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약 1:21-25절
제 목 :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1
일 시 : 2024. 7. 17.
야고보서 1:21-25/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지금까지 여러번 말씀 드렸듯이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물론 구약성경중 나오는 3대절기나 5대제사나 그 외에도 레위기에 나오는 정결의식과 같은 것들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다 지키셨고 완성하셨기(요19:30) 때문에 그것을 지켜 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이나 그 외에 시편 잠언 전도서와 그 외에 구약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여러 가지 교훈과 계명들이나 또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새 계명들이나 신약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가르침은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지켜 행할 때 복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성경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 행하면 일시적으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반듯이 복을 받고 행복하게 되고 형통하게 되지만 그것이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적으로 순종하고 실천하는 일이 잘 안됩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은 말씀대로 행하는 삶이 안되는 이유와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복을 받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입니다.
21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는 것입니다.
내어 버리고란 아포데메노이 라고 하는데 옷을 벗어 버리다 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 세심하게 자신을 살펴 마음속에 있는 모든 탐욕과 정욕 등을 내어 버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더러운 것이란 뤼파리안이라고 하는데 옷에 붙어 있는 더러운 때를 의미하였으나 종종 몸에 불결하게 생긴 상처 등을 말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도덕적인 악을 가리키는 것으로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더러운 것을 떨쳐 버려야 함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넘치는 악이란 페릿세이안 카키아스라고 하는데 페릿세이안은 충분한, 남은 것을 뜻하는 단어로 흘러 넘치는 것을 가리키며 카키아스는 악한이라는 뜻보다는 위선, 더러운 욕망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앞서서 말씀드린 더러운 것과 동의어로 중복된 표현을 통해서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도덕적인 악을 버려야 함을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새해가 되면 새롭게 되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 가지 않고 새롭게 되지도 않습니다. 즉 아까운 시간만 지날 뿐이지 새롭게 변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과 악한 것들을 회개하고 버리고 돌아서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마음이 더러운 것들과 악한 것들로 가득차 있는 상태에서 아무리 새로운 것과 좋은 것을 채우려고 해도 그것들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때문에 마음속에 가득한 더럽고 악한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마치 헌 옷을 벗어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옷을 입을 수가 없는 것처럼 옛 사람을 벗어 버리지 않으면 새롭게 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각자는 자신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악이 무엇이며, 더러운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물론 성경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아니면 깊은 기도를 드리면서 자신 안에 있는 악하고 더러운 것들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새롭게 되지 못하게 하는구나. 이것이 나로 하여금 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회개하고 뽑아 내야 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를 통하여 뽑아 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정반대되는 나쁜 성품들이며, 마귀를 닮은 성품들을 나의 마음에서 뽑아 낼 때 드디어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말씀들이 마음속에 들어가서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신 자신의 삶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악하고 더러운 것(성품)들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마귀는 자신의 악한 성품을 교묘하게 감추어 버리고 포장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발견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필요합니다. 삶이 힘들고 어렵고 고달플 때 드디어 자신을 성찰하고 살피게 되고 자신 안에 숨어 있는 더럽고 악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이라고 했습니다. 삶이 편안하면 결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이 가장 잘 난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시작되면 그 때부터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잘못된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노력합니다. 오랜 시간 기도하면서 부르짖어 기도할 때 드디어 성령의 기름부으심(조명)을 통해서 자신의 더럽고 악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고쳐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또한 스스로 자신의 잘못된 습관과 생각과 행동을 고치려고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서서히 삶이 달라지고 습관이 달라지고 악한 마귀의 성품을 벗어 버리고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간다는 것은 새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고 또 받고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고 이런 훈련을 통해서 악한 것들은 빠져 나가고 주님이 말씀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서 새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의 삶이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2. 마음에 심겨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21절에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품의 변화는 말씀에 대한 변화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면 결코 그 말씀을 귀하게 여기거나 그 말씀을 가까이 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가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삶을 바꾸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판에 자신의 말씀을 새기시고 기록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바꾸십니다.
이런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도 삶이 바뀌지 않습니다. 말씀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즉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세상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무슨 세미나나 부흥회가 아니라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과정은 네 가지라고 했습니다. 기록된 성경말씀이나 하나님께서 직접 들려주시는 말씀이나 음성이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이나 마지막으로 자신의 입으로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듣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듣는 말씀은 금방 잊어버립니다. 들을 때는 좋은 데 돌아서면 다 잊어버립니다.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말씀을 암송하고 주야로 묵상하게 되면 그 말씀이 자신의 입에 있고 자신의 마음에 있어서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은 말씀입니다. 마음 판에 새겨지고 기록된 말씀이 나를 변화시킵니다. 그러니까 유명한 세미나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수 십 년을 쫓아다녀도 삶이 바뀌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이나 세미나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불이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성령의 불을 받고 능력받은 사람들이 문제가 많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마음 판에 새겨지고 기록될 때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불과 기름부으심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없으면 쉽게 무너지고 타락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면서 말씀의 가치를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높은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시138:2/...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이름보다도 자신의 말씀을 높이셨습니다.
히4:12-13/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짝을 이루는 말씀은 시19:7-11/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말씀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말씀의 가치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말씀을 가까이 하고 암송하고 주야로 묵상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말씀대로 살지 않아서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최종적인 목적은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 판에 새겨지고 기록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과 내가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씀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니까 말씀 아닌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가장 귀한 말씀은 멀리합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지 않습니다.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온유함이란 프라우테스 라고 하는데 온유, 즉(함축적으로)겸손, 온순이라는 뜻으로 말씀을 받는 자세입니다. 비판하고 거부하고 싫어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말씀은 곧 하나님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영이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온 육체에 건강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4:22/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왜 삶이 변화되지 않습니까?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습니까? 말씀의 가치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말씀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알게 되면 반드시 말씀을 가까이 하고 자신의 말씀을 입에 있고 자신의 마음에 있게 해서 말씀대로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쉽습니다. 말씀을 지켜 행하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습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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