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종주 10구간(함박산ㆍ문수봉)
일자 : 2002년 6월 5일
구간 : 하고개 ∼ 문박산 ∼ 문수봉 ∼ 안골도로(미리내마을)
도상거리 : 17.3km
산행시간 : 6시간 25분
한국 월드컵 출전 역사상 48년만의 첫 승리라는 쾌거를 일궈 낸 감동의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4일 밤 한국 대 폴란드전 경기가 2-0 스코어로 온 국민이 그토록 염원했던 한국팀의 첫 승으로 장식되자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을 중심으로 전국이 승리의 기쁨과 환희로 가득했다. 첫 승 앞에서 하나가 되어버린 국민들, 감동의 드라마는 정맥을 향하면서도 이어간다. 우리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08시 35분 용인시와 남사면을 잇는 333번 지방도 상에 있는 하고개에는 터널공사가 한창이다. 다행하게도 동물이동 통로로 끊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깎아지른 절개지를 오르면서도 조금은 마음이 흡족하다.
15분 정도 절개지를 끼고 올라 마루금에 붙으면서 잡목 숲을 헤친다. 송전탑 공사 시 공사도로였던 자리는 잡풀만 무성하다. 나뒹구는 나무를 들고 스틱을 대신하려던 김수남씨가 옻나무라는 바람에 질 겁을 하고, 정맥길로 변한 넓은 옛 공사용도로는 막아줄 그늘이 없어 따가운 햇살이 사정없이 정맥꾼들의 옷깃을 파고든다.
첫 번째 송전탑을 통과하면서 우측 아래로 공원묘지가 나타난다. 정맥 마루금까지 파고든 서울공원묘지, 그런데 급사면에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석축이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 것 같아 몸이 옴츠러드는 듯하다. 안전이 제일인데... 좌측으로는 명지대학교가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 가파르게 올라선 고도가 340m을 가리키는 봉에는 판독을 할 수 없는 삼각점이 있고, 한동안 터널숲길을 내려서다 만나는 송전탑, 마치 정맥능선은 송전탑의 전시회장인 듯 능선 곳곳이 흉물스럽다. 오늘 내내 송전탑을 세면서 가야할 것 같다.
공터를 만나고 임도에 들어서며 숲길과 반복하다가 송전탑을 통과하며 올라선 곳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숲길을 빠져나오면서 연이어 만나는 송전탑,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선 곳이 고도가 349m의 함박산이다. 표지목에 424m라 표기되어 있다.
함박산은 용인시 남동과 이동면 서리에 접해 있는 산으로 명지대학교 뒤편에 있는 산이다. 아주 오랜 옛날 무너미고개까지 물이 넘쳐 이 일대 봉우리가 모두 물에 잠겼을 때 이 산 봉우리만 함지박만큼 남았다 하여 함박산이라 불렀다나...
잠시 좌측으로 명지대학교를 내려다보며 확인해보니 지나온 부아산과 석성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남쪽 숲 사이로 봉우리가 셋이 있어 이름 붙여진 삼봉산((306m), 남동쪽으로 시궁산(514.9m)이 보일 만도 한데, 허락하지 않는다. 시궁산은 용인시 이동면 묵리와 화산리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신선봉, 국수봉, 요산으로 불리고 있는 산이다. 정상에 연못이 있었는데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던 곳이라 하여 신선봉이라고 불렀으며, 이 연못의 이름이 시궁이었다는 전설이 있다. 정맥은 오른쪽(동)으로 내려서며 무네미고개를 가리키는 조그만 팻말을 확인할 수가 있다.
묘지대를 만나면서 산판길이 나타난다. 이어 만나는 망향의 대성동산이란 비석, 이곳은 평안남도 대동군 면민회에서 조성한 공동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정맥길로 변한 묘지로 오르는 진입로를 따라 한동안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많은 비석들이 눈길을 끄는 묘지대를 통과하고 십자로 안부를 가로지르며 오름길에 만나는 갈림길 좌측으로 볏짚을 올린 움막이 정겹게 다가오는데 정맥은 왼쪽길이다.
절개지가 가로막는다. 현재 공사중인 신설도로에 내려섰다가 다시 절개지를 올라 오른쪽으로 그리고 임도를 만나 따르다가 내려선 곳이 무너미고개다. 2차선 도로인 45번 국도를 가로지른다. 비가 많이 와 넘쳤다는 무너미고개는 전국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보통명사의 지명이다. 달 밝은 밤에 넘는 '박달재'나 사무친 원망의 고개인 '아리랑고개'...
