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9일
본문 : 계 2:7(창 2:16-17, 3:22-24)
제목 : 열려진 생명 나무에로의 길
중심내용 :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교회들에게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먹게 할 것을 약속하셨다.
명제 : 에덴의 생명 나무는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보장된 영생의 삶을 상징한다.
설교 목적 : 아담의 범죄로 차단되었던 생명 나무에로의 길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다시 열렸다. 이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믿음)한 자는 사죄와 칭의의 구원과 영생하는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기는 자에게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서 먹게 하시겠다는 말씀의 본의가 이렇다. 이기는 자의 정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격적 연합이 이루어진 자를 말한다.
1. 도입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창조 사역의 일환으로 에덴동산을 창설하셨다. 동산 중앙에 영생을 상징하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다(창 2:8-9). 특별히 선악과에는 '먹으면 정녕 죽게 될 것'(17절)이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금령이 조건부적으로 부가됨으로 최초의 은혜언약으로 맺어주신 문화명령적 창조언약(창 1:28)과 연계돼 순종을 관장하는 제도적인 장치 곧 율법의 효시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케 하셨다. 은혜는 자체 속에 행함을 수반한다는 언약적 원리에 따른 조치이다(일례 : 아브라함 언약에 근거한 출애굽 구원사건과 순종을 요구하는 10계명의 율법과 동일한 맥락/출 20:1-17/선 은혜와 후 행함). 다시 말해 아담 부부와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심으로 자원해 순종하는 방식으로 문화명령적 창조 언약의 궁극적 목표인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받고 있는 셈이다. 이를 신약적 관점으로 재해석한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목표는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삶으로 표출돼야 한다는 의미와 상통한다(마 6:33).
2. 전개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아는 대로 아담 부부는 뱀의 미혹을 받고 욕심에 이끌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인으로 전락했다. 아담 부부의 범죄를 신학적으로 원죄라고 부른다. 아담 부부는 인류의 머리로서 그들의 원죄는 아직은 그의 허리에 속해 있는 잠재된 후손들에게 죄성을 전가시킴으로 결국은 온 인류를 죄인의 신분으로 전락시켰다(롬 5:12, 3:23). 그러므로 사망은 죗값의 결과로 주어진 형벌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 부부를 에덴동산으로부터 쫓아내시고 동산 동편에 일단의 천사들 무리와 화염검(flaming sword)을 두심으로 생명 나무로 가는 길을 차단하셨다(창 3:24). 성경은 이 사건을 가리켜 아담 부부가 생명 나무의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였다고 기록한다(22절). 이런 식으로 당초 복락원은 실낙원으로 전락했으며 영생을 상징하던 생명 나무에로의 길은 막혀버렸다. 그렇다면 범죄한 인류에게 영생의 길은 묘연할 뿐이며 구원의 기회는 전무하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계시록 본문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상급으로) 주어 먹게 하리라"고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천명하시며 약속해 주셨다(계 2:7). 아담의 범죄로 인해 차단되었던 생명 나무에로의 길이 이제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계 2:7의 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본문의 메시지는 밧모섬에 유배당한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을 입고 부활하신 주님의 명을 좇아 에베소 교회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주님께서는 칭찬과 책망과 경고의 메시지를 에베소 교회에게 선포하신 후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청종할 것”을 촉구하신다(계 2:7). 본문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시사해 준다. 첫째, 에베소 교회에게 주신 메시지의 선포자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엡 2:1)에게서 성령님으로 바뀐 사실이다(계 2:7). 이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님을 통해 교회를 여전히 돌보고 계신다는 현재적 사역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 자신의 교회사역을 계속하실 것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가 있다(요 14:15-17, 26, 16:13-14, 행 2:1-4). 그런 의미에서 성령님의 사역은 동시에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대리적으로 수행한다는 성격을 띤다(요 14:15-17).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본질상 삼위(三位) 일체적으로 역사하신다(롬 8:9, 요 14:23). 따라서 범사에 성령님의 인도와 다스림을 받을 때 최선으로 주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것은 말씀의 본의를 바르게 깨닫고 이를 신앙과 생명의 도리로 붙들고 살아가는 순종력의 발휘와 동질성을 띤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방식을 통하지 않고는 바른 교회를 이룬다거나 하나님의 나라를 선양하고 운반하며 건설해 나가는 천상지향적 가치관의 삶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말씀의 통치를 적극적으로 받아 누리는 데서 구원의 실질인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된 사실이 확인되며(갈 2:20),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친 백성으로서의 천상적인 정체성이 확증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귀 있는 자’들에게만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생명으로 수납된다는 사실이다(엡 1:13). 결국 말씀의 사역은 성경의 원저자로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주도적인 사역이란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자의적으로 될 수 없다. 성령께서 믿음의 눈을 열어 주셔서 주의 법의 기이함을 보게 하시고, 귀를 열어 주셔서 듣고 깨닫게 해주셔야 된다는 것이 성경의 지적이다(고전 12:3, 행, 16:14, 시 119:18, 105절). 그러므로 구원은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성령님의 거듭나게 하심으로 인치시고 내주케 하시는 보증과 적용의 사역에 근거할 뿐이다(엡 1:4-14).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인간 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엡 2:8-9). 