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과 사우나를 한 후 11시경 숙소를 출발하여 속초 중앙시장을 찾았다. 옛적에는 설악산 종주 등반을 마친 후 낙산해수욕장으로 Camp Side 옮겨 이틀 동안 여름을 즐기다 귀경하곤 하였다. 그때 부식을 구매하기 위하여 찾던 곳이 바로 속초 중앙시장이었다. 지금은 주차장이 완비되었고 시설도 많이 개선되었으며 관광객이 넘쳐 나는 명소가 되었다. 선물 몇 가지와 점심대체 음식물을 구매하여 다시 통일전망대로 출발하였다. 도착한 안보교육관에서 주차비와 입장료를 지불한 뒤 손주에게 망원경을 사주었다.
그리고 1시 50분에 준비된 안보교육시청을 위하여 대기하다 교육을 받은 절차에 따라 검문소를 통과한 후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굳게 닫힌 평화의 문
북녘을 향해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 참혹한 경험은 단 한 번만으로 족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경험한 전란을
다시 또 겪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전란의 발생으로 참혹함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곳에 오셨으니 부디 그 사랑을 거두지 마시고
참화대신 이 땅에 평화를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서서
당신의 사랑과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애가 타는 마음으로 청하오니
들어 허락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구하시고,
동녘의 동포도 구하소서. 아멘/
한국인 최초의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한국의 주보성인 성모 마리아~~ 한국전쟁 당시 휴전이 있기까지 참전외국 군인들 사이에서 묵주기도로서 염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성모 마리아의 자애심이 통일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
한국인들의 염원을 담아 기도를 드렸다.
이 평화의 문은 우리 쪽에서 통일을 염원하며 세운 평화의 문이다. 이 문을 들어서면 해변을 따라 약 2.7km의 걸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금강 통문까지 1.6km도 걸어서 금강산 전망대까지 갈 수 있으며 그곳에서 금강산을 전망할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구간은 차량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단 안전수칙과 준수사항을 철저하게 지키고 경호인력 통솔에 적극 따라야 하는 조건과 입장하기 전 철저한 점검을 마친 후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정적만 흐르는 해변, 한 때는 좌측 숲으로 이어지는 길에 금강산 여행을 떠나는 남한 사람들로 분주했던 길이였지만 지금 정적만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로 북한정권에서 쏟아 올린 미사일만 날아 동해에 떨어트리며 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중이다.
측면에서 본 전망대, 새로 건축한 전망대 4층까지 있다. 4층은 전망대 3층은 포토존이지만 위험하여 폐쇄해 버렸다. 2층은 홍보자료실이다. 1층은 로비, 계단으로 올라가는 방법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방법 두 가지다. 노약자나 장애인은 이용이 가능하다.
전망대로 오르는 길가에 심어 놓은 꽃
정면에서 바라본 전망대, 옛적에는 지금 전망대 우측에 넓은 투시형 유리창과 계단식 고정 의자를 배열하여 군관계자가 나와 작은 지휘봉을 들고 안보와 관련된 이야기를 포함하여 DMZ 생태 관련 이야기 6, 25 전쟁 때 회복한 영토까지 설명해 주었었다.
북녘 땅을 관찰하는 주혁 군, 매사 모든 것이 열심히 한다. 집중력도 좋다. 관람을 끝낸 후 간식용으로 준비한 도시락 형태의 음식물을 철책선 밖 야외 의자에 모여 앉아 나누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온 후 6.25 전쟁 기록관을 찾았다.
전쟁하면 보병의 상징 무기인 전차가 떠오른다. 주혁 군도 미래에 국가의 간성으로 서의 의무를 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민족의 비극인 6.25 전쟁을 살피며 국방의 의무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염두에 둔 방문이었다.
참전 16개국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전시관이다.
전쟁 전 한국군과 북한군의 전투력 비교다. 도표만으로도 얼마나 우리가 약세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북침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유엔의 깃발 아래 16개국의 참전이 없었다면 또한 맥아더 같은 지장이 없었다면 그리고 용맹스럽고 통찰력이 강한 군국 장성들과 용감한 병사들이 없었다면 이미 적화통일이 되어 오늘 같은 환경은 없었을 것이다.
