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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에서 장터목 내려오면서 임영빈
지리산의 선물
친구들 모임에서 영빈이가 지리산 산행을 제시했다. ‘저것이 또 일을 만드는구나. 전번에는 한라산으로 설레발을 치더니 이번에는 지
리산이네’ 친구들은 모두다 환영 일색이었다. 그렇잖아도 지리산 못간 것이 늘 걸렸는데 벗들과 갈 수 있는 이 기회가 참으로 좋다며
찬성을 했다. 내게 같이 가자는 권유에 못 간다고 하자 의중이가 정색을 하고 ‘서운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이번기회 아니면 평생 못
가는 거야’ 결국 나는 친구들의 권유와 협박(?)에 굴복하여 동참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나는 지리산의 중압감으로 가위눌린듯한 나날
을 보내야 했다. 막상 산행에 동의는 했지만 실제로 내가 지리산을 올라간다는 것은 무리였고 친구들도 속으로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
다.
10월8일 목요일 아침 일곱 시, 우리 일행은 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 행 고속버스를 탔다. 버스는 열한시에 목적지인 경상남도 함양의
백무동에 도착했다. 우리는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설레임 속에서 산행을 출발했다. 탐방소에서 입산 신고를 하고 통과하니
두 갈레 길이 나타났다. 오른쪽은 한신 계곡, 세석대피소 가는 길이고 왼쪽은 장터목 대피소 가는 코스이다. 우리가 예정하고 있는
코스는 왼쪽 방향으로 하동바위, 참샘, 소지봉을 지나 장터목대피소에 이르는 코스라 한다. 공터를 잡아 최기영의 멋진 구령에 맞추어
국민체조로 몸을 풀었다. 준비운동 없이 함부로 산을 오르면 사고가 난다고 했다.
장터목 까지 5.8km, 돌과 바위뿐으로 산길은 처음부터 계속 오르막으로 이어져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무슨 산이 흙은 없고 돌뿐이
야? 신기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대장에게 항변한다. 산이 본래 그런 걸 난들 도리가 있나요? 대장이 너털웃음을 웃는다.
30분 쯤 올라갔을까 대장이 안 올라온다. 등산객중 다친 사람이 있어 치료해주고 있다한다. 대단한 선행(善行)임에도 불구하고 불현
듯 불안감이 스쳐가는 것은 왜일까?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가끔 덤태기를 쓰는 일들이 자주 있어서 그런가 보다. 참샘(1,125m)에서
휴식을 취하며 숨을 고르고 있는데 어떤 등산객이 삼환이 에게 인사를 한다. 아까 다친 사람의 일행이라며 다친 사람은 다행히 구조
대에 연락되어 업혀갔다 한다. 굴러 떨어져 다리가 찢어지고 기절을 했다는 말이 갈 길이 먼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야기였다.
길은 점점 더 가팔라졌다. 모든 길이 돌과 바위로 이어져 있는데 가도 가도 끝이 나지 않는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며 영빈이가
‘여기는 아마 70도 경사가 될 것 같다’며 주의를 하라고 했다. 산이 높다는 것은 골이 깊다는 것이고 그 깊은 골을 올라오려니 급경사
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배낭이 유독 큰 종진이, 김치에 침낭까지 돌덩이처럼 무거운 배낭을 멘 최기영, 대원들의 필요한 물
건 까지 다 챙겨넣어 지고 올라가는 삼환이 정말 놀랍게 다가와졌다.
소지봉(1,312m)을 지나 능선인 듯싶은 어느 지점에 도달했다.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보는 능선 길이다 ‘다 왔다’는 안도감으로 시간
을 보니 오후 세시 반을 가리킨다. ‘이제 다 왔어’ 서로가 격려를 하며 길을 재촉했다. 의중이 신발창이 떨어져 영빈이가 끈으로 묶어
주고 있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능선이 조금 이어지더니 다시 험한 바윗길이 거듭된다. 얼마를 가다가 영빈이 다리에 트러블이 생겼
다. ‘아이고 힘들어 너희들 먼저 가라 뒤 따라 갈께’ 영빈이 입에서 그런 고통스런 말은 처음 듣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말이다. 우리는 늘 산에서 영빈이가 초인인줄 알아왔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힘들어 못가겠다는 말이 나올 때 참으
로 놀라웠다. 그래 영빈이도 인간이지 아프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인간이야? 영빈이로부터 인간에 대한 정감이 부쩍
풍겨진다. 기영이가 영빈이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모두들 지쳐, 가다 쉬었다를 반복하다 보니 장터목대피소 1.1km 라는 표시판이
보인다. 이제 진짜로 다 왔구나 싶었는데 막상 장터목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참을 갔는가 싶으면 겨우 100m 정도다.