구원의 방편인 믿음조차도 하나님께서 주셔야 한다(엡 2:8, 약 2:1). 그래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는 것이다(살후 1:10). 구원의 궁극적 목적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할 수 있는 당위성이 이런 사실에 근거한다(엡 1:6, 고전 10:31, 전 12:13). 나아가 구원의 은혜는 순종의 삶과 직결돼 있다. 은혜는 행함을 동반한다. 이때 성령님의 주도적인 역사에 의해 말씀의 통치를 적극적으로 받아 누리는 순종력의 발휘가 가능해진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셋째는 에베소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은 동시에 모든 지상의 현존하는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과 본질에서 동일시된다는 사실이다. 1절에서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말씀하셨는데, 7절에서는 성령님을 통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바뀐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단수가 복수로 바뀌었다. 이런 사실을 좀 더 확대해석하게 되면 결국 일곱 교회에게 주신 메시지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완전수와 충만 수로서 7이라는 숫자에 담긴 상징성의 의미가 이렇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감심(感心)으로 받고 이를 생명처럼 귀하게 받들어 행한 자들에게 상급이 보장돼 있다. 요한은 이를 ‘이기는 자’에게는 이란 표현을 통해 보증한다(7절하). ‘이기는 자’란 묘사는 군사 용어로서 다분히 전투적인 성격을 띤다. 지상의 교회가 예수님을 군대 장관으로 모신 하늘의 군대, 곧 전투하는 교회의 정체성을 띠고 존재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기는 자에게 약속된 보상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는 상급의 이미지를 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는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사단 세력들과의 치열한 영적 전쟁을 염두에 둔 표현임에 틀림없다(엡 6:12, 2:2-3). 보다 본질적인 관점에서는 창 3:15에 예언된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간의 적대적인 영적 전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해 결정적인 승부가 갈렸음에도 불구하고 종말에 이르기까지 지속될 것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마 12:29, 눅 11:21-22, 벧후 2:4, 유 1:6, 계 20:1-3). 계시록의 본론 부분에 해당되는 4-20장까지의 내용의 중심주제가 다름 아닌 사단 세력들과의 영적 전투 모티브(주제)에 근거해 기술되고 있음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단 세력과의 영적 전투를 묘사하고 있는 창 3:15(여자의 후손언약)의 구체적인 진행과 관련해 계시록에서의 내용 전개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1장에서 군대 장관(야전사령관)의 모습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계 1:13-16, 19:11-13), 2-3장의 일곱 교회를 향해 이기는 자에게 상급을 약속하시면서 전투에서의 승리를 촉구하신다. 4-20장에서는 마침내 사단 세력들과의 모든 영적 전투를 승리로 이끄신 후에, 계 21:7에서 다시 한번 이기는 자에게 약속하신 상급을 주실 것을 총체적으로 보증하고 계신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3. 결론
사실상 일곱 교회들을 향해 이기는 자에게 약속하신 상급의 내용을 살펴보면, 새 예루살렘 성으로 상징된 교회의 종말론적 승리와 완성을 통해 누리게 될 영적 축복 곧 완성된 구원의 삶을 다양한 측면에서 언급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에베소 교회를 향해 이기는 자에게 약속하신 상급도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서 먹게 하시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표상된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에서 교회가 누릴 완성된 구원의 삶, 곧 영생의 삶을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표현이다. 처음 하나님 나라로 존재했던 에덴동산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생명 나무에로 가는 길이 차단되었었다(창 3:22-24). 생명 대신 죽음의 저주가 죄의 형벌로 내려졌다. 아담 부부는 에덴에서 쫓겨났다. 에덴동산은 한순간에 실낙원이 돼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 3:15의 여자의 후손언약은 원복음의 성격을 암시적으로 시사함으로 대속의 방식으로 아담 부부의 죄를 구속해 주심으로 에덴 또한 회복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의 후손의 당사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구속 사역)을 통해 죄는 속량되고 에덴 또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도래를 통해 회복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관점이다(마 12:28).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성취를 통해 여전히 미래지향적(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남아 있을지라도 사실상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으로 ‘이미’ 도래했다는 사실이다(마 12:28, 눅 17:20-21). 이런 원리 속에서 예수님의 초림 사역의 성취는 재림사역의 완성을 보증한다. 때문에 이기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된 성도들은 이미 회복된 에덴동산(하나님 나라)에서 생명 나무로 상징되는 영생을 현재적으로 소유해 누리는 자들로 존재한다(요 11:25-26, 5:24). 나아가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교회가 향유하게 될 천상적 복락 속에서 구원의 실질인 영생의 삶을 만끽하게 될 것을 보장받는다(계 22:1-5). 이들이야말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돼 영생하는 생명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사단의 세력에 맞서 죽음까지도 불사함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하나님의 친 백성들로 존재하는 자들이다(벧전 2:9, 계 14:4-5). ‘이기는 자’의 표현 속에 담긴 본의가 이렇다.
그런 의미에서 신약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이미 이기는 자들로 존재할 뿐 아니라, 저들에게 약속된 생명나무의 과실을 현재적으로 먹고 있는 자들로 존재하는 셈이다(요 11:25-26, 갈 2:20). 죄로 인해 차단되었던 생명나무에로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환하게 열려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창조)의 신분으로 거듭나게 돼 영생의 삶을 보장받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모든 영광을 주님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