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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몽득화(買夢得華)
꿈을 팔아 영화를 얻는다는 말로, 신라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가 언니 보희의 꿈을 사서 태종무열왕의 왕후가 된 고사에서 유래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큰 이득을 보는 것을 비유해서 쓴다.
買 : 살 매(貝/5)
夢 : 꿈 몽(夕/11)
得 : 얻을 득(彳/8)
華 : 빛날 화(艹/8)
잠을 자면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꿈이 실현하고 싶은 희망일 수도 있으나 대체로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를 말할 때가 많다. 삶이란, 인생이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았다고 허망함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꿈 몽(夢)이 들어가는 성어는 특히 더 그렇다.
남가일몽(南柯一夢), 부생여몽(浮生如夢), 역부지몽(役夫之夢), 노생지몽(盧生之夢) 등이 모두 부귀영화가 한때의 꿈이라 말한다. 그러나 꿈이 덧없고 믿을 수 없는 내용이라도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나오는 꿈으로 왕이 된 이성계(李成桂)처럼 해몽에 달린 경우도 있다. 남의 꿈을 사서(買夢) 영화를 얻은(得華) 문희(文姬)는 이보다 더한 예로 유명하다.
문희는 소국이었던 신라(新羅)를 삼국통일로 이끈 명장 김유신(金庾信)의 누이동생이다. 김유신이 영웅으로 굳히기 전에는 복잡한 배경이 담겨 있다. 금관가야(金官伽倻)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의 증손으로 신라에 항복한 집안이라 한계가 있었다. 부친 서현(舒玄)이 전장에서 공을 세웠어도 모친 만명(萬明) 과의 혼인을 인정받지 못해 사랑의 도피 끝에 유신을 낳았을 정도였다.
정통 진골인 외조부의 인정을 받고 서라벌로 돌아온 유신은 화랑이 되어 전공을 세우는 한편 귀족 자제 김춘추(金春秋) 등과 교유하며 꿈을 키웠다. 뒤에 무열왕(武烈王)이 되는 김춘추와 문희를 중간에서 맺어준 이야기가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상세히 전한다.
문희의 언니 보희(寶姬)가 꿈 얘기를 했다. 서악(西岳)에서 소변을 보는데 서라벌에 가득 찼다는 것이다. 문희가 "내가 언니의 꿈을 사겠다(我買此夢/ 아매차몽)"며 비단치마와 바꿨다. 며칠 뒤 유신이 집 앞에서 김춘추와 축구[蹴鞠/ 축국]를 하다 춘추의 옷고름을 찢게 됐다. 보희 더러 꿰매게 했더니 문희가 대신 달아 주고 춘추와 가까워져 임신을 하게 됐다.
유신이 짐짓 부모 모르게 애를 뱄으니 동생을 불태워 죽인다고 소문냈다. 왕이 거둥할 때에 장작불 연기가 피어올라 무슨 연유인지 누구 소행인지 알아보도록 했다. 유신이 임신한 동생을 태우려 한다고 아뢰자 춘추가 한 짓임을 알고 문희와 정식 혼례를 명령했다.
꿈을 팔고 산 자매는 천양지차로 신분이 바뀌었다. 춘추가 삼국을 통일하는 기반을 닦고 29대로 무열왕에 오르자 문희는 문명(文明)왕후가 되어 모두가 우러르는 영화를 누렸다. 처음 낳은 아들은 문무왕(文武王)으로 통일 완수라는 위업을 남겼다. 꿈을 팔았던 언니 보희는 후회하며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고 무명의 여성으로 일생을 마쳤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란 속담이 있다. 하찮거나 언짢은 일에 모두들 외면할 때 본질을 잘 파악하여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하는 결단력은 문희가 언니보다 한 발 앞섰음을 알 수 있다.
김춘추를 사랑한 문희와 보희 자매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 김춘추(金春秋)와 김유신(金庾信)의 누이동생 보희와 문희 자매의 꿈에 얽힌 이야기는 '사랑'을 주제로 다룬 신라의 대표적인 설화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조에 자세히 나오고, '삼국사기' 문무왕조에서도 법민(法敏)이 태어나게 된 사연을 소개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약술해서 다룬 것을 보면, 이 설화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비단치마를 주고 언니 보희의 꿈을 사서 동생 문희가 왕후가 되었으니 당대 사람들에겐 최고의 이야깃거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설화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기획과 연출에 의해 이루어진 이야기임이 사건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다는 점이 여느 설화와 다르다. 얼핏 설화는 그 이야기의 씨앗이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더라도 황당무계한 이야기처럼 보이기 십상인데, 보희와 문희의 꿈 이야기는 거의 사실에 가깝게 느껴진다.
꿈의 내용이야 어찌 되었든,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당대의 실제 주인공들인데다 처음부터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면서 갈등 구조를 만들고 해피앤딩으로 끝을 맺는 이른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기법이 범상치 않다. 다시 말하면 탄탄한 이야기 구조 기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영화를 보더라도 기획부터 연출, 연기까지 참여하는 전천후 감독들이 더러 있다. 보희와 문희의 꿈 이야기는 철저하게 김유신이 기획・연출하고, 거기에 직접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만능 감독 역할을 하고 있어 더욱 흥미를 느끼게 해준다.
