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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나는 인생 / Humanities_인문학 산책
ysoo 추천 0 조회 53 16.01.16 16: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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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ies_인문학 산책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나는 인생

 

말에도 T.P.O.가 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날 때 터뜨리는 첫 소리는 울음이다. 물론 그것은 말이 아니다. 언어의 전 단계로서 옹알이를 한 뒤에 처음 입 밖에 내는 말은 대부분 ‘엄마’이다. 말을 통해 아이들은 의사표시를 하고, 말을 통해 자신을 에워싼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혀나간다. 그것이 원활하지 않아 자폐아가 되거나 심리적 장애를 겪는 경우도 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단절되고 소외되는 것이다. 말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인생의 도구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람이 한평생 만들어내는 말을 계측하고 계량하기는 어렵다. 장강(長江)이라거나 대하(大河)라는 표현을 불러와도 시원치 않다. 말은 의미를 지닌 것이지만 그것이 발설되고 난 뒤에는 휘발성이 있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문자가 탄생하고 기록문화가 생겨났을 것이다.

대부분의 말이 대화의 형태로 교류되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서는 말이 곧 관계이고 관계가 곧 말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된다. 인생 만사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는 의미이다.

‘엄마’로 시작해서 유언으로 끝나는 인생, 말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절대적 도구이자 수단이다.


평생 말을 사용하고 살면서 말에 대해 뚜렷하게 개념을 정립하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말에 대해 뚜렷한 소신을 지니고 산다고 해도 그것의 사용이 절대적 법칙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 상황에 따라 예측불허의 변화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을 고려해서 의복을 알맞게 착용하는 T.P.O.를 사람의 화술에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모수와 평원군의 경우


‘한 마디 말이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한 마디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사용자에 따라 말이 얼마나 가변적일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들이다.

대개의 고사성어는 말의 성찬이다. 말의 사용에 따라 종래의 관념이 바뀌고 사람의 팔자가 바뀌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많다. 숨막히게 전개되는 TV 드라마나 영화도 말이 없다면 무성영화처럼 밋밋할 수밖에 없다. 청사에 빛나는 말의 향연을 한 토막 곁들여보자.


사마천의 <사기>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진(秦)나라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하자 조나라는 당시 전국(戰國) 사공자(四公子) 중 한 명인 평원군을 보내 초나라에 도움을 청하도록 하였다. 평원군은 빈객과 문하 중에서 용기와 힘이 있고 문학적 소양과 무예를 두루 갖춘 사람 스무 명을 뽑아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평원군이 열아홉 명을 뽑고 나머지 한 명은 뽑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스무 명을 채우지 못하고 있을 때 모수(毛遂)라는 이가 앞으로 나서서 스스로 자신을 추천하며 평원군에게 말했다.

 

 

“초나라와 합종 맹약을 맺기 위하여 빈객과 문하 스무 명을 뽑아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사람을 밖에서 찾지 않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모자라니 저를 그 일행에 끼워 주십시오.”


“선생은 내 빈객으로 있은 지 몇 해나 되었소?”
“3년 됐습니다.”


“대체로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과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그런데 지금 선생은 내 빈객으로 3년이나 있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선생을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나도 선생에 대해 들은 바가 없소. 이것은 선생에게 이렇다 할 재능이 없다는 뜻이오. 선생은 같이 갈 수 없겠으니 남으시오.”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저를 좀 더 일찍이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더라면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겨우 그 끝만 드러나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평원군은 결국 모수와 함께 가기로 했다. 열아홉 명은 모수를 업신여겨 서로 눈짓하며 비웃었으나 입 밖으로 그러한 마음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모수의 큰 활약으로 교섭이 성공리에 이루어졌다. 평원군은 조나라로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는 감히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 모 선생의 세 치 혀는 군사 100만 명보다 강했다.
나는 감히 다시는 인물을 평가하지 않겠다.”

