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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지리산 【소재지】전라도, 경상도 | |||||
【산행지】내원매표소.뱀사골→와운교→병풍소→뱀사골대피소→화개재→토끼 봉→연하천(1박)→벽소령→덕평,칠선→세석대피소(2박)→촛대봉→장 터목→천왕봉→장터목→망바위→참샘→백무동 | |||||
【산행일】2003년 10월 18,19,20일(2박3일)【날 씨】맑음 | |||||
시 간(着) |
구 간 |
비 고 |
시 간(着) |
구 간 |
비 고 |
18일/09:30 |
뱀사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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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05:15 |
세석대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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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0 |
뱀사골대피소 |
40분 휴식 |
05:35 |
촛대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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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 |
토끼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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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
해돋이 촬영차 |
30분 휴식 |
17:00 |
연하천대피소(1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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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0 |
장터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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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09:15 |
연하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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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 |
천왕봉 |
30분 휴식 |
11:20 |
벽소령대피소 |
25분 휴식 |
10:20 |
장터목 |
20분 휴식 |
13:30 |
덕평봉 |
30분 휴식 |
11:20 |
망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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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 |
세석대피소(2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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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 |
백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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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동행 : 본인(43세), 처(39세) 배낭60,20리터,침낭1,상위우비2,파카2, 겨울남방2,목장갑2,양말4,개스3, 두루마리휴지1롤,신라면2,햇반2,여벌옷(여,남각1),대형랜턴1,캐논자동카 메라1,필름3롤,과일(오이6,귤10,사과6,감5),썬그라스2,구급약(압박붕대,지 사제,소화제,소독약,스프레이파스),쌀1되,컵라면2,사골국2,양념김1,김치1 반합, 볶음멸치약간,진공수제비1,코펠1,버너2,찰떡파이1박스,팩소주5개, 박하사탕1봉,소형소시지1(10개들이),보온병(1.5리터),물1.5리터,담배1갑(!)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어머님 뱃속에 잉태하여 열달 동안의 숙면 아닌 숙면 속에 있다, 첫울음으로 연결되면서 먼저 나온 사람 속에서 사람으로 연결되어 세상을 본다. 그것은 이미 지구상에 존재하는 먼저 온 사람, 인간(!)과의 첫 대면이면서 사람으로 태어날 때부터 묘지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싣고 달려야 하는 첫 관문이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시작된 인생, 그 길인 것이다.
수많은 사람, 수많은 일! 그리고 태어난 존재, 환경! 사람과 만나 세월이라는 건대한 강속에 던져지고 성장하면서 다양한 생활 속에 접하고, 부대끼고, 싸우고, 저버리며 좌충우돌하는 세상사? 그 세상사 속에 인생을 알고 쇠락을 거듭해 간다. 또 유혹과 탐심으로 그득 해지면서...
자연은 사시사철 풍우와 재해가 있으면서도 항상 인간에게 많은 것을 주고 변함이 없거늘 우리네 인간들은 자연에게 그 무엇을 주지도 못한 체 오염의 구렁으로 밀고만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 첫울음의 숭고함도 잊은 체.
산을 접 한지 어언 16년!(취미생활-걷는 것이 전부)
불혹을 넘기고 두 자식을 키우며 눈먼 어머니를 봉양(!)해야하는 지금의 내 자신이 서있다.
보이면서도 보인다 말 할 수 없고 알면서도 말하고 싶지 않은 불혹의 나이인 43년, 불혹을 누가 책임져야하는 세월이라 했던가 ! 생활의 일면일면 속에 어찌 찌(!)들어가는 모든 마음을 달래고자 아니 여짖 살아온 40년 앞에, 내 자신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도심의 닭장을 벗어 던지고 자연의 숭고함을 느끼며 생활의 활력소를 찾아보자 마음을 가지지 않겠냐 만은 나 또한 이것 저것을 잊고자 두 번째 지리종주를 계획했다.
때 좋은 10월의 단풍도 좋으련만 최소 2박3일을 걸어야하는 장구한 지리종주를 하면서 일상을 털어 버리고, 처와의 시간을 그렇게 계획했고 주 능선이 아닌 뱀사골⇒연하천⇒세석⇒천왕봉⇒ 칠선 계곡으로 계획을 잡아 한 달 전 인터넷 산장예약과 시장 보는 것을 끝으로 종주 준비를 끝냈다.
2003.10.17(금-맑음)
두 번째 종주라는 설레임에 앞서 2001년 8월, 힘겨웠던 두려움을 안고 꾸려놓은 배낭을 메고는 처와 영등포를 향했다.여수행 23:50발 무궁화호를 타기 위해서 !