꿈을 팔아 뒤바뀐 운명
삼국유사에 나오는 보희와 문희 자매의 꿈에 얽힌 이야기 속에는 김유신의 야망이 숨어 있으므로, 그 내용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그 야망이 무엇인지 이야기 속에서 찾아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날 문희의 언니 보희가 꿈에 서악(西岳)에 올라가 오줌을 누웠는데, 경성(서라벌)에 가득 찼다. 아침에 깨어나 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언니, 그 꿈 나한테 팔아. 내가 아끼는 비단치마를 줄게.” “그래. 어젯밤 꿈을 너에게 주마.” 보희는 손을 뻗어 꿈을 던지는 시늉을 했고, 동생 문희는 치맛자락을 벌려 그것을 받았다.
그로부터 열흘 뒤, 김유신은 정월 오기일(午忌日)에 춘추공과 함께 자기 집 앞에서 축국(蹴鞠)을 하였다. 운동 도중 일부러 춘추공의 옷을 밟아 옷고름을 뜯어놓고 나서 말했다. “우리 집에 들어가 꿰맵시다.”
김유신은 춘추공을 누이동생 아해(阿海: 보희의 어릴 적 이름)에게 안내하여 옷고름을 꿰매줄 것을 부탁했다. “어찌 사소한 일 때문에 경솔히 귀공자를 가까이하겠습니까?” 아해는 한사코 사양했다. 고본(古本)에는 병 때문에 나오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번에는 막내 누이동생 아지(阿之: 문희의 어릴 적 이름)에게 부탁했다. 아지는 쾌히 바느질로 춘추공의 떨어진 옷고름을 꿰매주었다. 그런 인연으로 춘추공은 아지를 알게 되었고, 자주 왕래하며 만나던 끝에 임신까지 하도록 만들었다.
김유신이 아지를 크게 꾸짖었다. “네가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임신을 했으니, 대체 어찌 된 노릇이냐?” 김유신은 그날 이후 임신한 누이동생을 불태워 죽이겠다고 온 나라에 소문을 퍼뜨렸다.
어느 날 선덕왕이 남산으로 행차하는 것을 보고, 김유신은 뜰에 장작을 쌓아놓고 불을 피워 연기가 꾸역꾸역 일어나게 하였다. 남산 위에서 선덕왕이 연기를 보고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신하들이 대답했다. “김유신이 처녀인 누이동생이 임신한 것을 알고 불에 태워 죽이려는 것입니다.”
선덕왕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임신을 하게 한 사내는 누구인가?” 때마침 가까이 있던 김춘추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선덕왕은 조카의 소행임을 알고 짐짓 꾸짖은 후 어서 가서 김유신의 누이동생을 구하라고 명령했다.김춘추는 임금의 명을 받고 말을 달려 김유신의 집으로 가서 화형을 중지시켰다. 그러고 나서 그는 곧 아지와 결혼식을 올렸다.
여기까지가 설화 내용이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아들 용수(龍樹 또는 龍春)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 사이에서 태어났으므로, 그에게 선덕왕은 이모가 되는 셈이었다. 임금이 이미 조카 김춘추에게 화형에 처해질 뻔한 아지의 목숨을 구해주라는 어명을 내렸으므로, 그 후 두 사람의 결혼도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었다.
가야 출신 김유신의 고민
이 설화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김춘추와 문희(아지)의 결혼은 철저하게 김유신의 사전 기획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왜 이미 결혼한 몸인 김춘추에게 누이동생을 시집보내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일까? 당시 김춘추는 진골(眞骨) 출신이지만, 선덕왕 다음으로 성골(聖骨) 출신의 대(代)를 이을 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차기 왕위에 오를 적임자였다. 김유신은 그것을 노리고 누이동생을 김춘추에게 시집보내 신분 상승을 꿈꾸었던 것이다.
김유신의 조상은 가야 출신이었다. 그의 증조부는 가야가 멸망하기 전인 법흥왕 19년(532년)에 신라에 투항한 금관가야의 구해왕(仇亥王)이었다. 그리고 그의 조부 무력(武力)은 신주도(新州道) 행군도총관이 되어 백제와의 싸움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친부 서현(舒玄) 또한 대량주(大梁州) 도독을 지냈다. 어느 날 서현은 길을 가다가 갈문왕(葛文王) 입종(立宗)의 아들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과 눈이 맞아 중매도 없이 야합하여 부부가 되었다. 그 야합으로 태어난 아들이 바로 김유신이었다.
