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예절(喪家禮節)
노병철
“내가 현직 교장이라 장례식장 가긴 힘들고 부주만 전해다오.”
현직 교장이란 인간이 한다는 소리가 ‘부주’란다. 하긴 나도 작가라는 타이틀 달기 전에는“부주 부주”하면서 다니긴 했다. 경상도 사람들 혀가 짧아서인지 ‘부조(扶助)’를 자꾸 ‘부주’라 부르게 된다. 그리고 내가 남의 부조 대신 내주다 돈 떼인 게 얼마인데 아직 그런 부탁을 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내 사전에 대납이란 단어를 완벽히 지웠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성의를 표하실 분’이라며 계좌를 같이 적어놓는 세상이 아닌가. 그냥 돈 부쳐주면 될 것을 왜 나보고 봉투 대신 내달라고 전화질인지 이해가 안 된다.
“부조금이라고 해야 맞나? 조의금이라야 맞나?”
친구가 전화로 묻는 말이 자기 회사 협력업체 대표가 부친상을 당해 조의금을 보내라고 했는데 그 결과 보고를 직원이 ‘부조금 보냈습니다.’라고 한단다. 확인차 전화한다면서 묻길래 부조금은 경조사에 다 사용되고 조의금은 상갓집에만 사용된다고 아는 체 했지만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엉뚱한 질문에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조의금은 홀수로 내야 한다고 배웠는데 오만 원짜리 두 장 넣으면 안 되나요?”
대표적인 질문이 이런 종류인데 이딴 느닷없는 질문에 정말 욕 나올 뻔했다. 상갓집 부조는 음양 이치에 맞춰 홀수로 해야 한다고 배웠다. 삼만 원 오만 원 낼 땐 전혀 이상이 없지만, 그다음이 칠만 원 구만 원 십일만 원인데 이렇게 홀수로 맞춰 부조해야 예법에 맞는지 묻는 것이다. ‘너거 아부지 뭐 하시는 분이고’라고 묻고 싶다.
요즘 상갓집이라면 백이면 백 장례식장에서 상을 치른다. 그런데 향을 사를 때 분향대가 높아 꿇어앉을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분명 내가 배울 땐 꿇어앉아 분향한다고 배웠는데 가능한 일이 아니다. 라이터 사용하지 않고 성냥으로만 켜라고 하는데 이젠 성냥이 없다. 입으로 불지 않고 손으로 흔들어 끄라고 배워 라이터 불을 흔드는 사람도 봤다. 하긴 상갓집에서 건배하는 인간도 있는데 뭐. 오만 원짜리 두 장 넣고 천 원짜리 한 장 더 넣으라고 답해줬다. 진짜 그렇게 했는지 확인은 못 했다.
“상주와 맞절한 후에 일어섰다 앉아야 하나요? 아니면 맞절을 한 후 일어서지 않고 바로 상주에게 ‘가슴이 찢어지시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해야 하나요?“
맞절 후엔 일어서지 않고 조의를 표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요즘 이런 걸 잘 가르치지 않는다. 상주가 벌떡 일어나면 같이 일어나야지 별수가 없다. 나이는 먹었지만, 예법에 자신이 없어 이것저것 신경 쓰기 싫어 그냥 비대면 세상임을 강조하고 계좌로 송금한 뒤 문자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우리나라 공통 조의문으로 애도의 뜻만 표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누구인지 몰라도 인터넷에 조문 문장은 띄어쓰기해서는 안 되고, 맨 끝에 마침표를 찍으면 그 가족까지 죽으라는 뜻이고‘삼가’라는 말을 사용하려면 고인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올렸다. 그뿐 아니다. 부의금 봉투는 접는 것이 아니며, 축의금 봉투는 복이 나가지 말라고 접는 것이 예의다라는 말도 온 동네 돌아다니고 이게 진짜 맞는 줄 알고 아는 척하는 사람도 봤다. 그냥 접지 말고 풀이나 본드로 완벽히 붙여서 주면 복이 영원히 이어질는지 의문이다. 그 어디에도 근거조차 찾을 수 없는 이런 말에 많은 이들이 현혹당한다.
예법은 세월에 따라 변한다. 종교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상주의 바람에 의해서도 변한다. 귀신이 무서워 숨기 위해 입는 서양식 상복인 검은 옷 입기를 거부하고 흰 상복을 고집한 친구를 보면서 묘한 감정이 교차한 적이 있다. 곡을 하면서 목이 쉰 적이 있는 나로선 요즘 완전히 사라진 그 친구의 곡소리에 절절히 묻어나는 애달픔이 절하는 내내 동질감으로 와닿은 적이 있다. 쓸데없는 예절에 집착하기보다 그 집안의 가족 뜻에 부합되게 따라주면 될 것 같다. 양말도 안 신고 짧은 치마나 반바지 혹은 등산복 차림으로 오면 씨상놈 소리를 듣지만, 그 외엔 가급적 민폐만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행동하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밀폐된 공간인 분향소 앞 향로에 이미 향이 꼽혀 연기가 올라오고 있으면 그냥 절만 하고 가면 되는데 악착같이 향을 사른다. 그게 예법이 아니다. 향 연기에 상주들이 죽을 맛이다. 어디 족보에도 없는 예절 거들먹거릴 필요도 없고 없어질 예절은 없어지는 것이 맞다.
첫댓글 참 우리 국장님은 아는 것도 많으셔. ㅎ
박학다식 울 국장님
삼가 빼는 건
아는데
왜 빼는지는 몰랐거든요.
누군가의 죽음에 따르는 의례라는 측면에서
작금의 여러 모습들을 보자면,
이게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나마 유족들한테 버림 받는 경우는 아니어서 다행이라 해야 하나.
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