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케 다카시의 뜨거운 영화, 악의 교전입니다.
이 양반 워낙에 다작으로 유명한데, B급 냄새 나는 외양을 가지면서도
나름의 완성도랄까요. 적어도 자기 세계관 안에서 붕괴하는 일은 적은(최근의 짚의 방패가..)
특이한 감독입니다. 그는 이제 일본 메이져 영화도 연출하는 기성감독이 되었는데요.
그가 출사표를 던진 착신아리는 전형적인 일본호러 장르물, 뭐 당시로는
링의 영향을 크게 받은 구조를 가지고 왔지만 나름 신선한 호러효과들과
메이져 영화에서 설마 그 주제를 다룰리가.. 했던 악취미를 전면에 내세워
멋진 멘붕을 안겨준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어휴 근데 그게 벌써 몇년 전인가요.
악의 교전은 원작을 바탕으로 합니다만
언제나 그랬듯이 저는 원작을 접하지 않고 갔어요.
그래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일종의 신념 때문이기도 하고
긴 글을 읽기엔 저는 너무 게을러요.
영화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싸이코 패스인 하스미는 하필 그 중에서도 최악의 케이스인
살인마로서의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손 쉽게 걸리적 거리는
사람들을 처단해온 그는 훌륭한 싸이코 패스로 자라 존경받는 영어교사가 되어있었어요.
하지만 그의 광기는 끓어오르는 주전자처럼 점차 밖으로 표출되고,
완벽하게 제어되지 않는 주변인들 덕분에 궁지에 몰린 그는 결국 폭주.
모든 상황을 원점으로 돌리기 위한 마지막 수단을 쓰기로 마음 먹습니다.
학살이죠.
미이케 다카시는 그의 실체가 폭로되기 전의 모습을 묘사하며
소프트한 필터를 씌운듯한 청춘 학원물의 연출을 가져다 썼어요.
물론 이런 연출적 반전은 이미 그가 오디션을 통해 보여준 적이 있죠.
오디션이 로코물에서 혐오스런 고문호러로 뒤바뀌듯 이 영화는
말썽쟁이들이 다수 등장하는 청춘학원물에서 대학살극으로 탈바꿈되죠.
나름 효과가 있습니다.
학생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긴 어렵지만
몇몇 캐릭터는 인지하게 되거든요. 나름 멋있어 보이거나 하는 애들도 있구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 영화의 매력은 하스미가 누군가를 해칠 때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자신의 뒤를 캐내는 음흉한 동료교사를 처단하는 장면은 짧지만 임팩트가 있고
미이케 다카시의 악취미가 반영되기도 하죠. (그런데 그 시체묘사 낯익지 않아요?)
혹은 하스미가 광기에 빠져 자신의 과거에 빠지는 시퀸스를 보세요.
죽었다 깨도 세련되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듬뿍 들어가 있습니다.
총과의 대화 같은 촌스러운 장면도 그대로 밀고나가는 뚝심이야말로
미이케 다카시의 인장같은 연출이죠.
압력밥솥처럼 꾹 눌러놓은 영화는 클라이막스에서 모든 것을 분출해냅니다.
그걸 노린 영화죠. 샷건의 괴력이 과장되긴 했지만 그냥 영화적 허용이죠.
그 와중에 쟨 무조건 죽겠구만. 하는 애들도 죽고
쟨 잘하면 살겠는데? 하는 애들도 죽습니다.
그야말로 폭주. 이 부분은 살려는 자와 죽이려는 자가 펼치는 스릴이나
서스펜스보단 하스미의 학살을 묵묵히 바라보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일종의 나열이죠. 애초에 90년대 슬래셔 물 같은 접근엔 관심이 없었고
이 모든 것이 싸이코 패스인 하스미를 또렷이 그려내기 위한 연출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찬양할 마음은 없습니다만 그의 학살이 무감각해질 수록
그의 내면이 잘 드러나는 셈이에요.
어이없는 범행의 발각이나 그 와중에 하스미가 보여주는 표정등도
그런 면에서 일맥상통합니다.
물론 클라이막스의 대학살은 보는 이에 따라가 깊은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어요.
강자가 약자에게 펼치는 폭력인데다가 그 대상이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니까요.
거기다 정말 이 살인에는 조금의 책임도 없거든요. 밉상인 아이는 있었습니다만
그런 짓 한다고 죽임 당하는 건 말도 안돼죠.
장르물에서 은유적으로든 대놓고든 죽어야 하는 이유를 암시하는 것과
전혀 다르죠. 어쩌면 그러한 불편함을 느끼며 동시에 샷건의 경쾌함에
환호하게 되는 관객의 이중적인 면을 톡톡 건드리는 미이케 다카시의 악취미일지도
모르겠어요. 거기에 흠뿍 빠진 저는 참... 악취미를 가진 사람이죠.
장르적으로 마구 기대를 하고 볼 영화는 아닙니다.
일반 영화관객들이 환호할 만한 소재도 아니구요.
하지만 하스미를 연기한 이토 히데아키의 카리스마는 일품이고
분명히 볼만한 영화에요. 그런데 주변사람에게 쉽게 추천했다간
변태 소리 들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저는 (소곤소곤) 강추입니다.
+저는 진짜 나쁜놈인게.. 여고생들이 죽을 땐 슬프고 남고생들이 죽을땐 무덤덤했어요..
++ 미술부원이 제 생각과 전혀 다르게 사용되어서 좀 당황했어요..미이케 영화9단.
+++ 심각해지려는 순간 폭소할 수 밖에 없는 연출이.. 영화9단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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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곧 개봉이라고 해요. 저도 컨저링 기대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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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인가요?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네요
흥미롭네요
헛....책 너무 재미있게 봐서....우리 나라에 절대 개봉 안할 줄 알고, 그냥 이래저래 봤는데...극장에서 한 번 더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