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 "용산구청 유감" 에서 그 건축 외관 디자인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올렸습니다. 그와 상반된 건축물을 여기 소개합니다.
물론 각자의 의견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트윈트리 타워
경복궁 앞에 솟아오른 쌍둥이 고목
서울 중학동에 위치한 트윈트리 타워 Ⓒ건축사진가 김용관
역사 도시 서울의 얼굴인 조선의 법궁, 경복궁 바로 앞 동네 중학동은 서울 도심에서도 핵심이랄 수 있는 지역이다. 서울을 찾아오는 사람이 반드시 지나치게 되는 곳이자, 서울 시민들에겐 너무나 친숙한 유서 깊은 동네지만, 중요한 위치만큼 두드러지는 건축물은 드물었다. 도심치고는 비교적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무덤덤하게 모여 있던 이곳에서 오랜 세월 랜드마크였던 건물은 고(故)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한국일보 사옥이었다. 1968년 지어져 중학동의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이 건물이 21세기 들어 재개발 사업으로 30여 년 만에 헐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고층 빌딩이 들어서게 된다.
서울 중심지에 등장한 21세기 새 간판 건물
2010년 11월, 한국일보 사옥 자리에 완공된 새 건물은 이전 건물과는 완전히 달랐다. 묵직하고 직선적인 콘크리트 건물이었던 한국일보 사옥과 정반대로 유리로 덮인 투명한 건물, 곡선이 물결치는 비정형 건물, 그리고 모양이 약간 다른 두 건물이 이란성 쌍둥이로 짝을 이루는 건물이었다. 둥그런 표면에 굵은 홈이 파인 모습이 거대한 나무 밑동을 닮아 이름도 쌍둥이 나무라는 뜻의 ‘트윈트리 타워’로 지어졌다.
건물은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장소성, 곧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땅에 들어서 서울의 간판 건물 노릇을 하는 위치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가 사라지고, 21세기 서울을 대표할 새로운 간판 건물이 터와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트윈트리 타워를 설계한 이는 조병수 건축가다. 화천 이외수의 집, 파주 헤이리 황인용 아나운서의 음악카페 겸 살림집인 카메라타 등을 설계한 조 건축가는 건축 재료 고유의 특성을 잘 표현하는 건축으로 200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꼽힌다. 트윈트리 타워는 서울 한복판에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큼직하게 들어섰고, 등장하자마자 많은 주목과 논쟁을 동시에 불렀다.
경복궁 옆에 위치한 트윈트리 타워 Ⓒ건축사진가 김용관
‘낯가림’에 따른 호평과 비판 논쟁
경복궁과 안 어울리는 이상한 건물 vs 개성적이면서도 대비를 이루는 수작
트윈트리 타워는 위치 자체가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자리다. 일반 직사각형 고층 빌딩과 사뭇 다른 건물 디자인도 사람들의 눈길을 단번에 끌어모은다. 모든 주요 건축물들이 그랬듯 이 개성적인 건물에 대한 반응은 뚜렷하게 엇갈렸다. “참신하고 새롭다”라는 호평과 “경복궁과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건물”이라는 비판이 교차했다.
특히 완공 초기에는 새 건물이 아직 낯설어 생기는 거부 반응이 먼저 나왔다. 1970년대 미국 보스턴에 초고층 빌딩인 존 핸콕 타워(John Hancock Tower)가 완공되었을 때, 보스턴을 상징하는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인 트리니티 교회(Trinity Church) 바로 옆에 전면 유리 빌딩이 들어서 경관을 해친다는 논쟁이 불거졌던 것을 연상시킨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의 문화재 건물 주변에 현대 건물이 들어설 때 자주 일어나는 이 논쟁은, 사실 정답은 없는 문제다. 하지만 기존의 익숙한 거리 풍경이 바뀌는 점 때문에 도시 고유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있어 언제나 반복되는 것이기도 하다. 새 건물 중에서도 유명한 건물을 헐고 새로 지은 건물은 거의 대부분 처음에는 환영보다는 비난을 받기가 쉽다. 오래 친숙하게 보았던 옛 건물에 대한 추억을 지닌 이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트윈트리 타워 역시 이런 ‘낯가림’ 단계를 거쳐야 했고, 이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워낙 중요한 위치에 있으니 다른 건물보다 훨씬 엄격한 눈길을 받아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숙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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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보스턴에 있는 ‘존 핸콕 타워’ 전경 2 존 핸콕 타워의 유리에 비치는 트리니티 교회 |
트윈트리 타워에 대해 초기 제기된 주된 이슈는 경복궁이란 국가대표 문화재와의 조화 여부였다. 통유리 건물이어서 경복궁 앞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반대로 역대 서울 도심에 들어선 고층 빌딩 중에서 건축적 완성도와 개성 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수작이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기존 서울의 사무용 빌딩들이 대부분 천편일률적인 네모 상자 꼴인데 이 건물은 과감하게 개성을 추구했고, 그러면서도 절제된 디자인이어서 요란하게 튀기보다는 차분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모든 건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밖에 없고, 특히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주로 건축 전문가들이 디자인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이 빌딩을 좋게 평가한 부분은 주변의 다른 빌딩들과 대비되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땅에 대한 해석’ 그리고 ‘경복궁의 새로운 배경 역할을 하는 점’이 주로 꼽힌다.
