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7385100986
핵무기는 국제정치의 양상을 크게 바꾸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그것이 막대한 파괴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억지(deter)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나타난다.
그렇다면 상대를 억지하기 위해서, 핵무기는 얼마나 필요할까? 하나만 있어도 괜찮을까? 아니면 좀 많이 쌓아둬야할까? 전략이나 정책이 아닌 이론으로서의 억지가 관심을 두었던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상대를 억지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핵무기가 필요한가라는 의문이었다.
학자들마다 다양한 의견을 내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종합하여 정리하는 학자들조차도 그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대체로는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1. 핵무기의 사용 가능성 자체에 중점(실존적 억지, 최소억지 등)
2. 핵무기에 의한 확실한 보복에 중점(확증보복, 확증파괴)
3. 선제타격에 의한 상대방의 핵보복능력 무력화에 중점(전쟁수행 Warfighting)
그렇다면 각 관점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1. 사용 가능성 자체에 중점
가장 극단적인 관점으로는 핵무기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상대방의 행동을 억지한다는 실존적 억지(Existential deterrence)를 들 수 있고, 보다 현실적인 설명으로는 핵무기로 상대에게 보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상대방의 행동을 억지한다는 최소억지(Minimum deterrence)를 들 수 있다. 핵무기는 단 한 기만으로도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핵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상대를 주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핵무기의 생존성은 부차적인 요소이다. 예를 들어, 자국에 핵폭발이 일어나 수십만의 시민들이 죽을 가능성이 1퍼센트라고 해 보자.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라식 수술의 성공률이 높다고 하지만, 극소수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당사자가 자신인 것은 문제인 것과 유사하다. 결국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핵무기가 사용될 낮은 가능성 자체가 상대를 억지한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관점에서 핵무기는 그리 많지 않아도 충분하다. 단지 그것이 상대에게 사용될 미세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도 족하기 때문에, 고정밀의 미사일이나 막대한 양의 핵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2. 확실한 보복에 중점
흔히 확증보복(assured retaliation)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관점은 국제관계학의 학문적 영역에서 보다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경향이 있다. 확증보복의 핵심은, 자국의 핵전력이 상대의 선제공격으로부터도 생존하여 상대에게 보복타격을 확실히 가할 수 있다면 상대방을 억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간의 갈등에 있어서 자신이 확실히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면 누구도 함부로 행동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확증보복과 확증파괴(assured destruction)의 구분은 다소 모호할 수 있다. 확증파괴는 확증보복의 범주에 포함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핵무기를 갖춘 두 국가가 모두 확증보복 능력을 갖춘 상태는, 흔히 상호확증파괴(MAD)로서 표현된다.
이러한 관점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상대의 행동을 억지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선제공격으로부터 자국의 핵전력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성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본다. 즉, 상대의 공격으로부터 생존하고 보복타격을 가할 수 있는 TEL, 탄도미사일 원자력잠수함 등을 유의미하게 갖춘다면 상대의 행동을 억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관점에서 도출할 수 있는 효과 중 하나는 상대에 대해 확실히 보복을 가할 수 있는 생존성 높은 핵전력은 단지 상대의 행동을 단념시킬 수 있는 수준의 피해를 입힐 절대적인 수량만 갖추면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안보 딜레마의 근본적인 요인은 '상대적인 이득의 중요성'인데, 핵무기는 그러한 상대적인 이득을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확증파괴의 상태가 도래하면 안보 딜레마가 완화될 수 있다는 관점도 존재한다.
* 안보 딜레마에 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아브레일 님의 다음 글을 참조: https://m.fmkorea.com/best/6439810822
3. 전쟁수행능력에 중점
이러한 관점은 보복에 근간을 두는 앞선 두 관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즉, 상대가 자신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강력한 경향이 있다면, 보복능력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서는 상대에게 보복을 가하는 능력보다는 상대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저지(거부, deny)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리고 이는 일반적으로 상대의 군사적 목표에 대한 공격능력을 강조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상대의 핵전력 및 그와 연계된 지휘통제체제에 대한 공격능력인데, 이는 상대의 (군사적)행동을 저지하려는 자신의 (군사적)행동에 대응해 상대가 핵공격을 위협할 때, 예상되는 자신의 피해를 감소시킴으로써 보다 강경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상대의 행동을 억지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핵전력을 선제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다량의 고정밀, 고위력의 핵탄두를 필요로 한다. 즉, 적어도 자신의 핵전력은 상대방의 핵전력과 동등하거나 더 많아야한다. 선제공격을 위한 고도의 감시정찰능력과 지휘통제체계도 요구된다. 더 나아가서는 전구(Theatre) 이하의 단위에서 군 사령부, 비행장 등에 대한 공격을 위한 비전략 핵무기(nonstrategic nuclear weapon)도 활용될 수 있다. 이를 다시 풀어 말하자면, 이 관점에서는 절대적인 수량에 중점을 두는 앞선 두 관점과 달리, 상대보다 우세를 점하는 상대적인 수량에 중점을 두며, 나아가 핵전력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군사작전능력 역시도 강조하고, 때로는 핵무기를 단지 매우 강력한 폭탄으로서 다루기도 한다.
여러분은 어떠한 관점이 보다 설득력있다고 생각하는가? 국가에게는 얼마만큼의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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