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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명예교수(한국 본원사상 연구 30년), 안 창 범
영실(靈室)이란 신령이 사는 곳, 신령한 사람들이 사는 곳, 신령스러운 곳, 신령스러운 집, 신령스러운 방, 그와 같이 신령스러운 동굴을 의미한다.
석가세존은 원래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 나라의 백두산에서 고행성도하였다. 그렇다면 석가세존은 먼 인도에까지 가기 전에 먼저 우리 나라에서 법을 설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석가세존을 인도태생으로 여겨왔고,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 : 최초로 법을 굴린 곳)도 인도 어디에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불교사전>의 기록을 보면 “파라날(波羅捺)은 중인도 마갈타국의 서북쪽에 있는 나라로서 별명을 가시(加尸)라 하고 지금의 오우드 지방, 베나레스시(Benares市)에 해당하며, 석가세존이 성도한지 三七日후에 이 나라의 녹야원(鹿野園)에서 처음으로 법을 설하여 교진녀 등 다섯 비구를 제도하고, 그후 200년이 지나서 아육왕(아쇼카왕)이 그 영지를 표시하기 위하여 두 개의 석주(石柱)를 세웠다”고 하였다. 곧 우리나라의 불교사전에 의하면, 인도의 베나레스시(市)를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중촌원(中村元)은 “최초 설법지는 현재 사르나드라고 불리며 베나레스시 북동쪽 약 7km되는 지점에 있다. 이는 ‘사랑가 나타(사슴의 왕)’를 생략한 말에서 유래한다. 이 지역은 경전에 ‘사슴동산이나 선인이 사는 곳’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 곳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곧 이 기록은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를 베나레스시가 아니라, 사르나드라 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당국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두 기록을 보면, 서로 다르다. 이것만 보아도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는 우리 나라인가 아니면, 인도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1.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는 바라날 녹야원이다
<중아함경> 라마경을 보면, 석가세존이 성도한 후 바라날(波羅捺) 선인(仙人)이 사는 녹야원 가시도읍(加尸都邑)에서 교진녀(憍陳女) 등 다섯 비구들을 제일 먼저 만나 사제(四諦)의 법을 설한 것으로 되어있다. 즉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 곧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는 바라날(波羅捺) 녹야원(鹿野園)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녹야원에 대한 자세한 기록으로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娑論> 제183권을 보면 녹야원은 예로부터 선인이 사는 곳이라 하여 선인주처(仙人住處)라 하며, 예로부터 선인이 법을 설하던 곳이라 하여 선인논처(仙人論處)라 하고, 500 선인이 공중을 비행하던 중에 인연을 잃고 그곳에 떨어졌다 하여 선인타처(仙人墮處)라 하며, 뭇 사슴이 서식한다 하여 녹림(鹿林) 또는 녹원(鹿園)이라 하고, 보리수가 많다 하여 보리수처(菩提樹處)라 하였다. 또한 수양대군의 저술인 <석보상절>에 의하면 녹야원에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판단기준으로서 녹야원의 성립요건 곧 초전법륜지의 성립요건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초전법륜지는 산악이다.
② 초전법륜지는 녹야원이다.
③ 초전법륜지는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이다.
④ 초전법륜지는 선인타처이다.
⑤ 초전법륜지는 보리수처이다.
⑥ 초전법륜지는 거기에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이 있어야 한다.
⑦ 초전법륜지는 거기에 교진녀 등 다섯 비구에 대한 전설이나 어떤 물증이 있어야 한다.
⑧ 초전법륜지는 거기에 가시도읍이 있어야 한다.
이상의 여덟 가지 요건이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성립요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위의 여덟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면 그곳이 곧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라 할 수 있고, 만약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곳은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라 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2. 인도의 사르나드는 초전법륜지가 아니다
인도 당국이 주장하는 인도 중부지방의 사르나드가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부터 먼저 따져 보기로 한다. 현지답사를 근거로 인도의 사르나드를 초전법륜지의 성립요건에 대입시켜 보기로 한다.
① 초전법륜지는 산악인데, 사르나드는 약 2000평 정도의 평지였고 산악이 아니었다.
② 초전법륜지는 사슴이 사는 녹야원이며 산악인데, 사르나드는 산악이 아닌 자그마한 들판으로서 사슴이 살만한 녹야원이 아니었고, 사르나드에 사슴이 살았다는 기록도 본 바 없다.
③ 초전법륜지는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인데, 사르나드는 평지로서 신선이 살만한 곳이 못되었다. 따라서 선인주처도 선인논처도 될 수 없는 곳이었다.
