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동몽 남동완군이 E.mail로 대머리에게 보내 준 글이다. 너무 속깊은 글이기에 나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동몽에게 동의를 구하고 여기 옮겨 적는다. 우리 모두에게 흉한 병마가 시시각각 가까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동몽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어. 함께 걱정해 주고 용기 돋우어주며 살아가세그려....대머리 김정태
내 곁에, 우리 곁에 다가온 병마(病魔)를 보며....
내가 52살 때, 동갑내기 절친한 친구가 딸 결혼식을 치룬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위암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플 때 병 문안 가면 딸 결혼식 날 딸 손을 잡고 식장으로 들어간 후에나 죽을 것을 소원했는데 그 소원은 푼 셈이다. 그 친구는 아주 큰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병들어 죽으면 돈이라는 것도 필요가 없음을 절실히 느끼며 친구 죽음을 너무도 안타까워 할 때에 나도 건강 검진을 받아 보아야 되겠다고 종합건강검진을 하기 위해 대학병원을 찾았다. 위 검사를 하기 위해 약물을 먹고 사진을 찍는데 기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하고 해서, “이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으나 대답해 주지 않아서 그때부터 조금은 겁을 먹고 결과가 4일 후에나 나온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 왔다.
4일 후에 병원을 찾으니 담당의사가 사진을 보고 설명하셨다. 사진에 혹이 3개나 있다고 하셨다. 사진에 3곳을 아주 명확하게 표시해 놓은 것을 보니 앞이 캄캄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참 있다가 의사선생님께 되물었다. “입원해야 됩니까?” 라고 질문을 하니 의사선생님 말씀이 “그럼 혹이 3개나 있는데 입원 안하고 되느냐”고 야단을 치셨다. 정말 앞이 캄캄하고 정신이 없어 아무 말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으니 “지금 나가서 입원 수속을 발고, 입원실이 없으면 내일 토요일에는 퇴원하는 환자가 많아 입원하기 쉬울 것이다”라고 일러 주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진료실 문밖에는 긴 의자가 있었다. 거기에 털썩 주저앉았다. 집으로 전화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는데 목발을 집고 지나가는 환자를 보는 순간 그 환자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저분은 목발을 집고 다녀도 죽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 하
니 말이다 다시 말 하면 그때 나에게는 건강이 그렇게도 절실할 수가 없었다. 아주 건강한 사람보다 목발 집고도 살아만 갈 수 있었으면 하는 절실한 마음에서였다. 나에게는 암이라는 병에 대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위에 혹이 있으면 암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할 때이다. 그리고 암에 걸리면 누구나 죽고 만다는 무지에서 온 것이다. 암에 걸려도 치료만 잘하면 건강을 찾을 수가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이때까지 아프지 않던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전화를 할 수가 있었다. 얼마가 지났는지 집사람과 장모님이 오셨다. 입원을 하려고 해도 입원실이 없어서 내일 입원하기로 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이제는 집도 낯설었다. 내일 입원하면 이 집에 다시 올 수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장모님이 교회 권사님이시라 집 식구와 셋이서 손을 잡으라시며 뜨거운 기도를 해 주셨다. 마음의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처음 당하는 일이라 여전히 불안해 그 날 밤을 뜬눈으로 보내고 토요일에 입원을 하였지만 토요일이라 의사선생님이 계시지 않아서 진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일요일이 지나 월요일에 내시경 검사를 하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 두 분이 검사에 참여하여 ‘위’에 대한 검사를 하셨다. 혹을 찾으시느라 한참의 시간을 보내더니 검사를 끝냈다. 얼마 후에 담당 의사선생님이 불러서 진료실에 들어가서 죽을 사람처럼 힘없이 의사선생님 앞에 앉으니 빙그레 웃으시면서 “혹을 찾아보았으나 혹이 하나도 없다”라고 하지 않는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날아갈 듯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도 화가나 의사 선생님께 “사람을 반 죽여 놓고 지금 와서 없다고 합니까? 혹이 3개나 있다 고 할 때는 언제고요.” 하고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의사선생님은 “혹이 없으면 좋지 뭐 그래요”하시고 웃으시면서 나를 위로 하셨다. 나는 막무가내로 혹을 찾아내기 전에는 나갈 수가 없다고 떼를 썼다. 하루 더 입원하고 한 달 후에 재검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 올 수가 있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이때부터 내 건강에 대한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건강 체질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을 열심히 한 결과 건강이 좋았다. 교사생활을 하면서는 학교 운동회는 거의 내가 맡아서 큰 행사를 치르곤 하였다. 6학년을 맡아 진학지도와 운동회
행사로 무리한 몸 사용으로 건강을 많이 잃게 되었다. 제 시간에 잠을 자지를 못 하고 식사도 제 때에 하지 못하므로 해서 자주 배탈이 나는 일이 반복되어 건강이 나빠졌다. 결국 젊음을 믿고 몸 관리를 잘못해서 건강이 나빠졌다고 볼 수가 있다.
