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자료는 성기호 박사의 '이야기 신학'과 김동건 교수의 '김동건의 신학이야기 모든 사람에게'의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하여 편집 정리한 내용임을 밝힌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은사를 사모한다.
집회도 은사집회를 해야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신학강좌를 하면 겁부터 낸다.
신학은 어렵고 재미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신학책도 마찬가지다.
신학책을 큰맘 먹고 구입해도 끝까지 읽는 사람은 드물다.
신학을 강조한다고 해서 은사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신학'과 '은사'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학을 통해 은사의 중요성을 바로 알 수 있다.
기독교인이 은사를 사모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경도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한다.
은사는 참으로 귀하다.
그렇기에 은사를 잘못되게 구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여기서는 은사의 개념과 종류 성격과 특징에 대해 알아보자.
성령의 은사란?
은사(恩賜, gift 또는 카리스마 charisma)라는 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은혜로운 선물'을 의미한다.
가장 기본적인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로마서6:23)으로 하나님께서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입은 신자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사이다.
사람이 성령 세례를 받으면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며 주님과 동행을 실감하게 되고 자기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갈라디아서2:20)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보호를 은사라고 했다(고린도후서2:10-11).
위기와 고난 속에서 본인이 드리는 기도나 다른 성도들에 의해 드려지는 중보의 기도를 통해 위기에서 건지심과 보호의 은사가 주어진다(시편 50:15).
이러한 은사들은 신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은사이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를 초자연적인 신비 현상들 즉 방언, 귀신을 내쫓거나 병을 고치는 은사 등만으로 한정하는 오해가 있다.
또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이가 자기와 같은 은사를 받지 못한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교만해지는 경우가 있다.
은사를 받은 이는 더욱 겸손하여야 하겠고 덕을 세우고 교회에 유익을 끼치도록 해야 한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나눠 주시는 이는 한 분 성령이시고 신자들의 형편을 가장 잘 아시는 성령께서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직임을 맡기사 여러 가지 역사를 하게 하신다(고린도전서12:11).
신자가 구하거나 선택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개인의 환경과 재능에 따라 성령께서 자유로이 신자들에게 각양의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
신자들은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서로 봉사하여야 한다(베드로전서 4:10).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주시니 성도들은 한 몸의 지체들로서 분쟁이 없이 서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고전 12:18,25).
은사의 성격
성경에는 은사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다. 구약과 신약에 두루 나타난다.
은사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기본적인 세 가지 성격을 보자.
첫째, 은사는 성령이 '함께'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령이 함께하지 않으면서, 은사만 주는 경우는 없다.
성령이 함께하지 않은 것은 아무리 신기하고 놀라운 현상이라도 은사가 아니다.
교인 중에는 성령과 함께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어떤 능력과 현상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이 있다.
병고침, 방언, 예언과 같은 현상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사마리아에서 시몬이라는 자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임한 성령을보고 감탄을 했다.
시몬은 자신도 그 능력을 가지고 싶었다.
시몬은 성령의 '능력'만을 사려고 했다.
베드로가 시몬을 엄하게 책망한다.
"네가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사도행전8:20)
이와 같이 성령의 능력만을 추구하는 것을 시몬의 이름을 붙여서 시몬주의(Simonism)라고 한다.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나 부흥사가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작정헌금을 해야 한다거나, 특정한 사람이 안수를 하면 원하는 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시몬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교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몬주의를 추구하기도 한다.
성령과 함께하는 삶보다 성령의 능력만을 갈구하는 시몬주의는 그릇된 은사주의자들이 빠질수 있는 가장 큰 함정이다.
둘째, 은사는 성령님의 '선물'(gifts)이다.
은사가 성령님의 선물인 이유는 은사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사는 인간의욕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은사는 인간의 타고난 재능도 아니며 자기개발로 획득되는 것도 아니다.
은사는 전적으로 성령님에 의한 신령한 선물이다.
따라서 은사는 인간이 소유할 수 없다.
어떤 은사가 한 번 나타났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이나 공동체에 맞게 필요하신 것으로 허락하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은사가 나타날 수 있다.
셋째, 은사를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특수한 현상으로 국한시킬 수없다.
한국교회에서는 신유, 방언, 예언과 같이 가시적이고 어떤 권위를행사하기 좋은 은사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은 '은사를 받았다'면서 신비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또 '은사를받았다'고 하면 '신령한 사람'으로 대접하는 일들이 교회 내외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신비한 현상만을 바라는 은사주의는 성경적이지도 않고,교회를 분열과 그릇된 열광주의에 빠지게 만든다.
신비한 현상만을 추구하는 은사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신기한 것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차라리인도로 가라. 인도에는 신기한 것들로 가득하다. 신기한 것이라고 다 은사가 아니다.'
성령의 은사는 개인적이며 공동체적
한국교회에는 성령의 은사를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령의 은사는 재미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의 만족을 위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성령으로부더 나타나는 은사는 개인적인 유익과 공동체적인 유익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은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나타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성령의 도구로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은사를 받은 자는 은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령의 사역에 동참한다.