친모(親母)가 왕실과 이어지는 신라 귀족의 딸이기는 했지만, 친부(親父)가 가야 출신이었기 때문에 김유신은 철저한 골품제 사회에서 출세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야심이 강했고, 신라 귀족의 중심 세력에 들어가기 위한 전략으로 누이동생을 활용하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김유신은 신라 귀족 중에서 누이동생의 배필이 될 만한 인물을 찾았는데, 그가 바로 김춘추였다. 신라는 오래전부터 성골 출신만 왕이 될 수 있었는데, 진평왕 대에 와서 아들이 없어 딸 덕만(德曼)이 대를 이어 선덕왕이 되었다. 하지만 자식이 없어 다음 왕위가 또 문제였다. 성골 중에 진평왕의 동모제 국반 갈문왕의 딸 승만(勝曼)이 있었으나, 역시 여자였으므로 다음 대를 잇기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골 중에서 다음 왕위를 이을 만한 인물을 찾아야 하는데, 그 적격자가 바로 김춘추였던 것이다.
김유신은 여기서 잠시 고민을 하였을 것이다. 김춘추는 이미 결혼해 딸까지 있는 몸이라 누이동생의 배필로는 결격사유가 있었다. 김춘추는 스무 살이 되기 전 이미 화랑도의 제16대 풍월주였던 보종공과 미실 사이에서 태어난 보라궁주(일설에는 보라궁주의 동생 보량궁주라고 하기도 한다)와 결혼해 딸 고타소를 낳았던 것이다.
김춘추가 왕이 되기 이전 일이지만, 딸 고타소는 이찬(伊飡) 품석(品釋)과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642년(선덕왕 11년) 백제와의 대야성(大耶城) 싸움에서 그곳 성주로 있던 남편 품석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김춘추는 왕이 된 이후에도 비참하게 죽은 딸 고타소를 잊지 못해 백제에 대한 원한이 매우 깊었다고 한다.
아무튼 김춘추가 이미 결혼해 딸까지 낳은 유부남이므로, 김유신은 자신의 기획을 실현시키는 데 망설여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삼국통일의 의지로 표현되었을 만큼 그의 야망은 컸다. 김유신은 어찌 되었든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김춘추를 우군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잘난 남자 김춘추
김유신의 처음 기획은 먼저 누이동생 보희를 김춘추와 맺어주기로 했는데, 막내 누이동생 문희가 나타나면서 의외의 변수가 생겼다. 자매지간이지만 보희는 격식을 차릴 줄 알고 남자 앞에서 부끄러움을 타는 소심한 성격인 데 반하여, 문희는 좀 더 활달하고 적극적인 편이어서 김춘추의 사랑을 먼저 차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보희가 김춘추를 좋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김춘추는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상당히 매력적인 남성이었다. '화랑세기' 춘추공조에는 ‘얼굴이 백옥 같고 말을 온화하게 잘하였다. 큰 뜻을 지녔으나 말은 적게 하였고 행동거지에 절도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건국대 사학과 김기흥 교수는 '천년의 왕국 신라'에서 김춘추가 국내외적으로 큰 신임과 명망을 얻고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진덕여왕 2년(648년) 사신으로 간 김춘추를 만난 당태종은 그의 풍채가 늠름하고 아름다워 칭찬해 마지않고 그를 신성한 사람으로 여기며 환대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보다 한 해 전에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도 일본인들에게 매우 호감을 주었던 듯 '일본서기(日本書紀)' 효덕천황기 대화 3년 기사는 '춘추는 용모와 얼굴이 아름답고 담소(談笑)를 잘했다'라고 하여, 그의 용모가 빼어났으며 웃음을 머금은 대화는 큰 설득력을 가져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주었던 사실을 전해준다."
외국에서까지 이처럼 김춘추의 외모와 말씨에 대해 극찬한 것을 보면, 당시 신라에서 그는 여성들의 우상이었을 것이다. 진골 귀족에다 잘생기고 말솜씨도 좋으니 어느 여성인들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보희는 처음 겸양으로 김춘추의 옷고름 꿰매는 일을 거절했지만, 동생 문희에게 선수를 빼앗긴 후 엄청 후회를 했을 것이다. 김춘추와 문희가 사랑에 빠졌을 때, 곁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보희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친동생이지만 문희가 너무 밉기까지 했을 것이다.
김유신, 비담과 염종의 난 진압
누이동생 문희의 화형을 가장한 연출은 철저하게 김유신의 각본에 의해 진행된 것인데, 그것이 더욱 극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선덕왕이 두 남녀의 사랑을 인정한 것이 되므로, 김춘추는 떳떳하게 문희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 아지(문희)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김춘추가 비밀로 감추려고 했던 것은 이미 정실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김유신의 화형식 액션을 통해 선덕왕에게까지 알려지면서 문희를 후처로 맞아들이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김유신이 애초 기획한 각본에서 보희가 문희로 여주인공이 바뀌긴 했지만, 연출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김유신의 출세가도가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김춘추의 정실부인 보라궁주가 둘째 아이를 낳다가 산고(産苦)를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직 딸 고타소 하나만 남겨졌다. 때마침 문희는 아들 법민을 낳았으니, 보라궁주 사후(死後)부터 떳떳하게 정실부인 노릇을 하게 되었다.