 

그러고는 모수를 상객으로 삼았다.
모수가 자신을 스스로 천거했다 하여 ‘모수자천(毛遂自薦)’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기고 평원군이 주머니 속의 송곳을 비유로 삼았다 하여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기원전 275년의 일임에도 21세기의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큰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인재를 발굴하는 안목과 자기소개는 과거나 현재나 치열한 눈치 경쟁을 불러오는데, 모수가 보여준 도전적인 자세는 선발하는 자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것의 요체는 모수의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에 함축돼 있었다.

 

평원군의 고정관념을 깨는 낭중지추에 대한 전복적 언어, 그리고 그것을 구사할 수 있는 내적 소양을 그는 넉넉히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결정적인 언변은 결코 우연하게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모수뿐 아니라 그를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안목을 반성하는 평원군의 태도에서도 우리는 대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지배하는 상사의식, 반성할 줄 모르는 상사의식이 사회의 소통 경락을 막히게 한다는 걸 감안하면 참으로 부러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말의 진면목에 대하여

 

말의 진면목은 누가 뭐라 해도 진실성이다.

진실이 담기지 않은 말, 간교하게 꾸며낸 언어를 우리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 한다. 진실하지 않은 말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고 종래에는 뻔뻔스런 ‘모르쇠’를 낳는다. ‘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다 모른다’고 잡아떼는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너무 많이 봐와서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제 ‘모르쇠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말은 대화의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집중과 존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화는 승부가 아니라 소통과 교류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막힘과 어긋남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말문만 열면 자기 자랑을 일삼는 사람들, 말을 자아도취와 자기선전의 도구로 악용하는 사람들은 실로 어리석다. 이는 대인관계를 악화시키고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악습이니 고질병인 셈이다. 말은 하는 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 듣는 기능도 포함돼 있다는 걸 망각해서는 안 된다.


생각은 길게, 말은 짧게 하라는 말이 있다. 부질없는 말, 장황한 말을 경계하는 말이다.
요점 정리가 되지 않은 말, 맥락을 잃은 말을 한정 없이 늘어놓는 건 인간관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KISS 화법’을 중시한다. ‘Keep it short & simple’.
요컨대 ‘짧고 명확하게’ 말하라는 것인데 이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Keep it short, stupid!(짧게 해, 멍청아!)’라는 비아냥거림이 될 수 있다. 아무튼 말은 간단명료할수록 좋은 것이다.


21세기는 외모지상주의와 예능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모는 뜯어고칠 수 있으니 돈만 있으면 실현 가능하지만 말을 잘하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돈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많은 사람을 웃기는 연예인을 말 잘하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으나 실상은 판이하다.

말을 잘하는 것은 공부와 사유를 통한 내적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없이는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말보다 말장난이 횡행하는 시대인 만큼 진지함과 집중력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말이 곧 사람이다. 인품과 인격과 인성의 총화가 말로 나타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는 스토리텔링이 중시되는 시대이니 넉넉한 지적 자원과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풍부한 비유, 인용, 유머, 재치를 구사하여 소통과 교류를 풍요롭게 할 필요가 있다.

책을 많이 읽고 그것을 의미 있는 말로 구사하는 자기 연마는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

비관하고 공격하고 비판하는 말이 아니라 긍정하고 칭찬하고 감사하는 말의 성찬. 세상이 행복한 낙원으로 변할 수 있다면 오직 말에 의해 가능할 것이다.


글 박상우(소설가) 일러스트 홍소희

 

 

 

 

 

 

화품(花品)

 

사람에게 인품이 있듯 꽃에는 화품이 있다.
사람의 품격이 외모나 지위, 재물 따위가 아닌 덕, 지혜, 의로움 등에 의해 결정되듯 꽃의 품격 역시 겉모습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요컨대 중요한 건 외색(外色)이 아니고 내색(內色)이다.