④ 초전법륜지는 거기에 500선인이 떨어졌다는 선인타처인데, 사르나드에서 500신선에 대한 어떠한 물증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전설도 기록도 본 바 없다. 따라서 사르나드는 선인타처가 아니었다.
⑤ 초전법륜지는 보리수처인데, 사르나드는 보리수처가 아니었다. 보리수(菩提樹)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동인도(東印度)에서 자라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키가 30m쯤 되고, 잎은 염통꼴로 끝이 뾰족하며 가죽바탕으로 윤이 나고, 꽃은 은두화인데 무화과와 같은 열매가 열린다.(우리 말 사전), 이 나무를 인도에서 보리수라 한다.
또 하나는 보리수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제주방언으로는 ‘볼레낭’이라 한다. 키는 3m 정도이고, 잎은 타원형이며, 흰 비늘이 덮이고 어긋나게 나는데 빨간 물렁열매가 가을에 붉게 무르익으면 그 열매를 먹는다. 이 나무는 줄기를 잘라버려도 좀처럼 죽지 않고 새싹이 돋아난다. 이를 평하면 전자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원래의 이름은 보리수가 아닌 것이다. 단지 인도에서 보리수라 부르므로 보리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후자는 보리수과에 속하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볼 때 진짜 보리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후자의 보리수과에 속하는 나무 즉 제주 방언으로 볼레낭이라 불리는 보리수는 인도의 사르나드에 한 그루도 없었다. 따라서 인도의 사르나드는 보리수처가 아니었다.
⑥ 초전법륜지에 석가세존의 사리탑이 있다는데, 사르나드에 석가세존의 사리탑이 없었다.
불탑은 거의 돌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사람이 고의적으로 없애지 않는 한 몇 천년이고 그대로 남을 수 있다. 그런데 인도의 사르나드에 석가세존이 입멸하자 조성하였다는 불탑이 없었고, 있었다는 기록도 본 바 없다. 아육왕이 그 영지를 표시하기 위하여 두 개의 석주를 세운 것도 석가세존이 초전법륜한 지 약 200년 후라 하였다. 그밖에 스투파ㆍ불상ㆍ승원 등이 사르나드에 있으나, 그것은 모두 B.C. 3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들이라 했다.
⑦ 초전법륜지에 교진녀 등 다섯 비구에 대한 전설이나 어떤 물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인도의 사르나드에서 교진녀 등 다섯 비구에 대한 전설이나 기록을 일절 본 바 없고, 어떤 물증도 일절 찾을 수 없었다.
⑧ 초전법륜지에 가시도읍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인도의 사르나드에 가시도읍이 없었다.
<중아함경>에 의하면 바라날에 녹야원이 있고, 녹야원에 가시도읍이 있다. 그런데 녹야원이라는 사르나드 자체가 약 2000평 정도로서 그 속에 가시라는 도읍지가 존재할 수 없었고, 베나레스시의 별명이 가시라 하여 불서의 기록과 맞지 않았다.
이상과 같이 인도의 사르나드는 판단기준인 초전법륜지의 성립요건에 어느 하나도 부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도의 사르나드는 녹야원이라 할 수 없고,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라 할 수도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더욱이 대각자인 부처님의 초전법륜지를 부처님이 입멸하여 200년 후까지 그대로 방치하였다는 것이나, 1794년 베나레스왕의 대신이 사르나드의 유적을 파괴한 것도 사르나드는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가 아님을 드러나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사르나드를 녹야원이라 한 것은 석가세존 당시 또는 입멸 후 비유적으로 불리던 것이 후세에 이르러 인도인의 긍지를 높이고 찾아오는 외국의 불자들에게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비유를 사실같이 조성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3. 바라날 녹야원은 제주도 한라산이다
바라날(波羅捺)이란 글자의 뜻으로 볼 때 물결치는 나라 곧 섬나라를 의미한다. 그런데 제주도가 바로 물결치는 나라 곧 섬나라이며, 녹야원(鹿野園)이란 사슴이 서식하는 산악을 의미하는데 제주도 한라산(漢拏山)에 사슴이 살았고, 정상의 연못에서 흰사슴이 물을 먹으면서 놀았으므로 그 연못을 백록담(白鹿潭)이라 한다. 또한 한라산 동쪽 허리에 사슴이 논다는 녹산장(鹿山場)과 아울러 소록봉(小鹿峯)과 대록봉(大鹿峯)이 있다. 한라산 서남쪽 중문면에도 겨울이면 사슴이 내려와 서식한다는 녹하악(鹿下岳)이 있다. 또한 제주도 한라산에는 우거진 숲도 많고 공기도 맑으며 생수도 많다. 이러한 것만 보아도 제주도 한라산이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인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제 제주도 한라산이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한라산을 초전법륜지의 성립요건 곧, 녹야원의 성립요건에 대입시켜 보기로 한다.