그리고 학교를 그만두고서는 생활전선에서 열심을 다하다 보니 건강을 챙기기 힘들어 좋은 건강을 유지하지를 못했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건강을 챙겨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까지의 삶은 생명에 대한 애착보다 잘 살아보자는 한 가지 목표에 매달려 열심히 살아왔는데 ‘오진’이라는 엄청난 일을 겪고 난 뒤에는 내 생을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잘 살아 보자는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기로 하고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1990년(52세) 봄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터전을 정리하기로 했다. 집을 새로 짓고 가게를 처분했다. 젊은 날, 꿈꾸어온 소중한 길을 찾아보기로 하고, 당분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등산과 여행으로 나만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생활했다. 1998년부터는 장애인 특수학교에서 소중하고 중요한 공간을 갖고 얼마동안 뜻 있는 시간을 보냈고, 또 세상 속으로 나와서 이전생활로 돌아와 생활을 하던 중 2008년 봄 감기가 들어 너무 오래도록 아파서 종합 건강 검진을 하게 되었는데 위에‘혹’이 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와서 내시경으로 간단한 수술을 했다. 다행이 나뿐 암은 아니라는 진단이 나왔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하지 않다.
주위에 친구들 중 어렵게 병마와 씩씩하게 싸워 한고비 한고비를 슬기롭게 이겨내고 지금은 건강을 찾은 것으로 보이는 친구도 있고, 또 한 친구는 사모님이 위암 수술을 마치고 요양 중이라 환자를 정성껏 돌보느라 환자를 집에 혼자 두고 마음놓고 외출하지를 못하는 친구도 있다. 환자를 돌보다보면 왜 어려움이 없겠나? 지금까지는 해주는 밥에다 요구하면 무엇이고 다 들어주던 아내가 어느 순간, 병마가 엄습해 이때까지 나에게 잘만 해주던 사람이, 반대로 내가 잘해주기만 기다리는 사람으로 변해 버렸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겠지. 나에게 잘 해주던 만큼은 해주어야 공평하지 않겠나? 때로는 짜증도 부리고 엉뚱한 말도 퍼부을 것이고 섭섭하고 서운함을 거침없이 토해낼 수 도 있을 것이다. 이때까지 겪지 못한 일이 수없이 닥쳐오지만 어쩔 것인가 사랑하는 아내인 것을, 또 박사아들을 키워낸 훌륭한 아들의 어머니인 것을, 사랑하는 아내이고, 또 사랑하는 아들이 원한다면 무엇이고 다 해 먹이고 싶고, 아들 곁에 오래 머물고 싶어하며, 가족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인 것을, 그런 따뜻한 생각이 들어서 참고 또 참으며 아내 곁에서 열심히 간호 할 수밖에 없는 착한 사람으로 변해 버린 친구다.