이를테면 눈 속에 피어나는 매화, 서리 맞고 피는 국화, 진흙에 피는 연꽃, 사시사철 곧고 푸른 송죽 등은 꿋꿋한 절개를 제화품으로 한다.

동백이나 치자는 깐깐한 기골이 화품이고, 박꽃이나 봉선화는 소박함과 성실함이 화품이다.


옛사람들은 이 땅에서 피고 지는 대부분의 꽃에 이런 식으로 화품을 부여했다. 그리고 각자의 기준에 따라서 거기에 순서를 매겼다. 처음 만난 선비들이 초면에 주고받는 이야기 중에는 으레 각자가 매긴 화품의 서열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1품으로 매화, 2품으로 박꽃, 3품으로 국화를 꼽으면 남들은 그걸 통해 상대의 성격과 인품을 가늠했던 것이다.


지긋하고 노련한 선비들은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뒤뜰에 가꾼 꽃의 종류나 배열만 보고도 주인의 가치관과 사람됨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가령 붉은 모란이나 작약을 심지 않고 박이나 앵두를 심어 흰꽃만을 피운다면 그는 필경 벼슬을 등진 은자(隱者)이거나 부귀영화를 비웃는 한사(寒士)라는 식이다. 일상에서 꽃을 주고받는 문화는 서양보다 덜했지만 꽃을 바라보는 눈길만은 이렇듯 깊고 심오했던 것이다.


어디 꽃과 나무뿐일까.

사람이건 국가건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외색(外色)보다는 속으로 갈무리된 은은한 내색(內色)이 훨씬 중요할 터. 인품이나 국격을 만들어내는 건 바로 그 내면의 색깔일 것이다.

개천절과 한글날을 비롯해 문화의 날, 세계 한인의 날 등이줄줄이 이어지는 10월을 맞아 문득 생각해본다.


우리의 뿌리는 무엇이고 우리의 줄기는 무엇이며

그것으로 우리는 어떤 내색을 지닌 꽃을 세상에 피워내고 있는지….

 

글 임유승(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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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수자천(毛遂自薦)과 낭중지추(囊中之錐)

 

백기를 죽인 진소양왕은 다시 정예병을 동원하여 정안평(鄭安平)을 대장으로 삼아 한단성으로 가서 그곳을 공략중인 왕흘을 돕도록 했다. 소양왕은 반드시 한단성을 함락시키고야 말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조효성왕은 진나라가 다시 구원병을 보냈다는 것을 알고 크게 두려워하여 사자를 여러 나라로 보내어 구원을 요청했다. 평원군 조승(趙勝)이 조왕에게 말했다.

 

“ 위나라는 신의 처가입니다. 또한 평소에 가까이 지내고 있어 우리가 구원을 청하면 필시 구원군을 보내 줄 것입니다. 초나라는 대국이지만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가 합종책(合縱策)으로 설득하지 않으면 구원병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직접가서 합종책을 설파하여 초왕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평원군은 자기 집으로 돌아와 식객들에게 말하기를 문무를 겸한 사람 20명과 함께 초나라에 같이 가겠다고 했다. 3천 명의 식객들 중 학식은 갖추었으나 무예가 뛰어나지 못하고, 무예는 갖추었으나 학식을 갖추지 못하고 하여 아무리 고르고 골라도 단지 19명밖에 구하지 못하여 20명의 숫자에서 모자라게 되었다. 평원군이 탄식하며 말했다.

 

“ 이 조승이 수십 년 동안 선비를 길렀으나 문무를 겸전한 사람 20명을 얻기가 이다지도 어렵단 말인가?”

 

그때 하객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식객이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 저를 끼게 해 주신다면 부족한 사람 수를 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평원군이 성과 이름을 묻자 그 식객이 대답했다.

 

“ 신의 성은 모(毛)고 이름은 수(遂)입니다. 대량(大梁) 출신이며 군의 문하에 식객 노릇을 한지 3년이 되었습니다.”

