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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전법(不可轉法)에 : 불가전법이라고 하는 것, 이 부처님 법이라고 하는 것은 특히 화엄경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 굴릴 수 있는 법이 아니다.
설악산 흔들바위도 아니고 굴려지지 않는다.
울산 바위 같아서 밀고 당겨봤자, 쪼매난 메뚜기 한 마리가 밀어봤자 울산 바위는 끄떡도 안 하는 것과 같다.
일반 외도나 지식적인 식견을 가지고 불교 공부를 한번 밀어본다 당겨본다 해서 오늘 우리 법회처럼 저기서 사진을 찍고 녹화를 하고 노트를 한다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떼를 쓰고 노래 부르고 염불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고요하게 혓바닥을 안으로 말아붙이고 참선으로 가야 겨우 그 자리에 가는 것이다. 그래서 얻은 법이라야 항복시킨다. 누구를 항복시키는가? 일체 외도를 항복시킨다.
그러한 공덕이 있기 때문에 불가전법이다.
염소한테 컨테이너를 끌라면 못 견디고 죽어버린다. 쪼매난 삿대 하나 가지고 항공모함을 운전해 가려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 불가전법, 부처님의 법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신 분이 써놓은 것이라서, 일반적인 것으로 비교할 수가 없다.
보현행원품을 설명하면서 가장 유독 눈에 띄는 소초의 글귀가 ‘부독화엄경(不讀華嚴經)이면 부지불부귀(不知佛富貴)라’ ‘화엄경을 읽지 않는 사람하고는 밥도 같이 먹지 말라. 부처님의 부귀한 걸 알지 못한다’는 글귀다.
불가전법은 외도 조복이다.
아무나 함부로 굴릴 수 있는 법이 아니다.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도 불가하지만 거기서 불가사의한 그 법을 굴리시는 것이다.
소행무애(所行無礙)하시며 : 행하시는 바가 걸림이 없다. 소행이 무애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七, 所行無礙는 卽生在世間하여 不爲世法所礙功德이며
곧 생재세간이라. 세속에 살면서도 무애다. 불위(不爲) 세간의 세속에 살기는 하지만 세속에 휘말리지 않는다.
세속에 살면 얼마나 지지고 볶을 일이 많은가? 그러나 세속에 살지만 세속에 지지고 볶고 끄달리지 않는다. 이것을 기신론 같은 데는 인욕바라밀이라 해서 이(利) 쇠(衰) 훼(毁) 예(譽) 칭(稱) 기(譏) 고(苦) 락(樂) 8가지 바람 팔풍(八風)에 끄달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한산 습득 스님이 서로 이야기하는 대목이 많이 나오고, 부처님은 ‘인욕선인 할 때 가리왕(歌利王)이 할절신체(割截身體) 할 때 나는 무아상(無我相) 무인상(無人相) 무중생상(無衆生相)이라서 화가 나지 않았다’라고 금강경에서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소행이 무애한 것이다.
춥든지 덥든지 어떤 악조건에 있더라도, 이익이 되든지 손해가 되든지 괴롭든지 즐겁든지 그러한 생멸법에 끄달리는 것이 다 끝난 것이다. 큰 파도가 오면 크게 넘어가고 작은 파도 오면 작게 넘어가고 그냥 파도를 타고 넘을 뿐이다. 그러나 침몰되지 않는다.
소행무애(所行無礙)라고 하는 것은 즉생재세간(卽生在世間)이라. 세간에 살아가면서 ‘불위(不爲),뭐뭐가 되지 않는다’ 세법에 세속법에, 세속법이라고 하는 것은 생멸법이 아닌가. 거기에 장애되는 바가 되지 아니하는 공덕을 성취한다. 그런 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입부사의(立不思議)하시며 : 입부사의라 이것은 안립정법(安立正法) 정법을 확실하게 세우는 것이다. 불가사의한 법, 정법을 세우는 것을 입부사의라고 한다.
보견삼세(普見三世)하시며 : 과거 현재 미래에 불법이 영원히 상속돼서 이어지는 수기(授記) 예약된 것, 그러한 공덕을 보견삼세라고 한다.
과거에 그렇게 지나왔고, 미래에 그렇게 수기를 받고, 그것이 현재 사는 모습 그대로 미래에 또 이루어질 것이다, 콩 심은 데 콩난다고 하는 것이다.
요즘에 단풍나무를 보면 줄기가 빨갛다. 오늘 비도 오는데 이런 날 단풍나무를 가서 보면 빨갛다. 잎사귀는 하나도 없지만 단풍나무 줄기가 빨가니까 올가을에 단풍나무 잎사귀가 처음엔 파랗더라도 언젠가 저렇게 빨갛게 될 것이다. 잎사귀만 빨간 것이 아니고 뿌리 끝까지 빨갛다.
범어사 내려오는 길에 보면 은행나무가 쫙 가로수로 되어 있는데 가지가 노랗다. 은행 이파리가 하나도 없는 앙상한 가지들이지만 줄기가 노랗다. ‘아, 은행잎이 노란 것은 은행잎만 노란 것이 아니라 뿌리까지도 노랗구나’ 그럼 은행 열매도 빨갈 리가 없다.