철도역을 접한지 20여년이 넘었지만 역전은 붐비기 이전에 노숙자 ! 예나, 지금이나 예외가 아닌 듯 남루한 옷차림과 덥수룩한 머리, 하나같이 이곳 저곳에 신문, 박스 등으로 자리를 펴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을 아프게 한다, 경제의 어려움인가, 우리대한민국의현실인가 ? 노숙자와 여행객! 그리고 산꾼들 또한 옹기종기 역전에 모여 열차 시간을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고 우리는 시간이 되어 지리를 향한 남원역 행, 5시간 여정의 열차라는 기계에 몸을 실었다.
그래 잊자, 생활의 못마땅한 모든 것을 아니, 자신의 모자란 모든 것까지도 잊자 깡그리 잊어버리자.......
눈을 감았다. 허나, 대자연 ! 지리종주의 설래 임에 앞서 마음이 편치가 않다. 부모의등반계획과공교롭게도월요일(20일)부터2박3일의수학여행을 떠나면서도 선뜻 다녀오시라는 큰놈에게 미안하고 더구나 할머니 밥은 자신이 챙겨주겠다는 말과 아직은 어린 초등2년 작은놈에게 할 말이 없다.
생활의 모든 것들이 머리 속을 후비고 난도질을 하며 혼란스럽게 하더니 어느새 남원역이다(04:30)
터미널에서 뱀사골행이 07:00라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접하고 06:30분까지는 역전휴게실에 있을 요량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리종주에 따른 많은 생각을 하는 동안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처는 역전 휴게실 나무의자에 누어 벌써 잠이 들어 버렸고 기적소리와 함께 차가 멈추면서 떠나고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옷차림으로 알 수 있는 산 머니들이 들어와 차 시간을 보고 여행 안내판을 보고 있는 모습들이다.
택시운전사는 지리 목표를 물으며 얼마얼마 함께 동승하라고..... 흥정을 한다.
시간이 되어 10여분을 걸어 터미널에 도착하니 뱀사골행이 07:15분 차란다. 인터넷이라는 기계가 거짓말을 했다, 아니, 사람이 거짓말을 한 것 일게다 !
뱀사골 행 버스에 올라 잎 떨군 늦가을 산을 보며 서부 매표소를 지나 뱀사골 주차장에 도착하여(09:00)아침 요기를 채우고자 남원식당에서 추어탕과 산채백반을 주문했는데 찬이 장난이 아니다. 정확히 나물종류를 포함해 15가지나 식탁 위에 차려졌다. 나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처는 이것저것 비우기 시작 터니 즐겨먹은 비운나물을 더 주십사 주문을 하니 말없이 갖다주는 아주머니가 풍성스럽다. 많은 찬에 빼놓을 수 없는 반주! 그래 편한 마음먹고 왔으니 금강산도 식후경! 한잔 걸치고 자연과 벗삼으면 온통 내 세상이 될걸. 술과 산은 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씨주 하나를 주문 해 똑같이 잔을 채워 건배와 맛있게 먹는 아침상을 물리고는 점심밥을 할 수 없는 연유로 식당 아주머니께 부탁하여 공기 밥 두개를 준비해온 프라스틱 반합에 채우고 일상에서의 모든 것, 내 생활에서의 모든 것을 잊고 산과 처와 함께 어울어 지는 2박 3일! 그 지리종주라는 두 번째의 첫발걸음을 딛고자 뱀사골 초입에서 잠시 기념촬영을 하고 옷깃과 등산화를 졸라맨다(09:30)
오 , 천왕봉 !
뱀사골 초입에서 뱀사골 대피소까지는 9Km가 되는 거리를 확인하고 오늘의 목적지는 연하천(13.4Km)까지다 생각했지만 좀 시간이 여유롭지 못하면 뱀사골 산장까지도 무방하다 마음의 결단을 내리고 떨구어진 낙엽과 물소리 청량한 뱀사골 계곡을 따라 처와 드리어 2박 3일의 장정에 올랐다. 30여분의 산행 끝에 와운 마을입구에 도착하니 지리를 지키는 관리소 직원들이 보수 할 것 등을 조사하고 있었고.. 병풍소를 지나 단심폭포에 도달하니 지나온 계곡의 6. 7부 능선의 단풍이 장관이다.