한편 선덕왕 16년(647년) 정월에 상대등 비담과 염종의 무리가 반란을 일으켰다. 상대등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선덕왕이 여자라서 정사를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황룡사 9층목탑을 세우면서 국고가 많이 탕진된 데다 잦은 전쟁 등으로 군역에 시달리게 되자 백성의 원성이 높았다. 비담의 반란군은 명활성에 주둔하고 김유신이 이끄는 관군과 맞섰다. 김유신은 10여 일간 공방전을 펼쳤지만 성과는 그다지 좋지 않아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이 사건과 관련, '삼국사기' 열전 제1 김유신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 비담 등이 군사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들으니, 별이 떨어진 아래에는 반드시 유혈(流血)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 여주(女主: 선덕왕)가 패전할 조짐이다'라고 하였다. 군사들의 떠들어대는 소리가 땅을 진동하니 왕은 듣고 무서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유신이 왕을 뵙고 말하기를 '길흉은 무상하여 오직 사람이 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중략) 성진(星辰)의 변이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왕은 근심하지 마소서' 하였다. 그런 연후 그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안기고 풍연(風鳶)에 실어 날려 하늘로 올라가는 것같이 하였다. 이튿날 사람을 시켜 길거리에 말을 퍼뜨리기를, 어젯밤에 떨어진 별이 도로 올라갔다고 하여 적군들이 의심토록 만들었다."
김유신의 이와 같은 지략으로 반군 세력의 사기가 떨어져 패주하였으며, 역도 비담 등을 붙잡아 목 베고 구족(九族)을 멸하였다.
김춘추의 즉위
선덕왕이 죽고 나서 다시 마지막 남은 성골 출신인 승만이 왕위를 이어 ‘진덕왕’이 되었다. 그러나 진덕왕이 재위 7년 만에 죽고 나자, 이제 더 이상 성골은 없으므로 신라 군신들은 이찬 알천(閼川)에게 섭정(攝政)을 청하였다.
알천은 김유신보다 나이가 많은 백전노장이었다. 선덕왕 시절 많은 장수와 남산 우지암에 모여 국사를 논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를 때려잡았을 정도로 완력이 대단한 장수였으며, 그만큼 백성들의 신망도 두터웠다. 그러나 사심이 없었고, 이미 자신은 늙었으므로 진골 출신 중에 덕망 있으면서 지혜가 뛰어난 인물을 왕으로 세우자고 하였다.
이때 김유신은 알천을 만나 다음 왕위를 이을 만한 인물로 김춘추를 추천하였다. 알천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서, 군신(群臣)이 모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늙고 이렇다 할 덕행도 없다. 지금 덕망이 높기는 춘추공만 한 인물이 없으니 그는 실로 우리 신라를 이끌어 갈 영웅이라 할 수 있다.” 그러자 군신이 모두 알천의 제의에 따라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김춘추가 왕위에 올라 태종 무열왕이 된 것은 그의 나이 53세 때였다. 재위 7년(660년)에 상대등 금강(金剛)이 죽자, 무열왕은 김유신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외교 수완을 발휘하여 나당연합군을 결성, 그해 백제를 멸망시켰다. 김춘추의 외교술과 김유신의 전략전술이 콤비를 이룬 쾌거였다.
김유신은 자신의 매제인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하여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야망인 삼국통일(비록 한반도의 반쪽 통일이지만)의 꿈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누이동생 보희와 문희의 꿈 이야기를 기획한 김유신은, 애초 꿈꾸었던 신분 상승의 목적을 넘어서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렸던 것이다. 더구나 김춘추와 문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법민은 후에 문무왕(文武王)이 되어 고구려까지 멸망시킴으로써 삼국통일을 완성하였다.
김춘추의 후비가 된 보희
그런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선 끝내 언급되지 않은 보희의 결혼 이야기가 '화랑세기' 춘추공조에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보희는 꿈을 바꾼 것을 후회하여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았다. 공이 첩으로 삼았는데, 아들 지원(知元), 개지문(皆知文)을 낳았다. 이 이야기는 문명황후사기(文明皇后私記)에 나오는 것이다.'
'화랑세기'는 문명황후(문희)가 화랑도의 풍월주였던 김유신의 친동생 흠순공(欽純公)에게 이 기록을 전했으나, 왕의 대업은 역사책에 있으므로 여기에 기록하지 않는다고 부연 설명까지 달아놓고 있다.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 '문명황후사기'가 문희의 사적인 기록을 담고 있다면, 그 내용은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언니 보희가 나중에 태종 무열왕의 차비가 되어 아들을 낳았으니, 자매가 모두 김춘추의 사랑을 받은 셈이다.
