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란 인생의 길흉화복은 항상 바뀌어 미리
헤아릴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는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헬스클럽 회원으로 등록하였으며
오랜기간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 않는 특별한 사람이였다.
그는 십 여년 전까지만 하여도 일정한 직업없이 무위도식하며
여기저기 투전판을 기웃거리고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는 건달이였다.
그는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승리하기 위하여 체력단련을
열심히 하였으며 그 성과로 인하여 힘센 깡패를 만났을지라도
패한 적이 드물었고 항상 가해자로서 구치소와 교도소를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그는 새벽 6시가 되면 어디서 나타나는지 매일 규칙적으로 헬스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회원이다.
거의 술이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흰색 구두를 즐겨 신었고
양복 하의 뒷주머니에 검정색 가죽지갑을 꽂고 다녔지만
한 번도 소매치기 당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자랑한다.
그의 또 다른 특성은 투전판에서 뜯어낸 돈을 구김살이 없도록
세탁소에서 다림질하여 지갑 속에 보관하는 것이였다.
그는 약 3시간 가량 운동을 하는 동안 체육관 실내를 돌아다니면서
술이 깰 때까지 운동하였으며 술이 깨질 않으면
체육관에 머무는 시간도 그만큼 더 길어지는 것이였다.
그가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동안 나는 안심하고 집에 들려 식사를
하거나 용무를 볼 수가 있었다.
때로는, 그가 신입회원에 대한 친절한 오리엔티이션과 지도를 하였으며
회비를 받으면 어김없이 전해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부관장>이라는 명예를
부여하였으며,내 사진 옆에 그의 사진을 나란하게 걸어 주었다.
그것은, 그가 대외적인 활동에 써먹기 위하여 은근히 부관장직을
소원하였기에 그의 청을 들어준 것이기도 하다.
또한,헬스클럽 친목회를 구성하였을 때도 그를 회장으로 추대하여
한 번 더 기를 살려 주었다.
언젠가 식당을 운영하는 회원집에서 친목회를 하게 되었을 때 일이다.
그 날은 아나고회를 많이 장만하여 식탁에 올렸는데 워낙 식성이 좋은
분들인지라 아나고회 다섯 접시를 순식간에 먹어버렸으며,
다시 3접시를 추가 주문하였지만 처음부터 포식한 사람들은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가 남은 아나고회 3접시를 초장에 비벼서 소주를 곁들여
한 점도 남기없이 깨끗하게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나 보다 다섯 살 연상인데도 불구하고 식사량은 나를 훨씬
능가하는 대식가였다.
그는 가끔씩 여러 달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경우도 있었는데
그것은 폭력을 휘둘러 사고를 쳤기 때문이며 대부분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거나 교도소에 넘어간 것으로 보면 틀림없었다.
아주 무더운 여름철의 오후에 그가 동일 건물의 커피숍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시원한 빙수를 한 그릇 대접하겠다는 취지여서
그를 만나기 위해 커피숍으로 갔다.
그런데, 친구인 듯한 우람한 체격의 남자가 그의 곁에
있었으며 시종 그를 향해 <목수>라고 호칭하는 것이였다.
나는 속으로 좀 의아스럽게 생각하였지만 그의 전직이 <목수>라고
짐작할 뿐이였다.
그가 잠깐 자리를 비우고 화장실에 갔을 때 그의 친구에게
<목수>에 관하여 진위를 확인하였더니 전혀 예상 밖의 대답을 듣고나서
나는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그가 20여년 전 투전판에서 싸우다가 갑자기 인근에 있는
목공소로 뛰어 들어가 양날톱을 갖고 나와서 상대의 어깨를 썰어버린
사건이 있었으며 그 날 이후로 <목수>라는 별명이 붙여진 것이였다.
그의 가슴과 등에는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정교한 용의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그 문신은 폭력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 동료 수감자에게
의뢰하여 새긴 것이라고 묻지도 않은 얘기를 들려 준 적이 있었다.
