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목포 유달산의 개요
우리나라 노령산맥의 최 서남단에 위치한 유달산은 140ha의 면적에 높이 228m로 그리 크고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영들이 거쳐 가는 산이라 하여 영달산 또는 호남의 ‘개골산’ 또는 ‘소금강’이라 불리 우며 위치를 달리하는 입암산, 양을산 그리고 대박산을 바라보며 서쪽에 우뚝 솟은 기암괴석의 산이다. 이 산의 한자표기 유래에 대해서는 지금은 선비 유(儒)자를 써서 儒達山으로 쓰고 있으나 옛날의 문헌에는 다르게 표기하고 있다. 楡(느릅나무 유)達山 이라 하였고,「세종실록지리지」등에서는 鍮(놋쇠 유)達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게다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발행한 「木浦誌」(1914년 간행)에는 諭(깨우칠 유)를 쓰고 있어 이처럼 유달산이란 이름이 儒(선비 유)達山으로 쓰여지게 된 경위나 시기는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산을 명산으로 부르는 이유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목포가 겪은 아픔의 역사이자 일본이 우리나라에 남긴 분노 할 교육적 유물의 문화와 산물 등을 온통 간직하고 있어 후세들에게 안보적 교육 자료로 충분하기 때문이며 동시에 일개의 산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찰과 볼거리 그리고 정상까지 남여 노소 누구든 편한 맘으로 쉬면서 산의 높이에 따라 주변의 모든 풍광들이 달리 보이도록 쉬어가면서 구경 할 여러 개의 누정들은 물론 목포시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고 동시에 압해도를 비 롯 주변 신안군의 천혜의 다도해 섬들 그리고 영암과 무안 등의 광활한 자연의 풍광들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산으로 목포의 지명 보다 오히려 더 널리 알려진 호남 관광의 최고의 명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쩜 아름답고 장엄한 금강산의 축소판이라고 부를 이 산은 찾는 이 모두의 꽉 막힌 가슴을 확 트이게 하고 철 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그 비경의 멋은 주야간 어느 경우나 환상 그 자체이며 또한 큰 해풍을 막아줌으로써 목포를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게 감싸주는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이기도 하다.
더하여 가파른 기암괴석들의 산이지만 초입에서 정상의 일등 바위 까지 수많은 돌계단과 누정의 쉼터들이 오르는 사람들 마다 힘들게 하지 않고 20개가 넘는 바위 돌의 이름들과 이순신 장군 동상, 이난영의 노래비, 고하도의 아름다운 낙조를 구경하는 낙조대와 많은 사찰들 그리고 일본이 조선인의 맥과 기를 꺽기 위해서 바위에 남긴 그들의 불교문화의 잔재가 발걸음을 멈추게 하며 노적봉과 이순신장군의 설화와 일본 놈들에게 유달산을 3번이나 팔아먹은 한국의 김선달인 정병조란 사람의 실화, 난 공원, 유달공원, 달성공원, 우리나라 최초의 야외 조각공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적봉 옆 요즘 인터넷 검색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기괴한 여인나무(어미목)와 다산목(多産木 : 새끼목) 전설 등이 이 산을 명산으로 부르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명산임에도 불구하고 슬프게도 이 유달산은 일제시대에 일본을 비롯 미국, 영국, 내델란드 등 외국인 거류지역이 유달산 밑 현재의 유달동과 대의동에 들어서 밀려드는 인구의 증가에 맡 물려 가난한 조선인들이 택해야만 했던 유달산 아래쪽 고지까지 마치 송이버섯들이 모인 것 같이 빽빽한 초가집들이 지금도 기와와 스레트 그리고 양철집으로 흉물스럽게 목포의 아픈 역사를 말해주고 있으며 이러한 목포와 우리민족의 슬픔을 유달산은 함께해 왔으니 오늘날의 관광의 대명사이자 좁게는 목포시민이 이 산을 사랑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는 듯 하다.
다행히도 목포시는 최근 몇 년 전부터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역사적 수난의 아픔을 격었던 것과 시대적 맥락을 같이한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의 암울한 정서에서 벗어나 활기차고 희망찬 목포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 유달산의 화려한 야경, 영산강 하구언 쪽 인공폭포, 원도심의 화려한 루미나리에 거리 그리고 고하도에 홍홍 색색의 야간 조명등을 밝혀 항구로서의 천혜의 조건에 빛의 도시를 접목하여 그 아름다움을 더함으로써 홍콩과 시드니를 방불케 하는 세계적 관광지로 발돋움 하고 있으며 또한 현재 고하도와 목포간의 목포대교를 건설 중이고 목포 앞 바다에 해양음악 이동 분수대 그리고 유달산 능선에 남산 타워 같은 거대한 목포타워를 계획 중이니 압해대교 다리와 모두 함께 어우러지면 야간과 주간 모두의 관광지로 목포의 관광 미래는 무척 밝아질 것이다. 2. 유달산의 일제가 남긴 문화적 유산과 볼거리 등 1) 노적봉과 고하도 노적봉은 유달산 등구의 초입 계단의 앞에 60m의 높이로 우뚝 솟아있는 큰 바위 봉우리
이다. 누가 이 노적봉과 고하도 그리고 이순신 장군과 엮인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왜놈들을 무찌른 설화를 모르랴 만은 일제시대 목포 앞 바다에서 목포를 삼키려고 피 눈빛 하며 몰려든 수백 척의 배를 적은 군사로 많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이 봉우리에 짚으로 만든 이엉을 덮어 아군의 군량미로 위장하고 영산강에서 횟가루를 흘려보내 쌀 뜸 물로 보이게 하여 사람이 많이 살고 우리의 군사가 엄청난 것처럼 속여 겁을 먹은 왜군이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가게 했다는 장군의 뛰어난 전술을 이야기 한 것으로 그의 뛰어난 전술이 지금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한때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어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또 이러한 전술을 이야기한 설화로 진도의 강강술래, 영산강 횟가루, 진도 우수영 전투에서 울뚤목 쇠줄 등은 노적봉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고하도는 목포시내에서 약 2km 떨어진 남서쪽에 위치한 반달 모양의 섬으로 목포시의 남쪽 해안을 감싸 안은 듯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북쪽비탈은 바다 건너 유달산과 마주하고, 동쪽으로는 영산강 하구뚝과 목포공항을 마주하고 있다.
고하도는 임진왜란때 이충무공에 의해 전략지로 활용되어 왜적의 침투를 막아낸 곳으로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충무공기념비(지방유형문화재 39호)가 서 있다. 1722년 충무공의 5대손인 이봉산이 건립하고 남구만이 비문을 짓고 조태구가 글을 쓴 것이며, 비신에는 일제때 일본 군인이 쏜 총탄 자국이 있으나 거의 완전한 상태이다.
또한 이 지역을 지방기념물 10호 이충무공 유적지로 지정하여 충무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충무공은 명량승첩 후 1597년 10월 29일 이곳으로 와 진을 치고 그 이듬해 2월 17일 고금도로 옮기기까지 108일간을 주둔하며 군량미를 비축하고 전력을 재정비하였다.
섬의 둘레는 불과 12km에 지나지 않지만 그만큼 이 섬이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곳이 무너지면 호남의 곡창지대를 흐르는 영산강을 왜구에게 내어주는 샘이었기 때문이다. 목포의 유달산 노적봉과 함께 충무공의 전설적 일화와 호국 얼이 서린 섬이며 울돌목과 제주도로 빠진 해로이기도 한 이 곳은 고화도, 보화도, 비노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목포 사람들은 이충무공 기념사업회를 조직하여 매해 4월 28일이면 이곳에서 공의 정신을 추모하는 탄신제를 봉행하고 있다. 현재 여객선 터미널에서 8차례 선박이 왕복 운항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찾아가서 고하도의 석양을 바라볼 수 있다.
넘실대는 물살을 가로질러 고하도를 가노라면 잠시 세상시름 잊고 옛날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목포시에서는 현재 고하도와 목포 북항 간의 목포대교를 건설 중이며 2010년 경 완성되면 압해도와 목포 간의 압해대교와 더불어 무안, 영암, 해남, 그리고 뭍과 섬을 연결하는 신안군의 섬들과 어우러 최신식 휴양시설과 해양레저 스포츠로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관광 메카의 중심지로 그 기대가 크다.