아무튼 김춘추는 김유신의 누이동생 자매를 모두 사랑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당시 한 명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자매를 사랑했으므로, 김유신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보희까지도 끝내는 김춘추로 하여금 후비로 들어앉히도록 주선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김춘추가 왕이 된 이후에는 자매가 모두 궁궐로 들어와 정비(正妃)와 차비(次妃)가 되었다. 그래서 이들 자매의 꿈을 사고판 이야기는 더욱 드라마틱한 설화 구조를 갖출 수 있었다.
김춘추의 정비인 문희는 법민, 인문, 문왕, 노차, 지경, 개원 등의 아들과 마지막으로 지소란 딸을 낳아 무려 6남 1녀를 두었다. 그리고 문희의 언니지만 후비가 된 보희는 김춘추와의 사이에서 아들 개지문, 거득, 마득 3형제와 딸 5명을 낳아 3남 5녀를 두었다고 '화랑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김춘추는 정비인 문희와 후비인 보희 자매 두 여자를 모두 사랑했으며, 금실 또한 좋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도 보희가 서악에 올라가 오줌을 누어 서라벌 장안이 다 잠겼다는 꿈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꿈을 자매 사이에 사고판 이야기는, 동생인 문희가 태종 무열왕의 정실이므로 그에 걸맞은 타당한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각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 買(살 매)는 ❶회의문자로 买(매)는 간자(簡字)이다. 貝(패; 물건)와 罒(망; 그물)의 합자(合字)이다. 그물로 떠내듯이 물건을 사서 모으다라는 뜻, 사는 일을 말한다. 따라서 매점(買占)하여 이익(利益)을 얻음을 이르는 말이다. ❷회의문자로 買자는 '사다'나 '세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買자는 网(그물 망)자와 貝(조개 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网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罒자로 바뀌게 되니 買자는 그물과 조개를 함께 그린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買자가 그물로 조개를 잡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자에서 貝자는 '화폐'나 '재물'을 뜻하고 있으니 買자는 그물로 재물을 쓸어 담는다는 뜻이다. 買자는 그런 의미에서 '사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買(매)는 ①사다 ②세내다 ③고용(雇用)하다 ④불러오다, 자초(自招)하다 ⑤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살 구(購),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팔 매(賣)이다. 용례로는 물건 따위를 사들임을 매입(買入), 물건을 사들이기를 매수(買收), 물건을 사는 값을 매가(買價), 차표나 입장권 따위를 사는 일 또는 선거에서 표를 사는 일로 투표할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표를 얻음을 매표(買票), 상품을 사들임을 매상(買上), 음식을 사서 먹음을 매식(買食), 물건을 사들이는 일을 매득(買得), 물건을 사 모으는 것을 매집(買集), 물건을 사서 넘겨받는 것을 매수(買受), 값이 크게 오를 것을 내다보고 막 몰아 사들여 쟁이는 일을 매점(買占), 남의 웃음거리가 됨을 매소(買笑), 어떤 일로 말미암아 남의 원한을 삼을 매원(買怨), 물건을 팔고 사고 하는 일을 매매(賣買), 물건을 삼을 구매(購買), 물건을 받기 전에 미리 값을 쳐서 삼을 예매(豫買), 물건을 거두어 사 들임을 수매(收買), 강제로 물건을 삼을 강매(强買), 물품이나 권리 등의 사고파는 일을 매개해 주고 영리를 얻는 일을 중매(仲買), 몰래 사는 것을 밀매(密買), 사지 아니함을 불매(不買), 도둑이 훔쳐 낸 물건인 줄 알면서 사는 것을 고매(故買), 물건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물건을 많이 사두었다가 값이 오른 뒤 아껴서 팖을 일컫는 말을 매점매석(買占賣惜), 죽은 말의 뼈다귀를 산다는 뜻으로 귀중한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먼저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매사마골(買死馬骨), 천금으로 말의 뼈를 산다는 뜻으로 열심히 인재를 구함을 이르는 말을 천금매골(千金買骨), 검을 팔아 소를 산다는 뜻으로 병사를 그만두고 농사를 짓게 함 곧 평화스런 세상이 됨을 이르는 말을 매검매우(賣劍買牛), 천금을 주고 웃음을 산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천금매소(千金買笑) 등에 쓰인다.
