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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오뚝기
출처: 여성시대 오뚝기, https://youtu.be/uNrsLCYdXEg?si=dNJhmGs-TlxSMc6y
영상 보고싶은 여시들 클릭하기 전에 기사 먼저 참고해~ 댓글여시가 알려줬어! 영상은 클릭하지말고 제가 정리한 글만 읽어도 됩니다~ 담부터는 사상검증 빡세게 할게. 알려준 여시한테 진심으로 고마워. 혹시나 여시들 불편할까봐 사진은 전부 얼굴 편집했어! 문제있을시 댓글 달아줘~^^
-수정 2024.07.31. 오전8시4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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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반가워 여시들~ 이번에는 11번째 영상을 요약해왔어. 주제를 정할 때 항상 고민이 많아. 그러다 우연히 철학가 강신주님의 ‘쓸모’에 대한 인문학 강의를 보게 됐어. 그동안 심리학이나 사회학 위주로 요약해왔는데 오늘은 인문학에 대한 영상을 준비해왔어. 여시들은 스스로를 ‘쓸모’로서 평가해본 적이 있어? 어떨 때 내가 가장 쓸모있는 존재가 된 것 같은지 혹은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지 궁금해. ‘쓸모’라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왔으니 재밌게 읽어주기를 바랄게.
시작!!!!!!!!
🚫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쓸모없다.”
- 누군가는 “철학 쓸모없고, 인문학 쓸모없고, 취업하는 데 쓸모없다고 한다.”
- 철학과 인문학 그리고 자기의 사유가 쓸모없다고 보지만 이것들이 얼마나 쓸모있는지를 지금부터 들려줄게.
📝 우리들의 ‘쓸모’는 ‘스펙’을 통해 증명되지.
- 인간 세계에는 스펙이라는 말이 존재해. 나는 '쓸모'가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해. 여기서 말하는 '쓸모'는 말이야. 내가 고용되어야 하는거지. 우리에게는 이게 전부인거야. 쓸모없으면 버려지거나 쓸모없으면 쳐다보지도 않아. 사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망가지고 있지.
🥸 하지만 장자는 오히려 ‘무용’(쓸모없음)을 강조하지.
- 장자는 '무용'을 강조하지. 무용이란 '쓸모없음'을 뜻해.
- 철학자 강신주가 어렸을 때 제일 많이 듣던 말이 있대. 어린 시절 부모님은 책을 읽고 있는 자신에게 “책 읽는다고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고 말했지.
- 쌀밥이 나오지 않아도 지금 하고있는게 있다면 그것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인거지.
- 요즘은 돈이 안되는 일은 하지 않아. 사람들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돈 버는 활동을 하다가도 쉬는시간만 되면 축사에 들어가 있는 소처럼 쉬지. 우리는 그 다음날 또 다른 노동을 위해 휴식을 취하지.
🇰🇷 그렇다면 우리의 ‘쓸모’를 정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경쟁을 많이하지. 그 속에서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해. 또 한편으로 무엇이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그 쓸모를 누가 결정할까?
- 바로 기업 CEO가 결정하고 국가가 결정하지. 우리들은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지.
🌞 하지만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쓸모없음’에서 결정되지.
- 장자는 이렇게 말하지.
장자 🥸: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쓸모없음에서 결정된다.”
☝️ 예를 들어 강에서 돌을 던져 제비를 뜰 때가 있지?
- 물에 더 많이 닿을수록 우리는 행복하고 즐거워. 돌을 던지는 것 그 자체로 행복을 느끼는거지. 그런데 옆 사람이 보기에는 왜 저런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거야.
- 다른 사람이 봐도 쓸모없다면 전반적인 사회 체제에서도 쓸모가 없을 확률이 높지. 하지만 그 행위를 할 때 내가 행복하다면 즐거운 일을 찾은거야.
❌️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쓸모없다고 생각되면 하지 않지.
- 우리는 어떤 활동을 할 때 쓸모없다고 생각되면 하지 않아. 보통은 쓸모있는 활동을 많이 하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다시 말해 가성비가 제로인 것들을 하고 있는게 없는거지.
💔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낄 때 자기 자신마저 버리기를 선택하지.
-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되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지.
😰: “나 해고됐어요.”
😢: “나 남편한테 버려졌어요.”