지리산 10경중의 1경으로 들어가는 뱀사골 단풍 ! 때는 좀 지났지만 장관은 장관이었다. 오르던 등산객들이 걸음을 멈추고 자연과 자신을 단풍과 어울어진 추억을 담고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또한 재승교와 무지개교를 지나 3시간의 산행길에 들어서니 발걸음이 자꾸 꾸물거린다. 육신의 피로가 밀리면서 뒤쳐지는 처의 발걸음은 더욱 힘겹게 내 눈에 들어왔고 온 듯 온 듯 보일 듯 한 뱀사골 대피소는 보이지를 않는다, 하늘 닿는 듯한 보일 듯한 데도... 무거운 발걸음에 2박3일 걸어야하는 중압감이 밀리면서 또다시 겁부터 난다. 이게 40십이란 말인가! 不惑이란 말인가 !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했는데 그리 경사도 급하지도 않은 이 길이 힘에 부치니, 쌀쌀한 날씨와 복합된 체력의 한계에 힘겨운 걸음은 그래도 계획한길 지리종주 아니, 하늘 닿는 천왕을 가야한다 ! 가야만 한다는 시작의 결단- 기후조건이 최악이였던 지지난해에도 7, 13살과 지리를 빗속에 종주 했거늘, 39,43살은 무엇이 두려워 지체해야 하는가 ? 하늘과 나무가 맞닿은 듯 바로 보이는데 가야지 해내야지 앞으로 살아야할 날이 더 많은 인생길을 예서 주져 앉으면 어쩌랴! 혼돈 속에 체력저하를 느끼며 드디어 뱀사골이다(13:40). 장장4시간을 걸어서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 배낭을 내려놓고는 뒤 처진 처의 배낭을 받아 들고 점심 식사를 하고자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그를 위해 할 일은
그의 어떤 어려움을 모두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싸늘한 날씨 연유인가. 요일의 연유, 계절 탓인가... 붐비지 않은 산장은 먼 저온 산꾼들의 모습과 요기를 채우고 체력을 다듬고 또 다른 길을 떠나려는 모습들이다.
“먹는 자 만이 갈 수 있다” - 8,000미터 고봉, 生死를 넘나드는 산머니 말
조금은 싸늘하지만 한쪽에 자리하고 준비한 밥과 씨주 한잔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또 출발이다.(14:10)
뱀사골 언덕을 7,8분 오르니 화개재, 2년전 이 화개재는 그냥 널 부러진 평지였는데 새로 단장되어 있었고 전망 대 까지 만들어져 있어 휴식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자 국립공원 관리자의 노력이 역력했다.
금번에도 오를 수 없는 반야봉을 바라만 본체 뒤로하고 우리는 연하천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저 반야봉을 오르리라 마음에 다짐을 하고..........
한 여름 우거진 모습과는 달리 잎 떨군 앙상한 나무, 그리고 화사한 날.. 온통 지리의 발가벗은 모습이 한눈에 들어와 차라리 황량함 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모습에 눈물이 날 정도다.
인간은 왜 ? 이 자연과 동화되지 못하고 보이지, 보여 주지도 않는 것일까 ??? 아는 자 만이 이길 수 있다지만 지는 방법은 왜 논하지 않으며 온통 이기는 법만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인 것일까! 살아 남기 위해 살기 위해 이기는 방법만이 최선이란 말인가 ! 인간의 존재는 무엇이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한 줌 자연 속에 묻혀 사라지는 것이 그 마지막 종지부 인것을.......
그 생각의 혼돈 속에 정신을 차리니 지지난해 비와 안개 속에 거닐었던 기억과는 달리 지리의 웅장함을 볼 수가 있는 오늘의 산행은 또 다른 지리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충분한 시간과 여유 ! 삶의 대화를 나누면서 차근차근 천왕을 향한 발걸음은 여념이 없다. 성수기 때와는 달리 붐비지 않는 종주 길은 너무도 한산해 적막감 마저 도는 듯 했고 이따금씩 오르고 내리며 만나는 산꾼들의 인사가 반가운 산행 ! 자연속으로 동화되어 영원히 주저앉고만 싶다
올해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인사 나누고 많은 사연을 담고 남기고 또 가지고 갔을 지리산 ! 가지만 앙상한 많은 나무들이 처량해 보이지만 인간에게 많은 것만을 주는 자연 , 자신을 태우며 세상을 밝히는 촛불의 의미와 자연을 부연해 본다. 그 자연의 윤회, 섭리 앞에 다시 한번 숙연해 지지만, 발아래 저 인간 동리에서는 지금도 악착같이 삶에 목숨을 걸며 뛰고 또 뛰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생활을 찾고자 숨쉬고, 숨기는 생활이 벌어지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자연을 잊어버리고는 서있을 수 없는 인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지만 내면 속에 있을 뿐이다. 본연의 삶,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일구어진 본래의 사람이기 때문이라 결론지어 보면서 잉태의 처음으로 돌아가길 기원해 본다.