2) 기괴한 여인나무와 설화 소개
. 나무명 : 팽나무 . 나무의 설화명 : 여인나무(어미목)와 다산목(多産木 : 새끼목) . 연대 : 1900 . 설화발원 : 목포시 죽교동 박인호의 꿈 이야기
. 위치 : 유달산 노적봉 옆 . 나무수량 : 어미목 과 새끼목(여인나무와 다산목 1 그루 )
이 나무는 목포 유달산 노적봉 옆 언덕에 위치한 나무로 이 나무의 설화를 추적해보면 분명치는 않지만 1900년대 유달산 밑 목포시 죽교동의 한 박 노인의 꿈의 이야기를 통해 이 나무의 사연이 구전되어 옴을 추적해 보았다. 원래 이 나무는 맨 처음 발견된 어미목을 여한목(女恨木 : 한스러운 여인나무)이라는 이름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1910년 그 어미목인 여한목(여인나무)에서 뻗어나온 새끼목인 다산목(多産木)이 있는데 2000년부터 목포 시청이 이 기괴한 모습을 한 새끼목을 여인나무라 칭하여 불렀다가 들려오는 이 나무의 설화에 따라 다산목(多産木)이라고 2007년에 목포 시청의 공식적인 나무 명으로 정하여 현재 목포의 관광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화제의 이 나무 이름과 유래의 설화는 당시 새우 젖 60%를 전국에 공급해 오던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 전장포의 한 어부의 아내로 18세에 결혼 후 16명의 자식을 두었으며 이러한 식솔이 너무 많아 남편이 돈이 많이 되는 홍어 잡이를 위해 흑산도로 갔다가 홍어를 만선하여 돌아오는 도중에 거센 풍랑에 그만 침몰하여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허지만 그래도 살아서 돌아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두 모녀는 버릴 수가 없었다. 처음엔 딸의 한쪽 다리가 성치 못해 어머니가 먼저 현재의 인적이 드물고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띠지 않는 유달산 노적봉 옆 언덕에서 어선들이 목포의 포구로 들어오는 고하도 쪽 길목을 지켜보고 사위를 기다렸으나 끝내는 그 자리에서 마찬가지로 기괴한 여인의 모습으로 죽게 된 여인나무(어미목)가 되었다. 그 후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어머니를 찾아 동일 자리에 찾아온 딸이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사실을 목격하고 그 자리에서 한스러운 세상과 여인의 모든 수치심을 버린 채 생을 포기하고 현재의 기괴한 모습으로 죽어 어미목(여인나무)에서 뻗어 올라 자라온 새끼목(다산목(多産木))이 되었으며 돌아오지 않는 사위와 남편을 죽어서까지 지금도 두 모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언제부턴가 입으로 전해오는 것으로 사실과는 다른 설화 그 자체라고 할지라도 현실을 부정하고 진정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른 채 아름답게 보이나 잡을 수도 또 거기라고 결코 행복의 열쇠가 없는 무지개 빛을 쫓아가는 사람들과 흔들리는 가정에 이 두 여인의 사랑을 통하여 큰 교훈과 경종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유달산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차라리 이 다산목(多産木)의 교훈을 배우기 위해 유달산을 찾고 또 이 다산목(多産木)이 애를 많이 난 여인을 상징 하므로 애를 낳지 못한 여인들과 결혼을 앞둔 여인들이 이 나무의 기(氣)를 받으러 매년 수없이 찾으며 또 이 나무를 통해 여인의 사랑을 배우기도 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잠재우기도 한다는 목포 문화관관광 해설가(사)들의 침 튀기는 구성진 해설이 관광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 여인나무(女人木)와 다산목(多産木)인 두 모녀의 아름다운 사랑 얘기로 숙연케 하고 있다. 헌데 최근에 안타깝게도 여성 단체들의 반발과 이 나무 관리에 골치를 앓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화제이기도 하다. 최근에 인터넷 검색어로 뜨고 있는 검색어는 ‘여인나무’ 이지만 정식 명칭이 다산목(多産木)으로 바뀐 후 2008년에는 ‘다산목’이라는 검색어를 치게 되면 컴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3) 새천년 시민의 종
이 종은 목포시를 상징하는 새천년 시민의 종으로 유달산 노적봉과 여인나무 옆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데, 종은 원래 종교적인 의미가 크지만 일반적으로 학교 등에서 시간을 알리는 매체라고 하는 점에서 볼 때, 현재 목포 시민의 종이 있는 노적봉 옆은 과거 시계가 많이 없던 일제시대에 특히 노동자들에게 낮12시 정오를 알려주는 대포인 오포대와 지금은 자리를 이주한 목포 MBC 문화방송국(당시는 RMB 라디오 목포라고 했음)과 일제시대의 측후소가 있던 자리라는 점에서 그 위치적인 특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방향을 보면 일반적으로 종각의 방향은 정남쪽으로 하는 것이 통례인데, 환태평양시대를 주도해 나갈 목포시의 새천년 21세기의 희망과 의지를 상징하고 중국대륙을 향해 미래지향적인 뜻으로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물론 종각의 현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글씨이고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서 유달산 쪽을 바라보고 있는 종으로 크기나 무게는 3m90cm에 21톤이 나가는데, 목포시 희망의 21세기를 상징하는 의미로 서울대학교 정밀기계설계공동연구소에서 제작 설계를 하였고, 종의 몸통부분에는 서예가로 명성이 높은 여초 김응현 선생의 글씨로 새 천년 시민의 종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최근에 목포시가 관광객들에게 소원을 빌며 이 종을 타종하는 체험 장으로 활용하기도 하는 발상이 고무적인 관광 마인드로 이채롭기도 하다.
4)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 유달산 입구인 초입의 계단을 올라 맨 처음 관광객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만나야하는 장엄한 동상이 있다. 유달산의 노적봉에 설화를 남기고 유달산 바로 앞 바다에 있는 고하도에서 108일간 닥아 올 전투를 위해 군량미를 확보하셨으며 왜적의 잦은 침략으로 우리나라를 풍전등하의 위기에서 구해주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다. 이 동상의 크기는 높이 370cm, 너비 160cm에 피사의 사탑처럼 좀 옆으로 기울어져있다. 그건 일본의 방향과 정확한 각도로 바라보시도록 그렇게 했으며 돌아가신 후 까지도 일본의 동향을 살피고 왜놈의 기운을 약하게 만들어 다시침략 못하게 하는데 그 의미를 두었고 지금도 목포 앞 바다를 지키는 목포의 수호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사람들은 한국의 대통령의 이름은 몰라도 이순신이란 이름 석자는 다 알고 있으며 거기서 까지도 대단한 전쟁의 영웅이며 전략가로 알려지고 있다는 말을 일본의 관광객들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여기서 이순신과 관련한 책 한권을 소개하면 제목은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이란 책인데 너무 좋은 내용이 많지만 한 구절의 멋지고 감명 깊은 내용만 소개한다. 전에 KBS1 역사스페셜에서도 나온 적이 있으며, 일본 수군의 와키자카라는 장수는 한산도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을 알게 되었는데 이 장수의 기록에서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 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였을 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 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서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갔다. 그래서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라는 유별난 글을 썼고 이러한 한 장수로서의 수치의 글을 써놓은 걸 본 그의 후손들이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에 4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순신 장군의 탄생일 때 한국에 오가고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호남인과 관련하여 이순신 장군의 말을 한 가지만 더 소개하면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 ‘만약 호남이 없었으면 나라가 없었을 것'이다. 이 구절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 7월 16일 충무공이 사헌부 지평 현덕승(玄德升)에게 보낸 편지에 실렸으며 아마 이런 말씀의 배경은 원래 이순신장군의 무대는 호남이었고 또 대부분 의 병사들이 호남 사람들이라 그들의 용맹을 치하하는 의미로 그런 글을 쓰셨다고 한다.
5) 6개의 정자와 특이한 바위들의 이름 소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등 뒤로 올라가면서 전부 여섯 개의 누정인 정자와 여러 가지 특이한 이름이 붙여진 바위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다 자세히 설명하려면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하므로 많이 줄여야 하니 아쉽다. 정상의 일등 바위까지 등산로를 따라 걸어가면서 손님을 맞이하며 인사를 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바위들의 이름들을 들어 보면 노적봉, 쥐 바이(복 바위), 거북바위, 마당바위, 고래바위, 흔들바위, 이순신 장군의 투구바이, 마당바위, 3등바위, 이등바위, 일등바위 등 이름을 지을 만큼 유명한 바이만도 20개가 넘는다. 그리고 도중의 쉼터인 여섯 개의 누정들을 소개하면 대학루, 달성각, 유선각, 관운각, 소요정과 낙조대 등이다. 여기서 투구바위와 대학루만 설명하겠다. 투구바위에 대한 설화의 내용은 이순신 장군이 고하도에서 108일간 머무르면서 목포 앞 바다를 무대로 고금도로 싸움터를 옮기기 위해서 군량미를 확보해야만 했다. 그래서 오가는 배를 통한 통행세를 곡물로 받아 군량미 확보와 목포 시민의 전쟁 참여와 협조의 감사함에도 불구하고 전략상 목포를 떠나던 마지막 날 유달산에 올라 내려오면서 일본이 목포를 넘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의 투구를 유달산 등산로 옆에 벗어 놓은 것이 지금의 이순신 장군의 투구바위로 전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정 중 맨 처음에 만나는 대학루란 1984년 시민의 휴식처로 세워진 것이며 삼학도를 가장 근접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삼학도 전설의 학을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6) 오포대 (지방문화재 제 138호) 오포대는 정오포의 준말로 유달산 입구의 대학루 옆에 있는 것으로 당시 시계가 많지 않던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시대에 특히 노동자들과 목포 시민들에게 점심시간인 정오를 알리는데 쓰인 것으로 1909년 4월에 노적봉 밑 측우소가 있던 동산에 경기도 광주에서 옮겨온 포를 사용하다가 1913년 현재의 장소에 일본식 야포로 바꾸어 설치된 것이다. 처음의 포는 조선식 선입포로 조선 현종 10년(1669)때 제작되었으며 높이 5자, 구경 3치 5푼, 중량 733근으로 1회 발사하는데 화약 30량이 소모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이 오포는 포탄 없이 화약만 넣어 포를 쏘아 정오를 알리는 신호로서 기능하였는데 전쟁 도구를 생활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이 특이하며 지금도 목포 토박이들은 이 오포소리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그 후 목포애향협의회는 현충사 박물관에 전시된 천자총통을 복원하였는데, 복원된 오포는 놋쇠 주물로 길이135.5Cm, 무게 420킬로그램이다. 현재의 오포대는 모형으로 전시되고 있으며 유달산을 찾는 관광객들과 후손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이고 체험물로 쓰이고 있다.
7) 목포의 눈물 노래비 (이난영과 일제강점기)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오포대를 뒤로하고 40m만 올라가면 바위 돌 위에 목포가 낳은 이난영(본명 이옥례)의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노래와 함께 찾아가는 모든 관광객들의 콧노래와 발걸음을 가볍게한다. 이난영 여사는 1916년 6월 6일 목포 양동 출생으로 1923년 현 목포북교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29년 4학년 때 가정형편으로 중퇴하였다. 그 후 16세 때 삼천가극단(三川歌劇團)의 제주도 순회공연 중 막간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인정받음으로써 순회공연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 가극단의 일본 순회공연 때 작사가 강사랑(姜史郎)에게 발탁되어 목포 오케이레코드사의 이철(李哲)을 만나 1932년 손목인(孫牧人) 작곡의 《불사조》를 처음 취입하게 된다. 헌데 이보다 2년 전부터 일본제국주의는 한국을 동화시키고자 문화말살정책을 강화해 오고 있던 차 이에 조선일보는 우리 문화를 지키려 맞대응 했었다. 조선의 학술문화를 발굴 선양 보급하는 조선학(朝鮮學) 운동을 비롯해 한글 보급운동, 향토물산 장려운동 등을 펼쳤으며 그 일환으로 조국애를 대중가요를 통해 심으려는 애향가(愛鄕歌)가사 현상모집을 했었는데 이때 입상한 가사가 ‘목포의 눈물’이었다. 그 후 이 가사에 손목인이 곡을 붙여 목포가 고향인 18세의 무명가수 이난영이 부른 이 노래는 억눌린 채 잠재된 민족의 공감대에 불을 댕겨 발매 되자마자 5만 장이나 팔려나갔으니 이에 당황한 총독부는 발매를 금지시키고 관계자를 불러 조사를 하는 등 해프닝이 있었다. 이 노래 가운데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가 조사의 초점이었는데 노적봉은 유달산의 별칭으로 이순신 장군의 왜적 섬멸과 연관이 있는 전설의 산이었으니 곧 삼백년 원한이란 300년 전 풍신수길(豊臣秀吉=도요토미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이 대목이 암암리에 민족 공감의 고리 구실을 하여 대중들에게 널리 파급되어 오늘의 애국가처럼 불리어 온 사실 또한 일제와 조선간의 역사적 한 단면을 볼 수가 있다.