① 녹야원은 산악인데, 제주도 한라산도 산악이다.
제주도 한라산은 1950m의 한국 제2의 명산이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로서 설명이 필요 없다고 본다.
② 녹야원은 녹림 내지 녹원인데, 제주도 한라산도 녹림 내지 녹원이다.
한라산은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로서 선산(仙山)이다. 선산이란 선인이 거처하는 산을 의미하는데, 선인은 동물 중에서 그 품행이 가장 고결하고 장생한다는 사슴과 벗을 한다.
조관빈의 ꡔ한라산기ꡕ를 보면 “한라산에 본시 사슴이 많았는데 매양 새벽과 저녁이면 사슴들이 백록담에 나와 물을 마신다. 어느 때 한 사냥꾼이 활을 들고 못 가의 바위 뒤에 숨어 앉아 기다리다가 문득 보니 사슴의 떼가 몰려오는데 100인지 1000인지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 중에 가장 큰 사슴의 몸빛은 희고 광채가 났다. 어이한 백발 노옹이 그 등위에 올라탔다. 사냥꾼은 활을 들어 쏘기는커녕 그만 놀라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윽고 맨 끝으로 따라가는 작은 사슴 하나를 쏘았더니, 또 사슴을 타고 오는 신선이 있어 손가락으로 사슴을 점검하는 듯하므로 엽사는 가슴을 두근거리다가 다시 문득 보니 그들은 간 곳이 없었다”하여 한라산에 신선과 함께 사슴이 살았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제주도 한라산은 녹원(鹿園) 내지 선인녹원(仙人鹿園)이었다.
③ 녹야원은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이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도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이다.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란 선인들이 도(道)를 닦고 강론하면서 거처하는 곳, 다시 말하면 선인들이 거처하는 동굴 내지 암자를 지칭한다. 그런데 그러한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동굴 내지 암자)가 제주도 한라산 영실에 있다는 것이다. 곧 한라산 백록담 서쪽 허리에 마치 수도승 같기도 하고 개선장군 같기도 한 수백 개의 자연석이 우뚝 서 있는데 그 자연석을 오백나한(五百羅漢) 또는 오백장군(五百將軍)이라 하고, 그곳 일대를 수행동(修行洞) 내지 영실(靈室)이라 한다. 영실이란 신령이 사는 곳, 신령한 사람들이 사는 곳, 신령스러운 곳, 신령스러운 집, 신령스러운 방, 그와 같이 신령스러운 동굴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영실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 이제 영실은 어떤 곳인가를 가능한 한 알아보기로 한다. <법주기>를 보면 박가범(薄伽梵) 부처(아미타불 내지 환웅천황) 당시에 16존자의 한 사람인 발타라존자(跋陀羅尊者)께서 한라산 영실에 있었다 하고. 김상헌의 <남사록(南槎錄)>을 보면 한라산 정상을 가는 대목에서 기록하기를 “수행굴(修行窟)을 지났다. 굴안이 20여인을 수용할만한데 옛날 고승(高僧) 휴량(休粮)이 들어서 살던 곳이다”라고 하였다. 영실에서 8년간이나 수도했다는 도인(道人)도 말하기를 영실은 20명 정도 들어가 묵을 수 있는 자연동굴인데 사시절 온도의 변화가 없으며, 지금도 계절따라 선인들이 와서 수도하는데, 거기에는 자연석에 조각된 불상이 있고, 동굴 천정에 ‘靈室’(영실)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하였다. 곧 영실은 선인들이 도(道)를 닦는 수행굴(修行窟)로서 선인주처(仙人住處)라는 것이다.
또한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를 보면 존자암(尊者庵)이 한라산 영실에 있었다 하고, 김상헌의 <남사록>에 존자암은 고량부(高梁夫) 삼성(三姓)이 처음 일어날 때부터 (정의, 대정, 목안의)삼읍(三邑)이 정립될 때까지 있었다고 하였다. 이는 존자암이 탐라국(耽羅國) 건국초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탐라국은 B.C. 1596년 전부터 존재하였다.(<환단고기> 마한세가(상)을 보면, 단군 을아(乙阿) 을유(B.C.1596년)에 탐몰라인(탐라인)이 마한왕에게 말 30필을 바치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탐라국은 B.C.1596년 전부터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곧 존자암은 지금부터 3600년 전, 석가세존 출생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앞에서 한라산의 백록담에 신선이 나타났었다는 기록을 소개하였다. ꡔ신증동국여지승람ꡕ에도 정의ㆍ김녕ㆍ함덕에 신선이 많다 하였으며, 한라산은 원산(圓山)이니 곧 바다 가운데 있다는 원교산(圓矯山)이고 그 동은 동무소협(東巫小峽)인데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하였다.