얼마를 걸었는가. 또 얼마를 걸어야 하는가, 토끼봉(15:20)지났고 명선봉을 지나고 연하천 산장은 ? 지난 기억을 더듬지만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지난해 안개 속에 거닐었던 우중산행 이었기에. 연하천 이정표를 두고 계단에 잠시 쉬고 있는데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 한 분이 혼자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온다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예 ! 안녕하세요 ? 어디서 오셨어요? 힘들어 보여요!" 가벼운 쌕하나 매고는 걸음을 옮기는 아가씨는 인천 동암에서 왔고 설악산을 넘고 친구들과 혜어져 무작정 지리산 종주 계획에 밝을 옮겼다한다 아. 대단하다, 그 강단이. 등에 맨 쌕은 간편해 보였고, 마실것 먹을 것을 맨 배낭은 아닌 듯 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아가씨를 먼저 보내고 우리도 또 발을 옮겼다. 한30여분을 오르니 사람소리가 들린다 그래 연하천이다. 나무계단을 내려 쓰러진 집채만한 주목을 뒤로하니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연하천이다.(17:00)
어느새 날은 저녁 바람과 함께 싸늘해지고 먼저온 산꾼들은 취사장에 취사는 물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버너에 불을 지피고, 채우고,마시고 야단들이다.
난 예약확인을 하고 요금지불과 함께 취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사골국물에 떡국 으로 저녁을 떼우려고 준비를 했다. 동암 아가씨와 함께 나누고자 처에게 의향을 물어보라 했거늘 라면을 먹었다고 극구 사양을 한다. 먼저와 자리를 편 50중반의 어른들은 옆 산꾼들은 아랑곳 않고 벌써 얼큰히 취한 듯 담소가 이어졌고...이야기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또한 속속들이 도착한 동반 부부도 어김없이 지아비를 위한 부엌데기를 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길래 난 넌즈시 한마디 던진다. “여보! 당신도 앞으로는 취사를해 지아비 좀 챙겨 줘 !!!”
야외에서는 처에게 전혀 손을 대게 하지 않는 것이 처와 함께 살아오면서 몸에 베인 철칙이다. 모든 것을 주관해 대령하는 요리사 (?)의 역할로 처와 자식에게 대접을 하는 것이 내 야전의 일상이 된지 오래,
결혼 초에는 집안의 여자 일에 손을 대지 않았지만 맞벌이와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신도 알지 못할 언제부터인가 손을 대기 시작했고 어머님을 모시는 근 2년 전부터는 더더욱 자신의 손길이 빈번함을 스스로 느낀다. 설거지는 기본, 밥 짓고 상 차려 아이들 보내는 일등(!) 공존의 이유에 처는 말이 없을 뿐이다.
부업(뜨개질)한다고 날밤을 새우는 날이면 늦잠을 깨울세라 난 아침밥 짖고 아이들 챙기고 조용히 집을 빠져 나오기를 여러 번 눈먼 어머니 봉양에 묵묵한 처가 고마울 따름이다.
저녁 요기를 채운 산꾼들이 하나둘 산장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서 이야기 꽃이 피어났다. 오늘은 많지 않은 등산객으로 인하여 잠자리는 편하리라는 산지기의 말이다. 언제 나 비좁아 칼잠을 자야할 정도로 붐볐다는 날, 부부동반 가족이 우리를 포함하여 5가족에 10명, 50대 중반 6명, 그리고 젊은 친구 2명, 모두 20여명이다. 연하천 수용인원이 80명이고 보면 한량한 잠자리가 맞는 듯했다. 산장지기 그리고 50대 중년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더니만 끝이 없다..또한, 이목구비가 뚜렸하며 기른 수염까지도 멋지게 어울리는 호남형 노대장의 이어지는 이야기는 귀를 트게 하였고 단소까지 가지고 나와 불어주어 산을 찾은 이의 귀를 줄겁게 해준다..58년 개띠로 12년 동안 연하천을 지키고 있으며 “지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동물, 이곳에 살고 있는 동물”이며 K2와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올랐다는 박영석, 산역사를 창조했다는 허영호, 후배양성에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다는 곽영석...산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산행에 있어서의 좋은 말들을 들을 수 있었다. 철인경기를 준비중이라는 이야기까지도...........
이야기의 꽃 속에 뱀사골에서 늦게 출발한 여자 한 분이 있는데 아직 도착치 못해 연하에 잠자리 마련을 요구한다는 말, 본 사람 있느냐는 물음과 이미 어두운 시간에 도착시간이지났는데.걱정을하며 한분(산장에3분기거)이마중을 가야겠다한다(그 후 아가씨는 21시 30분쯤 도착하였음)
남녀가 따로 배정되어 자야하지만, 인원이 적은 관계로 동반부부의 배려에 우리는 2층 한쪽으로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였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 일행 중 밖에 나갔던 한 사람이 감탄을 한다, 하늘의 별이 쏟아진다고 ! 연하천, 별이 쏟아진다고,
시골 어릴적 보았던 별도, 산을 다니면서 그간 보았던 별도, 다 어디로 갔는지 진정 쏟아지는 별이다. 초롱초롱 솟아지는 별 ! 온통 하늘은 별의천지이다. 이리도 많은 것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하천 밤하늘의 별은 많다기 보다 쏟아 질 듯 장관을 이룬 자연의 초호화 별들의 쇼가 맞으리라. 별을 보고 들어오니,
노 대장에게 집에 아이들만 놓아두고 왔다는 중년 부부가 비상전화를 좀 하자고 애원이며, 노친네 두고 왔다고 또 한참을 실갱이다. 핸드폰이 걸리지 않기에. 우리도 두고온 두 자식 그리고 어머님의 식사로 가슴 조이지만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묵묵부답 할 수밖에 없다. 누가 가족걱정을 않으랴 만은 참으로 안타까운 광경이었다.