얼마 전에는 동기생 중에 승리자라는 윤 목사님이 대장암으로 수술을 마치고 항암 치료 중이다. 윤 목사님은 여행을 함께 가서 잠 잘 때는 반드시 성경책을 머리에 베고 자고 긴 여행길에는 설교할 한 사람을 옆에 앉히고 설교를 하고, 모임에는 반드시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며, 모임에서도 꼭 설교적인 말과 행동을 보여주는 오직 하나님 생각뿐인 목사님이고 또 동기생 모임 카페에도 신앙적인 글을 자주 올리는 진실한 신앙인이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교역자에게도 믿음이 없는 사람보다 더 큰 시련을 주실 수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큰 시련 주셔서 더 큰 쓰임 받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함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신앙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기고 진정한 승리자가 될 것으로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 친구는 생사를 초월한 사람으로 보인다. 몸은 괴롭지만 조금도 평상에서 벗어난 모습이 아니고 밝은 모습에 나는 감동한다. 또한 그 모습에서 나는 신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그 마음속에는 자기가 믿는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고 존재케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 같다.
또한 나와 친한 동기생 사모님께서 직장암으로 얼마 전에 수술을 마치고 치료중이다. 그 사모님은 내가 ‘오진’을 받아 괴로워 할 때에 오셔서 그렇게도 뜨겁게 기도해 주신 분인데 이제는 본인이 암으로 고통을 받는 다니, 정말 암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가정과 본인이 고통을 받고 있는가? 동기생 친구나, 사모님, 두 분 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 꼭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간호하는 두 친구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누구나 다 알고 있겠지만 환자가 되면 마음이 약해지고 신경이 날카로 워 져서 제일 가까운 사람에게는 거칠게 대할 수도 있고 사리에 맞지 않는 억지를 부릴 수도 있다. 그건 답답한 환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 활로이기 때문이다. 그걸 다 받아주는 좋은 마음을 갖고 환자를 대해야 되고 참고 또 참으며 열심히 간호해만 된다고 생각한다.
종합검사를 하기 위해 병원을 찾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긴장이 되어 떨고 있다가 이상이 없으면 기쁨을 갖고, ‘암’ 선고를 받으면 그 때부터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절망이 온 전신을 휘감는다. 병으로의 아픔보다 정신세계가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그때는 나를 정신적으로 이기지 못하면 병으로 보다 걱정으로 병을 키워서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승리한다는 신념이 중요하고 병을 이길 힘을 기르는 것이 제일 이라고 본다. 그래서 온 가족이 정신무장을 단단히 하여 환자만을 위한 생활 패턴으로 바꾸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환자 자신은 신에 의지하든, 현대 의술에 의지하던 나는 반드시 이 병을 이길 수가 있다는 확신을 갖고 건강 할 때와 똑같이 평상심으로 노력을 배가해야 될 것이고, 그리고선 가족들의 도움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아울러 나날이 발전하는 의술로 지금의 나의 병은 금방 좋아 질 수가 있다는 확신을 갖고 의술을 믿어보았으면 한다.
동기생 이 선생님! 사모님 병간호에 애쓰는 두 친구들! 그리고 하나님을 구원자로 굳게 믿고 기쁜 마음으로 하루하루 어려움을 이기고 있는 친구 목사님인 승리자여! 승리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마음 꼭 전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단다.
모든 가정이 행복만 있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네. 이 나이가 되면, 다 한 두 가지 약봉지를 가지고 살고, 병원을 들락거린다네. 나만 왜 이런 고통을 갖게 되느냐가 아니라 이것이 내 삶이고 우리들의 삶이라고 좋은 마음을 가지고 어려움을 이겨 나가기 바랄 뿐이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남과 동시에 생로병사를 고민해야 되는 천리가 있기에 지금의 우리네 삶도 그의 일부이고 살아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시간도 고통을 받는 많은 암 환자들의 쾌유와 나와 가까운 환우들 본인과, 환우가 있는 그 가족들에게 위로와 완전한 건강을 찾을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2008년 가을 동몽이 몇 자 적는다
첫댓글 동몽님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올려주시면 여생의 참고가 되겠습니다. 설악산 등정이 값진 건강의 보배이군요. 앞으로도 좋은산 (백두대간)을 등산하시어 멋있는 산야를 구경 하도록 해주십시요.