이렇게 미국은 물론 전국적 가수 활동을 하다가 남편인 김해송이 납북되어 생이별을 한 충격에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고 시신은 파주 광탄에 있는 공원묘지에 묻혔다가 41년 만에 고향 목포로 돌아와 노랫말 속 ‘삼학도’에 수목장으로 묻혔으며 1968년 제 1회를 시작으로 매년 목포에서 난영가요제가 열리므로 대중가요계의 맥을 잇는데 큰 축이 되고 있다. 또한 이 노래비는 1969년 6월 10일 목포악기점을 하던 박오주(朴午周)씨가 사비로 기중하여 세워졌는데 우리나라 최초로 대중가요 노래비로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본다.
8) 유달산내의 사찰의 종류 그리고 달성사와 옥정의 전설 유달산에는 6개의 사찰이 있는데 관음사, 달성사, 반야사, 보광사, 학암사 그리고 해봉사이다. 이 중 삼학도(三鶴島)의 전설의 발로인 달성사와 달상사에 있는 옥정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연무대(활을 쏘는 궁터)와 연계하여 소개한다. 달성사는 유달산의 동남방, 죽교동 317번지에 자리하는 대한불교조계종 대둔사의 말사다. 이 절은 이전에 대원사(大願寺)라 불렸다고도 전해지며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조선 말기 창건설 및 1913년 창건설 등이 있는데, 1913년 4월 초파일 대둔사에 있던 노대련(盧大連)선사가 이곳에 와서 창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달성사는 전통사찰 69호이며, 문화재(유형문화재 228호, 229호)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목포에서 유일한 사찰이다. 유달산 동남쪽 중턱에 있는 달성사 대웅전 서쪽에 옥정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1923년 노대련 선사가 백일 기도를 올리던 중에 팠다고 하며 심한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고 물맛이 좋다고 한다. 헌데 이와 연관된 옛 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오래 전 유달산에 한 선비가 글 공부를 하고 있는 동안 이웃에 사는 세 자매가 매일 선비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고 한다. 그들은 유달 산이 바위산이라 물이 나올만한 곳이 없는데도 매일같이 물을 떠다 주는 정성을 보였다. 선비는 이 세 자매가 글공부에 방해가 된다하여 다른 곳에 가서 기다리도록 했는데 세 자매가 배를 타고 목포 앞 바다를 떠나자 그때서야 세 자매가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한 줄 알고 떠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배를 향해 활을 쐈다. 배 밑이 뚫리면서 배가 가라앉자 세 자매는 학이 되어 날다가 앉았는데 그 곳에 세 개의 섬(삼학도)이 생겼다고 한다. 이때 세 자매가 물을 얻은 곳이 옥정(玉井)이라 하고 일제시대부터 달성사 바로 아래 활을 쏘는 연 무대가 있었던지라 연무대와 수도하는 선비 그리고 아랫마을의 선비를 사랑하던 세 자매와 어우러져 목포의 전설로 유명한 삼학도가 등장하는 것으로 본다.
이 옥정과 관련한 또 하나의 설화로 10여년 전 여름철, 당시에는 달성사에 관광객이 많이 찾아왔던 곳이다. 그런데 이들이 옥정이 좋은 샘이라는 것을 알았던지 옥정 옆에서 목욕을 하는 등의 추태를 부리자 가뭄에도 마르지 않던 샘이 말라 버렸다. 그 뒤 절에서 용왕제를 지내고 100일 기도를 올리자 다시 물이 나왔다고 한다. 헌데 이런 소문을 듣고 경기도에 사는 정 보살 이라는 분이 해년마다 옥정에서 물을 길러 갔다고 하는데 정보살 에게는 자식이 태어나도 3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렇게 두 명의 자식을 잃다가 하루는 꿈에 법당 옆에 있는 샘의 물을 마시면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법당 옆에 있는 우물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달성사 옥정(玉井)을 찾게 되어 자식을 살렸다고 하며 지금도 아이를 갖지 못하는 보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설화로 유명한 곳이 바로 이 달성사와 옥정 이다.
9) 유달산의 부동명왕과 홍법대사상 등 일본의 잔재들 소개 유달산의 정상에 이르기 전 등산로에서 눈을 아래로 잠깐 돌리면 깍아지른 듯한 바위에 무서운 표정으로 방망이를 들고 있는 사람과 좀 아래쪽에 홍법대사란 글의 흉상을 한 두 사람을 볼 수 있다. 유달산을 3번이나 일본 놈에게 팔아먹은 실화가 있듯이 목포의 한 갑부이며 일본 놈들에게 굴하지 않고 조선인의 자존심을 세운 당시에 대단한 수완가였던 정병조씨로부터 샀던 유달산이 일본인의 소유가 되자 우리민족이 원치 않은 일제가 남기고 간 잔재의 부조 물로 남은 것이다. 일본 밀교의 불상으로 하나는 마를 없앤다는 부동명왕(不動明王)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본 승려인 홍법대사(弘法大師)로 일본식 불교문화를 우리에게 전파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결국 둘 다 무섭게 보이고 위엄스럽게 보여 우리 민족의 기를 꺽어 순종과 복종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일본 문화의 산물이다. 이 암각화는 1920년대를 전후해 조각됐다고 하는데 광복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사적 교육 자료로 이용하기 위해 지우지 않은 뼈아픈 역사의 ‘문신’인 셈이다. 헌데 이들 앞에 찾아와 의식을 올리는 일본 사람들이 가끔 보이고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의 목매한 사람들이 이 흉물들 앞에서 뭔가 기도하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는데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이밖에도 바로 인근에 유달산신(儒達山神)이란 비각의 글이 있고 곳곳에 야불타상(22번은 목포문화원 보유 중)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옛날에 88영장비(靈場碑)라는 1m내외의 불상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유달산 등산로를 따라 입구에서 일등바이와 2등바이 사이에 해방 후 훼손된 88개 불상의 터와 좌태를 볼 수 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그들의 종교적 기념행사를 위해 세웠던 것으로 1920년대에서 30년대 사이에 설치된 것으로 조사된다.
10) 조각공원 목포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유달산 기슭에 자리한 조각공원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조성된 야외 조각공원으로 시민의 정서순화와 관광객 유치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공원 안에는 야외음악당, 분수, 휴게소 등의 시설과 관음사와 초가주택 1채가 보존되어 있다. 처음에는 조각을 인간의 의지로 사물에 질서와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믿은 현대조각가의 모임인 한국조각연구회원44명의 작품 100점과 기증 작 4점이 유달산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전시되었다가 1994년 11월에 작품을 교체 전시하면서 한국조각연구회 65명과 기증 작가 3명의 작품 78점이 한국 조각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으며 작품이 팔리면 다른 작품이 들어서 공원의 새로운 변화에 따른 다양한 작품을 교대로 감상하게 하는데 그 특징이 있다.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 유달 영봉의 기암괴석과 조화를 이루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오래도록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11) 난공원(난전시관)과 특정자생식물원 부드럽고 은은하여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을 아는 이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난은 옛 부터 우리 선비들의 고고한 정신을 상징하였다. 유달산 주차장 오른쪽 달성공원 내에 위치한 난공원은 이런 난들의 집합 터로 1983년 5월 개원하였으며 93년에 현대식 난 식물원을 신축하여 2,400평의 부지에 2동의 난실을 갖추고 있다. 공원엔 우리나라 여러 지방의 춘란, 풍란 등 한국 난 38종과 동양 난 120종, 서양 난 94종 등 모두 240여종, 1,300분의 난이 전시되어 그 아름다운 자태와 향을 선사하고 있으며, 난의 배양 재배에도 성공하여 저렴한 가격에 분양하고 있어 난 애호가들의 관심어린 발길을 끈다. 93년 10월에는 대엽 풍난 1000촉을 당일 선착순으로 판매하여 불과 몇 시간 만에 매진된 사태도 있다. 주로 시 비를 투입하거나 목포 난우회, 야생초회원들의 기증품과 기술 자문을 얻어 운영되고 있는데 매년 봄 3월이 되면 한국 야생난 전시회를 비롯한 각종 난 전시회를 기획, 개최 하여 동호인들과 시민들의 정서를 순화시키며 관심을 끌고 있다. 또 이 난공원 바로 옆에 특정자생식물원이 있는데 국내에서는 최초로 개관된 특정자생식물원은 환경오염으로 멸종위기에 처해있거나 요즘 들어 찾아보기 힘든 희귀·보호식물로 지정된 267점을 전시하고 있고, 이러한 희귀식물들을 증식·보급하여 자연생태계의 산 교육장이 되고 있으며 이 유달산에는 왕자귀나무라 불리우는 홍자귀나무와 백자귀나무들이 있는데 특히 백자귀나무는 제주도와 목포 유달산 등에서만 발견되는 것으로 멸종 위기에 있는 보호되어야 할 식물들이며 이 두 종류 모두다 너무나 우람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젊은 연인들과 신혼부부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12) 달성공원 여러 가지 희귀식물 및 야생 조수류가 자생하고 있는 시민의 휴식처로, 달성동 근처의 유달산을 말하며 산정에 오르는 오솔길마다 연인들의 밀어가 가슴을 적시고, 봄이면 만들어진 개나리꽃 터널이 연인들을 부르는 이곳에는 보광사 등의 사찰과 파고라 등 각종 편익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조각공원 옆에 있는 달성공원의 지름길을 통해 정상의 소요정에 오르면 다도해의 전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가슴 속으로 다가온다.
13) 국내 최초의 여류작가인 박화성 문학관 목포를 흔히들 예향이라 부른다. 그것은 단순히 목포가 많은 예술인을 배출한 도시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시민 모두가 예술을 사랑하고 널리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예술인들이 시민들의 사랑속에 그림과 시문학 등의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또한 도시 전체가 예술적 분위기에 젖어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목포의 자랑스런 소영 박화성! 1904년 목포 죽동에서 태어난 박화성은 1925년 식민도시 목포의 그늘을 그린 단편 <추석전야>가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게재되면서 등단했다.
이후 나주지역 농민들의 고단한 삶을 그린 <한귀(旱鬼)>, 영산강농민들을 소재로 한 <홍수전후(洪水前後)>, 목포 하수도공사장 현장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하수도공사> 등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상을 세밀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을 쏟아낸다. 1988년 1월 30일 오후 8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분이며 그의 문학기념관에는 생전에 썼던 일기와 자필원고 등 유품 18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가 최근에 갓바위 목포문학관으로 옮겨진 상태다. 일반인에게 낯설지만, 박화성은 우리 문학사에서 목포의 김우진과 함께 목포문학의 선구자로, 최초의 본격적인 여류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그녀의 100주년 기념을 위한 사업으로 ‘박화성 문학전집’이 최근 출간 되었다는 강수진 기자의 기사를 하나 소개한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소영 박화성(素影 朴花城·1904∼1988)의 문학세계를 집대성한 ‘박화성 문학전집’(푸른사상사)이 최근 출간됐다. 총 20권인 이 전집에는 장편소설 16편, 단편 62편, 전기소설 2편, 희곡 1편, 동화 1편, 수필과 시조, 시까지 박화성의 작품 중 미완성 소설 1편을 제외한 전 작품들이 수록됐다.
