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송출신 만강 서석기(晩江 徐錫琦.대구서씨) 선생이 만주에 가서 공자묘를 모시기 위해 '의암 류인석' 선생과 '실곡 이필희'(초대 지평의병장) 선생을 만나서 교류한 자료가 영남 안동에서 발굴되었다.자료를 소장하고 계시는 분은 현재 안동에 살고 계신다.
만강 서석기 선생은 공자사당을 만들기위해 곡부(공자의 고향)을 방문하였고...안자상도 갖고 오셨는데...원래는 다른 분들 영정도 함께 갖고 왔으나 현재 남은 것은 아래자료뿐이라고 한다.그 때 당시에 류인석 선생과 실곡 이필희 선생과 교유한 것이다.(춘천쪽에 확인한 결과 공자묘를 세울 때 자료(실체물)가 처음 발굴 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래에 무이구곡도도 아마도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보시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항일의병과 독립운동을 기준으로 보면...보통 소백산맥을 기준으로 이북(以北)은 화서학파의 영향권이고,영남은 퇴계학파의 정재학파의 영향권이다.영남인사가 만주에가서 화서학파의 류인석 선생과 교류를 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실곡 이필희 선생이 1900년에 순국하셨으니까 그전에 만나서 교류를 한 것이다.
그렇다면...혹시....만강선생은 류인석 선생의 제자인가?아닌가?
아래 4번째 사진에서 이낙인李樂仁은 운강 이강년 의병장의 자字이다.을미의병 해산뒤에 운강 이강년 의병장이 만주로 유인석 선생을 찾아보고 돌아왓는데 아마도 그때 동행한 것은 아닌지?
뜻있는 분들께서 아래 자료를 번역해주시면 좋겠습니다.자료는 아직 학계에 공개안된 만강선생 문집인 유화록(遊華錄) 부록에 실려있습니다.
첫댓글 귀중한 자료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공부거리가 많아졌습니다. 익히 보아온 성함이지만 역사의 자취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만강 서석기 선생에 관한 자료는 처음 발굴된 것입니다.
춘천역사문화연구회에 올렸더니 처음 보는 무이구곡도,그리고 의암 류인석 선생이 모실려고 했던 공자사당에 대한 실체를 봤다고 좋아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