐의로 구속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내가 아는 분의 그런 아기의 아빠는 새벽에 아이를
가슴에 안고 있는 힘껏 힘을 주어 아기가 새파랗게 잠겨 기절하더라고 그 엄마가 하소연하는 걸 들었다.
그런 걸 보면 여자보다 남자들이 훨씬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인 것 같다.
보건복지부는 그 광고를 자랑스러워하여 매일 티비에 내보내는 것 같은데 그 광고 만든 사람들 모두 경찰에
구속되어 밤새 잠안재우는 고문을 몇일 받아보아야 알 것이다.
2회로 끝내려 했는데 정작 중요한 얘기를 못해 할 수 없이 다음회로 미루어야 하겠다. 3회까지 계속하여
회원 여러분들께 긴글을 읽는 고문을 가하게 되니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첫댓글 통일 운동으로 많은 고생 하셧군요.......감사히 잘 읽고,통일을 다시 함 생각 하네요.....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해방후에는 통일운동을 하셨네요
독립운동이나 통일운동은
최대의 애국이지요
대단한 분이셨네요
독립 운동가 후손들은 하루 하루 힘든 생을 살고 잇지요.........
부산대 초대 윤인구총장은 그 집안이 항일 애국자들이라 아버지를 알아보고 처음에 부산대로 끌어들인 분입니다.
그런분이 박정희치하에 공존할 순 없었겠지요. 그 후 특히 국립대들은 군사정권에 밉보이면 감히 총장이란 생각도 못했지요. 윤총장은 구테타가 일어나자 바로 총장직을 내 놓았구요.
그러니 아버지가 후에 다시 부산대로 돌아간다해도 받아줄 총장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물론 건강이 허락하지도 않았지만..
봉수님 무학님 감사합니다
군사쿠테타에 맞서기 위해 絶筆하시고 赤手空卷으로 총칼을 받아내셨군요.
진정 국가와 궁민들을 위해 큰 일을 하실분들이 많이 희생되었지요.
당시만 하더라도 국정지표를 반공으로 내세우면 여기에서 자유로울 사람들이 없어요.
지금껏 우려먹는 것이 왜구가 일정기 때 써먹었던 치안유지법이 보안법이라는 탈로 바뀌어 쓰이고 궁민들 겁박용으로 활용됩니다.
남북반도에서 필요한 법이 아니라 왜구와 未國이 식민지배 수단으로 존속시킨 악법이지요.
작금은 매궁노들이 未國을 등에 업고 매국질을 일삼는 도구가 되었지만요.
이게 아직도 빨갱이 놀음에 유용하게 쓰이니 무형의 족쇄가 되어 민족통일은 물론 정당한 매궁노 반정부 투쟁은 물론 외세축출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을 합니다.
엄친께서 어떤 수모를 당하셨고 가족들 또한 버금가는 고통과 겁박속에서 살아오셨을지 감이 옵니다.
민족과 국가를 팔아먹는 매궁노로 살아가기보다 한순간 고통으로 받아드리면 떳떳한 삶을 살다가 順環하신 엄친이하 가족분들이 존경받는 세월이 오겠지요.
연약한 여성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울증을 앓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요.
우울증은 뇌로 가는 기혈이 막혀 생기는 병인으로 당시에는 치료가 매우 어려운 점이 있어요.
그걸 잘 견뎌내셨다니 천행입니다.
아직도 증상이 남아있다면 사향공진단을 쓰면 치료가 가능합니다.
뇌로 가는 기혈을 뚫어주는 유일한 약재가 사향입니다.
사향이 들어가지 않은 공진단은 효과가 없구요.
늘 안강하시고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어가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_()_
실상 근대 한국사회를 살아오며 정신병환자인가 아닌가의 한계는 대단히 모호합니다. 오히려 멀쩡한 뇌건강으로 살아온 인간이 더 비정상이겠지요.
그런면에서 나는 비정상인 편이라 더 정상입니다.
나는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해도 그렇게 고민하고 고통받아온 삶을 또 택할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하느님께 떳떳한 삶을 보이고 싶어서라도. 나는 내가 친일파집안에 태어나 아무 의식도 없이 잘먹고 잘입는 개돼지 삶을 살지 않아도 됐음을 감사드립니다.
나의 치매진단은 더이상 개선되지 않고있어 그저 더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사향공진당이 치료가 가능하다니 한번 알아봐야겠습니다.
올리신 글 내용으로 보면 인지 언어능력에 문제가 보이지 않네요.
그런데 치매라 하시니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대체로 우울증을 앓던 분들이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게 되면 치매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기혈이 막혀 오는 치매증상으로 뇌졸중과 우울증이 원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향공진단이 기혈을 풀어주니 치료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뉴런이나 뇌세포의 기능이 손상되거나 쇠퇴하는 경우에는 치료가 어려운 걸로 보여요.
사실 개인적으로 易學을 공부하는 이유도 정신건강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큽니다.
뉴런과 뇌세포 쇠퇴가 극미하고 뇌에 이상 단백질 축적이 아니라면 사향공진단이 효과를 발휘할수가 있겠다 싶어요.
다음 카페 '백두대간이야기' 들어가 회원가입하시고 검색해보면 사향공진단 정보를 확인할수가 있습니다.
운영자는 국내인으로 중국에서 동북삼성지역에서 활동하는데 한의사 미면허재도시에 한약사로 활동하다 한의사 도움으로 시향공진단 제조법을 익혔다 합니다.
국내에서는 사향을 구할수가 없고 백두대간에서 구해 제조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병인이 잘 관히되어 건강한 삶을 영위하시길 기원합니다.
언니 , 잘먹고 잘사는건 욕심이고 나라를 사랑하고 후손에게 독립정신을 주셨으면
언니는 분명 전생에 아버지 보은으로 남은 생에 편안히 눈감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녀들은 중산층으로 욕심없이 가족ㅇ이 평안하실거구요
독립군 사진만 보면 슬퍼지네요
언니 빨리 나으시길 기원합니다
고마운 말들이지만 내 3부의 글을 읽고나서도
그런말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