단풍꽃도 한 4월쯤 핀다. 단풍 꽃이 노랗게 필 리가 없다. 빨갛게 핀다. 개나리도 그렇다.
두 눈을 악세사리로 가지고 다니는 분은 그런 것이 안 보인다. 화엄경을 엔간히 봐야 즉사표법이라고 사물을 그렇게 관찰하고, 사람을 관찰한다. 말하는 걸 딱 보면 ‘아이고 참 교양이 있다’ 말본새만 보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다 느껴진다.
빨리 하냐, 늦게 하냐, 꾸며서 하냐, 잔뜩 무게 잡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하는 것은 여지없이 사기 치는 것이다. 목소리도 얇게 ‘아 이리 빨리 와봐요’ 이런 것은 촐랑거리는 것이다. 교언하고 꾸며서 하고 얼굴 반색하고 그런 것이 다 드러난다.
그다음 프린트는 읽어보기만 해도 아는 내용이다.
입부사의 보견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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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항충변일체국토(身恒充徧一切國土)하시며 : 몸은 항상 일체 세계에 시현해서
十, 身恒充徧一切國土는 卽一切世界의 示現受用變化身功德이며
수용신이 되고 자수용신 타수용신 또 변화신이 되어서 남하고 같이 살아간다.
신항충변일체국토라고 하는 데서 부처님의 대자대비심이 확 느껴진다. 우리는 조금만 내 마음에 안 들면 그 집에 안 가고, 그 도반한테는 전화도 안 한다. 전화를 안 할 뿐만 아니고 전화를 아예 차단시켜 버린다.
이 신항충변일체국토라고 하는 것은 푹 터져 통달무아법자다. 통달무아법자, 몸은 그렇다 치고 또 지혜는 어떠냐?
지항명달일체제법(智恒明達一切諸法)하시며 : 지혜는 항상 명달해서 일체제법이다. 일체제법이라고 하는 것은 유위법과 무위법, 진여법과 생멸법에 대해서 무불통지(無不通知)라. 꿰뚫지 아니한 것이 없는 것이 부처님의 지혜다.
이것을 묘오개만(妙悟皆滿)이라고 하였다. 원만하다고 아까 나왔었잖은가. 묘오개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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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체행(了一切行)하시며 : 모든 행을 분명히 안다. 모든 행을 분명히 안다고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 근기에 따라서 맞춰주는 것이다. 고양이에게 밥을 줄 때는 납작한 접시에 줘야 되고, 황새에게 물을 줄 때는 긴 컵에 줘야 된다.
황새에게 물을 주면서 납작한 접시에다 주면 황새는 식겁한다. 목이 긴가 짧은가를 살펴주는 것은, 일체행에 대해서, 그 마음 씀씀이에 대해서 빼딱한 사람이 오면 달콤하게 해주고, 달콤한 사람이면 물러질까 싶어서 좀 쓰게 대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요일체행이다. 일체의 행은 갖가지 종종 행에 들어가게 한다. 갖가지 행에 들어가게 한다는 말씀이 그런 뜻이다.
진일체의(盡一切疑)하시며 : 일체의 의심을 싹 끊어버린다.
十三, 盡一切疑는 卽當來法에 生妙智功德이며
일체의 의심을 끊는 것은 곧 당래법, 미래법에 묘지공덕을 생기게 한다.
의심이 있으면 쇳덩어리 같다.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고집이 세다. 흙이 땅덩어리로 굳어 있듯이 의심이 많은 사람은 굳어 있는데, 이 흙덩이 같은 사람을 감로수 물로 싹 밀어보면 흙이 나무가 된다. 흙이 물에 밀려버리면 쑥 올라오는 것이 나무, 목(木)기운이다.
능엄경에 자세히 나온다. 좀 엔간히 나무쯤 돼야 깎고 벤다.
목기운쯤 돼야 쓸 수 있다.
아주 의심 많은 사람들은 쇳덩어리 같아서 안 풀린다. 화두 의심이 아니고 모든 것에 대해서 의심이 많다. 의심이 많으면 눈도 새촘하게 뜬다. 더 의심이 많은 사람은 옆으로 요렇게 보고, 문구멍을 뚫어서 엿본다. 그런 사람은 정말 의심이 많다. 요즘 CCTV를 많이 보는 사람들도 의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엿보고 구멍을 꼭꼭 뚫어보고 이런 사람들도 의심이 많다.
눈을 많이 깜짝거리면 의지가 약하다고 한다.
혓바닥을 잘 내밀면 거짓말을 잘한다.
보통 거짓말을 하려면 침을 바르는데,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면 ‘아주 잘한다’고 한다.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한다.
또 거짓말을 하려면 혓바닥부터 움직인다. 그런 모습을 보면 ‘거짓말하려는가 보다’ 낌새가 느껴진다.
그 눈을 깜짝깜짝하면 지금 의지가 약해서, 뭔가 ‘조금 이따가는 도와달라고 말하겠다’ 이런 생각이 든다.
