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DZGrH1Hz7J4?si=OMyiLe2rktsikKMw
제1모음곡 사장조 BWV1007 <제1곡> 전주곡이다. 즉흥적 요소가 강한 자유로운 형식으로 흔히 보통의 템포를 취하고 있다. 사장조 4분의 4박자. <제2곡> 알망드 사장조 4분의 4박자. 마찬가지로 보통의 템포에 의한 2부 형식의 곡이 다. <제3곡> 쿠랑트 사장조 4분의 3박자. 활기 있고 빠른 템포의 2부 형식에 의한 이탈리아풍 코렌테다. <제4곡> 사라반드 사장조 4분의 3박자. 느긋하고 장중한 기분인 스페인 기원의 춤곡으로 2부 형식이 다. <제5곡> 미뉴에트는 제1미뉴에트와 제2미뉴에트로 나누어졌으며, 제1은 사장조, 제2는 사단조의 각 각 2부 형식의 곡이지만 실제로는 제1 미뉴에트, 제2 미뉴에트(트리오) 후에 제1미뉴에트가 이번에는 반 복없이 재현된다고 하는 복합 3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제6곡> 지그 사장조 8분의 6박자, 여기에서는 역시 이탈리아풍의 템포가 빠른 지가를 채택했다.
제2모음곡 라단조 BWV1008 전주곡은 4분의 3박자이지만 이어지는 춤곡부분은 제1곡과 같은 배열이다. 쿠랑트, 지그는 다같이 이탈리 아 양식을 나타낸다.
1717년말, 바흐는 바이마르를 떠나 작센 지방의 소도시 쾨텐으로 옮겨가, 그 곳 궁정악단의 악장이 되었다. 이 때 쾨텐의 궁정악단에는 수석(首蓆) 바이올리니스트 시피스 외에 궁정악사의 자격을 가진 첼로의 명수 아벨이 있었다. 바흐는 이 사람들을 위하여 많은 기악곡의 걸작들을 썼던 바, 오늘날 남아있는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전 6곡과 [무반주 첼로조곡] 전 6곡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까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은 쾨텐의 궁정 첼리스트였던 아벨을 위하여 작곡된 것이지만, 그보다는 당시까지 독주악기로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던 첼로의 적극적인 연주기법 개발을 위해, 즉 첼로라는 악기의 교법을 위해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명곡은 바흐가 죽은 뒤 무려 200년 가량이나 묻혀 있어서 전혀 연주되지 않고 있었다. 이 곡이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이상으로 어려운 기교를 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 6번처럼 현재의 첼로로서 연주하기는 매우 곤란한 고음역(高音域)으로 씌어진 곡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이 명곡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오직 현대 최고의 첼리스트였던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의 덕택이다.
카잘스는 13세가 되면서부터 첼로주법의 결함을 깨닫고 새로운 기법을 연구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잘스는 바르셀로나의 헌 책방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버려져 있는 악보뭉치 하나를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무한한 감동을 가지고 듣고 있는 [무반주 첼로조곡]의 악보였던 것이다. 카잘스의 나이 겨우 13세 때 발견된 이 악보뭉치야말로 근대 음악 사상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야 할 일이었다.
제3모음곡 다장조 BWV1009 전6곡 가운데서 가장 인기 있는 모음곡이다. 전주곡은 4분의 3박자이다. 이어지는 춤곡 부분은 제5곡에 미뉴에트 대신에 4분의 4박자의 부레를 둔 것 외에는 다른 모음곡과 같은 배열이다. 부레는 미뉴에트와 마찬가지로 제1, 제2 부레가 모였으며, 다시 그 후에 제1 부레가 반복 없이 연주된다. 이 제3모음곡의 부레는 경쾌한 리듬으로써 진행되어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제4모음곡 내림 마장조 BWV1010 전주곡이 4분의 3박자인 것 외에는 제3모음곡과 같은 구조이다. 전주곡은 4분의 3박자이다. 이어지는 춤곡 부분은 제5곡에 미뉴에트 대신에 4분의 4박자의 부레를 둔 것 외에는 다른 모음곡과 같은 배열이다. 부레는 미뉴에트와 마찬가지로 제1, 제2 부레가 모였으며, 다시 그 후에 제1 부레가 반복 없이 연주된다.