많은 제약 속에서 나온 나무 밑동 디자인
트윈트리 빌딩이 전통 자연 소재로 지은 경복궁과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하이테크 유리 건물이 된 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건축가는 궁궐 앞인 만큼 강하게 존재를 과시하는 유리보다는 좀 더 묵직한 느낌을 주는 소재가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건축주 쪽에선 유리 건물을 일찌감치 선택해놓고 있었다.
건축가에게 가장 큰 고민은 ‘땅’의 문제였다. 건물이 들어설 자리는 곡선으로 휘어 돌아가는 큰 길가였다. 그리고 땅 모양은 바로 옆 일본대사관 때문에 네모꼴에서 4분의 1 정도가 잘려나간 ‘ㄴ’자 모양이었다. 가늘고 중간이 꺾인 땅이어서 큰 건물 하나로 짓기가 어려웠고, 건물을 2개 동으로 짓기로 결론이 났다.
트윈트리 타워의 주출입구는 건물 뒷편에 위치해 있다. Ⓒ건축사진가 김용관
모든 건축이 주위 환경과의 관계, 곧 ‘맥락’을 중시하지만 이 건물은 경복궁이란 실로 중요한 문화유산과 마주보기 때문에 궁궐과 새 건물, 길과 새 건물의 관계를 어떤 맥락으로 읽고 풀어내느냐가 설계 과정의 요체였다. ㄴ자 꺾인 땅에 건축가는 다양한 건물 모양을 앉혀 보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사무용 건물이니 최대한 많은 면적을 뽑아내는 것이 필수적이었고, 처음에는 효율이 가장 높은 직사각형 건물들을 먼저 검토했다. 하지만 경복궁 쪽으로 새 건물이 내뿜는 위압감에 너무 세게 느껴질 것 같다고 건축가는 판단했다. 건물의 입구도 난제였다. 큰 길 쪽으로 주출입구를 내면 너무 강해 보일 수 있고, 진입 차량들로 교통 문제가 생길 것을 감안해 건축가는 건물 주출입구를 큰길에서 볼 때 뒤편으로 내기로 했다. 외국 빌딩에선 드물지 않은 배치지만,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입구 처리였다.
도시를 흐르는 기운과 시선에 순응한 디자인
또 하나 고심한 것은 두 개의 쌍둥이 건물 사이 공간이 만들어내는 ‘시선의 길’이었다. 건물 앞은 큰길이지만 입구가 있는 뒤쪽은 좁은 길들이 얽혀있는 지역이고, 그 길에서 경복궁 쪽 조망이 건물에 완전히 가려버릴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건물과 건물 사이는 경복궁 담장 망루였다가 지금은 홀로 길 중간에 섬처럼 떨어져버린 동십자각이 보이는 각도로 배치했다.
남은 것은 건물의 형태였다. 많은 사람과 차가 오가는 큰 길에서 볼 때 최대한 압도적이지 않아야 했고,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길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건축 문화재와 공존하면서도 개성적인 모습이어야 했다. 그래서 지금의 곡선형 나무 밑동 모양이 도출됐다.
곡선 형태는 덩치가 압도적일 수밖에 없는 17층 건물의 위압감을 줄이는 방법이며, 보는 방향에 따라 건물의 모습이 달라져 재미를 더하는 의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앞쪽 곡선 도로에 접한 땅 모양에 순응하려는 것이었다.