가파른 산길의 100m는 엄청난 길이다. 천신만고 끝에 대피소가 보이는 능선길에 올라서니 저 멀리 까마득한 지점들이 모두 산으로
이어져있다. 겹겹이 이어진 산맥들 그 어느 지점은 구례로 어느 지점은 남원으로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지리산 하나만도 끝 가는
곳을 가늠할 수 없도록 저렇게 광대무변(廣大無邊)한데 순간을 살다 떠나야할 티끌 같은 객(客)들이 세상을 너무 헤집고 소란스럽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산마루 한 지점으로 해가 지고 있다.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고 1,600m 고지에서 바라보
는 일몰의 황홀함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멀리 보이는 지리산 자락은 자욱한 연무(煙霧)로 저녁 밥 짓는 고향마을처럼 푸근하고
아늑해 보인다.
우리의 숙소는 대피소 1호실 2층이었다. 나무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복작거렸고 개인별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그 장소는 각자가 누우면 딱 맞는 면적으로 되어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하다. 담요를 깔고 덮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영빈이가
편한 자리 번호까지 신경 쓰며 예약을 해놓은 것이다. 수용인원 총 155명, 평일인데도 만원이다. 식사를 위해 취사장으로 갔다.
북적이는 취사장은 저녁준비를 하는 손길들로 분주하다. 연인들, 가족들, 친구들끼리 그렇게 모여와 좁은 공간에서 같이 손발을 맞추
며 저렇게들 행복해하고 있다. 햇반, 불고기, 김치, 된장, 풋고추, 된장찌개등 다채로운 반찬을 곁들인 우리의 식사는 참으로 꿀맛 같
았다. 밤 아홉시가 되니 대피소 전체가 소등 되었다. 희태가 반창고로 입을 붙인다. 사람들 모두 입을 벌리고 자는 수가 있다며 반창고
로 살짝 붙이고 자면 건강에 좋단다. 별 희한한 법도 다 있네 하고 생각했는데 중간 중간 일어나 말하는 것은 정작 희태다. 나는 환경
을 바꾸면 잠을 제대로 못자는 경우가 많은데 이날은 최악이었다. 아랫층의 코고는 소리가 2층 마룻바닥을 들썩거리게 하고 건너편에
서 간간이 들려오는 간드러진 여자목소리가 더욱 신경을 예민하게 한다. 옆에 삼환이가 부시럭 거려 시간을 물었더니 열두시라 했다.
앞으로 네 시간을 어떻게 누워 견디나 하고 고민을 하는데 삼환이가 잠자는 약이라며 먹으라 한다. 사양했지만 기어코 먹으라 해서
먹었으나 소용없었다. 신기도 잠을 못자 한숨과 하품을 계속하더니 나중에는 잠들어 잘 잤다. 온도를 너무 높여놓아 모두들 옷을 벗고
속옷 바람으로 자는데 종진이는 담요를 덮은 채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옛시골의 '통시''정낭'같은 재래식 화장실 때문에 특히 깔끔
한(?) 희태는 엄청 고통스러워했다.
새벽세시에 일어나 먹는 누릉지해장국은 나름대로 별미였다. 안 먹겠다던 친구들도 한 국자 맛을 보더니 너도 나도다. 네시에 천왕봉
을 향해출발했다.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길을 출발했는데 대피소를 출발하기가 무섭게 엄청 가파른 돌계단이다. 10분도 안되어 숨이
콱콱 막혀왔다. 눈앞에 비춰지는 돌 외에 길이 어떤 형태인지 주변은 어떤 상황인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되어 답답기 짝이 없다. 가파른
길이 이어지고 땀이 계속 흐른다. 느낌상으로는 반은 올라왔는가 싶은데 갑자기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어라, 이게 무슨 조화람. 내리
막길이면 기뻐야 될 텐데 내려가는 만큼 다시 올라야 할 것이니 걱정이 늘어진다. 한참을 내려가니 마치 도로변 찻길에 닿은 기분이
다. 거기서 길은 다시 오르막길로 이어졌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칠흑 같이 캄캄한 산길에 전등불빛이 도깨비불처럼 출렁거린다. 산은
오르기에 가장 어렵고 위험한 형태로 천왕봉 가는 길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밝은 낮에 보면 절묘하고 신비로운 모양일지 모르나
칠흑 속 불빛에 보이는 바윗길은 기괴하고 위태롭기 짝이 없다. 때로는 소름이 끼칠 정도이지만 일체의 잡념을 버리고 계속 오르고
또올랐다. 인생은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것처럼, 다 아는 것처럼 큰소리치지만 실상은 이 캄캄한 새벽, 불빛하나로 더듬어야 하듯
삶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한 치의 앞도 못 내다보는 것이 우리의 삶인데도 자만하고 큰소리치며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지도 모
른다. 천왕봉이 가까워지자 바윗길은 더욱 가파르고 험해진다.