동몽이 말 대로- 나도 큼직한 감기가 한 번 찾아와서 나를 무척이나 괴롭혔다고. 그리고 지금도 전투 중이라, 승리하고 있는 중일세. 동몽은 이미 건강의 비법을 알고, 실천하고 있구먼! -건강도 더 없는 귀한 보배이지만--질병도 보배로 바꾸면 더 없이 값진 경험이 되고 , 진주 알보다 더 귀한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하오.=== 윤 형 선 올림===
이 나이쯤 되면 정도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한 두가지 질병은 있기 마련이지요. 나이 탓인지 잠시 짬만 있어도 조용할땐 괜시리 이유없이 눈물이 나는데 동몽님의 가슴 찡한 글이 마치 나의 슬픔인양 하염없이 울고 싶네요. 눈물나요. 겉보기엔 무척이나 건강하게 보이는 나도 수 많은 고통이 있지만 말씀대로 이건 병이 아니다. 오직 인생의 과정일 뿐이다 라고 생각하며 견디며 일과 활동으로 참을 수 있답니다. 승리자님처럼 나의 질병도 보배로 바꾸며 살고 있어요. 소중한 우리 동문님들 오늘이 항상 제일 즐겁고 제일 행복하고 제일 예쁘고 제일 멋진 날이라 생각하면서 우리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자주 만나고 그렇게 살아요. 이영자올림
메밀꽃 님! 이 우리집 사람에게 전화 해 주어서 고마와요. 말 안들으면 부산 여행- 안 보내 준다고 하니, 나는 요즈음 -집사람에게 고분 고분하고 있어요.
"오직 인생의 과정일 뿐이다 라고 생각하며 " 이 말씀 지당 지당 지당한 말씀이외다. 다아 그렇게 사는 거지 뭘.........
거산님! 우리 대장님, 지금 생각하면 대장님을 못 만났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이제 대장님 말이면 모두 복종복종할랍니다. 어제는 9시간 산행에 힘드셨지요. 돋자리를 잘라서 우이로 하고 4사람이 북한산 성을 돌때는 꼭 여름날 모심기 할 때 농부들이 비울때 짚으로 두른 우장을 하고 무논을 헤매는 사람들 같은 모습이였습니다. 대장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열심을 다하여 사진찍는 모습에서 정말 존경심 마져 들었습니다. 컴퓨터 박사님 앞으로 많이 가르쳐 주세요. 네
승리자여 ! 그 고뿔은 위대하신 하나님이 알으셔서 치유 해 주실 것으로 믿어요. 나를 떠나지 않으면 붇잡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동몽님! 믿음이 좋군요. 그런데 믿음은 실제가 되어야 한답니다. 실제로 병마가 떠나가고 낫고. 치료가 되고 회복이 되어야 한답니다.
메밀꽃님 우리동기회를 몇년째 이끌어나가시는 메밀꽆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고요. 나는 원래 글쓰는 사람이 아니고 동기생 모임에 가면 우리의 현실이 눈에 훤히 들여다 보여서 정태 친구에게 보낸것이 그만 이렇게 알게 되었네요. 우리 나이가 금방 이쭘에 와 있네요, 요즈음은 정말 1주일이 하루 같습니다. 세월이 왜 이렇게 빠른지요.? 메밀꽃님의 노고에 식사 한끼라도 대접해야 되는 데 말이아닙니다. 우리 모임을 위하여 힘써 주시는데 대해 감사하는 마음 다시 한번 전합니다.
말씀만으로도, 마음만으로도 배가 가득하고 행복합니다. 친구들이 있어 이렇게 행복감도 맛볼 수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가요. 11월 6일은 기쁜모습들로 만나는 날로 믿겠습니다.안녕 내사랑... 앗! 이게 아닌데, 실수, 나으실수...
메밀꽃 사랑.순수사랑... 한 번 실수는 누구나 있지만--그것 실수는 영원한 실수 아닐까? 순수한 메밀꽃 말 실수는 용납이 되고 도리어 힘이 되니, 이 승리자에게도 그러한 사랑의 말 실수라도 받아 봤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