자기자식 귀하지 않은 사람 누가 있으며, 현 사회의 배려, 봉사, 희생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속에 자라는 어린이들을 과잉보호는 물론, 많은 기성세대들의 인간 미 없는 21세기가 된지 오래, 사뭇 서러워진다. 정녕! 산을 찾는 이라면 자연처럼 푸근하고 서로가 감싸 안는 자가 되기를 소망하지만 내 자신부터 그렇지 못한 현실에 죄책을 느끼며......
내일을 위한 산행에 당신에 손을 잡고 잠을 청한다... 푹 자고 싶은 심정으로 모든 것을 잊은 체(21:30)..........................
2003. 10. 19(일-맑음)
잠시 눈을 감았는데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03:00, 아니나 다를까 어제 21시 넘어 도착했던 처녀는 벌써 출행 준비를 하더니 자신이 덮었던 이부자리를 조용히 정리 터만 홀연히 산장 문을 나선다.
그리고 또 잠시..명성봉에서 보는 일출을 생각하고 눈을 뜨니 06:00! 카메라를 들고 산장을 나와 명선봉에 오르니 사뭇 날씨가 싸늘하다.
어둠이 가시면서 밝아오는 동해의 지리능선은 붉그레 붉은 빛을 바라며 동쪽 하늘 이 물들기 시작터니 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지리의 어둠 ! 적막속에 밝아오는 그 드넓은 지리의 능선과 돋는 해로 인하여 온 세상이 밝아오고 있는 순간 잠시 묵상에 잠긴다
“저 여짖 뭇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고 사람 사는 곳에 사람으로 남으려 양보하고 배려하려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눈먼어머님을 모시고 있지만 많은 것 해드리지 못하는 것 용서하시고 종주 끝까지 아니, 인생 끝까지 험한 길 되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이글거리며 붉게 떠오른 태양과 함께 이 지리에서 자신까지도 소멸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순간,빠른 시간 내 떠오른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으리 만치 눈이 부시다..
해돋이를 뒤로하고 연하천에 이르니 천왕 쪽에서 야간 산행을 한 듯 무리진 산악회원 100여명은 아침준비에 온통 시장 바닥보다 더하고 연하천은 자리할 곳이 없다.
처를 깨워 나도아침 준비차 밥과 찌개준비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배려가 아쉬운 듯 음식물, 머리감기, 치약에 양치등...????????????
참으로 안타까웠다.. 토끼봉 쪽으로 향한 회원들 -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연하천은 어느새 정적이 흐른다..
아침요기를 끝내고 또 다시 오늘의 진군을 위한 옷깃을 여미고 노 대장께 작별 인사를 하고 세석을 향한 걸음을 재촉한다.(09:15) 철조망으로 가려진 연하 주목보호군락을 지나 형제봉을 지나는 동안 맑게 개인 날씨는 저만큼 손에 잡힐 듯 천왕은 물론 세석대피소, 장터목대피소까지 눈에 들어온다.. 눈에 보이고 발에 밟힐 듯하지만 이틀을 더 걸어야 한다. 형제봉을 지나 벽소령에 도착하니 (11:20)그늘에 숨고 싶을 만큼 볕이 따갑다...
오늘 어렵지 않게 도착한 벽소령이지만 2001년 여름! 다리를 질질끌며 기어오듯 도착했던 아픈 기억에 새삼 감회가 새롭다...잠시 휴식을 취하고 또 출발이다.(11:45) 저 멀리 남쪽으로 대성리 마을이 눈앞에 들어왔다. 샘을 지나(12:45) 덕평봉(13:30)에 펼쳐진 천왕을 보면서 중식을 하고자 자리를 폈다. 아침에 싼 밥과 씨주 한잔으로 요기를 하고 출발 칠선봉을 지나 세석에 다다르니 장마비에 힙쓸려간 나무계단이 엉망이 되어있었고 지지난해 보았던 등산로 자연박물관(야생화 사진)은 퇴색해 있어 황량함과 함께 보기 쓸쓸했다.
세석 대피소 !