이 과정에서 은사를 받은 사람은 교회 공동체를 위하고 이웃을 섬기며 성경의 정신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은사를 체험하면 개인적으로는 더욱 더 신앙이 확고해지고 실제생활에서도 성숙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은사는 개인적인 유익이 있다.
따라서 은사는 신자가 신앙을 완성해 나가는 '성화'(sanctifica-tion)와 연관이 된다.
동시에 각 신자는 은사를 통해 교회 공동체를 섬기고 타인을 섬김으로 공동체의 유익을 도모한다.
은사를 받은 신자들은 서로의 부족한부분을 담당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간다.(고린도전서12:12-27)
그렇기에 성령의 은사는 그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고, 이웃에 봉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귀한 선물이다.
은사의 다양성
구약과 신약에 언급된 은사는 아주 다양하다.
한국교회에서 방언, 예언, 신유와 같은 몇 가지 은사가 특별히 강조되는것은 왜곡된 은사관 때문이다.
인간이 은사를 구별해서 귀천을 두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은사가 귀하다.
성령이 함께하면서 나타나는 은사는 아주 많다. (고린도전서12:8-11)
예를 들면,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것(갈라디아서5:5), 평화를 위한 삶(갈라디아서5:22. 로마서15:13), 진정한 기쁨(데살로니가전서1:6, 갈라디아서5:22), 희망(로마서15:13).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로마서5:5, 고린도전서13:13)이다.
이런 것도 성령이 함께할 때 나타나는 은사들이다.
물론 은사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은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사도행전 2:36-38, 고린도전서 12:3)
성령의 은사의 종류
성령의 은사들은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 그리고 에베소서 4장에서 몇 가지 기본적 종류로 구분된다.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거나 잘 전달할 수 있는 은사이다. (고린도전서 12:8; 로마서12:7)
[믿음의 은사]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는 기본적인 믿음이 아니라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것 같은 초월적인 믿음을 말한다. (고린도전서12:9)
[병 고치는 은사]를 예수님께서 행하실 때는 즉시 그리고 완전히 고침을 받았으나 사도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한 때가 있었다.(고린도전서12:9,30)
예를 들어 바울 사도는 자기의 병이나(고린도후서12:8-9)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의 병을 고치지 못했다(딤전 5:23).
그러나 성경은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할 것과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일으킬 것을 말하고 있다(야고보서5:14-15).
[능력 행함의 은사]란 병 고치는 신유의 은사 외에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고전 12:10,28)
효과적인 선교와 전도를 위해 따르는 은사이다. 전도를 방해하는 남자 무당(엘루마)을 눈멀게 한 바울의 능력을 통해 총독 서기오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좋은 예이다(사도행전13:6-12).
[예언의 은사]은 장래에 일어날 일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미리 말하는 은사를 가리킨다.(고린도전서12:10; 로마서12:6)
구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이,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예언의 중심이 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자기들의 욕심을 따라 순진한 이들을 미혹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 예언을 많이 하고 있으니 주의하여야 한다(예레미야14:14).
[영(靈) 분별의 은사]는 성령과 악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은사이다.(고린도전서 12:10)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가를 시험해 보고 분별해야 한다(요한일서 4:1).
[방언과 방언 통역하는 은사]가 있다.
방언은 평소에 알지 못하던 외국어를 말하는 은사(사도행전 2:8)도 있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대신(對神) 방언(고린도전서 14:2)이 있다.
대신 방언을 사람이 알아듣도록 통역하는 은사가 방언 통역의 은사이다. 성령이 충만하면 방언을 한다고 오해하여, 방언을 못하면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랑의 은사]는 가장 큰 성령의 은사이다.
여러 가지의 은사를 말한 후에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린도전서 12:31)고 권한 바울 사도는 이어서 기독교의 기본 진리인 사랑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린도전서13장).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로마서13:10) 성도들을 하나로 묶는 띠와 같다(골로새서 3:14).
그 외에 섬기는 일, 권위(勸慰)하는 일, 구제하는 일, 다스리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등도 지체된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나눠 주시는 은사들이다(로마서12:4-8).
기독교인은 당연히 은사를 사모한다.
여러분들은 어떤 은사를 구하려는가?
여러분은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가장 부족한 것을 성령께 간구해 보라.
스스로 생각할 때 사랑이 부족한 사람은 '사랑'의 은사를 구하라.
이 시대의 분쟁과 갈등을 외면하고 살았던 사람은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자신이 평화의 도구가 되는 은사를 기도하라.
쉽게 좌절하는 사람은 '희망'의 은사를 구하라.
남에게 많은 고통을 주며 살던 사람은 '온유'의 은사를 간구하라.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은 공동체의 '기쁨'이 되는 은사를 구하라.
이 모두 얼마나 귀한 은사들인가!
<옮긴글>
[출처] 성령의 은사 (은혜성서교회) | 작성자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