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면 창 밖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 소리에 잠을 깬다.
창밖의 울타리에 새들이 많이 모여서
언젠가 시골집을 비워 놓고 가끔씩 주말에 내려와서 하룻밤을 자고는 일요일이면 다시 도시로 올라가는 일을 반복한 적이 있었다.
봄날이 가고 여름이 가까워 오는데 집에 와서 느끼는 이상한 현상이 있었으니 그것은 주방에서 음식을 할 때마다 후드를 돌리면 후드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한두 번도 아니고 그런 소리는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다.
무슨 고장이 난 것 같아서 후드를 열고 연통을 분리 하는 순간에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 넓지도 않은 연통 아래는 박새가 새끼를 까서 열 마리도 넘는 새끼들이 노란 입을 벌리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래서 얼른 다시 연통을 맞춰놓고는 그 새들이 다 자라서 나갈 때까지 시골엘 오지 않은 젓이 있었다.
후드 연통을 밖으로 빼 놓고는 그곳에 아미를 씌워야 하는데 그냥 뻥 뚫린 채 놔두었으니 나무의 굴속에 둥지를 트는 박새들이 그곳이 나무 굴처럼 여기고는 둥지를 튼 것이다.
나중에 새끼들이 모두 나간 후에 다시 연통을 열고 새집을 털어내는데 얼마나 고생을 한 생각을 하면 새들이 미워야 하는데 그래도 안전하게 새끼를 쳐 나간 것만도 대견한 생각이 들어서 그런 일을 하면서도 전혀 미운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아침이 되면 창 밖에서 들리는 새들의 노래 소리에 잠이 깬다.
창 밖에 있는 울타리에는 늘 박새들이 떼를 지어서 살아가고 그 새들이 봄이 가까워지니 이제는 짝을 부르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 때 우리 집 주방 후드 속에서 깬 박새들도 지금 울타리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만약에 그 새들의 수명이 짧아서 어미나 그 때의 새끼들이 죽었더라도 그 후손들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박새들이라 그런가?
겨울의 먹이가 없어 고생하는 다른 멧새들과는 달리 그 새들은 우리 집에서 살아가면서 개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늘 함께 먹으면서 추운 겨울을 거뜬하게 보내고 있었다.
늘 함께 있어서 그런지 강아지들이 들이나 산으로 운동을 다닐 때 다른 새들이 덤불에 있으면 죽어라 쫓아다니면서 집에서 저희들의 먹이를 먹는 새들은 그냥 놔두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박새와의 인연이 깊은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우리 집 뒷곁에 있었던 아름드리 청감주 라는 배나무에 몇 개의 굴이 있었다.
워낙 고목인 나무는 절로 그렇게 굴이 만들어 져 있었는데 그 굴속에는 해마다 박새가 둥지를 틀었다.
어린 시절의 우리 생활은 봄에서 여름까지는 새 새끼를 꺼내다 기르는 것이 놀이었다.
누가 먼저 맡는가에 따라서 제일 건강하고 큰 새끼를 주인이 갖고 나머지는 친한 친구 순으로 나누어 주는데 나는 박새 집을 해마다 맡게 되었으니 아이들에게 부러움을 샀었다.
그런데 박새 굴은 손이 들어가지 않아서 새끼들이 거의 자라면 작대기로 굴을 쑤시면 새끼들이 튀어 나오고 그러면 한 마리씩 붙잡아서 길렀다.
그런 때의 우리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도 없었고 동물들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다뤄도 되는 것처럼 여겼기 때문에 금방 죽어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언젠가 한 겨울에 아버지가 노루를 한 마리 잡으셨는데 노루 가죽을 벗기고 그 가죽을 마당가에 널어놓았는데 집안에서 보니 박새들이 날아와서 가죽에 붙어있는 고기를 뜯어먹고 있었다.
나는 잘 됐다 싶어서 노루 가죽을 뒤집어 놓고 고기를 조금 떼어내서 덫을 놓았다.
방에서 우리로 밖을 내다 보고 있으면 박새가 날아와서 고기를 쫗아 먹으려고만 하면 덫이 또여서 박새가 맞았다.
그 때는 어린 아이들은 겨울에 눈이 내리기만 하면 새 잡는 것을 업 처럼 여기고 새들을 잡던 시절이니 박새를 잡는 것도 얼마나 재미있는 사냥으로 여겼는지 모른다.
그런 박새와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박새를 보는 나의 눈은 그 때와는 아주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새들이 개먹이인 고기를 신나게 쪼아 먹는 것을 보노라면 개들이 먹는 것 보다 더 예뻐 보이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이제 자연의 이치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