세석에 도착하니 15:30분, 예상 시간과는 달리 일찍 도착하였기에 쉬느냐, 장터목까지 가느냐에 고민이 선다. 잠시 생각 끝에 무리한 산행보다 푹쉬고 내일을 계획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자리를 폈다. 저녁을 먹고자 밥을 하고 소시지 김치찌개와 마지막 남은 한 병의 씨주를... 저녁 만찬을 먹고있자니 10여명 남자들의 무리가 옆에 자리를 한다. 50중반의 한분은 발목을 접질렀는지 부축을 받아와 뜨거운 물에 찜질을 시작했고 한쪽에서는 상추쌈에 고기를 구워서 먹는데 산에서 느끼는 고기내음이 너무도 입안을 달군다. 육류를 좋아하는 처는 연신 힐끔힐끔 쳐다보며 침을 삼키는 듯했다. “여보 ! 다음에 준비해올게 오늘은 참아라” 남은 씨주를 다먹고는 모자른 듯 했는데 옆에 자리한 찜질하고 계신 아저씨가 컵 하나가득 씨주를 따라 건넨다. 아, 참으로 한 잔의 알콜이 모자라던 차 더 없는 꿀맛 이였다.
오가며 만나고 나누고 지키는 산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맛 !!! 그래, 그래서 산을 찾는가 보다.
우리는 왜 산을 찾는가 ?
범인이 일반적으로 하루 8시간 이상 산길을 3일 걸어야 천왕에 도착하는 종주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엇이란 말인가 ? 오가고 지나며 사람을 만나고 산장에서 사는 이야기의 귀동양을 듣고 자신을 뒤돌아보며 인생을 계획하고 바로 세우고자 채찍하고 힘겹게 오르고 흠뻑 젖은 땀내음을 맞으며 계절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자연의 아름다운경관에 흡입되어 삶의 욕심을 떨쳐버리고 싶은 심정 !
그래 사람은 왜 산에 오르는가? 라는 질문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힘겨운 고행이지만 끝없이 자신을 찾아내려 산을 대하며 여행의 의미를 결부 지어 본다.
저만큼 촛대봉 주위로 펼쳐진 평전에 지는 석양빛을 보면서 예약하여 잡은 산장의 한곳에 지친 육신을 펴고 하루를 접는다.
3/1도 채 차지 않은 이틀째 산장인 세석에서 밤을(22:00). 피곤에 지친 산꾼들은 벌써 산장이 떠나라 코를 골았지만, 난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옆 한사람은 자리가 너무 좁다고 불만과 언성을 높이는 광경에 황당했다, 산장의 자리는 모포의 폭이 아닌, 어깨폭으로 규정을 하는데 자신의 안방도 아니고 자연을 즐기며 피곤에 지친 육신을 잠재울 수 있도록 배려한 산속 산장의 진정한 고마움도 모른 체 불만과 투정이라니 안타까웠다. 산을 가꾸는 이가 있기에 쉴 수 있고 지친 몸을 잠재울 수 있다는사실도 모른 채...
일상을 잊기 위해 찾은 길이었으나 낮 동안의 그 피로함도 잊은체 많은 생각과 상념이 떠오른다(직장, 가정, 가족, 미래), 그래서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말했던가 ? !
2003. 10. 20(월-맑음)
엎치락뒤치락, 그 끝에 눈을 뜨니 03시다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아침 준비차 식당에 들르니 탁자 위에서 한 쌍의 연인이 침낭 속에 잠을 자고 있지 않은가 ! 늦게 도착한 일행인가 보다. 그들을 깨울까하는 졸임에 조심조심 소리를 죽이고 샘터에서 물을 떠와 아침준비를 하노라니 한 팀씩 식당에 들어와 요기를 채우려 하고 떠날 준비에 분주하다. 일행중 삼겹살 구워 먹던 일행도 눈에 들어왔다.
나 또한 아침 준비를 완료한 뒤 여자 방에 들어가 처를 깨워 “먹어야 갈 수 있다”는 진리에 함께 조식을 마치고 천왕을 향한 3일째 걸음을 시작하니 05:15 !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세석을 뒤로하고 손전등을 의지한 채 촛대봉을 향하는데 왜 이리도 발이 무겁고 버거운지 ! 나도 처도 힘겹게 촛대봉에 오르니 5:35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촛대봉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일출을 연하봉에서 보려고 마음을 굳히니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걷기를 시작했고 굴곡과 돌 바위들 - 2년전의 기억을 더듬을 수도 없이 힘겨운 길이 지속되었다. 한시간을 걸으니 손전등에 의지치 않을 정도로 날은 밝아 왔다. 06:30분이 지나면서 동녘 하늘이 붉은 피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카메라 다리를 펼쳐 자리를 잡는다. 피 빛으로 변해 가는 바다와 하늘의 수평선을 30여분을 기다렸지만 구름에 가린 태양은 볼 수가 없다,보일 듯 말듯한 붉은 향연에 족하고는 자리를 옮겨 또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무더기 구름으로 가려진 동쪽 바다를 아쉬워하며 아니, 해돋이를 볼 수 없는 날씨를 원망하면서(07:00)...