수록 사진도 200여점. 이는 저자 서정자(徐正子·61·국문학) 초당대 교수가 2001년부터 4년간 땀 흘린 결실이다.
서 교수는 “박화성에 앞선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부르조아적이거나 연애담이 주를 이뤘던 반면 그는 첫 작품인 단편소설 ‘추석전야’부터 가장 역할을 하는 방적회사 여직공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작품세계가 뚜렷이 차별화됐다”며 “작품마다 역사의식을 강하게 담고자 했던
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을 지향했던 작가”라고 평가했다.
숙명여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서 교수는 석사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모두 박화성 연구로 삼았을 정도로 평생 박화성을 연구했다. 서 교수는 박화성 연구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생각에 이번 전집에 대한 인세도 받지 않기로 했다.
서 교수는 “박화성은 많은 작가들이 친일로 돌아선 뒤에도 끝까지 일본어로 글쓰기를 거부해 한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했던 데다 사회주의적 성향 때문에 광복 후 17년 가까이 문단에서 소외된 공백기간까지 있어 그간 작품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앞으로 유족들이 보관 중인 박화성의 일기를 바탕으로 당시 문단 상황을 보여주는 그의 평전도 내고 싶다”고 말했다. “
박화성의 문학세계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서 1992년부터 한국문인협회 목포지부와 소영 박화성 선생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공동주최로 소영 박화성 백일장을 개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4) 이훈동 정원(일본식 정원) 이훈동 정원은 유달산 맨 밑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집과 정원은 사진 촬영하기에 좋으리만큼 너무너무 잘 꾸며졌고 많은 정원수가 눈길을 끈다. 이곳은 일본식 정원으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 165호로 1988년에 지정되었다. 이 정원은 일제시대 일본인 우찌다니 만빼이가 조영했던 것으로 해방 후 현재는 이훈동씨 소유로 되어있으며 앞뜰 부분이 좀은 변형되어 있지만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조경문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이용하고 있다.
호남지역에서 가장 큰 정원으로 나무 종류도 113종이나 되며 주로 상록수가 주류를 이루어 난대지방 식물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곳의 정원수 중 국내 단 하나뿐인 흑사리나무와 쌍향수 향나무 그리고 석등과 석탑들도 있고 연못 분수대까지 갖추고 있어 드라마 야인시대의 하야시 집으로도 쓰였으며 모래시계의 주연인 고현정이 집으로 그녀가 그네를 탔던 나무가 있다. 고현정이처럼 그네를 타고 기념촬영을 하는 연인들이 많다고 한다. 최근 인터넷과 소문을 통해 많은 관광객들이 각 가정집의 정원 가꾸기의 모델로 참고하기 위해서 모여드는 곳이 되었으며 C.F촬영과 드라마 그리고 영화 촬영지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15) 목포문화원 (구.일본영사관) 목포문화원도 이훈동 정원과 같이 서로 가까운 유달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이곳은 구, 일본 영사관이었으며 현재 목포 문화원으로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9호로 지정되어 1897년 목포가 개항되자, 1898년 일본영사관이 목포에 설치됨에 따라 영사관으로 지은 것이다. 이후 1914년부터 목포부 청사, 1947년부터 목포시청, 1974년부터는 목포시립도서관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그러다 1990년부터 목포문화원으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개항 당시 높이 13.65m, 연면적 597.68㎡로서 목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면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며 건축양식은 르네상스식의 건물이다. 창문은 들어 오르내림 창으로 타원형이고요 건물의 내부에는 각 실마다 벽난로 9개가 있었는데, 현재는 2층의 두 곳만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어 11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외형은 견고한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1950년 6·25전쟁 당시 공중폭격으로 인해 건물의 외부가 조금 손상되었으나 현재 목포문화원에서는 당시 건물 벽돌에 박혀 있던 탄환 4기를 보존하고 있으며 또한 목포변천사의 상징으로 시민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헌데 이 문화원이 역사적 유산으로 유명한 것은 문화원과 연결된 커다란 동굴이 있는데 이 굴은 인공동굴로 일본 놈들이 노적봉의 뒷자락을 뚫어서 만들었으며 가운데 통로 외에도 좌우 통로까지 만들어 놓고 우리의 독립 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하는 곳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죄 지은 사람들이 늘 무섭고 두려워하듯이 폭격이나 이변이 있을 경우 숨기위한 것으로도 여겨진 곳이기도 하다. 이 굴의 전체길이는 약 82m이며 중앙통로가 49m, 왼쪽이 22m, 오른쪽이 10.8m나 된다. 그리고 높이는 2m며 폭은 넓은 곳이 3.3m이다. 요즈음 초, 중학생들의 체험 현장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으니 앞으로도 먼 훗날까지 이를 통해 널리 일본이 남긴 잔재를 알게 하고 좋은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면 좋겠다.
16) 목포 8경 목포 유달산 초입구의 앞 노적봉 우측으로 돌아가면 목포 문화원으로 내려가는 계단길이 있다. 이 계단 길에 목포 8경을 타일에 담아 환상적 목포의 8경을 관광할 수 있는 관광 상품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이러한 목포 8경을 쉽게 이해하기 위한 그림들의 이름과 배경은 다음과 같다 : 목포팔경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조선시대의 각종 기록이나 일제강점기의 기록에 목포팔경에 대한 언급은 찾기 힘들다. 목포지역 원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목포팔경이 시민의 입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이고 목포시사(木浦詩社)에 출입하던 유생(儒生)들이 만들어 단가(短歌)로 즐겨 불렀다고 한다. 따라서 기록이 나오는 것도 그와 비슷한 시기들이었으니까 목포팔경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은 광복을 전후한 시기가 아닌 가 추정해 볼 수 있다. 현재 목포문화예술회관 상설전시장에는 목포팔경 그림이 걸려져 있는데, 이는 1981년 경 목포의 명승을 그림으로 남겨 목포시에 보관하자는 의견을 모아, 당시 저명한 화가들이 그린 것으로 남농(南農) 허건, 아산(牙山) 조방원, 도촌(稻邨) 신영복, 백포(白浦) 곽남배 4인의 화가들이 각자 두 폭의 작품을 남기게 되었는데, 이 그림도 목포팔경이 시민들에게 보급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여 진다.
목포팔경은 유산기암, 용당귀범 아산춘우 학도청람, 금강추월 입암반조 고도설송 달사모종 을 말하는데, 이는 목포를 사랑하는 시인 묵객들이 목포의 아름다운 풍경을 시로 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장소를 보더라도 계절에 따라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문구로 목포팔경을 묘사하기도 한 것 같다. 이를 풀어 설명하면 :
* 유산기암(儒山奇巖)? 유달산의 기묘한 바위들의 아름다운 형상을 말하는 것으로 유달산은 본래 바위산으로 유명한데, 그 덩어리를 이루는 바위의 생김생김이 하나같이 기기묘묘하게 생겨서 전남의 소금강(小金剛)이라고 불리기도 한 이유도 거기에 있는 듯 하다. 1930년대 조선의 미를 찾아 목포를 방문 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은 그의 저서 조선기행문에서 "화가라면 그림을 그리고 싶다.(중략) 목포의 거리는 잊을지라도 저 신비한 유달산은 잊지 않을 것이다"라며 유달산의 기암괴석이 갖는 신비함을 칭송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유달산의 기암괴석은 목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경승(景勝)으로 알려져 왔다.
* 용당귀범(龍塘歸帆) 용두귀범이라고도 칭하는데, 돛단배가 고하도 용머리 앞을 돌아오는 풍경을 말한다. 고하도는 그 모습이 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 섬이라 하여 '용머리·용당'이라 하고, 혹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하여 '병풍도·병풍바위' 등으로 불리 우고 있으며 푸른 호수로 비견되는 다도해를 뒤로하고 용머리 앞을 돌아오는 돛단배의 풍경이 어우러졌을 때의 모습이야말로 무릉도원의 절경(絶景)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래된 사진작품들을 통해 실제 고하도 앞에 돛단배가 지나가는 풍경을 본 기억이 새롭다.
* 아산춘우(牙山春雨) 봄비 속에 내리는 아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말하는데, 아산은 삼학도 건너편 영암 쪽에 있는 산의 이름이다. 목포항 쪽에서 바라볼 때 마른모꼴로 보이는 산으로 아침과 저녁경치가 뛰어나고, 숲 사이로 안개가 반쯤 개었을 때의 모습은 한 폭의 훌륭한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
* 학도청람(鶴島晴嵐) 아지랑이 필 때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봄날의 삼학도 풍경을 이르는 말로 삼학도는 세 처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恨) 때문에 세 마리의 학이 내려앉아 생겨났다는 전설의 섬으로 유달산과 함께 목포의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청람(晴嵐)은 비가 갠 날에 보이는 아지랑이를 의미하는데, 맑은 기운이 감도는 삼학도의 아침 풍경을 칭송한다. '삼학풍림(三鶴楓林)'이라 불리기도 하데, 이는 단풍으로 붉게 물든 삼학도의 가을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 금강추월(錦江秋月) 가을달빛이 어린 영산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말하는 것으로 금강은 영산강의 시적 표현인데, 목포는 영산강의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길목에 해당되므로 남도의 젖줄처럼 구비쳐 흐르는 영산강의 어느 가을날 밤. 가득 찬 둥근 달이 영산강 물위에 떠 있는 저녁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중국의 유명한 동정호(洞庭湖)에 떠있는 달빛과 영산강의 달빛을 견줄만하다고 본 목포사람들의 풍류가 느껴지는 구절이기도 하다.
* 입암반조(笠岩返照) 저녁노을 빛이 드리운 갓바위 부근의 아름다운 풍경을 말한다. 입암은 문화의 거리 갓바위와 입암산(笠岩山)을 지칭고 지금은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갓바위와 입암산은 원래 한 줄기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픈 마음에 갓을 쓰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의 형상을 한 갓바위에 석양의 빛이 반사되어 오는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지는 해가 마지막 빛을 서녁 하늘에 쏟고 갓바위를 돌아 넘어가는 정경으로 슬픈 전설의 갓바위와 그 뒤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입암산, 그리고 저녁노을이 물든 영산강의 풍경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을 칭송한 것이다.