과거의 군 내무반 모습이다. 지금은 이층 침대와 개인물과 관물을 넣을 수 있는 장이 제공되고 있다. 추억의 내무반이다. 점호 관련 이야기 끝에 이주혁 군은 거수경례를 하며 보고하는 모습을 재현해 보았다. 일정표에 의하여 떠날 시간이다. 북한주민들이 귀순하여 만든 독주 한 병을 사서 제노가 건네준다. 가이드와 운전자에게 주는 팁이란 다. 차 트렁크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전망대에서 빠져나오면서 출입증과 몇 가지 서류를 반납하고 격려의 인사를 남기고 화진포로 향하였다.
해안 최북단에 있는 화진포해변은 길이 1.7km, 넓이 약 70m, 수심 1~1.5m 정도 된다. 오랜 세월 동안 조개껍데기와 바위가 부서져서 만들어진 모나자이트 성분의 완만한 백사장과 맑은 바닷물, 얕은 수심으로 아이들을 동반하고 가족위주로 많이 찾는 장소다. 특히 고성군의 시범 해수욕장으로 샤워· 급수· 주차 시설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주위에 소나무숲과 기암괴석, 철새와 해당화가 장관을 이루는 화진포에는, 김일성 별장(유료관람)과 수복 후 건립된 화진포 이승만 별장이 있다. 김일성별장은 일제강점기에 외국인들이 이용한 휴양 소인데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이 다녀간 후 김일성 별장이라는 명칭을 받게 된 곳이다 그리고 70년대 대한항공 광고 중에 고니 때가 날아가는 명 장면이 있었다. 겨울철에는 수많은 고니 때가 몰려오는 곳이 화진포다 고니 때가 비상하는 모습을 일출과 함께 담기 위하여 새벽 3시에 출발하여 다녀 가기를 반복한 곳이다. 지금 당시 찍은 필름을 많이 보관하고 있다. 잠시 머물다 금강산 맥이 시작되는 건봉산 자락에 불사를 일으켜 재건하고 있는 건봉사를 찾아 떠났다.
진부령을 넘어 건봉사를 찾으면 장애가 없는데 화진포 방향에서 절로 들어가려면 군부대 안을 지나 보안 카메라를 통과해야 한다. 차를 절 안에 주차장까지 몰고 들어 갔다.
주혁 군 뒤에 있는 석상은 포대화상(布袋和尙)이다. 포대는 정웅 대사라고도 부르는 고승을 뜻한다. 이 고승은 늘 자루 하나를 메고 다니면서 동냥을 해서 ‘포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포대화상 석물을 발견한 주혁 군은 냉큼 석상 앞으로 달려 가 앉았다. 이유를 묻자 자신 배 모습이 닮았 다하여 함께 웃었다.
범종각 건물이 너무 반듯하고 멋스러웠다. 산사 전체의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범 종각 안에는 주물로 만든 범종, 가죽으로 만든 북, 동판으로 만들어 걸어 놓은 운 판, 물고기 모양을 통나무로 만들고 배를 갈라놓아 북채 모양의 두 가락으로 휘젓으며 물고기를 깨우는 역할을 담당한다. 운 판은 날아다니는 새들, 범종은 인간을 깨우고 북은 짐승을 깨우는 역할이다
南無는 산스크리트어 ‘나마스(Namas)’의 음역어이다. 아미타불에게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으로써 중생의 깊은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주문이 가진 공덕이 크다고 한다. 아미타불은 서방 정토의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불법을 설한다는 대승 불교의 부처로서 산스크리트어 ‘amitabha Buddha’의 음역어이다.
감로수가 넘치는 물을 받아내는 나무 고랑연결이 너무 아름답게 다가왔다. 이음은 바로 연결이 아닌가. 인연을 불가에서는
우주의 모든 존재와 현상들이 온갖 인연에 의하여 생겨난다고 한다.
금강산 맥이 연결된 곳이라 금강산 건봉사라 한다. 대웅전에 정좌하고 계신 부처를 만나려면 봉서루 밑으로 통과해야 한다. 저절로 고개를 숙이도록 배려해 놓은 건물 구조임을 느끼게 된다. 아주 오래된 고찰이지만 전란으로 전소 되어 불사를 일으켜 이만큼이라도 복원해 놓았다. 건봉사도 만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절집이다. 만해 한용운은 1905년 1월 26일 백담사에서 김연곡 스승에게 득도한 후 전영제 스승에게 수계를 받는다. 그리고 그해 4월 15일 건봉사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를 성취한다. 이후 30세에 다시 건봉사 이학암 스승에게 반야경과 화엄경을 수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