도로 우측으로 은화삼컨트리클럽으로 들어서는 진입로가 나있다. 정맥은 이 진입로 좌측능선을 타고 가다 골프코스를 가로지르며 남동방향으로 이어가는데, 지도까지 지참한 직원이 일일이 정맥꾼들에게 사업장인 관계로 우회하라고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는데 어쩔 수는 없는 일...
10여분을 우회하다 정맥능선에 붙으며 돌아보는 푸른잔디밭의 골프코스 하야케 핀 이름 모를 꽃이 아름답다. 한동안 서있던 곳이 정맥상의 16번 티라고 생각된다. 정맥은 잡목 숲을 가르며 간다. 솔잎혹파리의 후유증인가 누렇게 변해버린 장송 숲이 애처롭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정맥길, 산불지대가 나타난다. 그리고 좌측으로 벌목지대...
218.1봉에 오른다. 훼손정도가 심한 삼각점을 만날 수 있다. No, 39번 송전탑을 통과한다. 이어 만나는 십자로안부, 한차례 긴 오르막을 올라 240봉에 오르니 운동시설과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때마침 지역 주민인 듯한 남녀 등산객, 서로 무언의 인사를 나눈다. 어제 밤엔 우리 모두가 하나였었지...
능선분기점인 240봉에서 안부에 내려섰다가 오르는 숲길은 한결 시원하다. 다시 만나는 능선분기점은 왼쪽으로 우측에 있는 송전탑을 끼고 내려선다. 경사길을 내려서면서 틈틈이 나타나는 방화선이 되어버린 송전탑 공사 시 만들어진 작업도로, 싸리나무와 잡풀들을 가르며 간다.
좌우로 하산길이 선명한 십자로 안부를 내려섰다가 오르는 길은 칡넝쿨이 발목을 붙잡는다. 키에 가까운 타래풀의 허연 꽃이 오늘따라 보기 좋은 정맥은 36번 송전탑을 확인하고 간다. 십자로 안부에는 쌍 무덤이 보이고 숲 사이로 오르다보니 다시 흙무덤이 나타나는데 장송사이로 잡목들이 거치적거리는 정맥길은 유난히 많은 산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즐겁게 한다.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송전탑을 겨냥한다. 송전탑을 통과하면서 유난히 칡넝쿨이 많은 지역인데 넓은 길을 따르다보니 손수건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가능한 숲길로 이어 가려하지만 수시로 마루금을 차지한 넓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길, 숲길로 들어서면서 오름길이 밋밋한 봉을 넘는다.
평탄하게 이어지던 정맥이 한차례 내림길로 바뀌고 다시 송전탑을 향해 올라서니 시야가 탁 트이면서 좌측으로 산을 몽땅 허물고 있는 현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34번 송전탑을 통과한다.
오르내림이 이어지는 참나무숲길에는 낙엽이 수북히 갈려있다. 왠지 낙엽길이 조심스럽다. 지난번에 낙엽 속에 숨은 돌부리에 하마터면 정맥길이 웬수가 될 뻔하지 않았는가, 신원골프장이 내려다보이는 정맥길, 연못에 푸른 수면이 푸른 잔디와 어우러져 더욱 신선해 보이는데, 길을 재촉하는 김종범씨...
숲이 꽉 들어찬 정맥길에는 유난히 목청도 큰 검은등뻐꾸기 한 마리가 정맥꾼들을 유혹한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혹시나 하고 사진 한 장 찍어보려고 하나 어디에 숨어있나, 찾을 길 없다. 32번 송전탑을 통과한다. 좌측으로 온통 산허리를 잘라내는 공사현장이 더욱 가까워지며 보기 흉하다.
긴 오르막을 올라 조금 떨어져있는 철탑 위에 대형 십자가가 보이는 능선 갈림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길을 막고 둘러앉아 허기를 채우기로 한다. 일주일에 두 번씩 산을 타고 살림하라 바뿐 와중에서도 문산에 작은 농원에서 채소밭을 가꾸기도 한다는 김수남씨, 부디 9정맥 완주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직접 재배했다는 신선한 상추쌈이 오늘따라 입맛을 당긴다.
20여분의 중식시간을 끝내고 왼쪽으로 2분 거리에 송전탑을 통과하고 조금 올라선 곳에 삼각점이 있지만 여전히 판독할 수가 없다. 이어지는 정맥길은 한동안 잡풀 속에 숨어 있는 울퉁불퉁한 길이다. 언 듯 보기는 옻나무와 흡사한 붉나무에 대하여 김종범씨 한마디, 붉나무 열매는 지상에서 가장 소금 끼가 많은데 그 열매는 이질이나 장염에 좋다고 한다.