옛날에 연악(燕顎)이라고 마광수 교수처럼 턱이 쪽 빠진 분들이 말씀을 잘한다고 했다. 제가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에 있던 이야기를 다 하는 것이다.
일체 의심을 다 한다고 하는 것, 일체 의심을 없애려고 하면은 뭐가 있는가? 확실히 알아야 될 것이다. 수승하게 제대로 잘 알아야 의심이 없다. 오죽했으면 성문 연각은 볶은 종자라고 하였다. 대승에서는 성문 연각이 전무선근이라, 선근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화엄경에는 범부는 두 눈이 먼 사람하고 같다고 하고 성문 연각은 외눈박이하고 같다고 하였다. 한쪽 눈이 먼 사람하고 같다. 그리고 소보살은 대승 보살이 아니라 일승 보살이 못 되고 어느 정도 바라밀행을 행하다가도 이 사람은 밤에 야맹증 같다고 하였다. 다니기는 다니는데 야맹증 같이 다닌다.
그러나 대보살이 되면 환하게 일광명조 대낮에 다니는 것 같은데 그것마저도 놓아버려야 일승으로 간다. 화엄으로 간다. 그것마저 놓아야 보광명전에 들어간다고 이야기한다.
선재동자가 선지식이 비로장누각 안에 계신다고 이야기하자 그 앞에서 선지식이 나오시도록 기다리면서 하는 첫 대목이 참 감명 깊었다.
‘이 누각 안에 계시는 분은 공의 이치를 알고 무상의 이치를 알고 원이 없다. 바라는 바가 없다는 이치를 환히 아시는 분이 여기서 살고 계실 것이다.’
그것이 공이고 무원 무상인데 이런 것들이 전부 만법유식이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을 환히 아시는 분이 어디에 사신다? 비로장누각 안에 사신다. 비로장 누각이 바로 비로자나부처님이다. 우리의 마음이다.
무능측신(無能測身)과 : 그다음 구절 무능측신이라.
十四,無能測身은 卽如其勝解示現功德이며
측량할 수 없는 몸이라고 하는 것은 승해(勝解)를 시현하는 것 같은 공덕이 있다. 이 몸은 측량할 수 없다.
측량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비유로 흔히 화엄경에는 ‘마니’ 이런 것이 많이 나왔다. 마니보배는 투명하다. 그 마니보배의 색깔은 측량할 수 없다. 왜냐하면 투명하기 때문이다. 투명하기 때문에 8만 4천 가지 색깔이 다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일체보살등소구지(一切菩薩等所求智)하야 : 일체 보살들이 소구지라. 일체 보살들이 구하는 바의 지혜이고
도불무이구경피안(到佛無二究竟彼岸)하시며 : 또 모든 부처님의 무이의 완벽한 피안, 열반에 도달한 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진여라고 한다. 묘오라고 하고 시성정각이라고 한다는 말씀이다. 지금은 지정각세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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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족여래평등해탈(具足如來平等解脫)하시며 : 여래의 평등한 해탈을 갖추시며
증무중변불평등지(證無中邊佛平等地)하시며 : 증무중변이라. 우리가 저 앞에서 배울 때 하도 허공이 넓어서 어디가 중심인지 모르면 무앙(無央)이라고 했다. 무앙, 무중(無中), 가장자리가 끝도 없이 넓어서 중앙을 알 수 없는 것이 무중이고 가를 알 수 없는 건 무변이고 무중무변이다.
중앙도, 한복판도, 가도 없는 부처님의 평등한 경지를 증득하고
진어법계(盡於法界)하시며 : 법계를 다한다.
十九,盡於法界는 卽窮生死際토록 常現利樂一切有情功德이며
진어법계라고 하는 것은 즉궁생사제,생멸을 다해서 항상 나타낸다. 일체 중생들에게 이익되고 즐겁도록 하는 것을 항상 나타낸다. 생사는 고통이잖은가. 일체중생들이 열반락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등허공계(等虛空界)하시니라 : 등허공계라. 즉무진공덕이라 허공은 무궁무진하다.
화엄경에서는 삼세간이 원융하다고 하였다.
지정각세간, 중생세간, 기세간 그러니까 그 세 개가 원융한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지금 이세간품 앞 대목에서 제일 먼저 지정각세간까지 했다.
그다음 중생세간 여기서부터 기세간 하는 것은 조로록 읽으면서 하겠다.
날도 꿉꿉한데 너무 집요하게 해서 죄송하다.
요 QR 코드 찍어보시면 그 번역된 게 뒤에 다 있다.
요만큼 다 실어놨다. 한번 찍어보시기 바란다.
찍어보시면 ‘이세간품이 이렇게 형성되어 있구나’ 하는 것이 짐작가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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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간을 다시 한 번 정리하겠다.
