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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다녀왔어요. 결혼 20주년 기념일에 맞춰서 가족끼리 다녀온 여행이었는데요. 20년 만에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화목을 다지는데 좋은 시간이 되었어요.
백록담이에요.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서 다음날은 한라산 등반을 했어요. 성판악에서 시작해서 다시 성판악으로 내려왔는데요, 8시간 넘게 산을 타다보니 어찌나 다리가 아픈지 죽는 줄 았았다니까요.^^ 성산항으로 와서 우도로 가는 마지막 배를 타기 위해 서둘렀거든요. 얼른 우도에 가서 꽃잎 바다님을 만나고 싶어 마음이 바빴어요.
성산항에서 출발하기 전에 ㅤㄲㅗㅍ잎 바다 님에게 전화를 하니, 아니, 이런! 전화번호를 틀리게 저장해 놓은 거예요~~ 그리하여 우리의 해결사 짱님에게 물어서 전화했지요. 생각치도 못한 전화에 화들짝 놀란 우리의 꽃잎 바다님! 즉시 털털거리는 트럭을 끌고 우도항까지 마중 나왔어요.
아, 저기... 마주 보이는 저 섬이 성산 일출봉이에요. 어디를 가도 유채꽃이 만발해 있었어요. 아름다운 섬, 우도.
꽃잎바다 님은 우리를 데리고 마을 깊숙이 들어갔어요. 다음 날 있을 결혼식 전야에 마을 사람을 초대해 잔치를 베풀었는데 거기를 간다고 했어요. 그곳에서 신랑과 절친한 친구였던 남편이 '부신랑' 역할을 하고 있었거든요. 37살의 노총각과 23살의 베트남 처녀의 결혼식이었는데요, 한복을 다소곳하게 차려입은 베트남 처녀는 정말 예뻤어요.
신부 식구들은 하나도 없고 신랑 가족들만 있는 자리였지만, 젊고 이쁜 데다 착하게 생긴 신부를 맞아들이게 된 신랑은 어찌나 좋은지 계속 싱글벙글. 신부의 손을 잡고 부지런히 가족들에게 인사시키러 다니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어요.
마당 한쪽 차일 속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윳을 놀았고요, 여기저기 방에서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왁자한 소리가 마을을 들썩이게 했어요. 여느 시골과 다르게 젊은 사람이 참 많구나, 했더니 다들 제주에서 어디서 친구들 결혼이라고 찾아온 거래요. 여기도 젊은 사람들 많지 않기는 마찬가지더군요. 횟집이니 펜션은 주로 외지인들이 들어와 운영하고 있었고요, 현지인들은 주로 고기잡이에 농사를 짓고 있었어요. 어디를 가나 해풍을 받고 푸르게 머리칼을 일렁이는 마늘 밭이 지천이더라고요.
우리는 저녁 잔치가 끝나고 마음씨 따뜻한 현지 사람들의 초대로 2차를 갔어요.
아, 그랬더니 금방 잡아온 소라며, 고동이며, 미역과 문어, 또 오분작(전복새끼) 등등을 푸짐하게 차려내놓지 않겠어요? 얼마나 싱싱한지 팔딱팔딱 뛰다가 금방 바다로 튀어나가게 생겼더라고요. 함덕에서 왔다는 부부와 서울에서 내려와 현지인보다 더 웅숭깊은 현지인이 된 아줌마,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들인 우도 원주민으로 예술적 끼가 만땅으로 뭉쳐진 꽃잎바다 님 부부랑 어우러져 술잔이 거푸러져 넘어가는 동안 밤은 점점 깊어졌지요.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내일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어서야 했어요.
아침이 되었어요. 늦게 잤는데도 맑은 공기와 풍경 좋은 전망에 저절로 눈이 떠졌어요. 바다에 이끌리듯 숙소 밖으로 나가 산호사 해변을 걸었어요. 그러다가 바위에 한참 동안 앉아 있기도 했고요. 바위에 찰랑거리는 물결 소리가 어찌나 고요하고 적막한지 시간이 그대로 멈추는 듯 했어요.