 

평원군이 웃으면서 말했다.

 

“ 무릇 현사(賢士)가 몸을 의탁하고 있는 곳은 그곳이 어디이건 자루 속에 들어 있는 송곳과 같아 그 끝이 튀어나오게 되어있습니다.1) 그러나 선생은 나의 문하에서 3년이나 기거했음에도 이 조승은 한번도 선생의 이름에 대해 들은 적이 없으니 이것은 선생께서 학식이나 무예를 겸비한 것은 물론이고 그것 중 한 가지라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모수 : “ 신이 오늘에서야 그 자루 속에 들어가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제가 일찍이 군의 자루 속에 들어갔다면, 저는 아마도 홀연히 몸통 째 자루 안에서 튀어 나왔을 것입니다. 어찌 그 끝만 튀어 나왔겠습니까?”

( 臣今日方請處囊中耳!使早處囊中,將突然盡脫而出,豈特露穎而已哉?」

 

평원군은 모수의 말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를 20명의 숫자에 넣어 주는 것을 허락했다. 평원군은 그 날로 효성왕에게 작별을 고하고 20명의 문객과 함께 초나라의 도성인 진성(陳城)을 향해 출발했다.

 

평원군의 일행이 초나라에 당도하여 먼저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에게 자기가 왔음을 알렸다. 황헐은 평원군과 예전에 사신을 서로 왕래시켜 교분을 맺은 일이 있었던 사이였기 즉시 평원군을 위해 초고열왕(楚考烈王)을 접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평원군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입조하여 고열왕을 알현하는 의식을 행하고, 이어서 초왕과 평원군은 전당에 좌정하고 앉았고 평원군이 데리고 간 모수와 19명의 문객들은 계단 밑에서 열을 지어 시립하였다.

평원군이 고열왕을 보고 조용한 목소리로 제후의 나라들이 합종을 하여 진나라를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초왕이 평원군의 말에 대답했다.

 

“ 합종(合縱)의 맹약을 맨 처음 주장한 나라는 조나라였습니다만, 후에 장의(張儀)의 유세에 넘어가 맹약이 굳게 지켜지지 못한 가운데 우리의 선왕이신 회왕(懷王)께서 맹주가 되어 제후들과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제후들의 연합군은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후에 제민왕(齊?王)이 다시 합종을 주창하며 스스로 맹주가 되었으나, 제후들이 제민왕에게 등을 돌려 이어서 합종은 다시 깨졌습니다. 그런 연유로 지금에 이르러 천하의 제후들은 합종을 말하기를 꺼리고 있으며 설사 합종이 성사된다 할지라도 한줌의 흩어진 모래알에 불과하여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원군 : “ 소진(蘇秦)이 합종책을 제창하자 진나라를 제외한 여섯 나라는 원수(洹水)1)에 모여 결의형제를 하고 맹약을 맺었습니다. 그후로는 진나라는 15년 동안이나 함곡관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위(齊魏) 양국은 서수(犀首)1)에게 의해 기만당한 결과 그 두 나라는 조나라를 정벌하였고 다시 초회왕은 장의(張儀)의 꾀임에 빠져 오히려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어 합종은 점차로 와해되어 갔던 것입니다. 만약에 제(齊), 위(魏), 초(楚) 세 나라가 원수(洹水)에서 만나 맹세한 약속을 굳게 지키고 진나라로부터 속임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그들이 함곡관을 뛰쳐나와 지금과 같이 육국에 행패를 부릴 수 있었겠습니까? 제민왕(齊?王)은 합종의 이름만을 등에 업고 실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영토를 넓히려고 했기 때문에 제후들이 등을 돌린 것이지 어찌 합종책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고열왕 : “ 오늘의 천하 정세는 진나라는 강하고 나머지 열국들은 약합니다. 단지 각기 자기들 나라를 스스로 보전하기도 바쁜 터에 어찌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평원군 : “ 진나라가 힘이 비록 강하다고는 하나 여섯 나라를 한꺼번에 상대하기는 벅찰 것입니다. 육국이 또한 힘이 약하다고는 하나 서로 힘을 합한다면 진나라를 대항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만약 제후국들이 각자 스스로의 안전만을 도모하고 서로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강한 진나라가 약한 제후국을 각개격파(各個擊破)하는 경우가 되니 싸워봤자 승부는 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진나라의 군사가 머지 않아 초나라 도성으로 진격해 오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바입니다.”

