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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사람덜은 삼겹살 몰라요” | |
영월 주천면 주천리 다하누촌 “우리동네 사람덜은 삼겹살 몰라요, 쇠고기만 먹으니까네…” 한우고기만 팔아서 ‘다하누촌’…외지인 몰려 동네가 ‘들썩’ | |
“그 뭐래요. 안 보이던 동네 사람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나타나 돌아댕기는 느낌이래요. 지금 바쁘걸랑요? 나중에 말하자구요.” 식당 경력 5개월인 최씨는 지금 손님 추가 주문을 받아 ‘한우 암소 한마리 세트’를 사들고 돌아가는 중이다. 조용하던 산골 동네가 갑자기 들썩인다.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 쌍섶다리 마을이다. 젊은이들은 줄고 빈 집은 늘어가던 평범한 촌마을에 외지 차들이 몰려들고 사람들이 북적인다.
몰려드는 외지인, 거리는 재개발 공사중
다하누촌 때문이다. 다하누촌은 ‘싹 다 한우고기만 파는 마을’이란 뜻이다. “한우와 한우가 아닌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온데” “자꾸 한우가 아닌 것을 한우라고” 우겨 팔고 섞어 파는 곳이 많아서 붙인 이름이다. 한-미 에프티에이 체결로 한우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주천리 주민들은 거품을 뺀 한우고기를 싼 값에 팔기로 했다. 한 사람이 앞서고 주민들이 따라 나섰다. 이래서 지난해 8월 마을 브랜드 다하누촌이 만들어졌다. 주도적으로 일을 저지른 최계경(45) 촌장이 말했다. “유통구조를 바꾸고 새 판로를 텄죠. 아주 쌉니다. 같은 부위, 같은 품질에서 일반 마트의 절반 내지 삼분의 일 값이죠.”
마을 전체가 쇠고기를 주제로 ‘재개발’ 중
가맹식당들은 제발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으며 짭짤한 소득을 올린다. 주천시장 안에서 밥집을 하다 그 자리에 가맹식당을 낸 김순덕(48)씨는 대박을 맞았다. “첨엔 깜짝 놀랐댔어요. 시상에 이렇게 잘되는 장살 두고 내가 뭐했나 하고요.” 거리는 공사 중이다. 곰팡내 나던 옛 식당, 나른하던 옛 다방, 쓰러져 가던 빈집들이 안팎을 새로 단장해 다하누촌 간판을 내걸고 있다. 식당들을 한우불고기·숯불구이·연탄구이·곱창전골·육초밥·내장탕 등으로 전문화하는 작업도 벌어진다. 마을 전체가 쇠고기를 주제로 ‘재개발’되는 셈이다. 정육점과 식당들이 북적대자 다들 갑자기 바빠졌다. 슈퍼도 야채가게도 바빠지고 호프집도 다방도 시끄러워졌다. 음주운전 단속 경찰이 바빠지더니, 동네에선 꿈에도 생각 못했던 대리운전 기사도 생겼다. 전에 없던 ‘알바 문화’에다 ‘예약 문화’까지 자리잡았다. 올해 안에 한우 사료공장, 유기농 야채매장, 잡곡매장, 산나물매장, 약초매장 등 지역 특산물 전문매장들을 개설해 면민들을 참여시킬 계획이다. 최 촌장이 말했다. “가맹식당을 60곳 이상으로 늘릴 겁니다. 한우박물관도 짓고요. 국내 최고의 한우고기 관광마을이 될 때까지 밀어붙일 겁니다.”