🥺: “나 아내한테 버려졌어요.”
- 자기 자신이 쓸모없어졌다고 자신마저 버리는거지. 그런데 그거 알아?
- 내가 누군가한테 아무 쓸모가 없음에도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은 날 사랑하는 사람이야.
- 어떤 사람이 시험에 떨어지거나 해고가되면서 자살을 선택했어.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마 부모가 강조했을 수 있지. “넌 1등해야 돼.”, “쓸모를 보여줘야 돼.”, “넌 취업을 해야 돼.” 이런 말을 듣고 자라다가 어느순간 취업을 못하게 된다면 부모님도 나를 싫어할거라고 생각하기 쉽지.
📚 우리의 ‘쓸모’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스펙’이야.
- 최소한의 용량은 어떻게 되고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중요하지. 사실 스펙은 인간에게 쓰여서는 안되는 말이야. 상품이나 물건에만 사용해야하는 단어를 인간에게 쓰고 있는거지.
-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야. 인간을 스펙으로 정의내리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포기하는 일이야. 나를 인간이 아닌 사물로 정의하는거지. 그러다 결국 내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지겠지.
🗡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 스스로를 폐기처분하지.
-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쓸모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를 폐기처분해버리지.
- 일차적인 폐기처분은 사회에서 시작되지. 기업에서 나가라며 해고해버리고 폐기처분을 하는거지. 사회에서 폐기처분된 사람은 집에 돌아와 가만히 앉아 생각하지.
😔: “난 용량이 떨어져. 사라져야 돼.”
- 스스로 고민해보고 생각해보니 나라는 사람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 하지만 장자는 그런 그들에게 희망을 주지.
- 장자는 ‘쓸모 없는게 더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지.
🗣 장자와 혜시의 일화를 들려줄게.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다.
“그대의 말은 쓸모가 없네.”
장자가 말했다.
“쓸모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함께 쓸모에 관해 말할 수 있네.”
“세상이 넓고 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쓸모가 있는 것은 발을 디딜 만큼의 땅이네.”
“그렇다면 발을 디디고 있는 땅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땅을 모조리 파고 들어가 황천에까지 이른다면, 사람에게 그 밟고 있는 땅이 쓸모가 있겠는가?”
혜시가 “쓸모가 없지.”라고 대답했다.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쓸모없음이 쓸모가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네.”
👍 이해가 안되는 여시들을 위해 해석해줄게.
- 혜시는 장자에게 우리가 서 있는 만큼의 땅만 필요하다고 주장해. 다른 땅들은 우리가 밟고 있지 않으니 쓸모가 없다고 말하지.
- 이때 장자는 혜시의 말에 반박하며, 쓸모없는 땅을 황천까지 다 파버리면 서 있을 수 있겠냐고 되묻지. 내가 서 있는 만큼의 땅을 제외하고 나머지 땅을 황천까지 다 파버리면 언젠가는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 밖에 없거든. 우리가 평지에 서 있을 수는 있지만 암벽 끝이나 절벽 끝에는 못 서있는 것처럼 말이야.
- 장자는 우리가 밟고 있지 않는 다른 땅들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쓸모없음’도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하지.
❤ 사랑은 그 사람이 쓸모가 없을 때 비로소 입증되지.
- 만약 나라는 존재가 쓸모없어진다면 살아남을 자신이 있어? 쓸모없는 정도가 아니라 짐이 되는 수준이라면? 누군가 나의 대소변을 치워야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면 말이야. 나를 보살핌으로 인해 남은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면 말이야. 이런 순간에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돼. 내가 쓸모없어도 누군가 나를 찾고 부르면서 행복해 할 수 있지. 내가 아예 쓸모가 없을 때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인거야.
✖️ 자본주의의 논리에 길들여져서는 안돼.
- 어느순간 우리 모두는 쓸모없을 때가 존재하지. 아무짝에 쓸모가 없어도 누군가에게는 그냥 좋은 사람으로 남았으면 해.
-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잊고 있는 가치들이 많아. ‘쓸모’라는 말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닌 사회와 자본에서 만들어 낸 말들이야. 자본주의 아래 ‘쓸모’는 특정 기업이 한 인간을 고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는거지.
