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정보]1838.4.13~1867.11.17;도사국 아키군 가시와기 촌(현 고치현 아키군 기타가와촌)출신;나카오카 소텐츠쿠의 장남으로 출생.나카오카 집안은 소야[촌장]로서 마을의 유지였다.지위는 리쿠엔타이 대장.
[간단약력]1863년 도사번을 탈번[교토에서의 8.18 정변 이래로 도사근왕당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진행되자 탈번함]1865년 사이고 다카모리에게 삿초동맹을 제안.1867년 사카모토 료마와 회담중에 자객의 습격을 받고 사망.
[본문번역]탈번지사들의 흠모를 받았던 의리있는 선배님.삿초동맹 설계에 있어 그림자역이었다.
다케치 한페이타의 도장에서 검술을 배우고,도사근왕당에 참가한다.전국을 여행하며 근왕지사들과 교류하는데,사상적으로 서로 상통하지 않는 개국파의 사쿠마 쇼잔과도 회담하는 등 사고적으로는 유연했다.또 토사근왕당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자 재빨리 탈번하여 죠슈번에 망명하는등 격동의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예리한 감각과 행동력을 보여 주었다.
나카오카는 의리도 있었고 인망도 두터웠다.당시에 죠슈번은 제 번들로부터 망명해 오는 탈번지사들로 넘쳐났다.그들은 나카오카를 흠모하여 그 주위로 모였으며 그의 지휘아래 활동하기에 이른다.나카오카는 죠슈와 교토를 왕래하며 정력적으로 활동했다.또 겐지 원년(1864) 금문의 변에서는 [죠슈를 위해서]최전선에서 싸웠다.이즈음에 이런저런 활동을 통해서 그의 목표도 명확해졌다.양이의 테러를 반복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그 보다는 약체화된 막부를 타도하고 열번 연합에 의해 외국침략에 굴하지 않는 강력한 정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카모토 료마와도 가까왔다.둘이는 똑같이 탈번 무사였고,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카리스마도 있었다.너무나 닮은 둘이는 의기투합하여 공동전선을 펴게 된다.료마가 가이엔타이를 만들자,나카오카는 리쿠엔타이를 만든다.두 부대는 새로운 시대로 매진하는 양 수레바퀴로서 공동의 목표를 노렸다.리쿠엔타이는 교토를 거점으로 도막을 위한 활동을 전개한다.삿초동맹이 체결되는 데에는 제번에 얼굴이 널리 알려진 나카오카의 교섭력도 큰 역활을 하였다.료마와 신타로 둘이를 모두 잘 알고 있는 이타카키 타이스케는 「료마보다 신타로가 더 뛰어났다」고 말한다.[당시 제번의 지사들에게 료마보다는 신타로가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당시는 료마 보다도 나카오카 쪽이 더 지명도가 높았다.유신의 설계자였던 료마와 신타로는 그 성과도 보지 못하고 암살되어 버린다.교토의 오미야에서 료마가 암살되던 날,료마를 방문했던 나카오카도 흉도의 칼날에 쓰러지고 만다.나카오카는 즉사는 하지 않고 이틀간의 치료의 효험도 없이 사망하는데,힘든 숨을 몰아쉬어 가며 당시의 암살상황을 자세히 구술했다.이것이 료마의 최후를 그리는 여러 영화나 소설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