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자살
우울증에 걸렸다고 모두가 자살 사고를 일으키고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울증의 많은 증상들이 일반인에 비해 자살 사고를 갖게 하고 쉽게 시도하게 할 수 있다. 자살 시도 가운데에는 감정적 동요로 인해 홧김에 충동적으로 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하고 예방이 가능한 자살 시도는 서서히 우울증이 진행되면서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자살의 위험도는 현재 자살 사고가 있는지를 평가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의료진이라고 해도 자살 사고를 물어볼 때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로는 대개 자살 사고에 대해 물어보면 환자들이 화를 내거나, 자신이 자살 사고를 물어보는 것이 ‘계기가 되어’ 그런 사고를 증폭시키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현재의 정설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의료진이 자신의 자살 사고를 물어보는 것에 오히려 안심을 하고, 자신을 걱정해 주는 느낌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자살 사고를 물어본다고 해서 자살을 유발한다는 증거도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까?”, “자살 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 오히려 편하게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기분이 너무 절망적으로 보이는군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정도로 조금 더 부드럽게 물어볼 수도 있다.
죽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모두가 자살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살 사고가 있었다고 확인이 되면, 구체적으로 자살 계획을 세웠는지를 물어봐야 한다. 구체적 계획이라는 것은 약을 사서 모았다든지, 붕대나 줄을 미리 사 두었다든지, 자살 시도를 할 장소를 찾아보았다든지 하는 것을 말하는데, 계획을 세운 정도까지 된다면 자살 사고가 진지하고 심각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파악이 되었다면, 그 다음으로는 실제로 자살 시도를 했었는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의외로 자살 시도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자살 사고나 자살 시도 등에 대해 기존의 논문들을 정리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평생 자살 사고를 일으킨 사람의 비율은 평균 5~ 15% 정도 되며, 자살 시도를 해본 적이 있는 이들도 2~6% 정도로 적지 않은 결과를 보여준다.
만일 자살 시도를 한 기왕력이 있고 또 최근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면, 그 사람의 자살 위험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살 성공의 가장 큰 위험요소가 자살 시도의 기왕력이기 때문이다. 자살 시도를 했던 사람은 이후에 재시도하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자살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사랑하던 대상을 상실했을 때 상실한 대상과 자신이 동일시되면서 외부로 향해야 할 분노가 자신의 내부로 향함으로써 자살 충동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또한 프로이트는 인간의 두 가지 기본 욕동으로 삶의 욕동인 리비도(Libido)와 죽음의 욕동인 타나토스(Thanatos)를 언급하였다.
칼 메닝거(Karl Menninger)는 이 개념을 더 발전시켜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세 가지 동기가 작용한다고 보았다. 살해하고자 하는 소망(wish to kill), 살해를 당하고자 하는 소망(wish to be killed), 그리고 죽고자 하는 소망(wish to die)이 그것이다.
한편, 자살하는 이들의 심리에는 여러 가지 환상이 기여하는데, 타인을 향한 복수 환상, 스스로에 대한 징벌과 속죄 환상, 힘든 현실로부터의 도피에 대한 환상, 재탄생과 죽은 이와의 재결합에 대한 환상 등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