해변에서 한참을 정신 놓고 앉아 있으려니 결혼식 생각이 드는 거 있죠? 부랴부랴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결혼식장에 찾아갔지요. 낮은 돌담을 끼고 골목골목을 돌다 찾아간 곳이 마을 주민자치센터였어요. 어제 저녁 마을 입구에 걸어놓았던 펼침막을 그대로 옮겨 놓아 잔치 분위기를 돋워 놓았어요.
-> 사진에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이 우리의 호프, 꽃잎바다 님의 든든한 매니저, 우도의 걸출한 인물인 편성운 님.^^
의자 몇 개 소박하게 놓인 식장 안쪽에는 바닷바람에 얼굴이 거멓게 그을은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들기 시작했어요. 땀내와 바람내, 햇볕 아래에서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 위로 환한 웃음들이 가득했어요. 모두모두 축하해주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어요.
내내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더욱 예뻤던 베트남 신부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자 불현듯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졌어요. 힘껏 박수를 치며 혼자 중얼거렸지요. '어떤 어려움도 다 이기고 잘 살기를... 너의 증인이 되었으므로... 마음을 다하여 행복을 기원하리라....'
지난 밤, 제 아이의 대금 연주를 들은 꽃잎 바다 님 부부가 결혼식 축하 의미로 대금 연주를 해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의에 졸지에 외지에서 구경온 처지에 제 아이가 연주를 하게 됐어요. 분위기를 엄숙하게 잡을 필요도 없이분위기를 띄워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골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곡을 생각하다가 축하곡으로 <진도아리랑>을 연주했어요. 사람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분위기가 좋았어요.
결혼식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천천히 바닷가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우도항으로 나왔어요. 우도항에는 포구의 비린내 대신 유채꽃 향기가 알맞게 불어오는 훈풍 속에 가득 떠다녔어요. 헤어지려는 시간이 되자, 아름다운 우도, 정겨운 사람들을 또 언제 만나나 싶었는데요, 털털거리다 시동이 자주 꺼져버리는 트럭을 타고 내내 우도 전역을 돌아다녔던 터라 이제 돌아가려고 하니 트럭마저 정겹더라니까요.
포구에서 손을 흔드는 꽃잎 바다 님 부부의 모습을 뒤로 하고 우리는 우도를 떠나왔어요. 성산항에서 우도가는 막배를 타기 위해 이른 아침에 일어나 다녀왔던 한라산 백록담의 고행과 빼어난 경치만큼이나 아름답고 따뜻한 우도 사람들과의 추억은 결혼 20주년의 의미를 더욱 뜻깊게 해주었어요.
무엇보다도 친근하고 따뜻하게 환대해주시고 아름다운 추억 만들어주신
꽃잎 바다 님 부부에게 진짜 진짜 감사드려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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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금 연주 소리가 제법일세. 카페에서의 인연의 이어짐이 이렇게도 풀리는구나. 20주년 행복한 기념이 되었겠다.
글을 읽노라니 그리고 연주를 들으니 눈물이 나네요 ~~ 정직한 사람들과의 만남 ~~! 그리고 자연~
절묘한 타이밍인연에 대한 숭고함을 느낍니다 추억에 동참하게 해주어 고마워요
직녀 꽃잎바다 모두모두 반가워
그저 흐믓허구... 정겹다 못해 뭉클하네요..참 멋진 추억되겠네요..
행복함이 넘 넘치는 분위기 ~~~추카 추카
대금잽이가 훌쩍 큰 느낌일세~몸도 대금가락도..멋진 추억 부러워~ㅎㅎ
좋으셨겠어요 ...사진속의 이쁜 신부 부디 행복하길 빌어봅니다
정겹고 이쁜 모습들... '행복'의 모델이네요.
기억에 남는 시간이겠군..
같은 여행 코스도 작가님의 후기는 정말 싱싱 생생 이네요.... 어쩜 오래 기억될수 있도록 결혼식 참여까지도 추억거리 마니 만드시길
읽고 있으니 그떄를 떠올리며 나도모르게 웃음이...ㅎㅎㅎ.베트남 신부는 요즘도 매일 동장님,선장님,마을 어르신들께 불려다녀요.^^
인연은 도처에 있으니.. 갈곳은 많고 인생은 짧다. ^^
다시 보니 벌써 추억이 되었는지 그리워지려고 해요...ㅠㅠ 꽃과 바람과 피도와 사람들... 모두.
유채,바다,대금연주,결혼식....모두모두 즐겁네요~~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