그의 첫 부인은 식당업을 하다가 아들 하나를 낳고 폐암으로
사망하였으며, 둘 째 부인은 당뇨합병증으로 40대 초반에 죽었고,
셋 째 부인은 결혼식까지 올리고 살았지만 그녀 역시 신경성 위염으로
고생하다가 위암판정을 받게 되어 두 번의 수술을 하고 끝내 병원에서
죽고 말았다.
난, 그의 요청으로 셋 째 부인이 죽기 전에 병문안 간 적이 있었다.
그녀는 40대 후반의 선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왜, 저렇게 착하고 순한 여자가 비슷한 성품의 소유자를
만나지 않고 정반대의 우락부락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어떤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붙어 살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죽고나면 아무도 남편을 챙겨줄 사람이 없다고 말하면서
훌쩍훌쩍 눈물과 콧물을 삼키고 있었다.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금방 가슴이 미어지고
슬픈 감정이 솟구치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네 번 째 부인은 버스운전기사의 아내인데 어떻게 해서 눈이 맞았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 본 기억이 없어 여기서는 밝힐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어느날,갑자기 그녀가 전남편에게 SOS 신호를
보내는 바람에 덩치 큰 아들이 찾아와서 강제로 데려 갔다는 후문이다.
그녀가 떠난 후에 그는 매일 술에 쩌려서 타락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미친사람처럼 길거리를 배회하였으며 만취상태로 시비하고
싸우는 일이 흔하였다.
아마도,정든 여인과의 이별을 감당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 이유는 5년의 동거생활에서 쉬엄쉬엄 사랑하였을지라도
가슴 속으로 타들어 간 불꽃이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와 어린 시절부터 한동리에서 생활한 40대 후반의
노처녀가 그를 불쌍하게 여긴 나머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를 위해 돕겠다고 선언하였으니 이는 로또복권에 당첨된 행운보다도
더 큰 기적이 일어난 것이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였다.
물론, 그의 부모님은 완강하게 반대하였지만 단호한 그녀의 결심을
꺾지 못하였다.
그녀를 만난 이후로 그의 삶은 180도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사람으로 바뀌었으며 그것은
한 여자의 희생이 밑거름이 된 것이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오빠가 어릴 적부터 그의 수하에서
똘만이로 따라 다녔기에 의리상 여동생을 끊임없이 설득하였을
거라는 얘기를 들려 주었다.
즉,그녀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방적인 결정을 했다고 보기엔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그는 72세의 노인이지만 아내는 52세로서 20년의 격차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오순도순 잉꼬부부로 살고 있다.
왜? 그녀가 자신을 희생하게 되었는지를 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획한대로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인지도 모른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인연의 고리를 어찌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현재 그들 부부는 보리밥전문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 곳에 가면 열 가지 이상의 산나물과 채소류가 나온다.
그리고,된장국 속에는 땡초가 푸짐하게 들어가고 뚝배기로 끓여서 낸다.
보리밥 한그릇 가격은 4천원이며 식사 때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단골이 확보되어 있다.
그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면 구수한 숭늉과 누룽지를 맛볼수 있으며
매운맛, 뜨거운 진맛으로 인하여 콧물, 눈물, 구슬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때문에 마른 수건을 지참해야 한다.
그래도, 보리밥 한 그릇 먹고나면 기분이 상쾌해지면서
전신의 활력이 넘치는 느낌을 체험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원거리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보리밥 생각이 나면
승용차를 타고 이 식당을 찾아 오는 것이다.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시장에 나가서 반찬꺼리를 준비하고 있으며
그 일과가 끝나면 예나 다름없이, 헬스장에 들려서 운동을 한다.
그의 일상은 휴식과 식당 업무외에는 대인관계를 회피하고 있으며
술, 담배를 끊은지가 오래되었다.
그가 노후에 행운을 얻은 것인지? 아니면, 한 여자로 인하여
궃은 팔자가 활짝 핀 것인지는 단언할 수가 없다.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지 않았던가..........
오늘 좋아진 삶이 내일도 계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나, 지금 그가 행복한 시간 속에 부족함 없이 잘 살고 있으니
보는 이로 하여금 얼마나 가슴 뿌듯한지 모른다.
끝으로, 그의 삶을 바르게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두손 모아
감사의 기도를 올리면서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