이상과 같이 제주도 한라산 서쪽 허리 수행동(오백라한)에 영실이 있고, 그 부근에 암자가 있었으며, 거기에 신선이 살았었다. 그러므로 제주도 한라산은 예로부터 신선이 도(道)를 수행하면서 강론하는 선인주처 내지 선인논처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석가세존도 영실에 왔었고, 영실에 왔었기에 왔던 그 능선을 불래악(佛來嶽)이라 하며, 제주도 한라산 영실은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지인 초전법륜지가 되는 것이다.
④ 녹야원은 선인타처인데, 제주도 한라산도 선인타처이다.
선인타처란 신화적인 이야기같지만 녹야원에 500선인과 관련된 어떤 물증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라산 서쪽 기슭에 부처님이 왔었다는 불래악(佛來嶽)이 있고, 불래악 맞은 편에 500개의 자연석이 우뚝 서 있다. 이 500개의 자연석이 마치 개선장군 같아서 오백장군(五百將軍)이라 부르고, 한편 도(道)를 닦는 수도승 같아서 이를 오백나한(五百羅漢)이라 부르며, 그곳을 수행동(修行洞)이라 한다. 그러므로 한라산 불래악 수행동(속칭 영실)에 있는 500개의 자연석이 곧 500신선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니, 제주도 한라산은 선인타처인 것이다.
⑤ 녹야원은 보리수처인데, 제주도 한라산도 보리수처이다.
뽕나무의 일종을 인도에서는 보리수라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보리수과에 속하지 않으며 단지 인도인들이 보리수라 부를 뿐이다. 이에 반해 제주도 한라산에는 보리수과에 속하는 불래나무(래낭)가 많다. 그러므로 제주도 한라산은 보리수처라 할 수 있다.
⑥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에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한라산 존자암의 터에 천년 묵은 불탑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원진 목사가 쓴 <탐라지>에 이경억(李慶億)의 한시(漢詩)가 수록되고 있는데,
존자암이 유명한 절로 알았더니(尊者知名寺)
쓸쓸하고 거의 허무러진 옛터일세(荒凉半舊墟)
천년묵은 외로운 탑이 있는데(千年孤塔在)
하나의 방과 서까래만 남았구나(一室樓梁餘)
이와 같이 존자암에 오래된 불탑이 있다고 하였다. 실재 영실에 이르는 불래악(佛來嶽) 남쪽 허리에 옛 절터가 있는데 이를 흔히 존자암의 터라 하고, 거기에 조성연대를 알 수 없는 태고시대의 부도(浮屠)가 있다. 여기에서 만약 이 절터가 존자암의 터임이 확실하다면 이 부도는 이경억의 한시에서 말하는 천년 묵은 외로운 탑이며, <석보상절>에서 말하는 석가세존의 사리불탑이라 할 수 있다.
⑦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에 교진녀 등 다섯 비구에 대한 어떤 물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제주도 중문향토지인 <불란지야 불싸지라>에 의하면 “존자암에 5불을 모신 동굴이 있다고 전해오나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음은 아직도 때가 안되었음인지 알 길이 없다” 하여 영실(수행굴)에 불상 5구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⑧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에 가시도읍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에 가시리(加尸里;加時里)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목에 한라산 동쪽은 동무소협으로서 신선들이 살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곳에 가시리가 있고, 상가시리에는 노폭(路幅)이 7-8m되는 넓은 길이 있다. 이 길은 너무나 오래되어 만들어진 연대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이를 생각하면 가시리는 그 역사가 극히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고, 탐라국 시대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한다.
이상과 같이 제주도 한라산 영실은 초전법륜지로서의 성립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따라서 논리적인 측면에서 바라날은 제주도를 의미하고, 제주도 한라산 영실은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라 할 수 있다. 만약 이를 부정하면 인도의 사르나드도 녹야원이 아니니 석가세존의 초전법륜지는 허무맹랑한 전설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주체의식이 있는 독자라면 근거가 부족하다 하여 부정하기에 앞서 부족한 증거를 보완하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애국적이고 주체적인 독자들의 협력을 기대한다.
참고자료 : 불교는 원래 한국사상이다. 외 1)부터 17)을 차례로 보아주시요.
참고문헌 :『천지인 사상과 한국 본원사상의 탄생』삼진출판사, 2006,
휴대전화, 010-7251-2268. 사무실, 064-758-2246.
『환웅천황과 한국 고유사상의 탄생』제주대학교 출판부, 2001.
전화 : 064-754-2275(대학).
저자의 자택 전화 : 064-752-4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