* 고도설송(高島雪松) 겨울철 고하도의 눈 덮인 소나무의 풍경으로 고하도는 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 하여 고하도(高下島)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고 하는데, 1597년 이순신 제독이 머물면서 진을 치고 군사훈련을 했던 역사의 땅으로도 유명하다. 고도설송이란, 마치 승천하는 용처럼 길게 늘어져 있는 고하도의 해송(海松)위에 하얀 눈이 덮여있는 겨울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 달사모종(達寺暮鍾) 유달산 달성사에서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의 고즈넉한 풍경을 이르는 표현으로 달성사는 1915년 4월에 건립되었는데, 당시 조선인들이 주로 모여 살던 죽동이나 남교동 마을 쪽에서 유달산 쪽을 바라보면, 산과 사찰이 잘 어우러진 달성사 풍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저녁 무렵 달성사 범종에서 울려 퍼지는 은은한 종소리는 신비감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 안았을 것이다. 달성사의 종소리는 시간을 알려주기도 하고, 당시 조선인들의 마음을 순화시켜 편안함과 아득함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했을 텐데, 팔경 중에 독특하게 소리와 관련된 풍경이며, 저물 만(晩)자를 써서 '달사만종(達寺晩鐘)'이라도 한다.
17) 현대판 봉이 김선달 정병조씨와 소아마비 불구자 멜라콩(박길수씨) 실화 * 일제시대 유달산을 세 번이나 일본 사람에게 팔아먹은 정병조 이번에는 목포에서 있었던 실화의 주인공 정병조씨와 유달산에 얽힌 얘기를 하고자 한다. 정병조는 유달산을 일본인들에게 팔아먹어 현대판 봉이 김선달로 목포에 실재적인 실화를 남기고 현재 작고한 인물이며 나중에 알고 보니 목포시 산정동 필자의 집에서 20m 떨어진 곳에 사셨던 분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의 초등학교 때 그 노부부 집과 삶을 다 알고 있으며 또 부모님께 들은 얘기도 있다. 목포에는 그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가 전해오고 있는데 하지만 그가 유달산과 관련된 명물이자 목포의 기인 이였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자기 이름을 새긴 말목을 세워 목포 유달산의 나무, 바위, 흑 등을 따로 따로 일본인에게 팔아먹었으며 죽교동과 죽동 일대의 여러 집들의 식모들을 교묘히 접근 선물 공세를 하는 방법으로 친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기 이름을 쓴 돌 말뚝 형태를 주면서 부엌 쪽에 묻어 달라는 등 신화같은 실화를 남겼으며 그 분에 대해 직접 부모님에게서 들은 남들이 모르는 사항을 하나 더 공개하면 유달산 밑에 때지어 날아와 앉아있는 청둥오리까지도 자기 것이라고 왜놈에게 팔아먹었다니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 오리들을 산 일본인이 다음날 돈 주고 산 오리가 날아가 버린 걸 알고 돈을 도루 내줘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는데 100일 이내에 다시 날아 올 태니 우리에 잡아 가두어 놓으라고 해 반환 시키는 문제를 해결한 그야말로 김선달과 다를 것이 없는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경남 동래군에서 16세에 목포에 단신으로와 일본인과 싸워가며 개항도상의 목포에다 45만평의 간척지를 막아 거부가 되었으며 정병조는 항상 일본사람을 상대로 골탕을 먹이고 치부를 해와 일본인의 골치 거리였다. 당시 국가최고기관인 조선총독부에 금으로 만든 명함을 뿌리며 모든 기관을 마음대로 출입하면서 일본인들의 식민지 정책에 말려들지 않고 자기의 재산을 보호해온 것, 또 일본에 잡혀가서도 고향 사람들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어 자기가 한국에서 대단한 인물로 비치도록 하여 무사히 돌아온 사람이었다. 목포 토박이들은 유달산을 팔아먹었다 해서 정병조를 매국노라 취급했으나 "왜놈에게 유달산을 팔아먹은 것이 뭐가 잘못이냐? 유달산을 일본으로 떼어 가느냐?" 고 비난을 일축했다고 한다. 해방이 되자 목포의 교육사업을 위해 5만여 평(서부초등학교, 동광중.고교, 제일중학교, 목포상고, 유달중학교)를 각 학교부지로 기증했고 철도 부지를 비롯. 15만평의 땅을 목포시에 기증하고 25만평은 재단법인 국민대학에 기증하는 등 32억이 넘은 재산도 기증했다. 끝으로 이 분의 화제를 하나 더 소개하면 내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 현재 목포시 산정동 석산(현재 중앙하이츠와 일신 아파트가 들어선 돌산)을 시의 것으로 주는 댓 가로 죄수들이 깬 돌로 자기의 2층 근대식 돌집을 짓게 하여 93세로 별세 한 지금에도 단단한 모습으로 큰 정원과 함께 조카가 물려받아 살고 있으니 여기서 또 하나의 근대식이며 일본식 건물을 볼 수 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말년에는 필자의 오빠에게 집 앞의 밭 300평을 줘 벽돌 공장을 하게 했고 그 댓 가로 자기 집 보수를 하게 했으며 교회를 따라 다니게 했던 그 사실 또한 기억이 생생하다.
* 아름다운 봉사의 천사며 소아마비 불구자인 목포역의 멜라콩(박길수)
지금의 4, 50대 이상의 목포 시민이라면 누구든 목포 역에서 소화물 일을 하면서 봉사 의 천사로서 이름을 남긴 멜라콩 박길수 朴吉洙(1928∼1989.4.15)란 사람과 멜라콩 다리의 역사를 남겼으며 소아마비 불구자임을 극복하기 위해서 오전 오후 하루에 두 번씩 유달산을 올라 다녔는데 너무 힘들어 목포 시청에 계단을 놓으면 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좋지 않겠는가 하는 제안을 올려 현재의 정상까지 계단이 들어서게 한 주인공이라 한다. 본인도 소아마비 불구자이면서도 구두닦이 등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줄 아는 그야말로 봉사의 상징이자 거울인 목포의 자랑스런 인물이기에 그분의 숭고한 봉사정신을 널리 더 알리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신안문화원 최성환 사무국장이 쓴 글을 아래와 같이 소개해본다 :
“그동안 서해안 인물열전에서 주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 혹은 새로 발굴된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오늘 소개할 인물은 우리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는 옛 추억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89년 KBS에서 "멜라콩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으로 논픽션 드라마를 제작해서 전국방송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오늘 소개할 박길수씨입니다.
박길수씨는 1928년 10월 15일 전남 장흥군 대정면 평촌리 박권섭 씨의 3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 큰 형이 병으로 오랫동안 앓아 눕자 살림이 기울어 고향을 등지고 목포에 나와 목포역 소화물 취급소에서 근무하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상이 아닌 소아마미 현상으로 손발이 떨리는 장애의 몸을 지녔고 체격까지 작았던 박길수씨는 목포역 소화물 취급소에서 성실히 근무하면서 48년을 한결같이 불우한 이웃을 돌보는 데 앞장서 목포의 명물이자 자랑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인물입니다.
유달리 박길수 씨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멜라콩 다리를 세운 일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얼마 전 목포역 광장에서 호남선 복선화와 고속철도 개통을 기념하는 축하행사가 성대하게 열렸죠. 우연히 그 행사장 앞을 지나면서 실로 36년 만에 지역민들의 숙원 하나가 이제 해소가 되는 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불연 듯이 1964년에 목포역 주변으로 흐르는 하천 위에 세워졌던 멜라콩 다리가 생각이 났습니다.
멜라콩 다리는 박길수씨가 세운 다리입니다. 목포는 지금 땅의 80% 정도가 간척과 매립을 통해서 얻은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텔테, 당시에는 목포역 안쪽으로 까지 물이 들어왔었습니다. 1960년대 초까지도 목포역 옆 길(지금의 한진약국 앞길)은 복개되지 않은 넓고 긴 하천이었는데, 하천 건너편 사람들이 기차를 타려면 동명동 어물 시장에서 팔고 산 생선들을 머리에 이고 상당히 먼 길을 돌아서 다녀야 하는 큰 불편을 겪어야 했었습니다. 이러한 불편을 없애기 위해 여기에 다리를 놓아야겠다고 결심한 박길수씨는 목포시청을 찾아가 다리를 놓아줄 것을 애원하나 거절당하자 직접 모금운동에 나섰습니다.
불구자의 몸으로 주제넘은 행동을 한다는 주위의 갖은 냉소에도 굴하지 않고 직접 다리공사에 필요한 철근과 시멘트를 구하러 다녔습니다. 이러한 소문은 점점 주변사람들을 감동시켰는데, 당시 목포역 근처의 사창가 아가씨들도 얼마씩 모금하여 박길수씨에게 전달할 정도로 주변 사람들의 감화를 이끌어 냈습니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포기할 줄 모르는 박길수씨는 결국 수년간 절약하여 저축해둔 그 당시 60만원이 들어있는 저금통장을 털어 공사를 시작, 끝내는 완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1964년 4월 20일이며 박씨의 나이 36세 되던 해였습니다.
가난한 장애자의 힘으로 생각지도 못하던 다리가 놓아지자 목포 시민들은 모두 깜짝 놀랬고 그 다리를 사용하게 된 많은 사람들과 타 시군에서 목포에 온 사람들도 박씨에게 칭찬과 감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봉사적인 삶을 기리기 위해 이러한 일화를 KBS에 추천하였는데, KBS에서는 논픽션 드라마로 멜라콩 박씨의 생애를 극화하여 [멜라콩을 아시나요?] 라는 제목으로 1989년 1월 7일 밤 10시 30분부터 60분간 전국에 방영되기도 하였습니다.
"멜라콩" 이라는 말은 박길수씨를 주변 사람들이 부르는 별명이었습니다. 예전 어느 중국영화 속에 일본무사 밑에 따라다니던 부하의 극중 이름인데, 그 배역의 모습과 박길수씨의 허약한 몸집과 하는 짓이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나이드신 어른들에게 박길수를 아냐고 물어보면 거의가 모른다고 하고, 멜라콩을 아냐고 하면 대부분 아신다고 합니다.
