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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에 대한 진실과 오해 1
나는, 기독교인이 된지 얼마 후, 어머니를 방문하기 위하여 로스앤젤레스의 팜 스프링스에서부터 히치하이크(지나가는 차에 편승하며 가는 도보여행)를 하려고 하였다.
차를 얻어 타기 위하여 손을 흔들면서 한참 걸어가고 있을 때, 친절하게도 어떤 오순절파 교회 교인이 차를 세워서 나를 태워 주었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나는 내가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들려주었다. 내 말이 다 끝나자 그 사람은 나에게 “그러면 당신은 성령을 받았습니까?”라고 물었다.
이러한 질문을 처음 받아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글쎄요, 제 생각에는...저는 확실히 하나님의 영을 내 생활을 통하여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마약을 끊었고, 도둑질, 거짓말, 욕하기 등, 습관적인 나의 죄와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었으니까요”라고 대답하였다.
“아니요, 그런 것들 말고...” 그 사람은 조금 답답한 듯이 “당신은 성령의 침례를 받았습니까? 당신은 방언을 하나요?”라고 물었다. 그 사람은 내가 어떻게 죄악의 사슬을 끊고 승리를 거두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어떠한 황홀한 극치의 경험을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그 사람은 내가 기독교인으로서 반드시 소유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그 사람의 표현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아직 경험하지 못하고 있던 방언”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기독교인으로서 처음 출석하기 시작하였던 교회들은 모두 오순절파 - 보통 Glossolalia 라고 부르는 방언의 무아경을 믿는 - 교회들이었다. 그러한 교회의 교인들이 다 같은 방법으로 하는 방언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에도 방언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교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서 나는 많은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을 만나볼 수 있었으며, 성령께서 실생활 속에서 이루어 놓으시는 거듭남의 경험을 인정하는 교인들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와 개인적인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성화의 경험에 대한 관심보다는, 얼마나 자주 방언을 하고, 얼마나 깊은 무아경의 환상을 경험하는지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예배 시간만 되면 교회는 서로 다른 방언의 소리로 꽉 찼으며, 방언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자책하는 분위기가 깊이 깔려 있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성경이 말하는 방언이 무엇인지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 초교파적으로 나타나는 방언
현대 기독교에 나타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현상 중 하나가 바로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방언은 거의 모든 기독교에 퍼지고 있으며, 기독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아프리카 토착종교, 불교, 천주교 등 거의 모든 종교계 안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비록 그들이 하는 방언의 방법은 다를지라도 자신들이 믿는 신의 능력에 압도되어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초인간적인 말을 중얼거린다는 공통성이 있다.
모든 종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현상은, 만약 현재 기독교회에서 급속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방언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라면, 이것은 누군가가 거짓으로 조작하고 있는 속임수일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여 준다. 은사는 반드시 “진리”라는 통로를 통해서만 내려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나 오류에 상관없이, 또는 누가 어떤 종교를 믿는지에 상관없이 방언의 은사가 내려질 수 있다면, 방언의 은사를 통하여 전파되어야 할 복음도 그 진실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방언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서 가짜로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방언은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다른 교인들이 방언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받지도 않은 방언을 스스로 만들어서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며 자신도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 무엇인가를 받아서 초인간적인 힘에 의하여 방언을 하고 있다. 그들이 기도할 때에 어떠한 힘이 그들을 제압하게 되고 그들이 생각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이상한 말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하에서, 그들의 마음은 평화를 느끼게 되고,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이상한 힘이 자신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성경은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살전 5:19~22). 거의 모든 기독교 안에 퍼지고 있는 방언, 만약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면 우리는 이것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열심히 구하여야 한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진실을 증거해야 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방언의 은사가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이유
방언은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은사이다. 성경은 성령의 은사 중 하나로서 방언을 소개하고 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모든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 고전 12:4~6,10~11.
방언에 대하여 첫 번째로 말씀한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막 16:15~18. 예수께서는 온 세상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할 것을 명령하시면서, 믿는 자들에게는 방언의 은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복음 전파와 방언의 은사는 병 고치는 은사와 함께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오늘날에도 복음의 전파가 필요 되므로, 방언의 은사가 복음을 전파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려져야 한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들의 기별은 방언의 은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복음을 가졌더라” 계 14:6.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족속과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방언의 은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3. 누가 누구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시는가?
방언의 은사를 내리시는 분은 누구인가? 방언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장소에 가야만 하는가? 누가 누구에게 이러한 은사를 주시는가? 앞에서 읽어본 대로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라고 성경은 은사의 출처를 밝히고 있다(고전 12:4~6). 4절에서는 성령을, 5절에서는 예수님을, 6절에서는 하나님을 은사의 출처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은사를 성령의 은사라고 주로 말하는 이유는 예수께서 하늘에 가실 때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성령은 은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은사를 그리스도인에게 전하는 것은 성령이지만, 하늘의 세 분 지도자가 은사를 내리시는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안다면, 은사가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교인들이 다 같은 은사를 받을까?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바울은 교회를 몸의 지체로 비유하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 12:8~10.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하여 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은사를 주신다고 증거하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 오늘날 기독교회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누구든지 성령을 받으면 그 결과로 방언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신자들은 방언을 거짓으로 만들어 내고, 어떤 이들은 실망하여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성령의 은사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2장 29-31절부터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확실히 증언하고 있다.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병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그 대답은 “아니다!”이다. 다 사도일 수 없고, 다 선지자일 수 없고, 다 병고치는 은사를 받을 수 없고, 다 방언을 말할 수 없다고 바울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방언을 해야 성령의 침례를 받은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서적 주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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