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명일구초삼제(洞明一句超三際)하면,
일구를 통명을 해서 삼제를 뛰어넘으면,
과거 현재... 시간을 초월을 해 버리면,
절승승지만배공(絶勝僧祇萬倍功)이라.
아승지겁을—
아승지겁(阿僧祗劫)이라 하는 것은 무량겁이란 말인데, 그 아승지겁 동안 쌓은 공덕보다도 더 수승한 것이다.
불법은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그러한 공부가
아니거든. 일언지하에 돈망생사(頓忘生死)여,
한 말씀 아래에 몰록 생사를 잊어버려.
일언지하에 돈망생사하는 그 방법이
바로 화두를 거각해서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자기의 본참공안에 충실할 때에
일구를 통명하게 되고 무량겁 닦은 공보다도 더 수승한 공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학문은 점진적이여.
계속해서 해 가지고 차츰차츰 나아져 가는 것인데,
이 활구참선법은 점진적이 아니고 비약적인 것이거든.
만날 화두를 들고 애를 쓰고 정진을 하되,
무엇이 조끔도 알아진 것이 없고 나아가는 것이 없어.
해 갈수록 답답하고 아무것도 얻어진 것이 없고 내놓을 것이 없어.
그러지만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고,
뭣이 공부가 잘되어 간 것 같지도 않고,
그렇지만 물러서지 아니하고 한 걸음 한 걸음,
한 생각 한 생각을 철저하게 단속을 해 나가면,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제절로 화두가 들어지게 되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타성일편이 될 때가 반드시 오는 것이여.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고대로,
똥을 눌 때도 화두가 그대로,
일을 하거나 걸어가거나 소지를 하거나 누웠어도
그 화두가 성성하게 현전을 하고,
심지어 잘 때에도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현전을 하게
되면, 그땐 공부가 순숙해져서 깨달음이 멀지 않다
하셨습니다.
이 공부,
이 법을 듣지 못했거나 믿지 못했다면 모르되,
듣고 믿은 이상은 이것 밖에는 인생으로서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공부 하나 함으로써
팔만대장경을 날마다 종횡으로 외운 공덕보다도
이 한 생각 돌이키는 것이 더 훌륭한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경을 읽고 외우고 하는 것은 노정기(路程記)를 외우는
거와 같고, 약방문을 읽은 거와 같고, 농사짓는 법을
외우는 거와 같애.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하는 것은
바로 밥을 먹는 것이요,
약을 먹는 것이요,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가는 것이여.
그러니
농사짓는 법을 공부 열심히 읽기만 하고,
실지로 논에 들어가서 농사를 안 짓는다면
한 알갱이의 한 톨의 곡식도 얻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밥을 지어서 먹는다면,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야 그것이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배고픔을 면한 거와 마찬가지여.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여.
그러니 어찌 이것을 듣고 믿으면서도 이것을 등한히 할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인생으로 태어나서 할 일은
이것밖에는 없는 것이다.
'설할 것 없는 곳을 향해서 어디를 향해서
무슨 법을 설하느냐?'
설할 곳 없는 곳을 향해서—
분명히 설할 것이 없지만,
설할 곳 없는 곳을 향해서 설해야만 되고,
닦을 곳 없는 곳을 향해서 목숨 바쳐서 닦어야 하고.
본분납승의 입장에서 보면
부처와 조사도 본분납승에 방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한 부처에게도 방(棒)을 내리고,
조사에게도 방을 내릴 만한 그러한 하늘을 찌르는 장부에 기상을 가진 납자가 많이 출현해야만 불교에 중흥을 이룰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첫댓글 모든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며
우주법계에 깨달은 부처님으로 가득차기를 발원합니다_()_
감사합니다
精進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