화엄경에서는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 중생세간(衆生世間) 기세간(器世間)으로 삼세간을 나누는데 세간(世間)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자꾸 공부하다 보면 이 삼세간이 한 모습이라고 하는 것을 나중에는 알게 된다.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의 지정각(智正覺)은 부처님이다. 지혜를 올바르게 증득해 버렸잖은가. 깨달아버린 것이 지정각이다. 그러니까 남을 교화할 수 있는 부처님을 의미하는 것이 지정각이라고 한다. 조금 더 광범위하게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보현보살이나 이런 분들처럼 남을 위해서 교법을 설할 수 있는 사람까지도 지정각이라고 한다.
거기에서 교화받을 대상들은 중생세간(衆生世間)이라고 한다.
기세간(器世間)은 그들이 의지해서 사는 그릇이다. 흔히 지수화풍을 가지고 그릇을 만든다. 세주묘엄품에 기세간이 자세하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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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지나면 화엄성중(華嚴聖衆) 기도를 하실텐데 성중(聖衆)은 보살대중, 일반 중생들, 중생세간 기세간을 다 포함한다.
화엄신중 중에서 주로 잡류신중은 기세간을 이룬다.
천룡팔부중 등은 교화를 받아야 될 대상이어서 중생세간이다.
신중(神衆)이라면 족행신 도량신 등 열 아홉 부류가 나온다.
네 부는 집금강신, 신중신, 족행신, 도량신까지 근본신중이다. 이 부분을 빼고 그다음에 지수화풍으로 기세간이 철저하게 펼쳐진다.
땅에 관한 것은 무엇이 있는가? 주성신(主城神)은 부처님의 성이고 우리 마음의 심성이다. 이것에 비하면 중국 만리장성은 성도 아니다. 도둑놈을 모느라고 방어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주성신은 은산철벽이다. 수미산보다 더 높은 것, 천길 만 길 높이로 해서 도둑놈이 침범하고 들어올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것이 주성신이고 그다음에는 주지신(主地神)이 나오는데 땅이다.
땅에서 제일 높은 것은 주산신(主山神) 산에서 제일 많은 것은 주림신(主林神) 산에서 또 많이 나는 것은 약초이므로 주약신(主藥神)이다.
산에서 조금 벗어나서 평지까지 가면 주가신(主稼神)이다.
여기까지가 땅에 관한 기세간들이라고 보면 된다.
땅이 나왔으니까 당연히 우리 눈에는 지수화풍의 수(水)가 나온다. 수가 나오면 강이 있다. 주하신(主河神)은 항하강처럼 강이다.
땅이 무엇인가를 길러내는 의미가 있다면 물은 무엇인가 씻어내는 의미가 있다.
신중들 이름이 나올 때마다 앞에 넉자씩 수식어가 붙는다. 넉자씩 물의 특성을 써놓고 불의 특성을 써놓고 땅의 특성을 써놓고 곡식의 특성을 써놓았다.
그런 것이 열 명씩이다.
주가신 주하신 이렇게 나오는데 그 앞에 무슨 무슨 주하신 무슨 무슨 주하신 이렇게 나오잖는가?
그 특성을 보면 ‘아 이것이 물, 강의 특성이다’라는 것을 안다. 강보다 좀 큰 것은 바다다. 강 다음에는 바다가 나온다.
바다보다 더 큰물이 있는 것은 하늘에도 있고 땅속에도 있고 몸속에도 있고 물이 오만 데 공중에도 있고 많다.
주하신 주해신 주수신 수(水)가 나왔으니까 거기에서 턱 밀면 또 뭐가 나오는가? 지수화(地水火) 아 주화신이 나오겠구나. 그러니까 땅은 단단하고, 물은 몰랑하며 액체이고, 물보다 더 보드라운 것은 불이고, 불은 볼 수는 있는데 지수화풍까지 밀어버리면 바람은 볼 수도 없는데 촉감만 좀 있구나, 느낌이 온다.
불은 보이기는 하지만 불보다 더 부드러운 것이 무엇인가? 바람이다. 지수화풍 풍에서 또 밀어보면 어디까지 가겠는가? 주공신(主空神) 바람에 밀리는, 바람보다 더 부드러워져 버리면 공으로 간다.
공간이 생겨진다고 이야기하면 방향이 생겨지니까 그다음에 주방신(主方神)이 된다. 이런 것들이 전부 기세간에 해당하는 것이다.
주방신이라고 해서 방향이 설정되고 공간이 설정됐으면 공간하고 상대적인 개념은 아니지만 옆에 부가적인 개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시간적인 개념이다.
밤이다, 낮이다, 주야신, 주주신 이런 걸 우리는 흔히 지수화풍이라고 이야기한다.
능엄경에서는 지수화풍공견식(地水火風空見識)이라고 이야기한다.
선정을 닦아서 초선 2선 3선 4선 하고 나아가는데 그것은 너무 복잡하니 여기서 마무리한다.
무색계로 올라가더라도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무소유처(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非相非非相處)등으로 나누는데 땅의 사람이 고집스럽고 의심스럽다. 이런 문제가 좀 해결된 사람은 몰랑해져서 액체처럼 부드러워진다.
제가 보들스님이 아닌가, 보들스님에서 더 나아가 흔적 없는 스님이 되면 더 좋다.
