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로 열리는 올해 시낭송 콘서트의 주제다. 우리 삶의 옛일이며 함께하는 공동체의 옛일들을 돌아보고 보다 아름다운 내일을 그려보기로 했다. 주제를 ‘옛 동산에 올라’로 정한 까닭이다. 우리의 옛 동산엔 어떤 사연들이 아로새겨져 있을까. 마침 올해가 ‘3.1 독립운동·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것을 기려 우리 수난과 희망의 현대사를 시로 새겨보기로 했다. 4월 정기낭송회를 마치고부터 콘서트의 준비에 돌입했다. 여러 곳을 전전해 가며 40여 회가 넘도록 연습에 열정을 쏟는 사이에 봄이 가고 여름도 고비를 넘어갔다. 한여름의 된더위도 우리에게 어려움은 되지 못했다. 어느 학교의 시청각실을 얻어 무대 리허설도 해보며 9월 콘서트의 화려한 꿈을 키워갔다. 날짜가 다가오자 어느 신문에서는 “詩 퍼포먼스에 교육감 낭송 무대 –구미낭송가협회 ‘시낭송콘서트’”라는 머리글로 우리의 콘서트를 알리는 보도를 해주었다. 교육감께서 회원으로 콘서트에 참여하는 것은 뉴스거리가 될 만했다.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햇살도 맑은 9월 첫 토요일 오후 4시, 두 어린이와 실용음악가 회원이 또랑한 목소리로 함께 부르는 ‘어린 시절’(이용복)과 음악가 홀로 아련히 부르는 ‘그리운 사람끼리’(박인희)로 오늘의 주제를 그리며 환호 속에 무대가 열렸다. ‘이 무대가 낭송의 예술미를 한층 드높이어 우리의 삶을 더욱 아름답고 기름지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회장 인사와 함께 낭송협회와의 인연과 낭송이 아름다워 학생 교육 지표로 삼게 되었다고 하는 교육감의 축사로 서막을 장식하며 프로그램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먼저, 그리움으로 남은 과거가 내일 살아가는 따사로운 힘이 되는 것임을 풀어내는 윤송 순서다.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다’라는 주제로 다섯 회원이 등장하여 ‘삶을 문득이라 부르자’(권대웅),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조병화), ‘아득한 한 뼘’(권대웅),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다’(장석주)를 혼자서도 읊고, 섞어서도 노래하고, 목소리를 모아서도 이어가면서 촉촉이 젖어 드는 음성으로 엮어나간다. ‘…멀리 왔다면 더 멀리 더~ 멀리 한없이 가 버리자.’ 함께 토혈하듯 욀 때, 객석에서는 갈채를 예비하고 있었다는 듯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회장과 부회장이 함께하는 듀엣 낭송으로 이어진다. 가난한 연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박라연)와 ‘너에게로 가는 길’(강현국)을 섞어 애틋한 목소리로, 굵직하고도 맑은 목소리로 엮어나간다. 낭송이 끝나면서 기타 반주에 맞추어 소월의 ‘개여울’을 개울 물이 흐르듯 잔잔하게 노래한다. 시가 노래인지 노래가 시인지 몽롱한 환상 속을 헤매던 관객들은 노래가 끝나자 놀란 듯 폭풍 바다의 파도 같은 박수를 쏟아낸다. 잠시 어버이를 그려보는 순서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라는 주제로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 드리며’(이승하), 사투리 시조 ‘효자가 될라카마’(이종문), ‘아버지의 나이’(정호승)를 다섯 회원이 합송으로 엮어가는데, 남자 회원이 ‘너거무이 …젖 만져뿌라’라는 말을 받아 여자 회원이 ‘다 큰 기 와 이카노, 미쳤나’라며 어머니 흉내를 낼 때 객석에서 홍소가 터져 나왔다. 두 회원이 함께 아버지의 마음을 그려나갈 때는 다시 숙연해지는가 싶더니, 출연자들이 무대를 향해 인사를 할 때 우레 박수가 터져 나왔다. 더 큰 박수가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는 무대에서 ‘어린 시절’을 노래했던 두 어린이가 ‘악기가 되고 싶었던 나무’(이혜영), ‘내 향기는’(김강정)을 청량하고도 앙증스러운 목소리로 또박또박 읊조려내는 낭송이 끝났을 때 함성과 함께 장내를 뒤집을 듯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두 어린이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마음이 그 박수가 터져 나오게 한 것 같았다. 수필가 회원의 자작 수필 ‘상사화 마른 잎’을 여 회원과 함께 낭독하는 순서가 이어진다. 상사화의 애달픈 사연과 함께 인간의 원초적인 그리움을 그린 수필을 남녀 회원이 섞바꾸어 가며 애끓는 듯한 목소리로 애틋한 그리움을 그려낼 때, 객석의 어떤 이는 지그시 눈을 감고 귀를 모았다. 낭독이 끝나자 아늑한 박수 소리가 객석을 젖게 했다. 나중에 누구에게서는 ‘한 편의 감동적인 서정시’와 같았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1부가 끝나고 초대 성악가가 ‘옛 동산에 올라’(홍난파 곡), ‘그리운 마음’(김동환 곡)을 굵직하고도 그윽한 목소리로 오늘 콘서트의 주제를 다시 풀어내면서 시작된 제2부에서는, 오늘 콘서트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3.1 독립운동·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시 퍼포먼스 「임 찾아가는 길」이 먼저 펼쳐진다. 망국의 한으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지의 역정과 광복의 환희 그리고 민족 분단의 비극과 통일의 염원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의 아픔과 희망을 새겨 보는 무대다. 출연자의 의상은 모두 흰 저고리 검정 치마에 태극기를 새긴 머플러를 둘러 시대상을 그렸다. 회장이 조지훈의 ‘봉황수’를 애끓는 목소리로 “벌레 먹은 두리기둥… 둥주리를 마구 쳤다”까지 낭송하고 나면 무대가 암전되고, 조명은 출연자만 비추면서 낭송이 이어진다. 망국의 상징이다. 이어 등장한 회원이 애잔한 목소리로 한용운의 ‘님의 침묵’ 전반부를 낭송하고, 다시 회장이 등장하여 신석정의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몇 구절을 낭송하여 빼앗긴 나라에 대한 아린 그리움을 새긴다. 다음 회원이 등장하여 결기에 찬 음성으로 이육사의 ‘광야’를 ‘…큰 강물이 길을 열었다.’까지 낭송하고 나자 네 사람이 머플러를 두 팔로 펼쳐 들고 한 손을 맞대어 원을 그리다가 격렬한 동작으로 이합과 집산을 거듭한다.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는 몸부림이다.