카잘스는 무반주 첼로 조곡 전 6곡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제 1번 낙관적(Optimistic), 제 2번 비극적(Tragic), 제 3번 영웅적(Heroic), 제 4번 장엄한(Grandiose), 제 5번 격정적(Tempestuos), 제 6번 목가적(Bucolic) 이러한 특성은 각 곡의 프렐류드(Prelude, 전주곡)에서부터 분명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제 1번부터 제 6번까지 모두 프렐류드-알르망드-쿠랑트-사라반드-미뉴에트(혹은 부레나 가보트)-지그의 6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대개 3번과 5번이 완성도가 높다고 하지만, 연주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이 무반주 첼로 조곡의 첫 관문인 1번은 바흐가 "1번"으로 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만큼 1번은 전체 조곡의 성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그 첫 주제를 제시하는 교향곡에 있어서의 1악장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이 1번부터 우리가 접근해 가는 것은 전체 6곡을 모두 이해하는 첫 걸음으로써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이 1번은 그렇게 난해하지도 않고 특히 프렐루드가 개방현으로 연주되는 풍부한 울림때문에 많은 분들이 이 곡을 좋아하게 되신 후 직접 첼로를 배워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셨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5모음곡 다단조 BWV1011 이 모음곡에는 제1현을 A음에 조현한 것과 G에 조현한 것의 두 가지 원고가 있다. 거기에 따라서 일부 의 음이나 운지법에 차이가 나타나지만 작품의 본질에 관한 문제는 아니다. 제 1곡의 전주곡은 느긋하고 무게 있는 기분의 4분의 4박자의 서주와 8분의 3박자의 활발한 부분으로 구성된 이른바 프랑스풍 서곡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어지는 춤곡 부분은 제5곡이 가보트(제1, 제2, 제1로 연주된다)인 것 외에는 다른 다섯 곡과 같은 배열이다.
가보트(Gavotte) 프랑스 지방의 산사람들을 지칭하는 가보츠(Gavots)에서 변형된 말이다. 대개 2/2박자 인데, 17세기초 궁중무로 수용되었고, 룰리(Lully)에 의해 베르사이유궁 발레의 핵심 부분으로 받아들여졌 다. 통사 가보트 1,2 즉 전,후반으로 짝을 짓는 데 후반부에는 가끔 뮈제트(Musette; 같은 음의 저음이 계속 울리는 것)가 나타난다.
제6모음곡 BWV1012 전6곡 가운데 가장 대규모적인 것으로 기개와 도량이 웅장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원래는 4현의 첼로용이 아니라, A현의 위에 다시 E현을 더한 5현의 악기 비올라 폼포자를 위해 쓰여진 것으로 3옥타브 이상에 걸친 음역을 사용했으며 그 때문에 첼로로써의 연주는 대단히 어렵다. 제 1곡의 전주곡에서 볼 수 있는 f와 p의 교대에 의한 같은 프레이즈의 에코적인 반복은 바로크의 특징 적인 양식이다. 춤곡 부분은 제5모음곡과 같은 구성이다.
무반주 첼로 조곡[모움곡] 1번과 2번에서는
1.프리루드 [전주곡][PRAELUDIUM]
2.알레 망드[독일 풍의 무곡이라는 뜻][ALLEMANDE]
3.코란트["달리다"라은 프랑스 말에서 유래한 3박자 계통의 춤곡을 의미][COURANTE]
4.사라방드[스페인에서 생겨난 춤으로 격렬한 사랑을 표현하는 춤을 의미][SARABANDE]
5.미뉴에트1과 2의 두곡 [MENUETTO 1, 2]
6.지규[영국에서 발생한 빠른 무곡을 의미] [GIGUE]의 순서로 모움곡이 구성되어졌지만,
3번과 4번의 모음곡에서는 5악장 미뉴에트가 부레로[BOURREE]
5번과 6번 악장에서는 가보트[GAVOTTE]로 변화 된다.
모리스 장드롱 (1920 ~ 1990)
1940년, 파리 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바로 연주계로 뛰어들어 활발하게 활동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장 프랑세와 공연했고, 헤르만 세르헨, 멘겔베르크 등으로부터는 지휘도 배웠다. 그는 죽을때까지 지휘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https://youtu.be/7_c3KQ5jGIY?si=Hfh0Mrgh0Pa_HjaE
47년 런던 필과 프로코피예프의 첼로 협주곡 작품 58을 유럽 초연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50년대 들어 파리에서 카잘스 지휘의 라무뢰 오케스트라와 하이든과 보케리니의 첼로 협주곡을 녹음했다. 카잘스는 각별히 장드롱을 아껴 ‘그는 나의 황태자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역시 고독을 바탕으로 다듬어낸 그의 연주는 ‘고독의 성인’ 카잘스의 마음에 꼭 들었을 것이다. 또한 그는 테크닉 면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완성도를 지녔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필립스)도명연 중의 하나로 꼽힌다.
장드롱이 지난 1985년 내한했을 당시 ‘객석’ 과의 인터뷰에서 한말이다. 그도 토르틀리에에 못지않게 어렵게 공부했다. 하지만 그는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객관적인 연주로 토르틀리에와 좋은 대조를 이뤘다. 이러한 연주풍은 그의 말대로 고독 속에서 음악을 만들며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한다.
프랑스 남부의 니스에서 태어난 그는 신동이었다. 3세 때 이미 악보를 읽어냈다.주위의 권유로 5세 때부터 그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소형 첼로를 가지고 배우기 시작했다. 니스 음악원에서 최고 상을 받고 파리음악원으로 옮겨 제라르 에킹을 사사했다. 이 시절 장드롱은 넉넉지 못했으나 프랑스인 특유의 유머와 낙천주의로 지탱했다. 여기서 그는 당시 파리를 풍미하던 위대한 예술가들과 친교를 쌓고 예술적인 교류를 나눴다. 이 때의 교류가 그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로 오전 연습을 대신하는 대표적인 첼리스트 장드롱은 연습벌레로 통하기도 했다. 장드롱은 역시내한 당시 연습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를 하나의 일화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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