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새 사령탑 양상문 감독이 2008년 LG 투수코치 시절 불펜투구를 마친 심수창(현 롯데)의 머리에 얼음주머니를 대며 열을 식혀주고 있는 장면
LG 제18대 감독이 선임됐다. 주인공은 양상문(53) 전 롯데 감독이다.
LG는 5월 11일 목동 넥센전이 끝난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김기태 전 감독이 중도 사퇴하고, 공석이던 사령탑에 양상문 전 롯데 감독을 선임했다”며 “계약기간은 3년 6개월로, 계약금과 연봉 포함 총 13억 5천만 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LG의 새 감독 선임 방향 세 가지
2013년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 투수코치였던 양 감독(사진 왼쪽부터)과 박희수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
전신인 MBC 시절부터 올 시즌까지 LG는 총 9번의 감독 대행을 경험했다. 이 가운데 감독 대행이 정식 감독에 오른 건 2번이었다. 1996년 7월 24일 이광환 감독의 시즌 중 퇴진으로 감독 대행을 맡았다가 잔여 시즌을 치른 뒤 다음 해인 1997년 정식 감독에 취임한 천보성 감독과 2001년 5월 16일부터 이광은 감독을 대신해 감독 대행을 수행하다가 2002년부터 LG를 이끈 김성근(현 원더스) 감독이 주인공이었다.
두 감독을 제외한 다른 감독 대행은 ‘대행’ 딱지를 떼지 못한 채 후임 정식 감독들에게 팀 운영권을 넘겨줬다.
4월 23일 김기태 감독이 LG 사령탑에서 중도사퇴한 뒤 야구계는 후임 감독 선임을 두고 이런저런 전망을 내놓았다. 먼저 조계현 감독 대행 체재 유지였다. 일부 야구인은 “아직 시즌 중인 만큼 외부에서 새 감독을 영입하긴 어렵지 않겠느냐”며 “중도 사퇴한 김 감독을 대신해 팀을 잘 아는 조 감독 대행이 정규 시즌 끝까지 LG를 이끌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그러나 많은 야구인은 “아직 시즌 초반이고, LG 전력을 감안할 때 충분히 반등 여지가 있는 만큼 새 감독을 선임해 다시 4강권에 도전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LG가 외부 야구인 가운데 최적임자를 선택해 새 감독에 앉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구계의 예상이 분분한 가운데 LG는 전임 김 감독에 대한 미련의 끈을 놓지 못했다. 김 감독이 감독실의 짐을 정리하고 떠나는 순간까지 구단 수뇌부는 “마지막까지 김 감독을 설득해보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김 감독이 5월 5일 가족이 있는 미국 아이오와로 떠나며 LG는 김 감독 설득을 포기하고, 새 감독 선임으로 방향을 틀었다. LG 구단 관계자는 “지난해 팀을 정규 시즌 2위까지 올린 김 감독을 이렇게 떠나보내는 건 예의인 것 같지 않아 끝까지 김 감독을 잡으려 노력했지만, 김 감독의 의지가 원체 확고해 사퇴 의지를 돌리지 못했다”며 “그날 이후 LG 사령탑을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밝혔다.
LG는 아직 정규 시즌 초반이라는 점과 팀이 객관적 전력보단 전력 외적 이유로 하락세를 타고 있다는 분석 그리고 팀을 잘 추스르면 다시 정상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는 희망을 토대로 새 감독 선임의 구체적 조건을 세가지로 정리했다.
LG 관계자는 그 세 가지 조건을 “경험 많은 지도자, 우리 팀을 잘 아는 지도자, 합리적으로 팀을 지휘할 지도자였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전임 감독이 중도 사퇴하며 팀 분위기가 어수선한 게 사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위기 극복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베테랑 지도자를 모신다면 LG를 잘 아는 분이 더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만약 LG를 잘 모르는 분이 온다면 팀 색깔과 선수들을 파악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리리라 예상했다. 무엇보다 현시점에선 어수선한 팀을 합리적으로 이끌 지도자가 절실하다고 믿었다. 팀의 장·단점을 냉철하게 파악하고서 합리적 리더십으로 LG를 이끌 지도자를 모시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봤다.”
