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판지 둑길을 걸어
지난날 현직 시절은 이중 신분을 유지한 채였다. 주중은 학교로 출근해 아이들 앞에 섰고, 주말이나 방학이면 산과 들이나 도서관에서 한 수 배우는 학생이었다. 삼 년 전 정년을 맞으면서 가르치던 직은 내려놓고 학생으로 돌아와 홀가분해졌다. 생활권 주변을 맴도는 수준이지만 산천을 누비거나 도서관으로 나간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얽매임 없는 방목형 자연인이 되다시피 했다.
작년 봄 느슨하지만 어디 한 군데 묶이게 된 임무가 주어졌다. 당국의 시니어 일자리 창출을 겸한 치안 보조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번잡한 시내에서 벗어난 농촌 지역으로 지원해 하굣길 학교 주변 아동안전지킴이 역을 연말까지 수행했다.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 강둑이나 들녘을 걷고, 오전은 마을도서관에 머물다가 오후에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고 집으로 오면 하루해였다.
해가 바뀌어도 그 사업은 계속되어 지원해 정한 절차를 거쳐 올봄에도 나가게 된다. 근교 농촌 아이들 하굣길을 살피는 임무라도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섬에 변함이 없다. 아침나절에 들녘 산책과 도서관 열람실에서 시간을 보낸 후 정한 시간에 임무를 수행하고 귀가다. 어찌 보면 개미 쳇바퀴 도는 듯해도 등굣길 동선은 여러 갈래 무궁무진 다른 행로여서 매일 새로운 날을 맞는다.
삼월 첫 주 수요일 아침이다. 다른 학생들과 같은 등교 시간에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에 한 아주머니가 가꾸는 꽃밭을 둘러봤다. 엊그제 비가 온 뒤 꽃밭은 더디기는 해도 봄이 오는 기운이 번졌다. 초본에서 피운 꽃은 아직 볼 수 없었다. 수선화가 뾰족한 순을 내밀고 히말라야 바위취가 잎맥이 생기를 되찾으면서 꽃눈이 맺힐 자리는 소년 얼굴 여드름처럼 보였다.
목본에서는 가지가 넌출로 드리워 꽃을 피우는 영춘화가 노란 꽃잎을 화사하게 달았다. 사림동 주택지 골목에서는 우수 무렵에 핀 영춘화였는데 아파트단지 꽃밭은 거기보다 채광 시간이 적은 편이다. 내가 생활 속에 남기는 글감으로 영춘화도 놓치지 않아 여러 차례 소환했다. 꽃밭을 서성이다 피사체로 삼을 다른 대상이 없어 영춘화를 한 번 더 앵글에 담고 버스 정류소로 갔다.
정류소 의자에 겉옷으로 잠바를 껴입은 두 소년이 앉아 차가 오길 기다렸다. 체격이 작아 이제 갓 입학한 중학생으로 보여 가까운 학교를 두고 버스로 통학하여 안쓰러워 어디 학교냐고 물었더니 고등학생이라 했다. 그 학교는 교육단지 사학으로 통학버스가 다니질 않느냐고 하니 다음 주부터 운행해 내일까지는 버스로 다닌다고 했다. 가는 방향이 달라 둘은 먼저 온 버스를 탔다.
나는 창원역 앞으로 나가 1번 마을버스로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에 내렸다. 남산리를 거쳐온 중앙천을 건너니 갯버들이 선 저습지는 쇠물닭 한 마리가 꽁지의 기름을 쪼아 까만 깃을 정리하고 있었다. 동판지 둑길은 작년 가을에 꽃을 피웠던 코스모스 줄기가 삭은 틈새 야생 갓이 파릇이 자랐다. 그곳에 절로 자란 유채도 보여 더 크면 후일 채집도 가능할 듯했다.
잎이 돋는 기미가 없는 갯버들이 무성한 동판지 수면에 고니 떼 고시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고 긴 둑길이 끝난 배수문에서 주천강 둑길로 걸어 남포로 가는 좁은 다리를 건넜다. 하천이 흘러간 곳은 진영 신도시 아파트단지였다. 토사를 메워 텃밭을 조성한 남포 농부는 자갈돌을 가려내고 두엄을 뿌려 봄 농사 손길에 분주했다. 들녘에는 기러기들이 먹이활동에 열중했다.
고등포에서 신등을 거쳐 상등마을을 지났다. 오후에 다시 와 아이들 하굣길을 살필 초등학교도 거쳤다. 가술에 닿아 점심으로 추어탕을 한 끼 때우고 자투리 시간은 마을도서관을 찾아 1층 로비에서 배낭에 넣어간 대출 도서를 꺼냈다. 심리상담가 박상미가 쓴 ‘마음 근육 튼튼한 내가 되는 법’을 일별했다. 이후 정한 시간에 녹색 조끼를 입고 동료들을 대면하고 현장으로 나갔다. 2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