안개처럼 왔다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승, 중들은 완전히 도인이라고 봐야 된다. 그런데 와서 발자국을 많이 남겨놓고 지저분하게 쓰레기를 많이 남겨놓는 사람들이 있다.
날으는 새는 자취를 남기지 않아야 되는데 흔적이 많은 사람은 지저분하다. 땅이 제일 지저분하고 그다음에 물은 몰랑하고 불기운은 흔적은 보이기는 하는데 엔간히 잡히지는 않는다.
바람은 무엇인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라면 그 사람은 의심이 없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운수납자라고 하지 않는가. 바람같이 사라지는 스님들이라면 아주 수행자다운 참선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뭔가 찍어내려고 도장 찍고 이런 놈들은 시원찮다.
지수화풍 그다음에는 공이다.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림도 없고 자체도 흔들림이 없고 보려도 볼 수 없는 공(空)이다.
공보다 더 텅 빈 세계로 들어가면 우리가 견이라고 하는 데 들어간다. 본다고 하는 견(見) 넘어, 견해를 넘어가면 뭐가 있는가? 안다고 하는 것, 식이 있다. 유식 말이다.
흔히 사대(四大)라고 하는데 땅은 한정없이 넓어서 대라고 하고, 물이 한정 없이 많아서 대라고 하고, 불이 한정없이 많아서 대라고 한다. 4대육신하잖는가.
대방광불화엄경에서도 대(大)자를 쓴 것은 무량무변하고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대라고 써 놓은 것이다. 그냥 일반적으로 쓰는 상대적인 개념의 대(大)가 아니다.
지수화풍공견 너머서 식까지 가서 오직 유식(唯識)까지 되면 거기서부터 오온이 공한 걸 관할 힘이 생긴다.
능엄경에서는 견도분(見道分)이라고 하고 통달위(通達位)라고 한다. 그다음부터 수도(修道)에 들어간다고 되어 있다. 아집이 빠지고 아만이 빠지고 안쪽에 아주 못된 아주 독소 같은 것이 서서히 우러나서 독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몸속에 있는, 마음속에 가시처럼 박혀있는 것, 그걸 용광로에 확 집어넣어버려야 불순물이 빠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용광로에 확 집어넣어서 화두나 염불을 하면서 눈물이 쑥 빠지도록 몸과 정신이 푹 녹아버리는 상태로 들어갔을 때, 그 식이 벗겨져 나간다. 식 다음에 뭐가 있는가? 조금 전에 했던 지정각세간이라고 하는 묘오개만(妙悟皆滿), 원만했다고 했잖은가. 그것이 심(心)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심 본심 일심 화엄의 도리가, 시성정각이라고 하는 것이 지수화풍 이렇게 오온이 개공임을 다 뚫어버린다.
공견식까지 지나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꿈속의 일은 다 끝내버리고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이 심(心) 마음이다. 마음을 만나고 보니 무심(無心)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공부한 내용을 이렇게 정리했다.
능엄경이나, 약찬게, 기세간을 견주어서 조금 설명드린 것이다.
3. 衆生世間의 圓滿
(1) 大衆의 數와 嘆德
與不可說百千億那由他佛刹微塵數菩薩摩訶薩로 俱하시니
皆一生에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各從他方種種國土하야 而共來集호대 悉具菩薩方便智慧하니 所謂善能觀察一切衆生하야 以方便力으로 令其調伏하야 住菩薩法하며 善能觀察一切世界하야 以方便力으로 普皆往詣하며 善能觀察涅槃境界하야 思惟籌量하야 永離一切戱論分別하고 而修妙行하야 無有間斷하며 善能攝受一切衆生하며 善入無量諸方便法하며 知諸衆生이 空無所有호대 而不壞業果하며 善知衆生의 心使諸根과 境界方便의 種種差別하며 悉能受持三世佛法하야 自得解了하고 復爲他說하며 於世出世無量諸法에 皆善安住하야 知其眞實하며 於有爲無爲一切諸法에 悉善觀察하야 知無有二하며 於一念中에 悉能獲得三世諸佛所有智慧하며 於念念中에 悉能示現成等正覺하야 令一切衆生으로 發心成道하며 於一衆生心之所緣에 悉知一切衆生境界하며 雖入如來一切智地나 而不捨菩薩行하며 諸所作業이 智慧方便으로 而無所作하며 爲一一衆生하야 住無量劫하며 而於阿僧祗劫에 難可値遇며 轉正法輪하야 調伏衆生하야 皆不唐捐하며 三世諸佛淸淨行願을 悉已具足하야 成就如是無量功德하니 一切如來가 於無邊劫에 說不可盡이러라
말할 수 없는 백 천억 나유타 세계의 미진수 보살마하살과 함께 계셨습니다. 모두 한 생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이들이었습니다. 각각 다른 지방의 갖가지 국토로부터 와서 모이었으며, 모두 보살의 방편과 지혜를 갖추었습니다.