건너고 싶어지는 300년 전통의 쌍섶다리
졸지에 한우고기 관광마을이 된 이곳은 본디 섶다리 마을로 이름 높았다. 주천면 판운리와 주천리·신일리 주민들은 해마다 초겨울 각각 평창강과 주천강에 옛 방식대로 나무를 엮고 흙을 덮어 다리를 놓는다. 겨우내 강물 위에 엎드려, 주민들에게 흙길을 열어준다. 주천강 섶다리는 300년 전통의 쌍섶다리다. 부임하는 강원관찰사 일행이 장릉(단종의 능) 참배 길에 건넜다고 한다. 4인 가마가 건너도록 주민들이 다리 둘을 나란히 놓았다. 보는 순간 즉각 건너고 싶어지는 이 섶다리의 자태는 눈 퍼붓는 날 도드라진다. 눈발이 날릴수록 다리 윤곽은 아득해지고 아득할수록 강 풍경은 눈부시게 다가온다. 주민들은 섶다리 전통을 되살려 초겨울 지역축제로 발전시켰다. 주천은 술샘이다. 주천교 다리 밑 바위틈에 있었다는 샘이다. 양반이 가면 약주가, 상민이 가면 탁주가 솟았다는 얘기가 전한다. 이웃한 수주면 무릉리에 요선정과 요선암, 호야지리박물관이 있다. 5대 적멸보궁 절집의 한곳인 법흥사,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선암마을, 책·곤충·민화박물관,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 장릉 등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한우의 품질과 고깃값이 궁금해
한우와 고깃값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엉덩이살, 사태, 불고기는 600g에 1만3천원, 육회는 300g에 8천원, 육사시미 600g에 1만6천원이다. 사골은 100g에 1천6백원, 꼬리는 1천5백원, 우족은 2천2백원, 잡뼈는 7백원이다. 주천리 토박이이자 다하누촌 구매담당 부장인 박상준(45)씨가 말했다. “거짓말 안 보태구요, 시중의 절반 이하 가격이래요.” “이렇게 장사 해도 이익이 남습니까?” “남는대니까요. 이 한우가요, 워낙에 거품이 많았던 데다가요, 기냥 대량으로 팔아대니까요, 안 그런거 같애두요, 꽤 마이 남아요.” “고기 등급은 어떤가요?” “잡숴 보면 아르시겠지만요, 여선 1등급 한우고기 위주로 다롸요. ‘한우 일반 모듬’의 경우에만 2등급을 쓰는데요. 이것두 맛 차이 벨루 없대요.” 명품관에선 ‘1+등급’이나 ‘1++등급’의 고기만을 따로 취급한다. 안심 100g에 5천7백원, 등심 100g에 6천5백원이다. 다하누촌에선 영월과 제천 도축장에서 요즘 하루 2~3마리씩의 거세황소와 암소 등 한우를 도축해 온다. 도축이나 고기 등급과 관련해 물어보는 손님들이 워낙 많다 보니, 정육점 매장에 도축검사증명서과 등급판정확인서를 매일 게시한다. 쇠고기 등급엔 1~3등급과 등외가 있고, 1등급도 질에 따라 다시 세분돼 등급이 매겨지는데, 다하누촌에선 1등급 이상의 고기만을 쓴다고 한다. 본디 산지 시세는 한가지지만 불합리한 출하 유통구조, 등급이 매겨지는 과정에서 거품이 생기고 폭리가 따른다고 한다.