- 어느순간 우리는 “쓸모가 커지면 연봉도 높아지겠지?”라는 논리에 빠지게 돼. 그러다보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하나도 없지. 돈을 중요시하면 돈이 내 삶의 가치가 되어버려. 우리는 그런식으로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가는거야.
📝 자본주의에 길들여지는 순간 면접관이 되어버린 나를 발견하지.
- 연애를 해도 그 사람의 스펙을 확인하게 돼. 연봉, 학벌, 재산 등을 따지면서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지. 어느샌가 면접관이 되어버린 나를 발견하는거야. 젊은 커플들은 재고 따지며 계산하지.
- 결혼중매회사들도 마찬가지야. 연봉을 따지면서 결혼을 선택한다면 더 이상 그 사람이 그 돈을 벌지못하게 됐을 때, 쓸모가 없어졌으니 헤어져야 하는거잖아? 그건 가정을 이룬 것이 아니라 직장생활의 일종인거지.
👶 ‘쓸모’만을 따진다면 우리에게 갓난아기들은 무슨 의미가 있겠어?
- 갓난아기들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 자식을 낳으면 짐만 되는거지. 그럼에도 우리는 자식을 낳아 기르지. 아이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거나 아프게되서 병원비가 깨지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 가성비가 정말 나쁜거야.
- 가성비만 따지면 차라리 7~8살짜리 다 큰 애를 입양하는게 훨씬 낫지. 가성비 좋게 깔끔하게 귀저기 갈 필요 없이 말이야.
🤗 그래도 이 아이가 내 아이가 되는 순간 달라지지.
- 나중에 타락하면 이런 말을 하기도 하지. 자식을 키우는 것도 가성비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물론 이렇게 말하고나서 많은 부모들이 후회하지.
- 또 다른 부모들은 가끔 자식에게 이런 얘기를 하지.
🤑: “내가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만인줄 아니?”
- 이런 얘기는 함부로 하면 안돼. 굉장히 위험한 교육방식이야. 사실 자식에게 들인 돈을 엑셀파일로 정리해서 나중에 청구서를 주고 갚으라고 하는 부모는 거의 없지. 즉, 내 아이에게는 가성비가 없어.
- 반려견도 마찬가지야. 사실상 반려견이 짐이 되는데도 우리는 키우지. 산책도 시키고 놀아줘야 하고 누군가는 집사를 자처하기도 해. 고양이가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가성비가 거의 없는 것들이야.
- 가만히 보면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가성비가 거의 없어. 즉. 쓸모가 없어. 내가 쓸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하고 있거나 가성비가 없음에도 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일인거야.
- 저 사람에게 뭔가 이득을 얻거나 쓸모를 찾으려고 하는게 아닌데도 그 사람이 좋다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거야. 존재자체만으로도 나는 행복한거지.
- 가끔 엄마가 김치나 반찬 같은거 해올 때가 있지만 덥썩 받지 않는 것이 좋아.
- 엄마가 김치를 잘하거나 손주를 잘 돌봐줘서 좋은게 아니야. 그런데 덥썩 받다보면 헷갈리게 되지. 육아도우미를 부르는 것보다 엄마한테 부탁하는게 가성비가 더 좋은가하고 말이야. 그런데 지나가고 보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
🚯 자본주의 아래 오염이 되고나서야 비로소 ‘쓸모’에 대해 생각하지.
- 장자의 가르침은 너무 자명한 것들이야. 혹시 공기에 대한 쓸모를 생각해본 적이 있어? 만약 공기가 오염된다면 그제서야 쓸모에 대해 얘기하게 될거야. 과거 우리는 물에 대한 쓸모를 논하지 않았지.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이 오염되고나서야 깨닫지. 물이 어느샌가 ‘쓸모’가 되버린거야.
- 쓸모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망가지지. 쓸모의 세계가 너무 많이 확장되고 커지고 있어. 이는 그만큼 우리 인간사회가 타락했다는 것을 의미해.
🚹 장자가 강조하는 ‘무용’은 나를 ‘쓸모’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야.
- 어렸을 적 그런 경험이 있을지도 몰라. 부모님에게 친한 친구를 소개시켜주면 부모님은 나에게 이렇게 묻지. “걔는 공부 잘하냐?” 부모입장에서 그 친구가 공부를 잘하면 쓸모있는 친구인거지. 그런데 그 친구가 전교 꼴등이라면 부모님은 못만나게 할 가능성이 높지.
