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靈知), 진지(眞知), 망지(妄知)
송담 큰스님
우리가 안다고 허는 것은 부처님.. 깨달은 부처님의 경계에도 알 지(知)자 안다고 헐 수가 있고 이치를 깨달은 선지식도 안다고 헐 수가 있고,
우리 범부의 중생의 번뇌망념으로 아는 것도 그것도 일종의 안다고 헐 수가 있는데, 부처님이 아시는 것은 영지(靈知)라 그러거든.
영지(靈知) 신령스럽게 아는 거. 영지는 중생의 분별로써는 그 영지의 경계를 뭐라고 짐작을 헐 수가 없는 것이여.
부처님 경지에 가 봐야 부처님의 그 영지의 뜻을 알 수가 있는 것이지. 그 경계에 이르지 못하고서는 영지의 그 경계를 짐작을 헐 수가 없는 것이거든.
부처님 경지는 아무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되 그 자취가 없는 것이여. 자취가 없이 보시기 때문에 그거는 영지(靈知)라 그러거든.
도인이 깨달은 경지는 어떠냐? 그것은 진지(眞知)라. 참 진(眞)자 진지(眞知)라. 그렇게 표현을 헐 수가 있는데, 그 진지(眞知)도 공안을 타파해서 남이 없는 도리, 무생(無生)의 법을 보아야 그래야 그 진지(眞知)의 뜻을 알 수가 있는 것이여.
중생이 번뇌망상으로 따져서 짐작하고 느끼고 또 그것을 설명해 줄 수도 있고 설명하는 것을 듣고 터득을 하고 이러헌 것은 모두가 다 망지(妄知)에 속한 것이다 그 말이여. 망령된 알음알이에 속한다 그 말이여.
화엄경이나 법화경이나 금강경과 같은 그러헌 대승경전에 쓰여있는 부처님 말씀이라 할지라도 중생의 망령된 알음알이로 분석을 하고 해석을 하고 그러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설법이라 할지라도 망지(妄知)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 말이여.
1700조사공안도.. 이 조사공안은 용궁에 있는 장경(藏經)에도 없는 교외별전(敎外別傳) 소식이지만 그 교외별전의 최상승법, 이 공안도 중생의 알음알이로 따져서『아! 이것이로구나』하고 알음알이를 붙이면 알음알이로 따지면 공안이 바로 최상승법이 찰나간에 망지(妄知)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 말이여.
참선에 있어서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은 알음알이로 공안을 따지는 거, 참선을 허다가 알음알이로 어떠헌 결론을 얻는 거, 얻을려고 허고 또 얻는 것은 모두가 다 모래를 쪄서 밥을 만들려고 하는 거여. 그건 아무리 삶아 봤자 모래지 그것이 밥으로 변허는 법은 없어.
공안을 따진다면 무엇을 처음부터서 하늘 천 따 지 배우듯이 1700공안을 놓고 다 그런 식으로 해서 배워 버리면 하나도 힘 쓸 것도 없고 간단할 일인데 뭐 하러 그렇게 참 목숨 바쳐서 고행 난행을 할 필요가 있느냐 그 말이여?
어떤 사람이 깨달았다 하면, 그 참 생각해보면 그럴싸 허거든.
「이뭣고?」헌 놈이 이놈이지 이놈말고 무엇이겠느냐 그 말이여?
밥 먹고 옷 입은 놈이 바로 이놈이요, 육도윤회를 허는 놈도 바로 지금「이뭣고?」허고 있는 바로 이놈이요.
성내고 슬퍼하고 기뻐허는 놈도 바로 이놈이요. 확철대오해서 깨닫는 놈도 바로 이놈이요. 육도윤회를 허는 놈도 바로 이놈이여.
이놈을 내 놓고 무엇이 또 있겠느냐? 여태 내가「이뭣고?」「이뭣고?」했는디 바로「이뭣고?」허는 이놈이더라.
참 그러헌 것을 갖다가 망지(妄知)라 하는 것이여. 망령된 중생의 알음알이라 그거여.
자기 딴은 애써서 했지만 이놈이라 헐 때는 경전에 있는 말씀과 딱 부합이 되어도 그것은 벌써 이놈이라 헐 때는 그것은 망지(妄知)다 그 말이여.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도 깨달았다고 하는 소견에 떨어지면 찰나간에 중생이요 찰나간에 윤회에 떨어져버린 것인데, 망령된 소견으로 그러헌 결론을 얻었다면 그건 물어 볼 것도 없어. 그것은 참선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여.
부처님께서 금강경에『내가 설한바가 있느냐? 설한 바가 있다고 허면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 되고 설한 바가 없다 하면은 법을 비방한 것이 된다.』그러헌 말씀이 있습니다.
산승이 오늘 이렇게 입을 벌려서 영지(靈知)와 진지(眞知)와 망지(妄知)에 대해서 말씀을 허고 있는데, 부처님은 망령된 알음알이로 법을 설하는 것은 무엇과 같으냐
눈먼 장님이 훨훨 타는 횃불을 들고 대낮에 길거리로 돌아 댕기면서 사람들에게 불을 밝혀 줄려고 허는 거와 같다. 이렇게 옛날 조사스님이 말씀을 허셨습니다.
