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열린 북한 정권 수립 790주년(9.9절) 행사에서 관심을 모았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등장하지 않은 건 다행한 일이다.
지난 2월 건군 70주년 열병식 때는 ICBM급인 화성-14.15형 미사일이 공개됐지만 이번엔 없었다.
주요 행사 때면 으레 이뤄졌던 TV 생중계도 녹화방송으로 바뀌었다.
9.9절을 다룬 노동신문조차 버릇처럼 쏟아냈던 미국에 대한 공격을 자제했다.
북핵 협상을 의식해 미국 증 국제사회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정확한 내용과 전달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가 지난 6일 미국 측에 전달됐다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다.
이에 트럼프는 '나와 그(김 위원장) 사이에 오간 이야기들은 매우 좋은 것들이었다'며
친서가 북.미 고나계 개선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도 9.9절 행사에 시진핑 국가 주석 대신 서열 3위의 리잔수 전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을 보내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북한 얼굴을 세워졌다.
마이클 폼페어오 미 국무장관의 돌연한 방북 취소로 싸늘해진 한반도 상황에 돌연 온기가 감도는 분위기다.
적어도 김 위원장이 판을 깨지 않으려는 게 확인된 덕분이다.
하지만 북한과 우리 정부 모두 명심해야 할 대목은
이런 유화 제스처만으로는 대북 제재를 늦출 수 없다는 사실이다.
숱하게 지적했듯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장 폐쇄만 했을 뿐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는 한 톨도 취하지 않았다.
우리를 겨눈 핵미사일 위협은 전혀 줄지 않은 것이다.
이런 판에 남북 교류 촉진을 위해 온갖 조치를 밀어붙이는 것은 과속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비핵화 과정이 올해 말까지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진도를 내도록
정부는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