▶️ 夢(꿈 몽)은 ❶형성문자로 夣(몽)과 梦(몽)은 통자(通字), 梦(몽)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저녁 석(夕; 저녁)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몽(어둡다의 뜻)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본뜻은 저녁이 되어 시계(視界)가 침침하여 뚜렷이 보이지 않는 일이나, 밤이 어둡다의 뜻이다. 꿈의 뜻으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夢자는 '꿈'이나 '공상', '흐리멍덩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夢자는 艹(풀 초)자와 目(눈 목)자, 冖(덮을 멱)자, 夕(저녁 석)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夢의 갑골문을 보면 단순히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잠자리에 들어 꿈을 꾸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후 눈과 눈꺼풀은 艹자와 目자로 변하였고 침대는 冖자가 대신하게 되었다. 소전에서는 여기에 夕자가 더해지면서 夢자가 '밤'과 관계된 글자라는 뜻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夢(몽)은 ①꿈 ②공상(空想) ③꿈꾸다 ④혼미(昏迷)하다 ⑤흐리멍덩하다 ⑥똑똑하지 않다 ⑦마음이 어지러워지다 ⑧뒤숭숭하다 ⑨사리에 어둡다 ⑩흐릿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두울 매(昧)이다. 용례로는 잠을 자며 꿈을 꿈을 몽매(夢寐), 자다가 가위에 눌림을 몽염(夢魘), 꿈에 나타나는 길흉의 징조를 몽조(夢兆), 꿈속의 생각이나 꿈 같은 헛된 생각을 몽상(夢想), 꿈에 여자를 가까이 하여 정액을 쌈을 몽정(夢精), 꿈 또는 꿈속을 몽경(夢境), 꿈속에까지 생각한다는 몽사(夢思), 헛되이 살다가 죽음을 몽사(夢死), 꿈처럼 허망한 세상을 몽세(夢世), 꿈과 환상이라는 뜻으로 허황한 생각을 뜻하는 몽환(夢幻), 무섭거나 기괴하거나 불길한 꿈을 악몽(惡夢), 좋은 조짐의 꿈을 길몽(吉夢), 기분이 상쾌한 꿈을 쾌몽(快夢), 무엇에 홀린 듯 생각이나 정신이 똑똑하지 못하고 얼떨떨한 상태를 미몽(迷夢), 아기를 밸 징조의 꿈을 태몽(胎夢), 허황한 꿈을 환몽(幻夢), 꿈에 나타난 일의 좋고 나쁨을 풀어 판단함을 해몽(解夢), 죽은 사람이나 신령이 꿈에 나타남을 현몽(現夢), 잠을 깨고도 어렴풋이 꾸는 꿈의 세계를 잔몽(殘夢),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동안이라는 뜻으로 사물을 좀처럼 잊지 못함이나 이룰 수 없는 일에 너무 지나치게 몰두함을 이르는 말을 몽매지간(夢寐之間), 꿈 속에 꿈이야기를 하듯이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함 또는 그런 말을 몽중몽설(夢中夢說), 꿈속에서 꿈 이야기를 한다는 뜻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요령을 종잡을 수 없게 이야기함을 이르는 말을 몽중설몽(夢中說夢), 꿈속의 꿈이란 뜻으로 덧없는 세상살이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몽중몽(夢中夢), 꿈에도 생각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몽상부도(夢想不到), 천만 뜻밖의 일을 일컫는 말을 몽외지사(夢外之事), 몹시 그리워서 꿈에서까지 서로 찾는다는 뜻으로 매우 친밀함을 이르는 말을 몽중상심(夢中相尋), 꿈과 허깨비와 거품과 그림자와 같다는 뜻으로 인생의 헛되고 덧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몽환포영(夢幻泡影), 남쪽 가지에서의 꿈이란 뜻으로 덧없는 꿈이나 한때의 헛된 부귀영화를 이르는 말을 남가일몽(南柯一夢),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노생의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영고성쇠는 한바탕 꿈처럼 덧없다는 뜻 또는 한때의 헛된 부귀영화를 일컫는 말을 노생지몽(盧生之夢),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란 뜻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일장춘몽(一場春夢), 같은 침상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각기 딴 생각을 함을 이르는 말을 동상이몽(同床異夢), 장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꿈으로 현실과 꿈의 구별이 안 되는 것 또는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를 이르는 말을 호접지몽(胡蝶之夢), 남쪽 가지 밑에서 꾼 한 꿈이라는 뜻으로 일생과 부귀영화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남가지몽(南柯之夢), 밥 지을 동안의 꿈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취지몽(一炊之夢), 같은 침상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각기 딴 생각을 함을 이르는 말을 동상각몽(同床各夢), 밥 지을 동안의 꿈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취지몽(一炊之夢), 같은 침상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각기 딴 생각을 함을 이르는 말을 동상각몽(同床各夢), 대낮에 꾸는 꿈이라는 뜻으로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공상을 이르는 말을 백일몽(白日夢), 나부산의 꿈이라는 뜻으로 덧없는 한바탕의 꿈을 이르는 말을 나부지몽(羅浮之夢), 자아와 외계와의 구별을 잊어버린 경지를 말함 또는 사물과 자신이 한 몸이 된 경지를 일컫는 말을 장주지몽(莊周之夢), 장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꿈으로 현실과 꿈의 구별이 안 되는 것 또는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호접몽(胡蝶夢), 덧없는 꿈이나 한때의 헛된 부귀영화를 이르는 말을 황량지몽(黃粱之夢), 꿈인지 생시인지 어렴풋한 상태를 일컫는 말을 비몽사몽(非夢似夢), 무산의 꿈이라는 뜻으로 남녀의 밀회나 정교를 이르는 말을 무산지몽(巫山之夢), 술에 취한 듯 살다가 꿈을 꾸듯이 죽는다는 뜻으로 아무 의미 없이 이룬 일도 없이 한평생을 흐리멍덩하게 살아감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취생몽사(醉生夢死), 물 위에 뜨는 거품과 꿈이라는 뜻으로 삶의 덧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포말몽환(泡沫夢幻) 등에 쓰인다.