다리는 지금은 하천이 복개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목포사람들의 가슴속에는 멜라콩 다리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현재 목포역 현장에 가보면 조그만 비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목포역에서 소화물장으로 가는 담장 밑을 잘 살펴보면 그때를 기념하는 조그만 비석하나가, 담장 밑에서 파묻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지역민들을 위해서 펼쳤던 봉사정신에 비하면 지금 그 비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성대하게 행해지는 고속철도 축하연을 보면서 과거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묘한 감상이 들었습니다. 비록 없어지기는 했지만 목포역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와 지역사적인 의미에서 기념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념비를 재정비해서 고장의 자랑스런 일화로 널리 홍보했으면 합니다. “
그래서 필자는 이러한 목포의 역사적 실화를 남기고 아름다운 봉사정신을 가진 위에서 언급한 정병조씨와 멜라콩 박길수씨의 업적을 취사선택하여 그들이 남긴 목포의 역사와 아름다운 봉사정신을 발전시켜 길이 후손들에게 알리는 관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대하며 아울러 목포 역에 멜라콩 박길수씨의 사연과 봉사정신을 널리 홍보키 위해 ‘아름다운 봉사의 천사 멜라콩’이란 제목을 가진 별도의 사무실을 만들어 관광객들이 찾고 목포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며 목포의 봉사 단체나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봉사인의 장으로 활용하면 향후 미래적인 측면에서 좋을 걸로 생각된다.
헌데 아이러니 하게도 정병조씨의 일제 강점기 때 지은 근대식 건물은 최근에 목포와 압해도간 그리고 압해도와 육지인 무안 운남 간의 다리가 완공 시점에 있는 터라 서울 등 전국의 부자들이 그 사람의 놀라운 사업 수완의 기를 받아 부동산 투기의 목적으로 하루에도 수십 명이 집을 둘러보거나 아름답고 넓은 정원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간다니 이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지만 그 집과 관련하여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생겼는데 :
필자가 목포 관광안내소에 있으면서 서울의 60세의 김태호란 풍수지리를 하며 부동산을 전국에 수 만평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 안내를 하는 중 그분이 말하기를 우연히 인터넷에서 목포의 정병조씨란 인물에 관한 기사를 보고 그 집을 찾아 명당으로 정하여 기를 받고 간 후 어느 날 꿈속에 정병조씨란 백발 노인이 너는 내 뒤를 이을 지혜를 가졌구나 하면서 강원도 철원과 신안군의 섬을 찾아 철원에서는 신수리 땅을 알아보고 신안군은 북부 쪽 무인도 섬을 살수만 있으면 많이 사라는 이야기 였다고 한다. 그래서 우선 철원 쪽에서 생각보다 너무 좋은 땅을 사는 운을 가지게 됐다고 하며 지금은 신안군의 무인도 섬을 사려고 온갖 노력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명함이라도 얻어 놓을 것 하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쳐간다. 최근 몇 년에 걸쳐 목포의 급진적인 관광 발전에 힘입어서 인지 전국에서 아주 많은 관광객들이 당일 관광 또는 2,3일 관광으로 신안군 섬들과 팩키지 관광으로 목포를 찾고 있는 이 시점에서 목포와 목포 유달산 그리고 위의 두 사람 등을 배경으로 멋진 영화 한편 촬영하면 시청률이 전무후무 할 걸로 생각된다. 영화나 다큐멘타리의 제목은 ‘멜라콩과 정병조’라고 하면 동시에 목포를 널리 알리고 관광의 메카로 서는데 대단한 도움이 될 걸로 안다.
18) 기타 목포시의 주변 주요 관광지와 축제와 맛 등 간략한 소개 목포는 문화역사 예술의 도시며 맛과 멋 그리고 빛의 도시로 볼거리의 천국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볼거리와 축제 등의 관광과 체험의 명소 중에서 몇가지 주요한 명소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국립해양사박물관
본 박물관은 목포의 갓바위 문화의 거리에에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국립해양사 박물관으로 신안과 완도 앞바다에서 발굴, 인양된 중국 송원대의 복원 선박과 도자기, 동전, 총포류 등이 전시되어 있어 선박의 발달사와 함께 해양문화를 알아볼 수 있는 산교육 장으로 일반인은 물론 전국의 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5개 전시실과 해저 인양유물 100여점, 모형 및 복제유물 100여점과 새우잡이 배, 관광여객선(폐선), 가거도 멸치잡이 배, 제주도 떼배를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바다와 접한 면은 해안의 분위기를 느끼도록 투명유리로 되어있다.
※ 찾아가는 방법 1. '목포역 - 남해개발산업도로 - 목포제일중학교 앞 - 갓바위문화지구 내’ 또는 ‘시외 버스터미널 - 목포과학대학 - 목포제일중학교 앞 - 갓바위문화지구 내’ 2. 홈페이지(http://www.seamuse.go.kr)나 전화(061-270-2000)로 문의하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 목포자연사박물관
세계에서 2점만 발굴·복원된 공룡화석 프레노케랍토스와 콘코랩터 등을 비롯해 해양파충류 뱃속에 새끼가 함께 보존된 희귀표본이 전시되어 있어 46억년의 지구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며 서울 자연사 박물관 다음으로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중앙 홀에서는 대형 초식공룡 디플로도쿠스를 공격하는 알로사우루스를 비롯해 중생대 공룡의 시대가 그대로 되살아난 듯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찾아가는 방법 1. '목포역 - 남해개발산업도로 - 목포제일중학교 앞 - 갓바위문화지구 내' 또는 '시외 버스터미널 - 목포과학대학 - 목포제일중학교 앞 - 갓바위문화지구 내' 2. 홈페이지(http://museum.mokpo.go.kr)나 전화(061-270-8318, 274-3655)로 문의하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 남농기념관
남농기념관은 운림산방의 3대주인 남농 허건 선생이 선대의 유적보존, 남화의 전통유지, 우리의 문화유산을 계승하고자 건립해 한국 남종화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추사 김정희가 해동 제 일인자라고 극찬하던 허련의 작품을 비롯해 미산 허영, 남농 허건, 임전 허문, 오당 허진 등 운림산방 5대에 걸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남농 선생 제자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한국 남화의 명맥을 짚어볼 수 있고,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 찾아가는 방법 1. '목포역 - 남해개발산업도로 - 목포제일중학교 앞 - 갓바위문화지구 내' 또는 '시외 버스터미널 - 목포과학대학 - 목포제일중학교 앞 - 갓바위문화지구 내' 2. 전화(061-276-0313)로 문의하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 사랑의 섬 외달도
목포시 달동 외달도는 목포 앞바다의 아름다운 섬으로 사랑의 섬으로도 불려 가족단위여행객과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섬 해변의 경치가 아름답고 청정해역의 맑은 바다와 주변의 섬들이 어우러져 멋스러운 일몰을 연출한다. 해수욕은 물론 바다낚시, 조개채취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만든 인공풀장이 있어 썰물 때에도 수영을 즐길 있으며 풀장 앞으로 아름다운 다도해가 펼쳐진다.
※ 찾아가는 방법 1. 목포여객선터미널 제1매표소에서 신진페리호 승선한다. 2. 2시간 간격으로 운항하며 약 50분 소요되고 승용차 탑재도 가능하다. 3. 홈페이지(http://mokpo.go.kr:3000/oedaldo/main.php) 전화(061-244-0522, 242-1076)로 문의하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목포해양문화축제와 축제 일별 행사안내
목포의 축제는 사랑은빛갈치축제, 북항회축제, 유달산축제 등 다양한 축제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규모의 종합 축제인 목포해양문화축제를 행사의 성격과 종류 등 소개해 본다 :
■ 7월 24일(화) 전야제 특별행사 - 목포해양문화축제 전야제 방송 축하쇼 ‘그랑블루 Le Grand Bleu'(20시) ■ 7월 25일(수) 축제 1일차 - 희망의 땅! 목포 .주무대 - 평화바다 해양레포츠 묘기 쇼 - 해양우수민속공연 초청작 ‘동명동, 말 박는 소리’ - 평화바다 해상 선박 퍼레이드 - 해군방어사령부 군악대 / 목포 여상 고적대 퍼레이드 - 목포시민대형 풍물놀이(220M 대형밧줄 줄다리기) - 개막공식행사 - 개막주제공연 ‘큰 빛이여, 바다로 오시라’ - 개막축하 불꽃놀이 .해상특설무대 - 퓨전 모듬북 공연 - 이매방 춤제전 수상작 공연
■ 7월 26일(목) 축제 2일차 - 상생의 바다! 목포 .주무대 - 우수 자치센터 공연프로그램 ‘목포 사람들’ - 외국 우수 퍼포먼스 공연작 ‘퍼포먼스 낭만’ - 세종문화회관 뮤지컬 공연 ‘갈라콘서트’ - 여성 열정 난타 그룹 ‘드럼캣’ 특별공연 - 7080세대 아우름 포크페스타 ‘블루문 Blue Moon' 박정운, 양하영 .해상특설무대 - 일렉트릭 현악 쇼 ‘블루 환타지’ - 풍류공작소 ‘시립무용단 공연’
■ 7월 27일(금) 축제 3일차 - 열정과 환희! 목포 .주무대 - 움직이는 바다도서관 ‘둘로스호’ 방문단 퍼레이드 - ‘둘로스 호’ 방문단 세계 민속공연 - 외국 아크로바틱 우수공연 ‘퍼포먼스 빛’ - 대한민국 B-boy 해변 경연·공연대회 .해상특설무대 - 바다 락 페스타 ‘콘서트 광’ 수퍼키드 공연 - 풍류공작소 ‘시립국악원 공연’
■ 7월 28(토) 축제 4일차 - 빛의 도시! 목포 .주무대 - 평화바다 해양 레포츠 묘기쇼 - 세계 청소년 길놀이 퍼레이드 - Youth Festa '거침없이 놀자Go!' - 세계 청소년 참가 민속공연 - 해양문화축제 축하 뮤지컬 ‘이순신’ - 퓨전 국악공연 ‘바다울림’ - 목포 평화바다 비전선포식 - 평화바다 해상 멀티미디어불꽃쇼 ‘빛과 바다의 오페라’ (21:30) .해상특설무대 - 평화바다 해상 워터스크린, 레이져쇼
■ 7월 29(일) 축제 5일차 - 신해양시대! 목포 .주무대 - 세계 청소년 길놀이 퍼레이드 - 세계 청소년 참가 민속공연 - 해군본부 의장대 / 군악대 퍼레이드 - 시립국악원 공연 ‘빛의 향연’ - 목포 시립교향악단 공연 ‘목포 칸타타’ - 목포 시립합창단 공연 ‘목포찬가’ - 폐막주제행사 ‘바다의 세레나데’ - 소원기원 특별행사 : 대형 띠배태우기, 소원기원 풍등날리기
■ 햇살가득 꿈과 낭만, 큰바다 체험행사 .워터월드 체험행사 해양레포츠(수상스키, 수상오토바이, 바나나보트, 땅콩보트, 모터보트, 플라이 피쉬) 다도해 크루즈 투어 / 평화바다 풍등띄우기(폐막식) 전통한선 승선(돛올리기, 노젓기체험) / 평화바다 핀수영대회 가족대항 노보트 경주대회 / 수상자전거대회 내가 만든 엉터리배 챔피언쉽 해양레포츠 시연(패러세일링, 스킨스쿠버, 수상스키, 수상오토바이)
※ 사전접수 - 내가 만든 엉터리배 챔피언쉽(경연대회) - 가족대항 노보트 경주대회
프로그램은 홈페이지와 전화(축제상황실 061-270-8442/8102)로 문의바랍니다.
