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 둑길을 따라
삼월 첫째 금요일이다. 재작년 봄부터 초등학교 친구들을 포함해 몇몇 지기들에게 사진을 곁들인 아침 시조를 한 수씩 보낸 지 오늘로 만 2년째다. “바람에 일렁이던 억새꽃 은빛 물결 / 추위를 견디려고 서로는 몸을 부벼 /겨우내 야위진 가닥 갈색으로 바랬다 // 뱁새 떼 날아 앉던 물억새 그루터기 / 싱그런 새순이야 늦은 봄 움트기에 / 갯버들 수액 올라도 잠 깰 줄을 모른다”
자연학교로 나서기 전 아침에 카톡으로 보낸 ‘묵은 물억새’ 전문이다. 사실 이 작품은 한 달 전 입춘 무렵 본포 강가에서 신전리 강둑을 걸으면서 둔치 물억새를 보고 남긴 작품이다. 그새 봄이 오는 길목에 매화 화신을 비롯해 다른 작품에 밀려 이제야 세상 밖으로 보내게 되었다. 삼월 초순 금요일 아침 작품에 생성해 놓고부터 한 달 지나 다시 그 현장이 궁금해 길을 나섰다.
창이대로에서 소답동으로 나가 마을버스를 타고 근교 농촌으로 나가려 다가온 버스를 바로 눈앞에서 놓치게 되어 반 시간 더 기다려 다음 차편을 기다렸다. 사연인즉 아침 출근 시간인데 버스 전용으로 운행되는 1차선에다 신차를 출고해 판매장으로 옮겨 놓는 대형 특수 차량이 짐을 부려 놓는다고 정류소 일부를 점유해 노선버스가 제 위치 정차 못하게 해 기사를 점잖게 나무랐다.
신차 출고 수송 트럭은 2층으로 된 특수 짐칸에 색상만 다르고 차종이 같은 차를 5대를 묶어 실어 왔다. 내가 머물 때 남은 3대를 하차해 전시장으로 옮김에 30여 분 걸렸으니 아침 출근 시간대 1시간 넘게 버스 정류소 차선을 물어 차지한 양심 불량이었다. 기사 양반도 생업 전선에 바쁘겠으나 그는 그보다 이른 새벽이나 차량 운행이 뜸한 한낮에 정차해 둠이 도리라 생각했다.
창원역을 출발 기점으로 삼은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지날 때 어제 동선이 떠올라 시조를 한 수 구상했다. “겨우내 무리 지어 어울려 잘 놀고는 / 봄이 온 길목이라 귀향을 앞두고서 / 꽁지에 기름샘 쪼아 몸단장을 한단다 // 먼 항로 비행길에 마음 든 짝을 만나 / 우수리 강 언저리 함께 틀 둥지에다 / 알 품어 새끼 치는 날 미리 그려 본단다”
앞 단락은 등굣길 버스 안에서 남긴 ‘쇠물닭의 꿈’ 전문이다. 어제 거쳐 지나갔던 동판저수지 습지에서 혼자 깃을 단장하던 쇠물닭을 소재로 삼았다. 그새 버스는 주남저수지를 비켜 산업단지를 지난 가술 거리였다. 거기서부터 승객은 나 혼자 남아 모산리와 수산교를 거쳐 신전 종점에 닿았다. 마을 앞에서 창원 시민들의 상수원을 공급하는 대산정수장을 지나 강둑으로 올라섰다.
본포교에서 흘러온 물길을 곡강에 부딪혀 수산에서 삼랑진으로 흘러갔다. 창원 시민들의 상수원으로 삼는 취수정이 있는 드넓은 둔치가 펼쳐졌다. 물억새는 색이 바래 야위어도 움이 돋기는 이른 때였다. 간간이 보인 갯버들은 수액이 오르면서 엷은 녹색이 살짝 비치는 정도였다. 둑길에서 일광욕을 겸해 산책 나온 할머니 넷을 만나 같이 당리까지 걸어 헤어졌다. 수성마을 분이었다.
수산교를 앞둔 신성마을에서 들녘으로 들어 들길을 걸었다. 풋고추와 가지를 키운 사계절 비닐하우스는 싱그러운 열매를 따 선별과 포장으로 손길이 바빴다. 벼농사 뒷그루 심은 당근은 비닐하우스에 풋풋한 싹이 잘 자랐다. 들녘 한복판 다다기 오이 농장에는 오이 넝쿨에서 노란 꽃이 피었다. 안면을 트고 지내는 주인장은 부재중이라 오이가 자라는 사진만 남기고 발길을 돌렸다.
망울을 맺은 산수유가 꽃을 피우려는 죽동천 천변을 따라 걷다가 방가지똥 순이 보여 몇 줌 캐 배낭에 채웠다. 집으로 가져가면 시금치를 대신하는 풋나물로 삼을 수 있을 테다. 가술에 닿아 추어탕으로 한 끼 점심을 때우고 정한 시간에 파출소로 나가 안전지킴이 동료를 만났다. 2인 1조로 나눠 내가 맡게 된 들녘 초등학교로 이동해 교문 바깥 울타리와 마을 안길을 둘러보고 왔다. 25.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