- 하지만 세상에 그런게 어디있겠어? 친구를 사귀는 것은 성적이랑 상관없어. 성적이 떨어졌다고 해서 친구 관계가 깨진다면 그건 친구사이가 아닌거지.
- 나를 쓸모로 평가하는 사람이 아닌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찾아야 해. 장자가 강조하는 무용이란 바로 이런 것이지.
🎓 우리가 등한시하는 인문학과 철학도 ‘무용’에 대한 예찬이지.
- 인문학과 철학은 무용에 대한 예찬이야. 과거 우리는 냇가에 가면 돌을 던지면서 물수제비를 한 적이 있지. 그런데 요새는 가만히 앉아있어. 괜한 힘을 쓰지 않는거지.
- 만약, 물수제비를 30번 뜨면 연봉 2억을 보장하겠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난리가 날거야. 아마 1년 사이에 한강이 매립될지도 몰라.
- 너무 슬프지 않아? 어떤 사람은 순수한 의미에서 돌을 던지고 물수제비 뜨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강에 갔더니 한강이 없어져있을지도 모르잖아.
🛤 주위를 돌아보면 너무나 넓은 땅을 우리가 의지하고 있어.
- 장자의 일화에서 혜시는 우리가 딛고 있는 땅만 필요하다고 주장하지. 그런데 돌아보면 정말 넓은 땅을 우리가 의지하고 있어. 공기놀이, 제비뜨기, 영화보기, 음악듣기, 친구와의 수다, 산책하기 등이 있지.
-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집안 한 켠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치매 기운이 있는 어머니조차도 나에게 짐이 아닐 수도 있어. 오히려 그런 어머니가 나에게 힘이 될 수가 있는거지.
- 자본주의 아래 돈만 되는 곳에만 서있으라고 가정해보자. 돈이 되지 않는 곳은 전부 황천까지 파여져 있는거야. 아마 저 밑이 까마득하게 보일거야. 그리고 어느샌가 우리는 황천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어.
- 그러니 우리가 서 있었던 땅이 얼마나 좁은 땅이었는지를 알아야 해.
🏥 진짜 나한테 쓸모 있는 것만 가지게 되면 죽게 되지.
- 어쩌면 쓸모가 없다고 자살한 청년도 주위의 모든 땅을 다 파버렸는지도 몰라.
- 진짜 나한테 쓸모 있는 것만 딱 가지면 죽게 되지. 낭떠러지 밑인 황천까지 처박히게 되는거야.
- 장자는 철학이 이런 영역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지. 그리고 자기 자신이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 누가 나를 사랑하는지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지.
- ‘쓸모’를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장자의 ‘무용’은 깊게 다가오고 자살하기 직전까지 간 사람들에게는 힘이 되지.
🗺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면 굉장히 넓은 땅이 있을거야.
- 만약 해고를 당해 충동적인 선택을 하고싶다면 잠시만 참아보자. 그리고 한참을 생각해보면 할 일이 많을 수도 있어. 시간이 많으니 영화도 볼 수 있고 산책도 하고 낮잠도 잘 수 있어.
- 부모가 뭐라해도 상관없어. 이때 부모가 나에게 밥까지 해준다면 더욱 좋지.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게 될지도 몰라. 부모님이 나에게 마음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거지. 그때 마침 반려견이 나를 핥아줄 수도 있지. 반려견은 내가 쓸모없다는 것을 모르지.
- 죽고싶어도 조금만 버티고 살아남아 내게서 사라진 땅들을 살펴봐. 아마 굉장히 넓은 땅이 있을거야.
🐶 누군가는 왜 인간이 아닌 반려견을 더 사랑할까?
- 인간들이 반려동물에게 에너지를 쏟는 것을 볼 수 있지. 인간을 사랑하는 것에서 후퇴하고 반려견을 사랑하기를 선택한거야. 즉, 사람이 반려견보다 못한 존재가 된거지. 왜 그런걸까?
- 사람 세계에는 ‘쓸모의 세계’가 너무 많이 지배하고 있거든. 사람들이 징글징글해진거지.
- 그런데 아이들이나 반려견은 그렇지 않아. 주인이 반려견에게 밥을 주지 않는다고해서 반려견이 주인을 “이거 쓸모없는 주인이네?”라고 생각하지 않아. 주인을 물거나 위협하지도 않고 간식을 주기만을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그러다 간식을 주면 꼬리를 흔들면서 좋아해.