.블루존 체험행사 포토존 / 소원띠 이어가기 / 도자기 빚기체험 / 부두풍경 체험 / 시민대형 밧줄 줄다리기 / 소원기원 대형 띠배만들기 / 해변도로 난영 인력거체험 / 추억찾기(추억의 아이스께끼․팥빙수) / 해양문화축제 기념품 만들기 / 페이스 페인팅 / 해변 초상화 그리기 / 거리마술쇼 / 물고기모양 천연비누 만들기 / 목포해양 에니메이션 색칠놀이 / ‘삼학도 전설’
.아이스존 체험행사 얼음수박 빨리먹기 / 쿨존(터널분수) / 얼음놀이 공간
■ 햇살가득 꿈과 낭만, 큰바다 전시행사 .특설이동박물관 'Museum 바다‘ 바다소리 감상, 세계 모형배 특별전, 전통어로도구 전시, 기념목판 인쇄, 해양문화축제 6행시 짓기, 미래형 선박콘테스트
■ 햇살가득 꿈과 낭만, 큰바다 전시행사 특설이동박물관 'Museum 바다‘ 바다소리 감상, 세계모형배 특별전, 전통어로도구 전시, 기념목판 인쇄, 해양문화축제 6행시 짓기, 미래형 선박콘테스트, 해변도로 전시관 '갤러리 바다‘ 해양문화축제 포스터 전시전 / 바다사랑 예쁜엽서전, 식객여행(허영만 ‘식객’ 만화전 - 홍어편) / 해양환경 사진전 소방안전 사진전 / 기념우표 전시전
.홍보관 및 오션마켓 부스 목포시, 서남권 홍보관 / 건강홍보관 관광기념품전시판매(모시꽃 시연/전시) 목포 수산물 전시판매 / 목포 별미음식 전시판매 서남권 특산품 판매 / 도자기․옹기 전시판매 생활분재 및 여름 화초류 전시판매
■ 목포 해양문화축제 특별행사 제 2회 축제기념 학술대회(7. 24 해양유물전시관) 제 1회 목포시장기 레프팅대회(평화광장앞) 제 1회 시장기 전국윈드서핑대회(평화광장앞) 제 19회 목포 전국국악경연대회(7. 28~29, KBS스포츠홀) 한·중 서화 문화교류전(7. 25~29, 자연사박물관) 제 7회 전국 우수마당극 제전(7. 26~29, 문화의 집) 제 2회 우봉 이매방춤 제전(7. 25, 문화예술회관) 제 43회 전라남도미술대전 전시회(7. 25 ~ 7. 30, 문화예술회관)
목포해양문화축제 공식홈페이지 http://www.mokpofestival.or.kr 해양문화축제 포스터 전시전 / 바다사랑 예쁜 엽서전 식객여행(허영만 ‘식객’ 만화전 - 홍어편) / 해양환경 사진전 소방안전 사진전 / 기념우표 전시전
.홍보관 및 오션마켓 부스 목포시, 서남권 홍보관 / 건강홍보관 관광기념품전시판매(모시꽃 시연/전시) 목포 수산물 전시판매 / 목포 별미음식 전시판매 서남권 특산품 판매 / 도자기․옹기 전시판매 생활분재 및 여름 화초류 전시판매
* 목포의 맛과 음식 점 목포에서 맛 자랑을 하지 말라는 관광객들의 구전을 통해 온오프라인의 화제거리임을 거의 모른 사람이 없다. 맛과 음식 종류에 이르기 까지 한마디로 너무 먹음직 스럽고 다양하며 값이 전국에서 가장 싼 곳도 목포이며 특히 백반, 낙지연포, 세발낙지, 홍어찜과 홍어회 그리고 횟감의 천국이니 직접 방문 비교 하지 않더라도 목포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관광보다도 목포 음식을 맛보는데 그 우선을 두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목포 음식에 대해서 너무 자세히 쓴 글쓰기연구카페의김도현님의 글이 있어 내가 궂이 쓰는 것 보다 더 상세한 조사와 설명이기에 그대로 소개해 본다 :
산낙지를 드신다면 이곳에서 드세요. 전국 최고의 맛입니다. 노점에서 아줌마들이 파는데 야채등과 양념으로 같이 드실려면 회집 안으로 들어가서 먹을수 있어요.그리고, 낙지비빔밥이나 연포탕으로 드실려면 남도 음식 대회에서 당당히 대상을 차지한 : -독천식당이 있습니다. 반찬으로 나오는 음식들은 전라도 식당 치고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직 낙지 음식 하나만큼은 정말 맛있습니다. 특히 낙지 비빔밥은 예술이죠!! 연포탕은 영양에는 끝내 준다. 목포 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밖에 안되는 가까운 곳에 있어요(061-242-6528) 그 외, 낙지와 백반 등으로 유명한 집으론
-고향의 맛 식당은 백반 전문 식당으로 1인당 5000원인데 목포 전 지역을 다 뒤져봤어도 이 집 만큼 값싸고 먹을만한 식당을 찾기 힘들다. 1명이나 2명은 사실 적자이니 주인이 반가워하지 않을 정도로 처음에 특이하게 낙지오이 초무침이 나오고 훈제조기, 조기 매운탕, 제육볶음, 싱싱한 야채나물, 젓갈류, 국 드리고 4명이 한상이면 소고기 육회까지 20가지 이상의 반찬류에 상이 쓰러지는 노랄만한 어쩜 목포 맛의 대표적 체험장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목포역에서 차로 4분 거리며 목포 연동 파출소 뒤편에 있더군 요.(061-273-7817)
-어촌 식당은 세발 낙지와 낙지 연포로 값싸고 맛 좋기로 유명하다. 북항 회센타에 있으며 (061-243-5200) -호산회관도 만만치 않게 잘 합니다 (061-278-0050) 목포하면 또 홍어 요리도 유명 한데요,아마 전라도 분이 아니시면 그렇게 권장은 못 해드리겠네요. 비싸기도 엄청 비싸지만 특유의 발효 냄새로 인해 타 지방 분들은 많이들 못 드신다고들 하더라구요.
-영란회집은 민어회로 유명한 곳인데 보통 한 접시에 4~ 50,000원이고 민어 한 마리에 20가지 이상의 부위로 나누어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며 민어 매운탕은 일미더라... (061-243-7611)
-금메달 식당 이라는 곳이 있는데 (061-272-2697) 흑산 홍어 등 엄청 비싸지만 값어치는 합니다. 1인분에 10만원 이상 호가하니 짐작 가시죠? 그 외에 전통 전라도 한정식을 맛보시려면 유달산에 위치한 -한미르가 대표적 인데요 거기도 좀 비싸서 탈이지 장난 아니게 깔끔하고 맛있는 음식 엄청 나옵니다. 육고기를 취급한 고깃집으로는 북항 쪽에
-어문이라는 고깃집이 있는데 이 집 역시 밑 반찬이 너무 잘 나와서 고기는 조금만 시켜도 될 정도로 맛있고 양이 많아요. 하당신도심 쪽으로 가시면 깔끔하고 맛있는 집들도 많이 있습니다. 돌아다니시다 한번 아무 집이나 들어 가셔도 남도의 구수한 맛을 즐기실 수 있다.
*목포 음식의 특징
-봄동, 포항초, 세발 나물에 구수한 된장을 많이 쓴다. 봄동이 전라도에서 나는 어린 배추라는 걸 아세요? 요즘은 서울 사람들도 많이 먹지만요.
목포 사람들은 이른 봄 봄동, 포항초, 세발나물, 냉이 등 파릇파릇한 봄나물을 항상 상에 올린다. 주로 구수한 된장 양념으로 즉석에서 맛있게 버무려 접시 가득 담는 것이 특징. 때로는 얼큰한 된장국에 넣어 맛을 내기도 한다. 포항초나 세발나물은 찬 바닷바람을 이기며 돌산에서 새싹을 피우기 때문에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맛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목포 시내에서 유명하다는 맛 집은 다 꿰고 있고, 친구들 대부분이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어 남도 요리에 관심이 많은 김종숙씨. 그녀 또한 요리를 할 때 구수하면서도 짭조름한 된장을 많이 사용하더군요. 나물을 무칠 때도 고추장보다는 된장이나 참기름을 많이 사용하고 설탕 대신 물엿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어요.
*매일 가도 색다른 목포 수산시장에서 싱싱한 찬거리들 목포의 수산시장은 커다란 볼거리다. 목포항 근처에만 서너 곳이 있는 수산시장은 구수한 시골 인심까지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목포로 여행을 간다면 선창과 수산시장은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일 정도다. 갓 잡아 올린 가자미, 모시조개부터 감태, 참조개, 바지락, 세발낙지, 짱뚱어 등을 구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워낙 고가의 특산품이어서 주로 일본으로만 수출한다는 말린 홍어도 장관을 이룬다. 수산시장 횟집이나 밥집에 가면 싱싱한 회부터 바다 냄새 가득한 다양한 반찬을 맛볼 수 있는데 양도 풍족하고 싱싱해 100% 만족을 자랑한다.
그리고 식당 상호에 ‘전라도’자만 붙으면 그 집 음식은 믿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전라도 음식은 갖은 양념과 젓갈을 많이 사용해 맵고 자극적이어서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것이 특징. 전남의 대표 손맛인 목포는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과 해조류,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 깊은 맛이 느껴지는 봄나물, 짭조름한 젓갈로 풍년을 이룬다. 남도 밥상은 상에 깔리는 밑반찬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른바 일본식 횟집에서 볼 수 있는 '스끼다시'가 아니라 잘 차려진 남도 밥상이다.