빗방울은 굵어지다 가늘어 지다를 반복한다. 새벽바람에 산을 찾아 시끄러운 중생들에게 매서운 본때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강풍이
불어댄다. 바윗길을 올라오는 불빛은 계속 이어진다.
드디어 1915m! 남한 내륙 최고봉 천왕봉!
정상에 올라서니 거센 바람이 요동을 친다. 천왕봉의 신령함이 속세의 근접을 허락하지 않을 양 계절에 이른 강풍회오리로 요동을
치고 있었다.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일출을 볼 수 있다’라는 말이 천왕봉 일상을 능히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등산객으로 북적인다. 한 발짝 끝은 천 길 낭떠러지로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인증샷
을 위해 겹겹이 서있는 인파들이 강풍과 추위로 발을 동동 구른다. 우리는 사진을 찍다말고 주변의 독촉과 눈살에 자리를 내어주고
하산 길을 나섰다. 드라마의 웃기는 말이 생각난다. ‘천왕봉 인증샷 북새통!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야!’
날이 밝아 훤한 산길에도 천왕봉을 향하는 여유로운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제석봉 벌판의 초목은 불어오는 바람결에 한껏 제몸을
굽혀 손발을 맞추어준다. 사사건건 부딪히고 반기를 드는 것이 용기요 소신이라 주장하는 세태를 보아오다가 초목들 순응의 지혜와
자연세계의 심오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대피소에 내려오니 여덟시 오 분 전이다.
영빈이와 삼환이가 취사장 입구를 확보하여 라면을 끓였다. 라면은 계란을 잘 풀어서 덜 삶긴 상태에서 퍼야 먹을 때가 되면 가장 완
전한 상태가 된다. 푹 삶으면 먹을 때엔 퍼져서 맛이 없다. 계란은 풀지 않았지만 정성으로 삶은 라면은 금새 동이나버렸다. 삼환이가
라면을 더 사야겠다며 걱정을 한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청소한다고 짐 싸서 2호실로 가라한다. 우리는 2호실에 내려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뒤늦게 잠이 오기 시작한다.
열시 반경이 되어 우리는 하산을 서둘렀다. 의중이는 어디서 여자신발을 하나 구해신었다. 영빈이가 중산리로 내려가자고 한다. 모두
의의 없다. 삼환이와 영빈이의 말에 우리는 토를 달지 않는다.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 역시 가파른 돌계단이다. 장터목산장을 올려다
보니 고사목 군락이 장관이다.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는 고사목, 수백그루나 되어 보이는 고사목이 산을 하얗게 도배하고 있었다.
어제의 백무동처럼 중산리 계곡도 흐르는 물소리가 음악처럼 아름답다. 지리산은 계곡마다 노랫소리 그윽하다. 흔히들 지리산에서
한과 아픔을 찾아보려하지만 장엄하고 수려한 지리산 어느 곳에도 그런 상흔은 남아있지 않았다. 지리산은 비우는 자에게 새로운 것
으로 채워준다. 새벽에 요란스레 심술을 부리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더없이 화창하다. 가파른 바윗길 돌계단이지만 곱게 물든
단풍에 발길은 경쾌하기만 하다
올라갈 때 미처 느끼지 못했든 아름답고 아기자기함이 자꾸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사람들마다 원대한 꿈과 계획을 가지고 각양각색으로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천왕봉 일출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자신의 건강, 가족의 화목, 주변과의 회복, 풍요로운 삶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왕봉을 찾을 것이다. 그것도 깜깜한 밤에
불빛 의지하여 바윗길을 오르는 정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비록 기상의 심술로 일출을 못 보는 일이 생겨도 어둠을 뚫고 천왕봉
에 오른 사람들에게 지리산은 엄청난 선물을 주고 있을 것이다. 건강도 주고 감동도 주고 이그러진 관계도 회복시켜 줄 것이다.
그래서 지리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면면이 모두 저렇게 밝고 건강해 보이나 보다. 나 역시 지리산을 꿈꾼 결과, 천왕봉을 거뜬히
오를 수 있지 않았는가? 이보다 더 엄청나고 놀라운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친구들과의 지리산 1박2일 그 짜릿하고 감미로운 기억은 곧 그리움으로 밀려올 것만 같다.
2015. 10. 13. 石泉 김정태
사진찍는 일은 손땠는데 어떻게 몇컷 찍은것이 있네요. 작품하나 건졌다
천왕봉 다 이르러 바위앞에서 바람을 피하고 있는중 임영빈이 어둠속에서 뭔가 열심히 맞추고 있다.