 

고열왕 : “ 진나라가 군사를 한 번 일으키니 상당(上黨)의 17개 성이 떨어지고 조나라 군사 40여만 명이 구덩이에 파 묻혀 죽으니, 비록 한과 조 두 나라가 힘을 합쳤어도 무안군 한 장수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오늘 다시 진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한단을 포위했다고 해서 어찌 이 먼 곳에 있는 초나라가 능히 그 일에 관여할 수 있겠습니까? ”

 

평원군 : “ 장평에서는 과군께서 엉뚱한 사람을 장수로 임명하여 싸움에서 패하고 말았지만 지금은 진나라의 왕흘(王?)과 왕릉(王陵)이 20만의 군사로 한단성 밑에 주둔하며 2년이 넘도록 공격하고 있지만 한단성의 벽돌 하나도 훼손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이 제후들이 구원병을 보내 준다면 가만히 앉아서 그들의 예봉을 꺾을 수 있어, 여러 제후국들은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진나라의 침략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

 

고열왕 : “ 진나라가 얼마 전에 우리 초나라와 우호조약을 맺었는데, 평원군께서 과인으로 하여금 합종을 따르라고 하니, 내가 군의 말대로 합종을 따른다면 진나라는 틀림없이 노하여 우리 초나라에 그 잘못을 추궁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조나라를 대신하여 진나라로부터 병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

 

평원군 : “ 진나라가 초나라와 우호조약을 맺은 것은 그들이 삼진(三晋)의 공략에 전력을 쏟기 위함인데, 만일 삼진이 망하게 된다면 어찌 초나라만 홀로 안전하게 되겠습니까?”

 

그때 계단 밑에 서있던 모수(毛遂)가 해시계를 쳐다보니 시간은 벌써 정오가 지나고 있었다. 모수는 즉시 허리에 찬 칼을 부여잡고 계단을 올라 평원군 곁으로 가서 말했다.

 

“ 합종의 이해득실은 두 마디 말만으로 족합니다. 오늘 우리가 아침에 해뜨기 전에 입조하여, 지금은 해가 중천에 있음에도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니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

 

고열왕이 갑자기 계단위로 달려와 무례한 행동을 한 모수(毛遂)에게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평원군을 향해 물었다.

 

“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평원군 : “ 신이 데리고 온 문객 모수(毛遂)란 사람입니다. ”

고열왕 : “ 과인이 너의 주군과 천하대사를 의논하고 있는데, 식객 주제에 어찌 감히 끼어드느냐?”

 

고열왕이 말을 마치고 좌우를 질타하여 모수를 당하로 끌어 내리리고 했다. 모수가 몇 걸음을 고열왕 앞으로 재빨리 다가오더니 손으로 허리에 찬 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 합종은 천하의 대사라, 천하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의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주군께서 바로 앞에 앉아 계시는데 외신인 저에게 호통치시는 것은 무슨 도리입니까?”

 

고열왕의 얼굴색이 점점 평온을 찾더니 이윽고 모수에게 물었다.

 

“ 그대가 하고 싶어하는 말은 무엇이오!”

 

모수 : “ 초나라의 영토는 사방 5천 리에 달하며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 왕호를 칭한 이래로 지금까지 천하를 밑으로 내려다 보면서 그 맹주라 스스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진나라가 한번 군사를 일으키니 초나라 군사들을 계속해서 파하고 결국은 회왕은 잡혀가 죽었습니다.