훨훨 타는 횃불을 밤에 가지고 다닌다면 혹 다른 사람들이 그 횃불을.. 광명을.. 횃불의 광명을 받아서 그 밝음을 이용해서 구렁탱이에 빠지지 아니하고 바로 길을 찾아가겠지만
태양이 환히 빛나고 있는 대낮에 횃불을 들고 돌아 댕겨봤자 그 밝음은 아무 소용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밝음을 주지를 못하고 오래오래 그 횃불을 가지고 돌아 댕기면 결국은 자기의 손과 몸뚱이에 화상을 입고 말 것이다.
그래서 달마스님도 그 혈맥론에 말씀을 허시기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법을 설하면 법 설한 사람도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요. 깨닫지 못한 사람의 법을 듣는 사람도 그 깨닫지 못하고 법을 설한 사람과 마찬가지다.
깨닫지 못하고 법을 설하는 사람은 마왕이요, 깨닫지 못한 사람의 법을 듣는 것은 바로 마왕의 백성이다.」
이렇게 무서운 법문을 허셨습니다.
내 소원은 불이 내 몸에 덩거서 내가 화상을 입는 한이 있드라도 여러분에게 그 광명이 비춰져서 여러분의 앞길에 바른 법의 문이 열리기를 바래는 오직 그 한 생각뿐입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발심을 하고 참으로 정법을 믿고 자비가 있으시다면 그 불이 내 몸에 뎅구지 않도록 그것을 잘 보살펴 주시고, 그 불은 오래오래만 가지고 있으면 횃불이 타다가 결국은 불똥이 나한테 튀길 것은 분명한 것이니까,
빨리 여러분이 시간을 아껴서 정말 목숨을 바쳐서 열심히 정진해서 내 손에 있던 횃불을 여러분이 달라 들어서 그 불을 빼앗어 가시든지, 그 불을 빼앗어서 위험하지 아니헌 곳에 버려 주셔야 헐 것입니다.
우리는 어피차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을 때 숙세의 깊은 인연으로 같은 시대에 태어나고 같은 나라에 태어나고 같은 불법에 만나서, 이렇게 서로 생사 없는 진리를 향해서 말을 하고 듣게 된 그 인연이라고 허는 것은 말로써 표현 헐 수가 없는, 부모 자식간의 인연보다도 수백만 배의 깊은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내 손으로 들고 있는 횃불에 의해서 타고 있는 타서 죽게 되는 것을 여러분은 강 건너 불을 보듯이 볼 수..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여러분이 어두워서 구렁텅이에 빠지고 물에 빠지고 허망해 빠진 것을 나도 또한 보고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법은 많은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알음알이를 조장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고, 알음알이를 얻는 데에 불법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래가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말로써 공부를 헐 수가 있고 말로써 가르켜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지금 육도를 윤회하고 있는 중생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로써는 이 영지(靈知)와 진지(眞知)를 설명헐 수가 없는 것이고, 사량분별심으로 들어서 그것을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불보살과 선지식과 모든 스님들이 말로써 설할 수가 없다해서 입을 다물어 버리고, 부처님과 같은 확철대오를 얻지 못한 범승이라 해서 법회를 갖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 몸만을 생각허고 입을 다물고 일생을 자기만을 위해서 정진을 허고 있다면
불법을 아지 못하는 사람, 아직은 불법에 어떠헌 점이 좋다고 허는 것에 눈뜨지 못한 사람, 어떤 것이 바른 불법인가에 대해서 분간을 못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누가 말을 헐 것이냐 그 말이여?
원래 참 진리는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참된 말씀은 입으로 좇아 나오지 않는 것이다 허는 말씀이 있습니다마는 부처님은 그 많은 법을 설하셨건만 한 말씀도 설하신 바가 없다.
무량중생을 제도하시되 한 중생도 제도를 받은 사람이 없다. 이러헌 말씀을 우리는 깊이 마음으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말로써 설 할 수가 없고 귀를 통해서 들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입을 벌려서 부처님은 49년 동안 팔만 사천 법을 설하셨고, 선문(禪門)에서는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고 불립문자(不立文字)하고 직지인심(直指人心)하야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문자를 세우지 아니헌다 하시면서도 수 없는 조사의 어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입으로 설할 수가 없지만 목숨을 바쳐서 설할 수밖에는 없고, 중생의 사량분별로 귀를 통해서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지만 목숨 바쳐서 법문을 들어야 하고 들을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래 자기에게 원만구족하게 다 갖춰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와 우리 중생과의 관계입니다.
진리는 찾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줄 수도 없고 받을 것 받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그 길을 안내 헐려고 노력을 해야 허고, 여러분은 또한 그것을 듣기 위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삼세제불이 출현을 하셔도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부처님도 탄생을 허셨고 모든 보살님과 모든 조사도 그렇게 해서 탄생을 허셨습니다.
앞으로 우리들도 그만큼 내게 갖춰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 목숨을 바칠 때,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나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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