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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웅산 테러 29주년이 되는 날이다. 어느 언론도, 어느 公職者도 김정일이 지령한 이 테러사건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 국가적 비극을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에겐 그런 비극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趙甲濟의 現代史 강좌'에서 사회자 김종환 대표(참깨방송)가 순국선렬을 위한 묵념 순서 때 아웅산 테러 희생자들을 기억하자고 말했다. 1983년 10월9일 김일성과 김정일의 지령에 의한 미얀마 랭군의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으로 한국측 訪問 인사 17명이 죽었다. 全斗煥 대통령은 안내를 맡은 미얀마(당시는 버마) 외무장관이 늦게 도착, 숙소를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 全 대통령은 폭파 사건 보고를 받자 말자 "이것은 북한 소행이다"고 단정, 미얀마측에 그 방향으로 수사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때는 범인이 체포되기 전이었다. 그 직후 북한공작원이 붙들려 全 당시 대통령의 豫斷이 정확하였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예단은 나쁜 것이 아니다. 정확한 예단은 좋은 것이고 바람직한 것이다. 아웅산 테러로 별세한 17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서상철: 동력자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이계철: 駐 버마대사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하동선: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이기욱: 재무부차관 강인희: 농림수산부차관 김용환: 과학기술처차관 심상우: 국회의원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이재관: 청와대 공보비서관 한경희: 대통령 경호원 정태진: 대통령 경호원 이중현:동아일보 기자 북한쪽이 건너다 보이는 임진각 공원안에 '버마 아웅산 殉國 외교사절단 위령탑'이 서 있다. 全斗煥 대통령이 미얀마에서 급거 귀국하여 국민들에게 발표한 성명서의 한 귀절이 돌판에 새겨져 있다. <아무리 사악한 무리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더라도 우리의 숭고한, 평화와 전진을 향한 의지는 결코 꺾을 수 없을 것입니다> 北面한 쪽에는 이런 돌판 글도 보인다. <열일곱 塔身으로 높이 솟은 넋들이 원한을 넘어서서 북녘 향해 합장했네 이념의 악몽서 한시바삐 깨어나라 한겨레, 한 울타리, 한 품속에 길이 살자 허공에 메아리치는 저 외침을 못듣는가 님들이 틔워놓은 선진화의 그 한 길을 넓히고 다져가며 줄기차게 나아가서 끊어진 남북의 길도 이어놓고 마오리라.> 惡을 惡으로 갚지 않고 善意로써 녹여버리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아웅산 테러와 86년의 김포공항테러, 그리고 87년의 KAL기 폭파사건은 북한정권이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려 한 짓이었다. 하늘의 도움이 있었던지 아웅산과 KAL기 테러범들이 현장에서 모두 잡히고 북한정권은 고립되기 시작하였다. 서울올림픽에 대항하여 주최한 평양 세계청년축전엔 50억 달러의 낭비성 투자를 하였다. 그들의 惡意는 그들의 목줄을 죄기 시작하였다. 잇단 테러를 당하면서도 참고 서울올림픽을 성공시켰던 한국은 북방정책으로 그 성과를 확대하고 韓中수교로 새로운 경제의 생명줄을 만들었다. 1983년 全斗煥 정부가 이성적으로, 전략적으로 대응한 결과 북한정권은 망해가고 있고, 한국은 소란속에서도 성장하고 있다. 몇 년 전 겨울 임진각에 가니 양지바른 곳에서 殉國기념탑이 파아란 하늘을 이고 다보탑처럼 빛나고 있었다. 5共경제 성공의 기틀을 만들었던 金在益 당시 경제수석 비서관의 부인 이순자 교수는 2000년 6월 한국의 언론이 김대중을 만난 김정일 찬양가를 부르고 있을 때 이런 제목의 글을 月刊朝鮮에 썼다. <그렇다면 아웅산 테러는 가짜 김정일이 지령하였단 말인가. 是와 非를 가리지 못하는 언론이 있는 한 한국은 체제 방어에 실패할 것이다> 못된 짓만 골라서 한 민족반역자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까지도 제 命대로 살다가 갔으니 이야말로 민족의 수치이다. 이 수치를 씻는 길은 김정은 정권과 남한의 從北세력을 타도하고 斷罪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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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렇다면 아웅산 테러는 가짜 김정일이 지령하였단 말인가.
是와 非를 가리지 못하는 언론이 있는 한 한국은 체제 방어에 실패할 것이다>(2)
짝짝짝 강추!!
아까운 인재를 많이 잃었던 날로 기억됩니다..
봉다리님~ 청명한 가을날을 만끽하는 오늘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