이 관계자는 “조계현 감독대행 체제의 유지도 고려했지만, 지나치게 조 대행에게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 출발을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며 “위기의 순간에 팀을 잘 이끌어준 조 대행에게 무척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LG의 세 가지 비전에 충실했던 양상문 신임 LG 감독
LG 투수코치 시절의 양 감독
LG는 새 감독 선임으로 가닥을 잡고서 감독 후보군을 정한 뒤 후보들을 면밀하게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LG 관계자는 “우리가 모시고 싶어도 감독 후보께서 ‘싫다’고 하실 수 있는 문제다. 여기다 생각지도 못한 루머가 나올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새 감독 선임에 접근했다”며 “결국 5월 10일 ‘경험 많은 지도자, 우리 팀을 잘 아는 지도자, 합리적으로 팀을 지휘할 지도자’라는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좋은 분을 새감독으로 모시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좋은 분’이 바로 양상문 감독이었다. 일단 양 감독은 ‘경험 많은 지도자’란 점에서 LG의 조건을 충족했다. 양 감독은 1993년 태평양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뒤 1994년부터 롯데에서 투수코치로 활약했다.
이해부터 지난해까지 20년 동안 양 감독이 프로야구 현장을 떠난 건 1998·2006·2011~2013년 총 5년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15년은 투수코치·2군 감독으로 13년, 1군 감독으로 2년간 일했다. 특히나 양 감독은 2004년부터 2005년까지 2년간 롯데 사령탑을 맡으며 감독직을 경험했다. 따지고 보면 현장을 떠났던 5년 동안에도 양 감독은 MBC SPORTS+해설위원으로 일하며 현장과 호흡을 함께했고, 각종 국제대회에서 대표팀 투수코치를 맡아 선수들을 지도해왔다. 실질적으로 프로 현장을 떠난 건 1998년 한해로, 이때도 양 감독은 중앙대에서 인스트럭터로 활약하며 후진양성에 애썼다.
‘LG를 잘 아는 지도자’란 점에서도 양 감독은 다른 감독 후보군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양 감독은 1985년 롯데에 입단한 뒤 청보(1987), 태평양(1988~1993)에서 선수로 뛰었다. 현역 시절엔 MBC, LG 유니폼을 입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지도자 땐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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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감독은 2002년부터 2003년까지 LG 투수코치를 맡았고,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다시 한 번 LG에서 투수코치로 일했다. 2000년대 들어 4년간 LG 투수코치로 일한 경험이 있어선지 양 감독은 해설위원을 하면서도 누구보다 LG 팀 사정에 밝았고, 많은 LG 선수·코치와 깊은 유대 관계를 이어왔다.
2005년 롯데 사령탑 당시 삼성 사령탑이던 선동열(현 KIA, 사진 오른쪽부터)감독과 환담을 나누는 양 감독
‘합리적인 리더십’에서도 양 감독은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역 시절 바쁜 시간을 쪼개 석사학위를 취득했던 양 감독은 코치·감독 시절 ‘학습량이 많은 지도자’, ‘강력한 카리스마 대신 부드럽고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이끈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2004년 롯데에서 양 감독의 참모로 일했던 모 야구인은 “그해 양 감독이 이대호, 강민호, 장원준, 박기혁 등 젊은 선수들을 파격적으로 기용할 때 롯데 내부에서 ‘검증되지 않은 젊은 선수들을 너무 성급하게 기용하는 게 아니냐’는 반대여론이 있었다. 그러나 양 감독은 구단과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쟤들이 차후 롯데의 기둥이 될 선수들’이라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질테니 한번 지켜보시라’는 말로 구단 수뇌부를 설득했다”며 “다른 선수 기용에서도 감독 권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걸 지양하고, 선수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준 뒤 선수 스스로 한계를 절감하고, 극복하도록 하는 합리적 팀 운영을 했다”고 회상했다.
양 감독은 현역 시절부터 53살인 지금까지 영어로 된 야구원서를 들고 다니며 짬이 날 때마다 읽고, 연구하길 반복하고 있다. “나부터 학습하고, 공부해야 더 좋은 선수, 더 좋은 지도자, 더 좋은 해설위원이 된다”는 젊은 시절의 믿음을 50대가 넘어서도 유지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양상문 신임 감독 “LG 감독 제안, 고심 끝에 받아들였다.”
양상문 LG 신임감독은 "잔여 시즌 동안 4강 진출을 위해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양 감독은 “LG로부터 감독 제안을 받고 한참을 고민했다”고 털어놓으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올해 MBC SPORTS+와 계약기간이 남았다는 점, ‘내가 과연 명문구단 LG 감독으로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 무엇보다 현 LG 감독직이 후배 김기태 감독이 중도 사퇴한 자리라는 점이 마음에 걸려 처음엔 감독 제의를 고사하려 했다. 하지만, LG에서 ‘침체한 LG를 되살려주는 길이야말로 후배 감독의 명예를 되살려주는 최선의 방법’이라 설득하며 계속 감독 제안을 해주셨다. 결국 어제(10일) 고심 끝에 LG 제안을 받아들이며 현장 복귀를 결심했다.”
LG는 13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양상문 신임 감독의 향후 계획과 팀 운영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새로운 사령탑을 맞이한 LG가 다시 부흥할 수 있을지 야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