이른바 일체 중생을 잘 관찰하고, 방편의 힘으로 그들을 조복해서 보살의 법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일체 세계를 잘 관찰하고 방편의 힘으로 널리 다 나아갔습니다. 열반의 경계를 잘 관찰하여 생각하고 헤아리며, 일체 부질없는 말과 분별을 아주 떠나서 묘한 행을 닦아서 끊어짐이 없습니다. 일체 중생을 잘 거두어 주고, 한량없는 모든 방편의 법에 잘 들어갔습니다. 모든 중생이 공하여 아무것도 없는 줄을 알면서도 업과 과보를 깨뜨리지 아니합니다.
중생들의 마음과 여러 근(根)과 경계와 방편이 갖가지로 차별함을 잘 아십니다. 세 세상의 불법을 잘 받들어 가지며 스스로 이해하고 다시 다른 이에게 말씀하십니다.
세간과 출세간의 한량없는 모든 법에 잘 머물러서 그 진실을 아십니다. 함이 있고 함이 없는 일체 모든 법을 모두 잘 관찰하여 둘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잠깐 동안에 세 세상 모든 부처님들의 가지신 지혜를 모두 다 얻었습니다. 잠깐잠깐마다 다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하는 것을 보여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을 내어 도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한 중생이 마음으로 반연하는 데서 일체 중생의 경계를 다 아십니다. 비록 여래의 일체 지혜의 경지에 들어갔지마는 보살의 행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여러 가지 짓는 업은 지혜와 방편이므로 짓는 일이 없습니다. 낱낱 중생을 위하여 한량없는 겁(劫)에 머물지마는 아승지 겁에도 만날 수 없습니다. 바른 법륜을 굴리어 중생을 조복함이 모두 헛되지 아니합니다.
세 세상 모든 부처님들의 청정한 행(行)과 원(願)을 모두 구족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한 것은 모든 여래가 그지없는 겁 동안 말하여도 다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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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세간(衆生世間)의 원만(圓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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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세간의 원만, 사람이 원만해야 되는데 잘못하면 ‘웬만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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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大衆)의 수(數)와 탄덕(嘆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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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불가설백천억나유타불찰미진수보살마하살(與不可說百千億那由他佛刹微塵數菩薩摩訶薩)로 : 열반경(涅槃經)에도 딱 이런 구조로 나온다. ‘범유심자(凡有心者)는 개당득성(皆當得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이렇게 나온다.
범유신자는 마음이 있기는 있는데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라 제법(諸法)은 부동본래적(不動本來寂)이어서 마음은 본래 없다, 그것을 앞에서 다 알고 믿는 중생들, 보살들이 여기에 다 모였다.
불가설 백천억 나유타 불찰 부처님 세계의 미진수 한량없는 헤아릴 수 없는 보살마하살로 함께 하셨다.
구(俱)하시니 : 함께할 만한 분하고 부처님께서 함께하셨다.
그런데 그 보살들은 다 어떠냐? 앞으로 당래에
개일생(皆一生)에 : 개일생에, 한 생만 딱 선재동자처럼 마음 잘 먹으면 돈오돈수 일승별교다.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당득은 무엇인가? 마땅히 얻는다. 당래에 미래에, 일생에 곧 금생에 한 번 이렇게 보현행원을 잘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정등정각을 성취한다.
그러한 사람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사람들과 함께 하셨다.
이제 지정각세간이 끝나고 중생세간이 나왔다.
보살들 역시 교화를 받아들일 때는 어디에 속하는가? 중생세간에 속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정각세간은 원래는 누구뿐인가? 부처님뿐이다.
그러나 부처님을 대신해서 설하는 대보살들이 가끔 지정각 세간으로 분류될 때가 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다.
말할 수 없는 백천억 나유타 불찰미진수 보살과 함께 계시니 모두 한 생에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사람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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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타방종종국토(各從他方種種國土)하야 : 각종 타방 종종국토라. 우리도 다 업이 다르다. 다른 지방 각각의 국토에서 돌아와서
이공래집(而共來集)호대 : 이공래집하되
실구보살방편지혜(悉具菩薩方便智慧)하니 : 그들이 모두 보살의 방편과 지혜를 갖추었으니
소위선능관찰일체중생(所謂善能觀察一切衆生)하야 : 소위 이른바 일체 중생을 잘 관찰한다. 우리는 대충 내 욕심만 관찰한다. 내 욕심을 관찰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는 내 욕심만 보인다.
그런데 화엄경을 자꾸 읽다 보면 일체중생을 관찰할 수 있는 울림들이 온다.
이방편력(以方便力)으로 :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간접적인 자비다. 자비가 아주 성숙되고 제품화된 것이다.
지혜가 있어야 방편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혜가 없고 잔꾀만 있는 사람은 편법만 나온다. 편법으로 세금 떼어먹고 이런 것을 잘한다.
