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의 松柏 [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처음 대면한 사람들은 대개 고개를 갸웃한다.
우선 그림의 크기가 작다. 가로 70cm, 세로 23cm 남짓이다. 이어붙인 발문을
포함하더라도 길이가 1m가량이다. 그림에는 허름한 집 한 채와 나무 네 그루가
고작이다. 원근법도 맞지 않고 화려한 색채미도 없다. 이게 정말 국보 180호인가
싶을 정도다.
세한도의 위대성은 그림의 풍경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정신에 있다.
말년에 추사는 당시 절해고도나 다름없던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 그러자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은 모두 그와 소식을 끊어버렸다. 권세가
있으면 빌붙고 몰락하면 떠나버리는 염량세태의 인심이었다. 그때 변함없이
그의 곁을 지킨 사람이 있었다. 제자 이상적이었다. 그는 한결같이 스승에게
안부를 전하며 귀한 서책을 구해 보내주었다.
추사는 뭉클한 감정에 붓을 들었다. 닥종이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리고는
발문에 이렇게 적었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논어의 글귀였다. 제자 이상적은 끝까지 푸른빛을 간직한 잣나무였다.
추사에게는 또 한 그루의 잣나무가 있었다. 가시울타리를 두른 유배지까지
찾아온 동갑내기 초의선사였다. 추사는 새봄을 맞아 선사에게 영혼의
선물을 마련했다. 입춘이 다가오자 잘생긴 대접을 골라 깨끗이 씻어 장독
위에 올려놓았다. 밤비가 내려 대접에 빗물이 고였다. 그 해 처음 내린 봄비였다.
추사는 그 대접을 두 손에 받쳐 들고 조심스레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대접의 물을 벼루에 부은 뒤 먹을 갈아 편지를 썼다. 멀리 전라도에서 봄을
기다리는 초의선사에게 먼저 도착한 제주의 봄을 전한 것이다.
세한도가 마침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10번째 소장자인 손창근 옹이
최근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 아무 조건 없이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세한도의 오른쪽 아래에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란 붉은 낙관이 찍혀 있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이다. 추위가 오기도 전에 먼저 시드는 조락한
영혼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추사의 정신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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