백기라는 어린아이에게 한 번 싸움에 언(?)1) 땅을 빼앗기고 두 번 싸움에 도성(都城)인 영성(?城)을 잃자 초나라는 할 수 없이 그 나라를 진성(陳城)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나라로서는 백세(百世)가 지나도록 잊지 못할 커다란 원한이라는 것을, 삼척동자라도 다 수치로 여기고 있는 일인데 유독 대왕 한 분만은 그것을 염두에 두시지 않고 계시는 것입니까? 오늘 합종을 논하는 것은 바로 초나라를 위한 것이지 어찌 우리 조나라만을 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

 

고열왕은 모수가 하는 말을 듣고 그저 “ 예, 예”라는 말만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모수 : “ 그렇다면 대왕께서는 이제 마음을 정하셨습니까?”

 

고열왕 : “ 과인은 이미 결심을 하였오!”

 

모수가 좌우에 있던 고열왕의 측근들을 불러 쟁반에 동물의 피를 받아 오게 한 다음 무릎을 꿇고 초왕의 면전에 바치면서 말했다.

 

“ 대왕께서는 합종의 맹주가 되시는 분이니 마땅히 제일 먼저 삽혈을 하시고, 저의 주군께서는 두 번째로, 소신은 마지막으로 하겠습니다.”

 

고열왕이 마침내 삽혈의 의식을 행하자 조나라와 초나라 사이에는 합종의 맹약이 체결되었다.

모수는 다시 쟁반을 왼손으로 들고 오른 손으로는 평원군을 따라와 계단 밑에 도열하고 있던 19명의 인사들에게 손짓을 하며 외쳤다.

 

“ 여러분들도 같이 마땅히 당하에서 삽혈의 의식을 행하여야 할 것이오. 여러분들이야말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남의 힘을 빌려 일을 이루어 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오.”

 

고열왕이 이미 합종을 따르기로 허락하였음으로 해서 즉시 춘신군(春申君)에게 명하여 8만의 병사를 내어주며 조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평원군이 귀국 길에 올라 도중에 한탄하며 말했다.

 

“ 모선생의 세 치 혀는 백만 명의 군사보다 더 강력하다고 하겠다. 내가 무수한 사람을 살펴보고 그들의 능력을 알아냈지만, 오늘 모선생으로 인하여 나는 아직도 사람을 보는 안목이 한참 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조승은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천하의 재사들에 대해 논하지 않겠노라!”

 

평원군이 한단에 돌아온 다음 모수를 상객(上客)을 삼아 존대하였다. 이 일에 대해 지은 시가 있다.

 

 

櫓檣空大隨人轉(노장공대수인전) 배 젓는 노는 아무리 커도 사공의 손안에 놀며

秤錘雖小壓千斤(평추수소압천근) 저울추는 아무리 작더라도 천근의 무게를 잴 수 있다.

利錘不與囊中處(이수불여낭중처) 예리한 송곳이 자루 속에 들어 있지 않았지만

文武紛紛十九人(문무분분십구인) 문무를 겸비했다는 19 사람은 단지 소란만 떠들었을 뿐이었다.

 

 

1) 囊中之錐 : 夫賢士處世, 譬如錐之處于囊中, 其穎立露

2)원수(洹水)/ 지금의 하남성 임현(林縣)의 융려산(隆慮山)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안양시(安陽市)를 경유하여 내황(內黃)에서 황하와 합류했던 옛날 강 이름.

3)서수(犀首)/ 전국 때 종횡가(縱橫家)였던 진나라의 대양조(大良造) 공손연(公孫衍)을 말함. 인명사전 공손연(公孫衍) 참조.

4)언(?)/지금의 하남성 허창시(許昌市) 경내

 

/ 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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