영기조복(令其調伏)하야 : 그것을 조복시켜서, 방편력으로 그 악독한 중생들을 조복시켜서
주보살법(住菩薩法)하며 : 보살법에 머물게 하며
선능관찰일체세계(善能觀察一切世界)하야 : 일체 세계를 잘 관찰해서
이방편력(以方便力)으로 : 또 방편력으로, 방편의 힘으로
보개왕예(普皆往詣)하며 : 보개왕예 하며 두루 나아가며
선능관찰열반경계(善能觀察涅槃境界)하야: 열반 경계를 잘 관찰해서
사유주량(思惟籌量)하야 : 잘 사유하고 헤아려서
영리일체희론분별(永離一切戱論分別)하고 : 영원히 떠난다. 일체의 헛소리하는 것, 희론분별, 시시비비 ‘니 잘났다, 내 잘났다’ 고소 고발하는 것들, 분별을 아주 떠나서
이수묘행(而修妙行)하야 : 이수묘행이다. 부처님의 행을 닦는다. 묘행은 바라밀행이다. 정확하게는 보현행원이다. 묘행을 닦아서, 보현행원을 닦아서
무유간단(無有間斷)하며 : 간단함이 없으며
선능섭수일체중생(善能攝受一切衆生)하며 : 능히 일체 중생을 잘 거두어 주고
선입무량제방편법(善入無量諸方便法)하며 : 또 무량한 방편법에 잘 들어간다.
우리가 흔히 하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이런 대목도 이 내용에 해당하겠다.
지제중생(知諸衆生)이 : 일체중생이
공무소유(空無所有)호대 : 공하여 아무것도 없는 줄을 알지만
이불괴업과(而不壞業果)하며 : 이(而)는 ‘하우에버(however), 그러나’ 이런 뜻이다. 그러나 업과 과보를, 원인과 결과를 깨뜨리지 아니하고.
일체중생이 본래 없는 줄 알지만 인과를 믿는다. 인과를 믿지 않는다면, 인과 역시 본래없다고 하면서 잘못하면 도덕성이 무너져 버린다.
선지중생(善知衆生)의 : 중생의
심사제근(心使諸根)과 : 심사제근과 마음 쓰는 모양이나 사용하는 모양이나 모든 제근과 중생들의 눈빛이나 몸짓 이런 것을 다 보고
경계방편(境界方便)의 : 경계와 방편이
종종차별(種種差別)하며 : 각각 차별하여, 사람마다 각각 버릇이 다르지 않은가. 그러나
실능수지삼세불법(悉能受持三世佛法)하야 : 모두 실능수지하게 한다. 삼세의 과거 현재 부처님의 불법을 잘 받들어서
자득해료(自得解了)하고 : 스스로 해료할 수 있도록, 해료를 얻도록 하고
부위타설(復爲他說)하며 : 다시 타설하며. 자득해료하려면 뭘 해야 되는가? 오종법사인 수지하고 독,송,서사를 자기가 계속하다 보면 그다음에 위타연설이라. 남을 위해서 부위타설 할 수가 있다. 다른 이에게 말하고
어세출세무량제법(於世出世無量諸法)에 : 생멸법이나 불생불멸의 무량한 제법에, 세간법 출세간법의 한량없는 법에
개선안주(皆善安住)하야 : 개선안주라. 안주라고 하는 것은 ‘잘 이해한다’는 것이다. 적절하게 이해한다.
지기진실(知其眞實)하며 : 그 진실, 참됨을 알고 세간법도 본래 없고, 출세간법도 더 본래 없고
어유위무위일체제법(於有爲無爲一切諸法)에 : 유위법과 무위법 일체제법에, 일체제법이라고 하는 것은 유위법 무위법이라고 한다.
똑같은 일심법인데 보살들은 보현행원으로 살아간다.
이들 일체현성(一切賢聖)은 개이무위법(皆以無爲法) 이유차별(而有差別)하게 되고, 일체중생은 유의망념(唯依妄念) 이유차별(而有差別)이다. 망념으로 차별한다.
기신론에 그렇게 나온다.
중생들은 허망한 생각으로 자기의 욕심 탐진치로써 이유차별하고, 삼세의 제불이 되려고 노력하는 보살들은 모두 다 무위법으로 이유차별한다.
실선관찰(悉善觀察)하야 : 그래서 잘 관찰하여
지무유이(知無有二)하며 : ‘있다 없다’ 이것이 둘이 없는 줄 알아야 된다.
어일념중(於一念中)에 : 한 생각 가운데에
실능획득삼세제불소유지혜(悉能獲得三世諸佛所有智慧)하며: 모두 다 얻는다. 일념이 진실하면 ‘일심불생(一心不生)하면 만법(萬法)이 구식(俱息)’이라고 하였다.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모두 다 꺼져버린다. 삼세제불이 가진 지혜를 모두 얻고
어염념중(於念念中)에 : 생각 생각마다
실능시현성등정각(悉能示現成等正覺)하야 : 또 능히 시현한다. 생각 생각마다 다 정각을 성취하는 것을 보이어서 시현해서
영일체중생(令一切衆生)으로 : 모든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발심성도(發心成道)하며 : 발심해서 도를 이루게 하며
어일중생심지소연(於一衆生心之所緣)에 : 또 일체 중생심의 반연하는 바에 대해서
실지일체중생경계(悉知一切衆生境界)하며 : 일체 중생 모든 중생의 경계를 알게 하고
수입여래일체지지(雖入如來一切智地)나 : 이 대목이 굉장히 중요하다. 줄을 그어 놓는 것이 좋겠다.
