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브레드 피트(52)와 안젤리나 졸리(41)의 이혼 뉴스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들이 키우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세 명의 친자식과 세 명의 입양아가 있는데, 그 중에 피부색과 국적이 서로 다른 세 명의 입양아들의 거취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다행히 안젤리나가 내건 이혼조건 가운데 첫번째가 아이들은 모두 자신이 돌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세계 각국에서 봉사활동을 벌이다가 만나 입양한 아이들이니 당연한 결정이었을 터.
자청해서 아이들을 떠맡겠다는 안젤리나 졸리의 조건에 브레드 피트는 속으로 얼마나 좋아했을까? 프랑스 여배우 마리옹 꼬띠아르와 바람을 피우다 딱 걸려 이혼소송을 당한 그로서는 애당초 아이들을 떠맡을 생각 같은 건 없었을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안젤리나 졸리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는데, 걱정이다.
소설이나 미드에서 보면 미국에서는 친자식이 있어도 해외입양을 하는 부모들이 많은 모양이다. 불구자나 지체아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아이들만 골라서 입양하는 부모들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좀체 납득하기 어려운 휴머니즘이다. 우리나라는 부끄럽게도 세계에서 해외입양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먹고살만해졌는데도 국내 입양은 극히 드물다. 친자식도 학대‧살해하는 터에 입양이 쉽겠는가. 더구나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생경한 외국 아이들임에랴.
우리나라에도 입양한 아이들을 애지중지 키우는 부모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개그맨 엄용수는 세 자녀 중 두 명이 입양아다. 배우 차인표‧신애라 부부는 친자녀 두 명이 있는데도 두 명을 더 입양하여 한결같은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입양아 사랑에 대한 차인표‧신애라 부부의 철학은 하인리히 페스탈로치를 능가한다. 배우 송옥숙은 유산의 아픔을 필리핀 아이 입양으로 달랬다. 그녀는 전 남편의 소개로 현 남편을 사귀게 된 독특한 내력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입양아를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며 친자식과 똑같이 사랑을 듬뿍 쏟아붓고 있다. 보도가 되지 않아 그렇지 일반인 중에도 이런 부모가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해외입양을 보내기 시작한 건 6‧25전쟁 때부터였다. 전쟁고아가 양산되자 홀트재단을 필두로 해외 복지기관들이 전국 각지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대대적으로 해외입양을 알선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전했는데도 이들 기관은 여전히 국내에 남아 입양업무를 지속하고 있다. 상굿도 버려지는 아이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입만 벙긋하면 복지 운운하지만, 입양아 문제만큼은 해결할 의지가 없다. 돈도 안 되고 표도 안 되니까.
1980년대 초반, 내가 한 봉제회사 노무과장으로 근무할 때의 얘기다. 사장 호출을 받고 큰길 건너 본사 사장실로 올라갔다. 사장은 내게 부탁이 있다는 神父를 소개해주었다. 신부가 관여하는 복지기관에서 미혼모들을 돌봐주고 있는데, 그들을 생산직사원으로 채용해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이었다. 우선 사장에게 이 일은 회사 안에서 나 혼자만 알고 있기로 다짐부터 받았다. 모든 업무는 직속상사인 부사장에게 미주알고주알 보고해야 하는 체제였는데, 워낙 입이 싼 자라 그가 알면 금세 소문을 퍼뜨려 아이들이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장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낸 뒤 신부의 차를 타고 복지기관으로 갔다. 신부는 나를 원장에게 소개시켜주곤 바로 자리를 떴다.
원장은 40대 중반쯤 된 중후한 여인이었다. 그녀에게 근로조건과 기숙사 제도, 그리고 비밀 엄수 의지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안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야기를 마친 뒤 그날로 한 미혼모를 인계받아 회사로 데려다 입사시켰다. 이후 나는 매달 두세 차례 연락을 받고 가서 미혼모들을 데려왔다. 나이는 1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까지 다양했다. 2년 뒤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대략 20명 안팎의 미혼모들을 데려왔다. 일당 책정, 작업반 배치, 기숙사 배정 등 내 업무범위 내에서 그녀들을 최대한 배려했다. 나는 생산직사원들의 숙련도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매일 두세 차례 현장을 돌았는데, 그녀들의 곁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저릿해지곤 했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예쁘고 착하고 성실했다. 처음 원장과 대화를 나눌 때, 그 복지기관에서 돌봐주는 미혼모들이 낳은 애기들도 전원 미국과 캐나다로 입양된다고 들었었다.
1960년대까지는 우리나라에도 국내입양이 이뤄졌었다, 큰댁에 혈육이 없으면 작은댁 아들을 큰아버지 양자로 보내는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때도 반드시 가까운 혈육이라야 했다. 순혈주의 전통 때문이었다. 요즘에도 타성(他姓) 입양이 더러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갈등을 불러온다. 몇 주 전 포천에서는 여섯 살 먹은 입양아가 양부모의 오랜 학대 끝에 참혹하게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추석 귀향 때는 달랑 부부만 가고 아이는 사흘 동안 베란다 기둥에 묶어두었다니 짐승만도 못한 연놈들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타성 입양이 부진한 이유가 순혈주의 전통 때문이 아니라 휴머니즘 부족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첫댓글 DNA에 기인한 문젠가? 우리 문화기 잘못된 것인가? 가슴아픈 동물본능이라 생각 되네.
모래 22일에 초등 여자동기는 45살 딸을 여의고,
동우 동기도 셋째인 31살 아들-GS 본사 근무-을 장가보낸다.
내 친구동생이 장애가 심한데 부인과 가슴으로 만난 남매를 친구네 姓으로 바꿨다고 한다.
부부가 情이 좋고 자식들이 지극정성으로 부모를 따르니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란다.
이 동생도 아들을 장가보내는 날!
이참에 여기서
모두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모두들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