▶️ 得(얻을 득)은 ❶회의문자로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貝(패; 화폐)와 寸(촌; 손)의 합자이다. 돈이나 물품을 손에 넣어 갖고 있는 일의 의미로, 옛 모양은 貝(패)와 又(우), 手(수)를 합(合)한 자형(字形)이다. ❷회의문자로 得자는 '얻다'나 '손에 넣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得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貝(조개 패)자, 寸(마디 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得자를 보면 마노 조개를 쥐고 있는 모습만이 그려져 있었다. 마노 조개는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 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중국에서는 화폐로 쓰였었다. 그래서 갑골문에서의 得자는 화폐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재물을 획득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금문에서는 여기에 彳자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得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得(득)은 (1)소득(所得)이나 이득(利得) (2)정토에 왕생(往生)하여, 열반(涅槃)의 증과(證果)를 얻음 (3)풍수지리의 혈(穴), 또는 내명당(內明堂) 안에서 흐르는 물 등의 뜻으로 ①얻다 ②손에 넣다 ③만족하다 ④고맙게 여기다 ⑤깨닫다 ⑥알다 ⑦분명해지다 ⑧적합하다 ⑨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⑩이루어지다 ⑪만나다 ⑫탐하다, 탐내다 ⑬사로잡다 ⑭덕(德), 덕행(德行) ⑮이득(利得), 이익(利益)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얻을 획(獲),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잃을 상(喪), 잃을 실(失), 덜 손(損), 떨어질 락(落)이 있다. 용례로는 쓸 만한 사람을 얻음을 득인(得人),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꼭 알맞음을 득중(得中), 아들을 낳음을 득남(得男), 딸을 낳음을 득녀(得女), 얻음과 잃음을 득실(得失), 뜻을 이루어 자랑함을 득의(得意), 투표에서 표를 얻음을 득표(得票), 이익을 얻음을 득리(得利), 풍악이나 노래 등의 곡조가 썩 아름다운 지경에 이름을 득음(得音), 어떠한 시험이나 경기 등에서 점수를 얻음 또는 그 점수를 득점(得點), 목적을 달성함을 득달(得達), 참여할 수 있게 됨을 득참(得參), 아들을 낳음을 득남(得男), 도를 깨달음을 득도(得道), 바라던 것이 뜻대로 됨 또는 뜻을 이룸을 득지(得志), 수입이 되는 이익을 소득(所得), 남의 말이나 행동을 잘 알아차려 이해함을 납득(納得), 얻어 내거나 얻어 가짐을 획득(獲得), 여러 모로 설명하여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알아듣게 함을 설득(說得), 어떤 자격을 취하여 얻음을 취득(取得), 이익을 얻음을 이득(利得), 깊이 생각하여 이치를 깨달아 알아내는 것을 터득(攄得), 물건을 주워서 얻음을 습득(拾得), 사람으로써 알아야 할 것을 배운 후에는 잊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득능막망(得能莫忘), 뜻한 것을 이루어 뽐내는 기색이 가득함을 일컫는 말을 득의만만(得意滿滿), 농나라를 얻고 나니 촉나라를 갖고 싶다는 뜻으로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득롱망촉(得隴望蜀), 얻은 도끼나 잃은 도끼나 매일반이라는 뜻으로 얻고 잃음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득부실부(得斧失斧), 얻은 것으로는 그 잃은 것을 메워 채우지 못한다는 뜻으로 손해가 됨을 일컫는 말을 득불보실(得不補失), 한 가지 일을 알면 다른 열 가지 일을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기억력이 좋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득일망십(得一忘十),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는다는 뜻으로 바라던 바를 이루고 나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썼던 사물을 잊어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득어망전(得魚忘筌), 득실이 상반한다는 뜻으로 이로움과 해로움이 서로 마찬가지임을 일컫는 말을 득실상반(得失相半), 바라던 일이 이루어져서 우쭐거리며 뽐냄을 일컫는 말을 득의양양(得意揚揚), 뜻한 바를 이루어서 기쁜 표정이 얼굴에 가득 참을 일컫는 말을 득의만면(得意滿面), 좋은 때를 얻으면 태만함이 없이 근면하여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을 득시무태(得時無怠), 바라던 일이 뜻대로 이루어질 좋은 기회를 일컫는 말을 득의지추(得意之秋), 부모의 뜻에 들고 부모의 뜻에 순종함을 일컫는 말을 득친순친(得親順親), 그 뜻을 펼 수가 있음 또는 그 뜻을 펴게 됨을 이르는 말을 득신기정(得伸其情), 사람으로써 알아야 할 것을 배운 후에는 잊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득능막망(得能莫忘) 등에 쓰인다.