비록 입여래일체지지나 아까 한 구절을 쭉 독송할 때, 이 대목을 읽다 보니 울림이 좋았다. 비록 부처님의 일체지, 일체지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근본지다. 근본지의 경지에 올라갔지만 그러나 ‘내가 부처가 다 됐다’ 하더라도 다시 부처의 직위를 내려놓고 어디로 들어가는가?
향토 예비군인가 보다. 국방의 의무로써 군대를 제대해도 ‘군대 제대하면 뭐하노? 또 총 쏜다’ 예비군 생활을 한다.
이불사보살행(而不捨菩薩行)하며 : 불사보살행이라. 내가 다 이루었다 하더라도 보살행을 버리지 아니한다.
여래 지혜가 다해버리면 이제 나 혼자 해결되고 다 끝났을 것인데 그렇지가 않고 보살행을 한다.
이런 대목이 십지품에는 ‘여수이멸번뇌화(汝雖已滅煩惱火)하라, 그대들은 여수 너 비록 이미 번뇌의 불꽃이 꺼졌다 하더라도 세간(世間)은 혹염유치연(惑焰猶熾然)이라. 세간의 중생들은 아직도 버글버글 번뇌 속에 살고 있지 않느냐. 실사수인(悉使修因)이라, 저 중생들로 하여금 수인 바라밀행을 닦아서 취해탈(趣解脫)이라, 해탈 열반으로 나아가게 해야 된다’라고 나온다. 해탈 열반으로 중생을 이끌어야 한다.
그런 대목들이 화엄의 주제 같다.
늘 말씀드렸지만 이사(理事)로 나눌 때, 화엄의 이치적인 주제는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고, 사적인 주제는 보현행원이다.
제소작업(諸所作業)이 : 모든 여러 가지 짓는 업이
지혜방편(智慧方便)으로 : 지혜와 방편이므로 지혜 방편으로써
이무소작(而無所作)하며 : 이무소작이다. 지혜 방편으로써 짓지만 짓는 바가 없다. 이무소작. 반야심경에서 이무소득이라고 해놨다.
우리가 보리심을 가지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는다’ 이 대목이 지금 계속 나오고 있는데, 그것을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렇게 이야기한다.
초발심시, 발보리심으로써 득보리심한다.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하잖는가.
초발심시변성정각을 이룬다고 하는 것이 득보리심이다.
얻어도 얻을 바 없다.
‘수보리야, 연등불소에서 여래가 얻은 바 법이 있느냐?
불야니이다, 세존이시여. 얻은 바가 없습니다. 무소득이니다’
이무소득고니라. 이무소득 이무소작 이무소위 다 똑같은 말씀이다.
위일일중생(爲一一衆生)하야 : 그리고 낱낱 중생을 위해서 그다음 대목부터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다.
주무량겁(住無量劫)하며 : 무량겁을 머물러서, 우리는 한두 시간만 기다려라 하면 신경질이 나서 죽는다. 무량겁을 머물지만
이어아승지겁(而於阿僧祗劫)에 : 낱낱 중생을 위해서 한량없는 겁에 머물지만, 아승지겁에도
난가치우(難可値遇)며 : 만날 수 없으며 그래서 제가 잘 쓰는 말씀이지만, 오는 사람 기다리는 것을 누가 못 기다리는가? 안 오는 사람을 기다려야 정성이다.
조상이 안 온다 하더라도 설에 제사는 모셔야 한다. 안 오니까 모셔야 한다.
사실 화엄경에 그 답이 다 있다.
사람의 정성이 어디 있느냐? 얍삽하게 오고 가는 거래에 두는 사람, 생멸에 두는 사람은 ‘잘 차려놓으면 귀신이 알겠냐’ 하지만 자기는 알지 않는가. 부처님도 속이고 다른 사람도 다 속이지만 자신을 못 속이지 않는가? 자신의 정성을 못 속인다.
전정법륜(轉正法輪)하야 : 바른 법륜을 굴려서
조복중생(調伏衆生)하야 : 중생을 조복시켜서
개불당연(皆不唐捐)하며 : 개불당연이라. 황당할 당(唐)자 헛되지 아니하고 황당하게 버리지 아니한다 당연, 버릴 연(捐)자.
삼세제불청정행원(三世諸佛淸淨行願)을 : 삼세제불의 청정한 행원, 집착 없는 행원을, 삼세제불의 행원은 보현행원이다.
실이구족(悉已具足)하야 : 모두 구족해서
성취여시무량공덕(成就如是無量功德)하니 : 이와 같이 무량한 공덕을 성취하니
일체여래(一切如來)가 : 일체의 여래께서
어무변겁(於無邊劫)에 : 한량없는, 그지없는 겁 동안에
설불가진(說不可盡)이러라 : 말씀하여도 다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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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삼세간이 한 모습..._()()()_
🙏🙏🙏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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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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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실 운영 무비스님,
강설해 주시는 용학스님,
공부하러 오시는 대중,
녹취록 올려주시는 혜명화님,
화엄경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_()()()_
녹취록들을 계속해서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묘심행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