오늘은 큰놈이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 할머니를 챙길 터이니 다녀오시란 말에 대견했지만 마음이 쓰리다.
연하봉에 올라 핸드폰을 누르니 다행히도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핸드폰의 위력!
장남아, 고맙다.수학여행 떠나는 것 스스로 챙기고 할머니 식사, 그 마음이 더 고맙구나.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에 우산을 준비해가라는 말과 함께 통화를 끝내니 한결 마음이 놓였고 가벼운 걸음으로 천왕을 향할 수 있었다.
연하봉에서 바라본 이틀동안 걸어온 지리의 맥은 너무도 장구했고 구름에 가린 능선은 어머니의 품!그 포근함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밀려오는 구름의 향연. 잠시 구름과 어우러진 지리, 그 지리를 두 눈과 카메라에 담고 발길을 옮긴다.
시들어가는갈대,잎떨군 나뭇가지, 천년 만년의주목그래장터목이다.(09:00)
한여름 날 붐비던 장터목은 덩그러니 산장만 보이고 한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도착하였을 때는 관리소 직원 한 분이 널부러져 분류되지 않은 쓰레기를 날씨도 찬데 재분류하고 있었다. 쓰레기 분류대가 있는데 왜? 짐져 가져가지 않고 버릴 수 있도록 배려도 큰 것을 또 손을 가게 하는 것인가 안타까운 현실,
세 번째 접하는 장터목이지만, 지난여름 북적대던 그 모습은 어디 가고 한적 하다기 보다 삭막하고 썰렁한 10월의 장터로 다가왔다.
앞으로천왕까지는1시간,2001년8월,해돋이를 보고자 새벽부터 서둘렀지만 내리는 비에 지친 체력에 초주검이 되어 빗길을 기어가다시피 오르던 이 길이었던가 !!
제석봉에서 바라본 지리의 하얀 구름은 능선능선에 멈추었다 또 흐르며 떠가는 자연의 아름다운 한폭의 수채화!정녕,지리에서만 볼 수 있는 구름의 향연....
제석봉을 오르는데 자식들만 놓고 왔다 연하에서 비상전화 요구하던 부부는 남자만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듯 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버거운 발걸음으로 하산을 하고 있었다(연하천에서부터 지켜보았는데 처가 무척 힘들어했음)
2001년 8월 !
큰놈은 뒤돌아 볼 것 도 없이 안개 속을 달려갔었고, 비틀거리는 엄마를 보고는 작은놈 왈!“힘내라!”용기북돋아주며재촉했던2001년8월의 제석봉 길 길 길!!!
가자! 가자! 고지가 바로 저긴데!!.. 채 1시간도 남지 않은 길을 예서 포길 할 수는 없다하며 빗속에 기어온 2박3일의 그 마지막 여정이 주마등처럼 눈에 그려진다. 그 길, 그 길, 이길이... 처와 난 오늘 또 이 제석봉 길에 서있는 것이다.
지금은 여유롭다, 처의 걸음걸이도 나도. 그래 산은 여유롭게 다녀야 그 진미를 느낄 수가 있다..
구름에 구름을 타고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을 지나 천왕이 가까워 올수록 기온의 하강을 깊게 느껴면서 거센 바람과 함께 육신이 비틀거린다.
돌 바위를 지나 드디어 천왕에 다다르기 전 ! 처의 손을 잡고는 한발, 한발 다 가가 천왕의 돌 팻말을 향해가 함께 찜을 한다., 드디어 두 번째 천왕에 처와 함께 자신의 육신을 옮겨 놓았다.
천왕, 천왕이여 ! 오, 천왕이여...
내 가 너를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아느냐. 또 얼마나 고심하고 두려워하며 이 길을 걸어 왔는지를...
오. 하늘이여, 땅이여, 그리고, 천왕, 천왕이여 천왕 !
2박3일의 여정이 뇌리를 스치며 눈을 감는다, 처에게 보일 수 없는 눈물은 또 다시 내 자신을 가장의 위치에! 불혹의 위치에! 다시 서게하는 순간, 알면서도 말할 수 없고 보이면서도 보인다 말 할 수 없는 시간과 세월 그리고 불혹 !!!!!
천왕에 선 우리 부부는 또 다른 삶의 의미를 부여받고 일상으로 돌아가 사람의 사람으로 살자고......
“여보 ! 그래 어머님 모시느라 고생많지 ! 시골도 골치 아프고, 못난 나 만나 풍요롭지 못해 고생만 하고... 어찌 말로 다......”
먼저 도착해서 사진을 찍고 내려가는 일행 중 한 분이 우리를 보고는 한마디 던진다.“당신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오,부부가 천왕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래.. 행복한 사람.. 난 행복한 사람이다.