유통과정에서 쇠고기값 5~6배…맛의 차이는 숙성의 문제
다하누촌 장수점 식당. 술맛과 고기맛이 두루 무르익어 가는데, 옆자리 앉았던 사람이 다짜고짜 자리에 끼어들었다. 주천고등학교 축산담당 교사 이재원(34)씨. 쇠고기에 관해 할말 기회가 적은데 대해 평소 무척 안타까워했던 듯이 보이는 이씨가 말했다. “쇠고기의 맛 차이와 등급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거세황소와 비거세황소의 맛 차이는 있습니다. 거세한우가 덜 질기고 맛도 좋죠. 거세황소 30개월짜리는 암소와 육질, 맛이 같습니다. 황소를 거세하게 되면 소가 암컷처럼 돼 본래 하루 1kg씩 늘던 무게가 하루 600g밖에 늘지 않습니다. 뼈, 근육, 지방 순으로 살이 찌게 되죠. 피하지방이 먼저 쌓이고, 근막지방, 근내지방 순으로 쌓이게 됩니다. 지방이 골고루 퍼진 고기가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냅니다. 살이 제대로 오르고 마블이 좋아 최상등급(1++A)으로 치는 상강육의 맛이 빼어나기는 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세부적으로 나눈 등급이란 건 사실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육량과 육질에서 좋은 고기를 가르는 기준은 되지만, 가격 차이가 시중에서처럼 나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유통과정에서 쇠고기값이 5~6배나 뜁니다. 등급이 세부적으로 매겨지는 과정에서 거품이 생기고, 그 부담은 소비자 몫이 되죠. 고기 맛은 결국 숙성의 문제일 뿐입니다. 즉시 잡은 고기가 맛있다는 얘긴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잘못된 겁니다. 육회는 별개로 치고요. 숙성이란, 도축 때 일어난 근육 경직을 풀어주는 과정입니다. 경직상태가 풀려야 제맛이 나지요. 20일 숙성육이 가장 맛있습니다. 제대로 숙성됐다면 암소와 황소 차이도 크지 않을 정도입니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다하누촌 가맹 식당으로 가져가면, 1인당 2천5백원씩의 야채와 반찬 세팅비를 내고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다. 상추, 깻잎, 풋고추, 고추절임, 김치, 동치미, 마늘 된장 등이 차려지고 불판이 제공된다. 모듬버섯과 양파(3천원), 된장찌개(2천원)도 따로 주문해 먹을 수 있다. 정육점에선 초기엔 쇠고기를 각 부위별로 구분해 팔았는데, 요즘은 조금씩 섞은 모듬 쇠고기를 판다. 인기를 끄는 특정 부위만 먼저 동이 나고 뒤에 온 사람들의 불만이 비등하자, 파는 방식을 바꾼 것이다. 등심 안심 제비추리 안창살 토시살 치맛살 갈빗살 등을 모아 ‘한우황소 반마리’ 300g 8천원, 한 마리 600g 1만6천원, 한우 암소 반마리 300g 1만4천원, 600g 한 마리 2만8천원 식으로 정리해 골고루 팔면서 골고루 맛볼 수 있게 했다.
“여 동네 사람덜은 쇠고기만 먹어요, 딴 고기 먹을새가 없어”
최주형씨가 말했다. “여 동네 사람덜은요, 삼겹살 먹어본 지 오래래요. 싹 다 소고기만 먹으니까네, 딴 고기 먹을 새가 없는 거래요. 살들 찔까봐 들 걱정이 많애요.” 가맹점들을 대상으로 매달 심사를 벌여 친절상, 홍보상, 노력상 등 상도 준다. 친절상이 제일 큰 상으로 상금도 따라붙는다. 다하누촌에선 한편, 걱정거리도 있다. 소비가 늘면서 영월군에선 소가 모자라 횡성, 평창에서 조달해 온다. 부대사업으로 계획하고 있는 사골공장까지 운영하려면 6만마리는 먹여 기를 수 있어야 하는데 당장 소가 모자라는 형편이다. 그러나 최계경 대표의 포부는 더 크다. “하루 도축 50마리까지가 목표입니다. 한우가 살고 동네가 살고 다른 지역 한우농가도 살고 도시민들도 흐뭇해지는 것, 이게 살 길 아닙니까.” 최씨는 마을의 연매출액 목표를 2천억원으로 잡고 있다. 2008년엔 한우박물관도 개설하고 대규모 한우농장도 마련할 계획이다. 한우 말고도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상품 개발도 이미 진행중이다. 주천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콩을 이용해 즉석 목판두부, 흑미두부, 표고두부 등 7~8가지 두부를 ‘섶다리 콩터’라는 상표로 상품화했다. 청국장도 만들고 두유도 만든다. 두유버거, 콩샌드위치, 커피에 프림 대신 두유를 넣은 두유라떼를 개발했고, 두유베리라는 이름으로 두바이에 두유전문점 지점 계약을 하는 등 국외 시장 개척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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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일상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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