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父子有親 - 小夜 ♣
대학 입학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을 붙잡고 아버지가 물었다.
“그래,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왔더냐?”
아들은 ‘오대양 육대주를 쓰라’는 문제가 나왔다며,
자신있게 답을 썼는데 한 문항이 좀 미심쩍다고 했다.
아들이 쓴 답안은 이렇다.
‘오대양-김양 박양 최양 이양 서양’
‘육대주-소주 맥주 양주 청주 포도주 막걸리’
그런데 육대주의 마지막에
‘막걸리’라고 쓴 게 좀 찜찜하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치며 탄식을 했다.
“야, 이놈아! ‘막걸리’가 아니라 ‘탁주’라고 써야지…”
시쳇말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이어서 못 말리는 4부자(父子)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모처럼 가족들이 함께 모인 어느 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아들이 한자를 배웠다며
‘月火水木金土日’을 보란 듯이 읽었다. ‘월화수목김…’
그러자 중학생인 둘째 아들이
“야이 짜샤, 그렇게 읽는 게 아니야.”라며
‘월화수목금사…’라고 했다.
그때 고등학생인 맏아들이 나서며
“그것도 제대로 못 읽느냐?”고 동생들에게 면박을 주며
‘월화수목금토왈’이라고 읽었다.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아버지가 하는 말이 더 기가 막힌다.
“허어~참, 얘들이 누굴 닮아 이 모양이지?
왕편 가져와서 한번 찾아봐라. 왕편…”
이번 유머는 문자 그대로 父子有親한 사례이다.
상당히 개방적인 부자관계가 일면 부럽기까지 하다.
서울의 유수대학에 입학하는 아들이 대견했
아버지가 학비 외에 매월 특별자금을 부쳐주기로 했다.
자신의 대학시절을 떠올리며
“이제는 성인이 되었으니 공부만이 능사는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여자를 잘 사귀는 것도 중요하지…”
라는 당부와 함께 매달
5만~10만원씩의 용돈을 따로 부쳐주기로 한 것이다.
부자지간에 둘만 아는 그 돈의 명칭은 ‘사냥비’로 정했고
엄마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약속을 했다.
아버지는 남자 대 남자의 약속대로 아들에게 매달
사냥비를 꼬박꼬박 보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의 사냥비 청구서에 50만원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깜짝 놀라 전화를 했다.
“무슨 사냥비가 갑자기 이렇게 올랐느냐?”는 물음에
아들은 “아버지, 그건 엽총 수리비인데요…”
라고 대답을 했다. 지나친 부정(父情)은 이렇게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긴 이런 막강한 부자지간도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생활고를 비관하며
서울의 63빌딩에서 뛰어내렸는데 둘 다 멀쩡했다.
그 이유는 아버지는 ‘제비족’이었고,
아들은 ‘비행청소년’이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마지막 부자유친 Y담은 신성한 교회로 장소를 옮긴다.
그런데 이야기의 결말은 좀 황당하다.
일요일 날 친구들과 놀러 나가려는 어린 아들을
아빠가 억지로 교회에 데리고 갔다.
아들은 교회의 예배문화가 낯설기만 했지만 아무튼
아빠가 하는 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빠가 기도를 하면서 연방 “하나님 아버지…”
라고 부르며 무언가 간절히 호소를 하자,
영리한 아들은 눈을 감고 두손을 모아
“하나님 할아버지…”라며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아빠가
“교회에서는 너도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거야.”
라고 귀띔해주자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럼,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아빠에게도 아버지고
나에게도 아버지야?”라고 되물었다.
아빠가 “그래. 그렇게 하면 돼.
우리 아들 역시 똑똑하구나.”라고 칭찬을 했는데,
한참 생각을 하던 아들의 대답인즉 “알았어, 형!”이었다.
이렇게 눈치가 빠르고 두뇌가 명석하다니…
그야말로 하나님이 감탄할 일이다.
아무튼 부모의 언행은
자녀들에게 표본이 되기 마련이다.
어른들은 진작 가재나 게처럼 뒷걸음을 하거나
옆걸음질치면서 아이들에게는 똑바로 걸으라고 한들
어린 것들이 바로 걸을 수 있을까.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무지개’란 시에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란 표현을 했다.
아이들의 마음은 하얀 백지와 같아서, 어른들이
어떤 색깔을 칠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아들은 아버지의 거울이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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