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세수 비누
석야 신웅순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없다. 세수 비누는 보이지 않는다.
“여보, 세수 비누가 없어요.”
“거기 있어요.”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여기 있잖아요.”
“이게 무슨 세수 비누?”
한 방울만 떨어뜨리고 비벼보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거품이 인다. 세수를 하니 참 보드랍다. 클렌징 폼이라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화장품이다.
그동안 몸, 머리, 얼굴 전부 세수 비누를 사용해왔다. 샴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좀 되었지만 바디워시는 얼마 안된다.
샴푸, 바디 워시, 클렌징 폼으로 바꾸니 부드럽고 촉촉해서 좋다. 여자들이 사용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일찍 사용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칠십 평생 스킨, 로션 같은 화장품은 일체 바르지 않았다. 냄새가 싫고 끈적끈적해서 싫었다. 집사람이 성화를 해도 바르지 않았다. 얼굴, 손, 발 같은 데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낯설기는 하나 발라보니 보들보들하다. 아내의 성화댄 이유를 알 것 같다.
인생 3모작이라고 한다. 30년을 단위로 하면 30살까지는 1모작이요, 60살까지는 이모작이요, 90살까지가 3모작이다. 1모작은 배움의 길이요 2모작은 직장의 길이요 3모작은 자신의 길이다.
몸을 청결하게 하라고 누가 그러더라. 얼굴색이 좋아지면 만년 운도 절로 따라 온다고. 맞는 말인 것 같다. 얼굴에 스킨도 바르고 로션도 발라야겠다. 때론 썬그라스도 끼고, 옷차림도 신경 써야겠다.
나의 2모작은 학자의 길이었다. 3모작은 예술의 길을 가고 싶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그림이다. 나는 배움도 늦었고 결혼도 늦었고 직업도 늦었다. 삼만이다. 이제사 3모작을 시작했다. 수치로 보면 60쯤인데 칠십 넘어 시작했으니 인생 참 많이도 늦었다.
만년이다. 만년은 초년 중년에 심은 곡식을 거둬들이는 시기이다. 만져보니 양은 좀 되나 알곡은 없고 대부분 쭉정이들이다. 한편으로 세수 비누만을 사용해왔던 고지식한 지난 삶을 생각해본다. 아니 아내의 말을 들으니 만년의 세상이 달리 보아진다.
실수투성인 지난날의 삶이 많이도 부끄럽다. 후회해본들 무슨 소용이리. 이제부터이다. 인생 한 번인데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은 쫓겨가는 구름 한 장. 이제까지 살아온 나의 적막도 길을 찾아가야겠다.
한 수 되뇌인다.
무영탑 근처 어디쯤
에밀레의 종소리
그믐달로 투욱 떨어지는 오동잎 하나
적막도
길을 찾는가
쫓겨가는 구름 한 장
- 신웅순의 「대금운」
첫댓글 스킨, 로션 바르지 않고도 거칠어지지 않은 피부만큼
석야님의 삶도 아무 것 덧칠 하지 않아도 멋집니다.
아픈 채찍 달갑게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