갓물김치, 황석어젓, 자애(아주 작은 새우)젓, 멸치젓, 갓김치, 파김치, 감태무침, 콩나물무침, 쫄짱게(한입에 통째로 들어가는 작은 게) 간장무침, 묵은지, 무생채 등이 한 상에 나온다. 숭어창젓, 전어젓, 오징어젓이 나오기도 한다. “
** 시장분석
1. 해외 관광지 1) 목포 유달산처럼 전쟁의 유물 유적의 유산과 유배지 그리고 볼거리 등 다양한 옛 문화를 관광자원화 하여 크게 발전으로 세계적 관광의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몇 곳을 들면 중국의 해남도와 만리장성을 비 롯 홍콩 그리고 시드니와 로마의 유적지 등이다. 이러한 명소들은 천혜의 항구는 물론 자연 풍광과 볼거리 그리고 유배지나 자연재해의 유적들을 잘 살려 체험과 테마관광에 큰 부를 창조하는 곳 들이다. 그래서 목포의 유달산도 자연적 풍광과 볼거리 그리고 일제의 역사적 잔재들을 오히려 훼손시키지 말고 잘 보존 발전 시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국내는 물론 특히 홍콩을 능가하는 항구도시이자 세계적 관광의 메카로 군림하기에 충분하다. 중국의 해남도도 목포의 자연 조건인 다도해를 끼지 않으면서도 유명하지만 목포는 다도해와 유달산 그리고 역사적 유물유적 등 다양한 관광개발 문화적 요소가 있어 그들을 앞서는 데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목포는 천혜의 명물인 유달산에 더한 야경의 아름다움을 하나 더 연출 시키고 있으니 일석이조의 여행과 관광의 충분한 동기를 부여시켜 오고 있는 곳이라 말할 수 있고 또 다행으로 여긴다.
2. 국내 관광지 제주도 제주도는 우리 모두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세계적 관광지다. 그들은 천혜의 관광의 볼거리는 물론 많은 유배문화의 산물 등을 테마관광거리의 소재로 잘 발전 시켜 가고 있으며 게다가 인공적 볼거리 등도 등장시켜 국내 관광의 최고의 메카로 자리하고 있듯이 목포도 역시 유달산과 고하도 그리고 원도심의 루미나리에 거리, 영산강 하구언의 인공폭포 등 인위적 관광거리를 무한히 개발하고 있으며 현재 공사 중인 목포대교와 공사가 완공된 압해대교를 주축으로 유달산의 명성은 앞으로 그 빛을 더하게 될 것이며 앞에서 언급한 국내의 어디라도 충분히 경쟁이 가능한 관광산업의 성공을 기대하고 있다.
** 줄거리요약
서남해의 관문인 목포시는 전남 도청을 낀 항구 도시로서 천혜의 풍광을 자랑하는 유달산의 자연 자원은 물론 일제하에 우리민족과 목포의 얼룩진 식민지로서의 굴욕적 과거이자 산물인 일본이 남긴 흔적들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좋은 등산로와 문화적 불거리와 놀거리 그리고 풍부한 먹거리의 천국이며 목포는 신안군의 넓은 다도해를 통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육지의 원할한 접근성과 충분한 관광 인프라로 인해 주간과 야간 동시관광이 가능하게 하며 목포의 유달산이 복합적 관광 명소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 테마개발여건 = 국내외 유사 선진사례
*. 국내 제주도와 중국의 해남도 등과 목포의 관광비교의 예 먼저 제주도의 경우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섬으로 천혜의 자연경관, 청정해역 등 수려한 자연환경과 더불어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등 동북아 무역블록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항공거리 2시간이내에 인구 1천만이상의 도시 5개, 인구 3백만이상의 도시 13개가 입지하고 있다. 무한한 시장이 펼쳐져 있는 명실상부한 동북 아시아의 관문이며 경마장, 골프장 , 카지노 그리고 죄신의 휴양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며 지금까지 발전 시켜온 관광의 토대위에 최근 1단계의 중부개발완료 그리고 2단계의 동부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투자로 진행하는 국제적 관광겨냥에 초점을 두고 있는 곳이라 주로 국책사업의 관광개발의 혜택에 크게 의존함은 물론 유배지로서의 역사 유산 등도 아울러 인위적 관광상품 만들기와 병행하여 접목 개발시키는 다양한 제주도 자체의 관광발전의 노력은 크게 배울 만 하다.
둘째로 해외 즉 중국의 해남도의 경우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특급관광지로 과거 유배지와 유배 문화의 산물들을 잘 가꾸고 활용하여 현대적 관광에 접목시키는 관광 활성화 노력은 배울만하고 그래서 그들은 결국 세계 우위의 관광지로 부상시켜 놓은 것이다. 이곳도 역시 골프장, 리조트, 카지노 시설, 원숭이, 코끼리, 곰, 호랑이와 악어 등 다양한 동물과 재주를 상품으로 하는 동물원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산야만에 위치한 스프링 리조트는 캐나다의 A&D회사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하이난 Hainan Dayu 투자개발 회사에 의해 투자된 5성급 리조트인데 크기가 3만 평방미터로 고대 중국 풍수지리 문화에 입각한 전형적인 열대 해변 스타일을 고수하고 특히 유배문화를 관광에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이와 목포의 관광 여건을 비교해 볼 때 제주도와 중국의 해남도는 대규모의 국책사업의 지원과 자체 상품개발이 빅사이즈의 국제적 모델 관광지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반면에 목포의 경우는 목포시청과 지방자치의 관광개발 마인드가 국내 어느 곳 보다 크고 육지와 해상 두 곳을 관광개발 시킬 수 있는 천혜의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특히 같은 항구 도시인 홍콩을 관광경쟁의 대상으로 빛의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으며 목포와 2km 떨어진 고하도간의 목포대교가 2010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에 있으며 고하도가 이순신장군의 유적의 섬임을 관광에 접목 시킬 계획이며 대규모 리조트 시설이 들어서 주변 달리도, 눌도와 외달도 등을 연계시켜 도시와 섬 문화를 하나로 묶는 조화를 연출 구상 중이다. 이에 더하여 목포와 신안군의 압해대교가 완공됨에 따라 압해도와 신안군의 안좌도, 팔금도, 암태도 그리고 자은도를 연결할 압해도와 암태도 간의 새천년대교가 신안군에서 추진 중에 있으니 비금 도초와 하이도, 장산도, 그리고 신의도 등 신안군의 큰 섬들과의 팩키지 관광이 목포를 관광 중심에 서게 하는 지상 최고의 관광지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중국의 홍콩과 섬을 끼지 않은 해남도도 결국은 목포의 관광개발에 밀리고 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안 국제공항과 광주목포간의 고속도로 그리고 KTX등의 SOC확충과 주변 INFRA의 완벽한 구성으로 접근성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좋은 시점에서의 목포의 관광발전이 크게 기대된다.
** 축제 이벤트 요소
목포해양문화축제, 사랑은빛갈치축제, 유달산축제, 북항회축제, 동명동종합수산물축제
** 인근관광지
1) 인근관광지 : 홍도 흑산도를 비 롯한 신안군의 13개 1개 읍의 섬들, 무안 회산 연꽃방죽, 영암왕인박사 유적지, 강진 청자도요지, 해남 화원 레저관광단지 등 2) 기타 목포주변 관광 명소 : 국립해양사 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남농기념관, 문화예술관, 근대문화관, 목포문화원, 목포문학관, 영산강 인공폭포, 장주원 옥공예전시관, 한국산업도자전시관, 이훈동정원, 외달도, 고하도, 눌도, 달리도 등
** 홍보방안
1) 목포시 각 관광안내소에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관광 브로셔와 팜플렛 비치 홍보 2) 외국인 관광안내원 영어, 일어, 중국어 전체안내소 상주배치 3) 평화광장, 목포 역 그리고 북항에 목포시 관광 홍보용 대형 영상스크린 비치 4) 무안 국제공항과 압해대교 입구 측에 목포 관광안내소 추가배치 5) 국내외 공항, 항공사, 여행사, 여객터미널, 버스터미널, 역전, 한국관광공사, 그리고 각 시군의 관광 안내소와 국공립 공원 등에 홍보물 비치 6) 관광홍보 카페 증설 지원 및 이용 (목포문화관광해설가회카페, 신안목포관광카페, 목포알림이 등) 7) 목포 대형 숙박업소와 식당에 관광안내 팜플렛 비치 8) 방송사와 영화제작업체와 교류/팸투어초청 및 전국의 관광관련 단체 팸투어 초청 9) 목포시청 공식 홈페이지 관광 프로그램 다양화 재구성 보완
** 목포여행정보
*. 이용시설 : 파고라, 누각, 대중음식점, 기념품점, 슈퍼마켓 이용시간 : 24시간 개방 (유달산) *. 등산코스 : 유달공원 입구 - 달성각 - 유선각 - 마당바위 - 일등바위 (2km, 40분 소요) *. 지역간 교통 : 용산역 - 목포역 1일 17회 운행. 1544-7788 *. 지역내 교통 : 목포역에서 도보로 20분거리 (유달산 입구까지) 목포시내에서 목포역으로 가는 버스(1, 2번 등)타고 목포역에서 하차. *. 도로안내 : 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 - 1번 국도 - 2.2km - 1번 국도와 2번국도 분 기점에서 1번 국도 선택 - 목포역앞 - 유달산 입구 호남고속도로 광산IC - 13번국도 - 송정 - 나주 - 1번국도 - 무안 - 1번국도 - 목포시내 - 중앙로 - 무안동 - 유달산 *. 진입로주변숙박지: 스위트모텔 : 061-245-0777, 콘티넨탈모텔 : 061-244-3500 신안비치호텔 : 061)243-3399,www.shinanbeachhotel.com 샹그리아비치관광호텔 : 061)285-0100 www.shangriahotel.co.kr 빅토리아모텔 : 061)287-1002, 마로마모텔 : 061)283-3340 *. 주변 식당 : 장터 : 061)244-8880 한미르 : 061)243-7227 한국회관 : 061)245-0930 독도해물탕 : 061)283-1057 남도밥상 : 061)285-3677 영란횟집 : 061)243-7311 금메달식당 : 061)272-0606 호산회관 : 061)278-0050
*. 주변명소 : 낙조대, 난공원, 남농기념관, 노적봉, 달성사, 대반동, 목포자연사박물관, 오포대, 목포 문학기념관, 옥공예전시관, 유달해수욕장, 이충무공기념비, 조각공원 등. *. 지역 특산물 : 세발낙지와 각종 자연산 횟감 *. 목포문화관광 홈페이지 : http://tour.mokpo.go.kr/ (전화 061-270-3520) *. 사랑의섬 외달도 홈페이지 : http://mokpo.go.kr:3000/oedaldo/main.php 전화(061-244-0522, 242-1076) ※ 외달도 찾아가는 방법 1. 목포여객선터미널 제1매표소에서 신진페리호 승선한다. 2. 2시간 간격으로 운항하며 약 50분 소요되고 승용차 탑재도 가능하다 *. 기타 관광안내와 숙박 및 식당 등 문의 : 목포관광안내소 061-270-8411/8279/8593/8975/8599/8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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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유산만에 아름다운 매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