- 우리는 이런 감정을 반려견한테 느끼고 있는거야. 이것이 바로 핵심이야. 이런 감정과 영역들을 우리는 해독하고 확장해 나가야만 해.
⭕️ 현 세대는 ‘쓸모있음’을 증명하려고 하지.
- 무용에 대한 얘기는 노골적이고 지금 세대에는 쓰이지 않지.
- 요즘 세대는 ‘쓸모있음’을 증명하려고 하거든. 내가 쓸모가 있어야지만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 그 이면에는 생존하겠다는 야비함이 존재하지. 쓸모를 증명하지 않는다면 먹고살지 못하는거야.
-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좋은 사회가 아닌 망가진 사회가 된거야. 인간과 반려견 사이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어. 그럴 때 장자의 황천이야기는 강한 힘이 있지.
끝!!!!
여기서부터는 내가 여시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야.
🍂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쓰임새’가 전혀 없구나.
-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자살을 계획했던 때에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것이 있었어.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쓰임새’가 전혀 없구나.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몫도 해내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실망스러웠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들도 고통스러웠지.
- 그러다 정말 운이 좋게 우울증이 호전되면서 내 삶의 가치관이 변화했어. 누군가에게 아주 작더라도 ‘쓰임새’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래서 돈이 되지 않더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힘들어하는 익명의 여시들을 위로해주고자 쩌리에 글을 업로드 하게 된거야.
- 그러다 우연히 강연을 통해 장자의 ‘무용’에 대해 알게 되었지.
🫂 장자의 ‘무용’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면서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어.
- 난 이 세상에서 ‘쓰임새’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려 했어. 그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쓰임새’ 있는 사람이 되고자 애썼던거야.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이제야 깨닫게 됐어.
- 나는 ‘쓸모’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나 자신도 그런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거지. 뒤늦게나마 나의 모순된 논리를 발견한거야.
- 내가 나를 ‘쓸모’로서 판단해버리면 타인을 볼 때도 ‘쓸모’로서 판단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왜 알지 못했을까.
🍀 스스로를 “쓸모”로서만 판단하는 여시들에게 묻고 싶어.
- 혹시 진심으로 사랑하는 존재가 있어? 그것이 반드시 실체가 있다거나 살아 숨 쉬고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야. 자연, 추억, 물건, 반려견, 가족, 친구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거든.
- 만약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너무나 아파하고 힘들어 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 지금 떠오르는 말을 메모해뒀다가 나중에 내가 정말 힘들 때 나 스스로에게 해주면 어떨까.
- 내가 사랑하는 존재는 소중하게 여기면서 정작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마음 아픈 일은 없을거야.
- 그런 말이 있잖아.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니 여시들도 스스로를 ‘쓸모’로서만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길 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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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서 어떤 여시가 알려줬는데 강연자분 2019년쯤 페미니즘에 대해 열렬히 비판하신 분이랍니다~^^ 다들 참고하고 영상 클릭하지말고 글만 참고해주세요~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760702.html?utm_source=copy&utm_medium=copy&utm_campaign=btn_share&utm_content=20240731
얼굴도 편집해서 올릴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하면 바로 댓글 달아줘!
첫댓글 여시야 고마워 갑자기 몰아치는 불안에 어제 밤새 뒤척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ㅠㅠ 내게 너무 필요한 글을 덕분에 읽었고 내게 큰 힘이 됐어!! 진짜 고마워
넘좋은글이다..나도 나의 쓸모를 증명하려고 늘 애썼던것같은데 그럴 필요가 없었던것같아
고마워.. 내가 늘 나에게 쓸모없고 무능하다고 얘기했었는데 진짜 마음이 많이 치유됐어..
딱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때문에 정신병왔는데 많이 깨닫고가 되게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런 글 써줘서 고마워 🥹
최근에 일 그만두고 사지가 멀쩡한데 이래도 되나, 젊은데 일도 안하는 나같은 사람이 무슨 쓸모가 있나 이런 생각들로 마음이 어지러웠는데 여시 글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 장자 관련 된 책도 찾아보고 이 부분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싶다! 좋은 글 고마워~~!!
좋은글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