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추석을 회상하면 마산
선창가의 짠 내와 함께 비릿한 생선 내음이 난다.
대목에 맞추려고 며칠 전부터 출어 준비를 하던 고깃배들.
입 안의 담배 연기를 도넛처럼
동글동글하게 말아 뱉어내듯,
고깃배 작은 연통 위로 "통,통,통"
올라오던 푸른색 동그라미들을
세고 있으면
"New Orleans gambler"가 꿈꾸었을 "트렁크"
만큼이나 큰 얼음덩이가 컨베이어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러 "크럇샤" 에 닿자마자
산산이 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어창으로 떨어지고
며칠 뒤에는 얼음 대신 그 자리를 메운 생선들이
서리에 하얀 입김을 얕게 뱉어 내면서 햇빛을 받아 희미하게 무지개를 그린다.
길바닥에 낮게 펼쳐놓은 대소쿠리마다 가득
참돔, 조기, 전광어...
짠물로 헹군 젖은 손으로
생선값을 불룩한 앞주머니에 쑤셔 넣던 아지매들이 풍기던
그 냄새다.
몇십 년이 지난 오늘엔 아파트
높은 층에서
비릿한 그 내음새 대신
beef steak
기름진 향내 퍼지는 우아한 명절을 지낸다.
추석 때 입었던 새 옷, 새 신발은 희미한 기억 속으로 숨었다.
대신 얼마 전
고향보다 더 먼 곳으로 여행 갔던 기억은 생생하다.
타향에서 산 지가 하도 오래라 이젠 서울 본토박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친구들.
뿌리는 바다 쪽이라 그럴지
동기 모임에 오면 그 비릿한 냄새가 살짝 난다.
창립 멤버들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은 고인이 된 그 친구가 모임이 제대로 자리 잡게 멍석을 함께 깔았다고.
고향엔 자주 가지 못해도
그런 친구들 덕분에
고향 친구들은
자주 만날 수 있다.
"New Orleans gambler"는 오직 술에 절었을 때 만
만족해했다던데
이제 술은 안 마시고 친구들 얼굴만 봐도 만족하는 "서울"
사람들이 늘었다.
귀에 익숙했던 "마산"
촌뜨기들의 경상도 식 말투와 행동거지도 많이 가셨다.
여기 오래 살다 보니 이젠
"서울 사람" 다 돼 그런 걸까?
어쨌거나 한 번씩 만날 때마다
나이를 잔뜩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서로 안도한다.
그럴때면 누가 또 풍겼는지 모를
그 비린내가 슬쩍 나고
그게 마산 냄새인 양 편해진다.
아마도 그 남쪽 바닷가 출신들이 모여
술 마실 때쯤이면
생선회
안주로 나오거나 말거나
Ivan Pavlov의 벨이
저절로
울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