트윈트리 타워 건물 표면에 검은색 돌출 띠를 두르고 있다. Ⓒ건축사진가 김용관
건축가가 보기에 건물 앞길은 오랜 세월 속에 쌓인 일종의 ‘기’가 느껴지는 듯한 곳이었다고 한다. 도시를 흐르는 어떤 기운이 굽은 길을 따라 흐르는 듯했고, 그 기운에 의해 만들어진 길 모양처럼 건물은 둥근 형태가 되었다. 이 모습에 고목 밑동 콘셉트가 더해지면서 건물 표면은 군데군데 홈이 파인 거대한 나무 모습으로 진화했다.
표면의 가로 띠 속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 의도
통유리 건물로 지어야만 했지만 건축가는 처음 원했던 ‘묵직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디자인을 유리 건물로 시도하고자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건물 표면을 잘게 두른 돌출 띠들이다. 이 띠의 간격은 건물 내부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전망을 고려해 60cm가 되었다. 건물 내부에 사람이 서있을 때 눈높이와 앉아있을 때 눈높이를 모두 가리지 않는 간격이다.
이 띠들은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가장 명쾌하게 이 건물의 특징이자 매력을 만들어낸다. 아래에서 건물을 올려다보면 위쪽으로 갈수록 띠들이 중첩되어 아래는 투명하고 위는 불투명한 검은 덩어리처럼 보인다. 표면의 곡선 부분들이 이런 모습에 변화와 리듬을 주면서 건물 위쪽은 정말로 거대한 고목나무 같이 느껴진다. 아마도 트윈트리 타워는 한국에 들어선 건물 중에서 올려다볼 때 가장 개성적인 건물일 것이다. 겉이 매끈한 대부분의 통유리 건물들과 달리 20cm 길이의 띠를 둘렀고, 이 디자인 하나만으로 독특한 시각 효과가 연출된다.
띠가 갖는 의미와 기능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디자인이 이 띠를 돌출시키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인 통유리 빌딩은 유리 특유의 반사 성질 때문에 반짝거리며 존재를 과시한다. 트윈트리 타워는 유리 건물이지만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 금속 띠를 둘러 반사광을 중화시킨다. 그래서 하이테크풍 건물 특유의 화려한 반짝거림과 차가운 느낌을 최대한 덜어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돌출 띠들이 우리 한옥의 ‘처마’와 같은 기능을 하는 점이다. 통유리 건물이 지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강한 여름 햇빛을 아무런 차단 없이 전면으로 받아들이는 점인데, 20cm란 짧은 길이로도 어느 정도 햇빛을 막는 효과를 낸다.
이처럼 곡선 형태가 두드러지지만 실제 빌딩 표면의 유리는 5가지의 기본꼴로 해결했다. 곡선 건물은 직선 건물보다 공사비가 훨씬 많이 들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기 위해 유리의 곡면 각도를 5가지로 나눴고, 이 5가지 모듈을 조합해 다양한 곡면을 만들었다. 무척 동글동글해 보이는 빌딩 전체 유리는 85%가 일반 건물과 같은 평면이고 곡면 유리는 15%에 불과하다.
경복궁과 트윈트리 타워 Ⓒ건축사진가 김용관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의 대비와 공존
트윈트리 타워는 분명 현재 한국에서 가장 독특한 고층 빌딩 중 하나다. 주변 길이나 경관과의 맥락을 거부하고 덩치를 최대한 키울 수 있는 배치를 고집하는 일반 상업용 빌딩들과 달리 앞길 모양과 흐름에 맞춰 배치와 형태를 결정했고, 중간에 시각 통로를 두어 동십자각이 보이도록 해 건축의 공공성을 고민했다.
건물 디자인에 대한 호오(好惡)는 엇갈리지만 보행자들에게 다양하게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며, 경복궁과는 묘하게 대비되며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트윈트리 타워를 배경으로 바라볼 때 동십자각의 존재감과 매력과 더욱 선명해진다. 높게 솟은 현대 건물과 낮지만 수려한 전통 건축이 충돌하듯 대조되면서 묘하게 서로를 더욱 강조해주는 이 풍경은 그 자체로 서울이란 도시의 모습을 압축해 반영하고 있다. 경복궁과 트윈트리 타워가 마주 보는 이 장면은 어찌됐든 서울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서울을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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