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 씨에 담긴 마음
김순덕
데크 옆으로 가지런하게 심어놓은 쪽파가 어느 덧 촉이 터서 예쁘게 자랐다. 두 이웃 분들이 주신 귀한 쪽파라서 그런지 특별히 더 상그러워 보인다.
농사는 먹는 것보다 보는 것이 재미를 주고 직접 지으면 더 큰 재미를 준다고 했던가. 작년 늦가을부터 앞집 마당의 쪽파를 보고 반해서 나도 심어봐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쪽파를 심는 시기를 몰라서 봄부터 안달을 하다 재배하시는 식물마다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농사의 달인처럼 우러러 보던 앞집 할머니께 여쭈었었다. 가을에 심는 것이라기에 조바심 난 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8월 중순쯤, 한 바가지 사다가 심었다.
김장때 쓸 것을 그리 빨리 심었느냐고 웃으시던 뒷집 아주머니는 쪽파 씨를 뭐 하러 샀느냐면서 지금 자란 것은 추석에 뽑아먹으라 하더니 다시 심을 씨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봄에 부추 씨를 뿌린 후, 더디 나는 싹을 안타까워하는 내모습을 보시고 부추는 옮겨 심어야 잘 자란다고 당신의 것을 선뜻 캐어 주셨던 아주머니셨다. 여름에는 울안에서 수확한 딸기며 자두, 복숭아를 한 아름씩 따서 안겨주었다.
집 지을 때는 술에 취해 이것저것 참견이 많았던 그집 아저씨가 두려웠었는데 우리가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여념이 없던 사이, 겨울에 돌아가셨다 한다. 혼자되신 아주머니는 가까운 곳에 자제분들이 살고 있지만 주말이 되기 전의 외로움을 달래려 말동무라도 만드시고 싶으셨는지 유난히 살갑게 다가오셨다.
그런 그분을 우리의 첫 번째 동물 가족이었던 춤추는 개, 똘이가 열다섯 군데나 물어 3주간 병원치료를 받게 했었다. 아주머니는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정착하는데 어려울까봐 그랬는지 동네에 소문하나 내지 않으셨다. 마음 붙일 곳 없던 내게 좋은 친구로 다가왔지만 사람을 상하게 한 똘이가 퇴출되어 마음이 아팠던 나는 아주머니를 대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런데도 처음 가졌던 좋은 마음을 거두지 않고 친밀하게 대해주셔서 고마운 마음 그지없다.
처음 심었던 쪽파는 추석까지 두기에도 너무 빨리 자라 고구마 김치를 담그라는 조카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고구마순과 함께 파김치를 담갔다. 파김치는 곰삭아야 제 맛이라서 하룻밤 상온에 두었다 냉장고에 넣었다. 입에 신 침이 고였다.
가을은 수확도 풍성한 만큼 사람들의 인심도 후하다. 농사라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유대감과 신뢰의 표시인양 씨앗 인심은 더욱 후하다. 어제도 농협을 다녀오는 길에 만난 한 할머니는 풋풋한 팥을 한웅큼 주시면서 밥에 넣어 먹으라 하셨다.
여름에 양파와 애호박, 오이 노각을 가져다주셨던 앞집 할머니는 외출한 사이에 김장때 뽑아먹으라고 쪽파 한 되를 수돗가에 두고 가셨다. 작년 겨울, 이사 온지 한 달쯤 된 우리를 위해 겨우내 먹을 대파 한 아름을 비료포대에 담아 새해 달력과 함께 가지런히 데크에 올려놓아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었던 분이었다.
그 쪽파를 심고 열흘쯤 지났는데 이번엔 뒷집아주머니가 부엌문 앞에 쪽파 씨 한 되를 가져다 놓고 가셨다. 심을 땅을 고르고 다시 하나씩 묻었는데 요것들이 졸졸졸 줄지어 자라는 것이 어찌나 사랑스러운 지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심었던 것도 요정도 크기였을 때가 가장 눈에 들었는데 그 것은 아마도 새싹이 주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쪽파를 사양하지 않고 두 분 모두에게서 받은 이유는 주시겠다고 손을 내밀은 분께 대한 조그마한 예의 때문이다. 아무리 내 것이 남아돈다 해도 땀 흘려 농사지은 것을 나누어 주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농사도 지어본 적이 없는 신출내기에게 덥석 귀한 씨앗을 넘겨주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 귀한 것을 주신다는 분들에게 누가 준다고 했다고 말하면 늦어버린 제안에 대한 거절인줄 알고 어색해하시는 모습도 보기가 싫었다. 그분들이 신뢰하고 맡겨주신 귀한 것들을 사양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고맙게 받아서 잘 키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집 앞을 지나갈 때 심어놓은 꽃들의 화사한 모습을 보시며 잔잔히 미소를 띠우는 동네 어른들의 모습에서 무언의 격려를 느끼는 것은 쪽파 씨에 담겨진 그분들의 마음을 알고 믿기 때문이다. 누가 시골인심에 대해 물으면 거리낌 없이 좋다고 대답하리라.
2009년 9월의 화창한 어느 날에
첫댓글 집 앞을 지나갈 때 심어놓은 꽃들의 화사한 모습을 보시며 잔잔히 미소를 띠우는 동네 어른들의 모습에서 무언의 격려를 느끼는 것은 쪽파 씨에 담겨진 그분들의 마음을 알고 믿기 때문이다. 누가 시골인심에 대해 물으면 거리낌 없이 좋다고 대답하리라./ 촌 인심은 어딜가나 따뜻합니다. 감상 잘했습니다.
새록새록 재미가 묻어나는글 잘 읽었습니다. 정원구경 우체통구경 쪽파밭구경 한번 해보고 싶네요. 좋은글에 감사합니다.
"쪽파를 사양하지 않고 두 분 모두에게서 받은 이유는 주시겠다고 손을 내밀은 분께 대한 조그마한 예의 때문이다. 아무리 내 것이 남아돈다 해도 땀 흘려 농사지은 것을 나누어 주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농사도 지어본 적이 없는 신출내기에게 덥석 귀한 씨앗을 넘겨주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 귀한 것을 주신다는 분들에게 누가 준다고 했다고 말하면 늦어버린 제안에 대한 거절인줄 알고 어색해하시는 모습도 보기가 싫었다. 그분들이 신뢰하고 맡겨주신 귀한 것들을 사양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고맙게 받아서 잘 키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살고 계신 주위의 인심이 참 보기좋읍니다. 따뜻한 정이 흐르는 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건필 하세요.
'내 인심이 남의 인심' 이라는 말도 있지요. 선생님의 예쁜 마음씨가 주위분들을 감동시키나 봅니다. 전원풍경이 그려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분들이 신뢰하고 맡겨주신 귀한 것들을 사양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고맙게 받아서 잘 키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쪽파밭 구경좀 시켜주세요. 구수한 인심이 묻어나는 글 잘 감상하였습니다.
새우젖으로 버무린 쪽파김치...밥 한공기 먹어 치울 수 있는 반찬이지요 선생님의 아름다운 내면이 보이는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