박두진의 ‘해’로 광복의 환희를 그려내고, 그 환희를 받아 조태일의 ‘국토 서시’로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호소한다. ‘해’에서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라 외고 나면 네 사람은 다시 숨 가쁘게 흐르는 음악을 따라 머플러를 휘둘러 폭발적인 춤사위를 펼쳐내면서 광복의 환희와 통일에의 염원을 함께 그린다. 이어서 ‘국토 서시’의 뒷부분을 낭송하고 모두 함께 ‘…새빨간 능금을 또옥 따지 않으시렵니까?’로 ‘임 찾아가는 길’의 종점에 이른다. 이들의 임은 어디에 있는 누구일까, 관객의 임들은 또 누구일까.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동안 객석은 깊은 정적에 빠져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끝나자 갑자기 용암이 분출하듯 함성과 박수 소리가 공연장을 무너뜨릴 듯 진동했다. 출연자도 놀라고 관객 스스로도 놀라는 듯했다. 그렇게 그리운 ‘임’이 모든 이의 가슴속에 깊숙이 들어앉았다. 그 분출하는 감동을 정화할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두 여중생이 등장하여 정일근의 ‘착한 시’를 한 줄 한 줄 섞바꾸어 왼다. “…가오리 새끼는 간자미,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라며 앙증맞고 귀여운 새끼들의 이름을 불러나가다가 “…그 생명들이 다 시다. 참 착한 시다.”라 끝을 맺고 관객을 향해 절을 할 때, 바로 어린 시인이고 ‘착한 시’인 이 학생들에게 관객들은 미소와 함께 따뜻한 박수를 보낸다. 신문에 메인 타이틀로도 보도된 교육감 순서에 이르면서 콘서트는 막바지로 향한다. 자리를 따로 가리지 않는 겸허에 보내는 갈채일까. 교육감께서 등장하자 환호부터 터진다. ‘사랑의 물리학’(김인육)을 낭송해 나가다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떨어졌다.…”에 이르자 톤이 높아진다. 교육감의 ‘그녀’는 ‘교육’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낭송이 끝나자 갈채가 다시 터진다. 마지막 순서에 이른다. 부회장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시극 「그리움을 찾아서」가 펼쳐진다. 스크린은 노래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하여 어린 시절의 여러 가지 모습을 흐르는 영상으로 그린다. 영상이 끝나자 암전된 무대에서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동요가 흘러나오고 서서히 밝아진 무대 한쪽에 남자가 앉아 어린 시절을 독백으로 풀어낸다. 다시 암전되었다가 밝아지면서 여자가 술래잡기 놀이를 잠시 펼친다. 남자와 ‘사향’(김상옥)을 외며 등장하는 여자가 만나 지난날을 회상하다가 ‘아버지의 마음’(김현승), ‘기억의 자리’(나희덕)을 읊으며 등장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난다. 이들은 모두 초등학교 동창생들이다. 지난 시절의 그리움을 돌이키기도 하고 힘겹게 살아온 날들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위로가 되고 희망을 주었던 것은 어린 시절의 그리운 친구들임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는 대사와 함께 암전되었다가 밝아지면서 극이 끝나게 된다. 한 장면 한 장면이 펼쳐질 때마다 무대를 주시하던 관객들도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든 듯 고요 속을 유영하다가 무대가 끝나면서 환호와 박수를 함께 쏟아낸다. 과거의 그리움이 오늘과 미래를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을 모두 한마음으로 새기는 것 같다. 에필로그 무대다. 오늘 오른 옛 동산의 기억을 마음속 깊이 담기 위한 노래일까. 회장, 부회장 그리고 기타리스트 회원이 음정을 고르며 정지용의 ‘향수’를 청아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그린다. ‘얼굴’(신귀복 곡)로 관객과 함께 하는 순서가 이어진다. 스크린에 노랫말이 떠오르면서 관객들도 모두 하나 되어 부른다.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우리의 옛 동산에 항상 맴돌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옛 동산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을 남기고 출연자들은 모두 무대를 내려온다. 관객들은 일어서면서 보내는 마지막 갈채로 오늘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출연자들과 내빈들은 다시 무대로 올라왔다. 무대 언턱이며 의자에 앉고 서기도 하며 오늘을 영원한 기억으로 남길 기념 촬영을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 오늘 우리가 올랐던 옛 동산은 어디였고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새로 새긴 동산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오늘 우리는 우리의 생애 속에 또는 공동체의 삶 속에 서려 있는 그리움들을 불러내었다. 그 속에 우리의 삶의 역정을,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삶과 낭송예술의 아름다움 소곳이 담아보려 했다. 우리가 그린 동산은 그 바람을 얼마나 싸안았을까. 오늘 올랐던 우리의 옛 동산을 다시 새겨 본다. 그 동산에서 우리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2019.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