어머니계시고,두 아들이 잘 자라고 있는데 그리고 천왕까지 함께 한 건강한 처가 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반야봉, 중산, 백무, 중봉 등 사방으로 사진을 담으며 구름과 동화되었고 눈과 마음으로 지리의 전부를 삼켜버렸다.
대청을 7번 올랐으니 천왕은 최소 3번은 와야 느끼는 마음이 새로우리라 생각하고는 다시 하산 길에 오른다. 온가족 2번째 종주를 뇌리에 그리면서...
당초 칠선 폭포 쪽으로 하산하려 했으나 통제기간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장터목에서 중산리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1시간을 걸어 장터에 도착하여 요기를 하려 했으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걸음을 재촉한다. 하산! 앞으로 3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잎 떨군 가을의 마지막 단풍을 보면서 망 바위를 지나 무릎의 통증이 오기시작 ! 오, 7-80도의 급경사에 돌계단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처도 버거운지 말없이 앞만 보고 걸으면서 이길로 올라왔더라면 초죽음이었으리라 말을 할뿐이다. 급경사가 1시간 이상 지속되면서 다리의 통증은 더해갔다. 16년 산행길 내리는 산행길이 이리도 버거운 것은 또 처음 이었으리라.
'95년 8월 ! 7살 이였던 큰놈과 한번 오른 길인데도 도무지 옛 기억을 끌어낼 수 가 없다. 이토록 험하고 힘들었던 길이였나!
밀려오는 통증에 생각 없이 걷고 걸어 참샘을 지나 백무동에 도착하니 13:30 ! 처와 난 드디어 2박3일 지리종주의 끝을 접고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백무의 한 식당에 자리하고 도토리묵과 막걸리를 주문해 건배를 했다. 탈없이 지나온 종주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살며, 사람 속에 사람으로 남게 지켜달라고”
“여보 ! 수고 많이 했다. 어렵지만 더 굳건히, 더 사랑하면서 살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산 앞에서의 인간의 욕심은 무용지물이며 자연은 욕심을 가진 인간을 용납하지 않는다.
◆등반은인간의의지만으로 될 일이 아니며 산을 오르려면 겸손해야한다.
◆ 첫사랑의 실패처럼 혹독한 시련이자 집요한 미련이었다.
◆ 짐승처럼 울부짖고 쓰러질 때까지 술을 마셨다..
◆소진한 기운들이 길 바닥에 버려진 때 삶의 희망은 좀처럼 만져지지 않고죽음의 공포에 질려 울음조차 나오질 않았다.
◆ 산을 내려와 산을 보면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산을 오르면 그곳엔산이 없다.
◆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으며 변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 !
◆ 남에게 보이거나 경쟁을 하지 않음으로써 등반은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한다.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죽어 가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러나 우린 매일 산다고 하지 죽은 다고 말하지 않는다.
◆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
-첫번째지리종주기는“오용민지리산포탈”싸이트산행기12번으로올라있습니다. (7살 ! 그리고 지리산 종주기)로
◎ 부족하지만 끝까지 읽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2003.12월 仁川 鉉 올림)
첫댓글 산행 하면서 젤 부러운 사람이 혼자 걷는 사람과 부부 등반객이던데...참 부럽습니다...산장에서의 잠자리는 모포의 폭이 아니라 어깨 폭이란 말도 공감이 되구요...잘 읽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아름다운부부감탄하고요행복하세요.
가슴 찡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두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시길 빌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만나서 애기 나무고 싶은 너무 멋진 분이 십니다.
이름난 작가들의 그 어떤 에세이 보다도 좋은 글입니다...두분 내내 행복하세요
감동으로 와 닿습니다. 부모님,처와자식... 잘 읽고 저두 배우겠습니다.
산행 후기를 읽는 동안 내내 두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앞에 어련 거렸읍니다..........'넘 즐거운 산행을 하신것 같아 부렵습니다...늘 행복하세요.....^!~
잘 보았습니다. ^-^ 건강하게, 온 가족 종주 또 한 번 하셔요! +_=
부부 가 함께한 감동적인 산행기 내 마음을 찐한 감동으로 다가 옴니다... 나역시 04년 10월 16일부터 우리부부 가 함께 종주를 했지요,..앞으로도 두분 행복하시길 빌며, 불편하신 어머님 잘모시길 빕니다 언제산 에서 한번 빌수잇을련지요?????/
감사하게 읽었습니다...산행기를 쓰시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네요...오래도록 건강하세요!^^
저도 와이프와 산행을 자주하는데 ... 부럽네요 ^^
한 번도 가보지 못햇지만 님의 글을 대신 접하니 가본듯 선 합니다..이리도 멋지게 산행기를 쓰시는 당신은 분명 지리의 참 주인인듯 합니다..언제고 스치듯 지나면..알아뵙지 못해도..산에서의 인연을 우리 부부도 님처럼 아름답게 그리겟습니다.아름다운 불혹..당신만큼 저도 30을 아름답게 채우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