삼각점(안성 402. 83년 재설) 이 있는 340.9봉이다. 평탄한 정맥길에는 군데군데 철쭉이 보이고, 다시 만나는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봉을 우회하여 26번 송전탑을 통과하며 임도를 따라 내려선 고갯마루 조금 지난 곳이 망덕고개다. 천주교 수원교구 평택성당에서 세운 망덕고개비가 있다. 김대건 신부가 생전에 사목활동을 하고 순교 후 유해 운구길이 였다고 한다. 미리내 성지가 4,372m 떨어진 곳에 있다.
김대건 신부는 신유(1801년), 기해(1839년) 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 때문에 이곳으로 숨어들어 여기저기 흩어져 화전을 일구고 살았는데, 밤이면 달빛 아래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여 미리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병오(1846년) 박해 때 순교하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유해가 안장되면서 미리내는 박해시 주요 교우촌으로, 또 교우들의 정신적 안식처로서 교회 주목을 받으며 성지로 부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46년 9월 16일 사학괴수라는 죄목 하에 군문효수형을 받고 서울 새남터에서 휘광이가 여덟 번씩이나 내려치는 칼에 순교하셨는데, 신부님의 전교길을 돕던 이민식 빈첸시오(당년 17세)가 관헌들의 눈길을 피해 성인의 시신을 200여 리 떨어진 미리내로 모셔와 1846년 10월 30일 자신의 선산인 지금의 자리에 안장하였다.
1901년(성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55주년) 5월 18일, 시복식 준비를 위해 발굴된 성인의 유해는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 성당으로 옮겼으나 미리내 묘소는 그대로 보존되어 순례자들이 계속 찾아들었으며, 성인께 기도하여 은혜 입은 이들이 속출하자 성인의 무덤에 잔디가 남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삼각점(안성 446,87 재설)이 있는 424봉에 오른다. 이어 조금 떨어진 능선분기점인 쉼터에는 정자가 자라잡고 있다. 처음 정맥길을 걷는다는 이동은씨 그녀의 길잡이 노릇을 맡은 윤정길씨가 다리쉼을 하고 있다. 이제 문수봉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알려주는 이정표(묵리, 고초골, 문수봉방향)...
한차례 올라선 곳이 문수봉이다. 문수봉은 예전에 있던 문수사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넓은 공터에 정자가 자리잡고 있고 삼각점을 확인할 수 있다. 시야가 탁 트여 칠장산을 향해 이어가는 정맥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정표(매봉재, 곱등고개)를 뒤로 급경사의 나무계단을 내려서다 정맥길에서 우측으로 조금 벗어나 있는 마애보살상을 확인하고 다시 샘터에서 목을 축이며 한동안 떠날 줄을 모르는 정맥꾼들... 질투는 가장 나쁜 감정이요, 용서는 가장 좋은 선물이란다.
산죽 잎이 새로 돋아나 싱그러운 정맥길은 다시 계단을 따라 가파르게 내려서며 평탄하고 넓은 등산로가 열린다. 두려움은 가장 무서운 죄요, 바로 오늘이 가장 좋은 날, 자신을 속이는 자가 가장 무서운 사기꾼이요, 포기해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실수라고 한다. 정맥을 이어간다는 것이 아무리 힘에 부치더라도 포기하지는 말아야지 ...
이정표(매봉재, 중소기업개발원)을 지나치고 이어 만나는 이정표(매봉재, 사암리) 이곳에서 정맥은 넓은 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팍 꺾으며 잡목 숲을 헤치며 내려서다 보니 우측으로 법륜사가 보인다.
절개지가 나타난다. 나무들을 베어놓아 길을 막는 가파른 절개지를 내려선 곳이 미리내마을 입간판이 서있는 1차선 콘크리트포장도로인 안골도로다. 빨리 서울에 올라가 미국과 포르투갈의 경기나 보아야지...
지난 1954년 스위스대회에 첫 출전해 참담한 패배를 안고 돌아온 이후 좌절을 거듭한 끝에 거의 반세기만에 풀어낸 과제가 아닌가, 어제의 승리는 국민적 염원이 돼오다시피 했던 첫 승리이니 마음껏 자축하고 자랑스러워할 일이다. 단순한 축구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의 저력과 노력이 응집돼 일궈낸 쾌거로 평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