▶️ 華(빛날 화)는 ❶회의문자로 崋(화)와 통자(通字)이다. 艸(초; 풀)와 버드나무 가지가 아름답게 늘어진 모양의 글자의 합자(合字)이다. 아름답게 꽃이 핀 가지, 풀의 뜻에서 화려(華麗)함의 뜻이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華자는 '빛나다'나 '화려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華자는 艹(풀 초)자와 垂(드리울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는 지금의 글자 조합일 뿐이고 금문에 나온 華자를 보면 단순히 꽃잎을 활짝 펼친 꽃이 그려져 있었다. 소전에서는 여기에 艸자가 더해지면서 華자가 꽃과 관련된 글자라는 의미를 전달하게 되었다. 꽃의 자태가 화려해서인지 지금의 華자는 '화려하다'라는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참고로 61세를 화갑(華甲)이라고 하는 이유는 華자의 획이 6개의 十자와 1개의 一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華(화)는 성(姓)의 하나로 ①빛나다 ②찬란(燦爛)하다 ③화려(華麗)하다 ④사치(奢侈)하다 ⑤호화(豪華)롭다 ⑥번성(蕃盛)하다 ⑦머리 세다 ⑧꽃 ⑨광채(光彩) ⑩때 ⑪세월(歲月) ⑫시간(時間) ⑬산(山)의 이름 ⑭중국(中國) ⑮중국어(中國語)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빛날 환(奐)이다. 용례로는 남의 혼인의 미칭을 화혼(華婚), 빛나고 아름다움을 화려(華麗),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을 화사(華奢), 남을 높이어 그의 편지를 이르는 말을 화한(華翰), 가게나 식당 따위의 손님을 화주(華主), 단골로 오는 손님을 화객(華客), 해외에 정주하는 중국 사람을 화교(華僑), 중국의 남부 지방을 화남(華南), 물감을 들인 옷감으로 지은 옷을 화복(華服), 중국말을 화어(華語), 맛있게 썩 잘 차린 반찬을 화찬(華饌), 빛나고 아름다움을 화미(華美), 왕족이나 귀족의 자손을 화주(華胄), 지체가 높은 사람이나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집안과 그 자손을 화족(華族), 아름다운 도시를 화경(華京), 나이 예순 한 살의 일컬음 또는 소년의 꽃다운 나이를 화년(華年), 번화하게 꾸민 집을 화옥(華屋), 세상에 드러나는 영광을 영화(榮華), 아름다운 빛이나 빛나는 기운을 광화(光華), 지나가는 날이나 달이나 해를 연화(年華), 사치스럽고 화려함을 호화(豪華), 이름난 가문을 명화(名華), 번창하고 화려함을 번화(繁華), 물건 속의 깨끗하고 아주 순수한 부분을 정화(精華), 화창한 봄의 경치를 소화(韶華), 산과 물 따위의 자연계의 아름다운 현상을 물화(物華), 밖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색채를 영화(英華), 단정하고 아름다움을 단화(端華), 문화의 찬란함을 문화(文華), 재물이 넉넉하고 호화로움을 부화(富華), 꽃같이 진다는 뜻으로 꽃다운 목숨이 전장 등에서 죽는 것을 산화(散華), 실속은 없이 겉만 화려함을 부화(浮華), 화촉을 밝히는 의식이란 뜻으로 혼인식을 달리 일컫는 말을 화촉지전(華燭之典), 화서가 꾸었던 꿈이라는 뜻으로 좋은 꿈을 일컫는 말을 화서지몽(華胥之夢), 신혼 부부가 첫날밤을 지내는 방을 일컫는 말을 화촉동방(華燭洞房), 화정에서 들은 학의 울음소리라는 뜻으로 옛일을 그리워하거나 벼슬길에 올랐으나 좌절하여 후회하는 심정을 일컫는 말을 화정학려(華亭鶴唳), 꽃만 피고 열매가 없다는 뜻으로 언행이 일치하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화이부실(華而不實), 솔새를 물에 적셔 거적을 짤 때는 띠로 묶어야 한다는 뜻으로 부부는 서로 떨어져서는 안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화관모속(華菅茅束), 잘 다스려진 태평한 나라를 일컫는 말을 화서지국(華胥之國), 한번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에 올라 붙지 않는다는 화부재양(華不再揚), 꽃을 따서 무리에게 보인다는 뜻으로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뜻을 전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염화시중(拈華示衆), 꽃을 집어 들고 웃음을 띠다란 뜻으로 말로 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을 이르는 말로 불교에서 이심전심의 뜻으로 쓰이는 말을 염화미소(拈華微笑), 겉치레는 화려하나 실속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외화내빈(外華內貧), 부인의 방에 촛불이 아름답게 비친다는 뜻으로 신랑이 신부의 방에서 첫날밤을 지내는 일이나 결혼식날 밤 또는 혼례를 이르는 말을 동방화촉(洞房華燭),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핀다는 뜻으로 늙은 여자가 젊은 남편을 얻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고양생화(枯楊生華)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