헤드랜턴에 빛나는 김신기 신령이 내려온 것 같아
새벽 사진은 오삼환 대장이 다 찍었는데 아깝게 다 날아가버렸다 다행히 내 카메라에 대장얼굴 나왔다
천왕봉에서
내려가려는데 의중이가 불러 천왕봉 표시앞에서 대장얼굴 보인다
첫댓글 멋진 글에 멋진 사진이 아쉬워!
멋진사진 찾아서 올려 보았시요
@김정태 굿!
귀한 먹거리를 준비해온 정성들, 취사장에서 치열하고 정겹던 모습, 칼바위 얼마남았냐를 외치며 하산하던 지친모습들,
박선길 형 고향 산청 어느 식당에서 먹던 토종백숙의 맛, 산청의 깨끗한 이미지와 후덕한 인심에 거듭거듭 감탄하던 김종진의 산청별곡
지면이 좁아 다 쓰지못하고 생략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살아 남아 오래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위에 천왕봉 표시석 사진은 있는 줄도 모르고 모두 내려가려는데 황의중이가 큰소리로 오라고 해서 어렵게 찍은 귀한 사진입니다.
돌 비석 뒷면에 천왕봉이라 쓰인 표시가 있었는데 사진찍는 사람이 한발만 물러나면 천길 낭떠러지 그렇게 위험하게 되어있어요.
생각만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위태로운 곳에서 의중이가 찍은 사진입니다.
대장의 카메라에 더 많은 사진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카메라 고장으로 모두 날려버렸으니 오호통재라 애석하게 되었어요
안 간 사람도 이글 읽으면 간 듯 할껴........... 그 때는 그렇게 고생스럽더니, 글 읽으니 감회가 새롭네..........
요즘 세계최고의 여행기란 부제가 붙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거의 다 읽어가는데 석천선생의 지리산의 선물을 읽어보면 연암의
글처럼 읽기만 해도 가본 것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지리산의 현상과 석천의 마음이 하나로 어우러진 인상을 받는다. 아쉬운 것은
함께 간 친구들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고 도중에 많이 보았을 여자 얘기가 한마디도 없어 아쉽다.여자와 담쌓고 사는지 아니면 청서가
빨리 올리라고해서 생략하고 썼는지는 모르지만 석천의 다른 글도 여자얘기와 친구의 재미있는 육성이 하나도 없어 아쉽다.연암 시대에
여자얘기나 같이간 사람과 함께 말한 직접화법이 어려웠을텐데도 집어 넣었는데...
혹시 아나 본인이나 자식이나 자손이 석천문집을 낼른지.산행기를 적으려면 빠진 유모와 여자얘기를 넣으면 훨씬 인간적인 냄새도 나고
친구들의 이름이나 호가 그의 육성과 함께 후세에 남겨져 이백년 후에 내가 연암 글을 읽 듯이 읽어 볼지
단체로 잠을 잘 때는 여기저기서 고단한 박자음이 들리기 마련이니 술 한잔 하고 자는 게 비결인 듯해요, 좀 정량 이상으로.
암튼 우리 나이엔 좀 벅찬 산행으로 보였고, 세월아 네월아 하는 산행이 걸맞을 듯 한 느낌을 갖었어요. 글구 한 걸음 한 걸음 진행 그 자체가 목슴 건 과제였으므로 여잔 간간이 보여봐야 업혀가야 할 판이라 그 소망스런 에피소드는 강 건너 등불. 그러고 보니 좀 아쉬어 다시 가야겠네 죽림비현 앞장 세워. 기대 반 걱정 반. ㅋ.
영빈이가 눈마개 귀마개 준비하라 했을 때 예사로 들었는데 흘려들을 것이 아니었어
죽림선생 지적을 겸허히 받아드립니다. 서두를 조금 추가했고 여자이야기도 한줄 넣었어요.
사실 여자이야기를 쓰면 고리타분한 인간이 한명 알레르기 반응을 이르켜 난리를 쳐요.
교수들이란 옛부터 그렇게 막히고 고리타분한것 잘 알고있잖아요?
지리산 천왕봉 가는 길이 눈 앞에 선히 보이는 듯 하네요.
산행기의 진수를 읽는 기분입니다.
올라가기도 바쁜데 언제 지명까지 일일이 메모하셨을까?
꼼꼼도 하시지.
지난해 한라산 갈때는 석천선생이 못가서 산행기가 없었는데, 석천선생 이번에 연습 단단히 했으니까 겨울에
눈덮힌 한라산 한번 갑시다.
한라산 설경을 보시면 더 멋진 산행기가 나올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