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는 무고한 전쟁 사상자가 수천 명씩 쌓여가고 이곳에서는 역병 확진자가 수십만 명 씩 늘어가는데 선과 악 , 위선과 위악이 뒤엉킨 혀와 혀가 날마다 더 첨예하고 더 위태롭게 부딪치는 연무 가득한 겨울 끝자락에 서서 끝내 가지 않는 것들과 좀체 오지 않는 것들을 무뎌질 대로 무뎌지고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을 그리고 가장 크고 깊은 슬픔을 추스른다
아들의 시신을 수습한 먼저 죽지 못한 아비가 참척의 슬픔을 추스르며 세웠다는 청도 어느 국도변 길섶에 없는 듯 무심하게 서 있다는 도사비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의 다른 말은 끝내 떨칠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죽을 때까지 삭일 수 없는 고통의 다른 말은 죽어서도 지울 수 없는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슬픔과 그리움 , 고통과 사랑이 뒤섞여 펑 - 펑 - 쏟아지는 봄눈을 맞으며 한 걸음은 슬픔이고 다음 걸음은 그리움이고 그 다음 걸음은 고통이고 그 다음다음 걸음은 사랑이고 그리고 그 다음 걸음은 이내 스러지지만 절대로 녹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봄눈을 밟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