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초대장1】 구멍 난 양복바지
퇴직 경찰 10년 만에 새 양복 사 입은 사연[1]
- 대한민국재향경우회 신임회장 『취임식 초대장』을 받고 -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전 경찰관
▲ 대한민국재향경우회 중앙회장 당선자가 보내준 <취임식 초대장>
◆ 추억의 수필 「구멍 난 양복바지」가 갑자기 떠오른 이유
경찰공무원으로 퇴직한 지 10여 년이 넘었다. 옷장을 열어 보았다. 행사 참석용 정장을 살펴보니, 마음에 드는 양복이 없다. 아들 결혼식 때 맞춰 입었던 양복이 있지만 겨울 옷이다. 여름 정장은 모두 낡았다. 과거 「구멍 난 양복바지」라는 수필을 쓴 적이 있다. 이 수필은 뜻하지 않게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계단을 오르는데 뒤따라 오던 동료 형사가 내 바지 궁둥이 부분을 누빈 재봉틀 자국을 보고 한마디 한 것이 '부끄러운 수필'을 쓰게 된 발단이 됐다.
이 수필은 월간 『수필문학』 1999년 5월호에 실렸고, 같은 해 6월호 『월간문학』지를 통해 문학평론가가 과분한 월평(月評)까지 덧붙여 줌으로써 이른바 '화제의 수필'이 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여년 세월이 흐른 뒤, 이 수필은 '대전문학관 기획전시 중견작가전(展)'(2017년) - 「작가의 소리 · 독자의 소리」 <문학 콘서트>장에서 한 독자가 익살스럽게 낭송하여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작가에게 독자들의 질문이 쏟아지기도 했다. 경찰관 아내가 가정에서 아직도 재봉틀을 사용한다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일상에서 건진 사소한 글감에 '인간의 뒷모습'이란 주제를 담은 것이 매우 흥미롭다는 반응이었다.
바로 그 수필의 주인공인 ‘구멍 난 바지’도 여전히 옷장 속에 버티고 있었다. 아내가 재봉틀로 구멍 난 부분을 누벼 놓긴 했지만 이미 낡은 헌 바지가 새 옷 대열에 아직도 버젓이 끼어 있다는 것은 (구멍 난 바지로선) 염치없는 노릇이다.
직장 동료 앞에서 민망하여 얼굴 붉혔던 당시를 회상하니 또다시 웃음이 나왔다. 처음 보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졸고 수필과 평론가의 월평(月評) 일부를 다시 소개한다.
▲ 졸고 수필 <구멍 난 양복바지>가 실렸던 월간 《수필문학》 1999년 5월호
수필
구멍 난 양복바지
윤 승 원
계단을 오르는데 뒤따라오던 동료 형사가 내게 말했다.
“바지 히프 부분을 누비셨네요. 아직 멀쩡한 바진데…”
꿰매 입은 바지를 흔히 볼 수 없는 세상인지라, 동료 형사의 눈에는 내 엉덩이 부분의 재봉틀 자국이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아, 네. 구멍 난 걸 집사람이 세탁소에 가서 누벼왔더군요. 이제 그만 입어야 하는데…”
나는 그 말을 하면서 얼굴이 붉어져 옴을 느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평소에 겉으로는 말쑥한 차림으로 보았는데 뒤에서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동료가 하게 되었을 거라는 민망함 때문이고, 또 하나는 외부적인 활동을 빈번히 하는 사람이 옷 하나 번듯이 챙겨 입고 다니지 못한다는 자책과 부끄러움이 들어서였다.
내가 평소에 절약을 잘하고, 가정에서부터 내핍생활이 몸에 밴 사람이라 그런 바지를 입고 다니며 궁색을 떠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사복의 경우 대개 윗도리는 멀쩡한데 바지는 세탁을 자주 하게 되니 쉽게 낡기 마련이다. 감쪽같이 짜깁기한다 해도 자세히 살펴보면 본바탕의 색상과 어딘지 모르게 표시가 나게 된다. 그렇다고 멀쩡한 신사복 바지를 버릴 수 없어 또다시 꺼내 입기 일쑤다.
어쨌거나 요즘 나는 거울을 보면서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나이가 되었다. 차츰 머리숱도 줄어들어, 아침에 머리를 빗을 때는 손거울로 뒷머리를 슬쩍 비쳐 보기도 한다. 자칫 잘못하면 새집을 지은 것처럼 볼썽사나운 꼴이 되기에 십상이어서 한 번쯤 더 매만지게 된다.
자동차를 타게 되더라도 뒤에 앉은 사람이 내 뒤통수를 보게 될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더러는 어깨에 비듬이 떨어져 있는 중년 남자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결코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밤새워 야근을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일에 골몰하다 보니 어쩌다 옷매무새조차 고쳐 입을 겨를 없이 거리에 나선 사람이려니 하고 이해하는 수밖에.
그뿐만 아니다. 회의실 등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 나란히 앉아 있으면 보기 싫어도 남의 뒤통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때 남의 뒷머리가 흐트러졌거나 어깨 위에 비듬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괜스레 보는 사람마저 민망해진다. 지적해 줄까, 아니면 내가 털어 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상대가 민망해 할까 봐 못 본 척 고개를 돌린 적도 있다.
그래서 외출할 때면 으레 습관처럼 뒷머리를 매만지는 등 소심하리만치 뒷모습을 점검하게 되고, 아무것도 없는 어깨 위지만 괜스레 톡 톡 털어 보기도 하는 부질없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머리를 깎고 왔는데, 거울 앞에서 손거울로 뒷머리를 여러 차례 확인하는 걸 보았다. 내가 보기엔 깎아 놓은 밤같이 유난히 뒤통수가 말끔해 보여 “머리 참 예쁘게도 깎았구나!” 했더니, 녀석은 한사코 불만이다. 이발소 아저씨가 자기 맘에 안 들게 깎았다면서 투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가 말했다.
“사춘기의 네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들이 네 뒤통수를 보면 아주 예쁘다고 할 거다. 걱정하지 말지어다!” 하면서 면도 자국이 파르스름한 녀석의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었더니, 녀석이 빙긋 웃는다.
뒤를 점검한다는 것. 또 다른 나의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다. 나의 앞모습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므로 당장 어찌해 볼 방도가 없다. 그러나 뒷모습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나에 대한 인상이 뒷모습으로 결정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왜 조물주는 인간의 뒤통수에다 눈을 두지 않으셨을까? 쉽게 볼 수 없는 곳이므로 갑절 신경을 쓰라는 뜻에서였을까?
아직도 나는 이 낡은 바지를 언제까지 입고 다녀야 할지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계단을 오르면서 내 엉덩이 부분을 자세히 관찰하고 솔직한 느낌을 말해 준 동료 형사가 새삼 임의롭고 고맙게 느껴질 따름이다.
- 『隨筆文學』 1999년 5월호
♣ 「이달의 수필평」 《월간문학》 1999년 6월호 월평
■ 윤승원의 「구멍 난 양복바지」 는 꿰매 입은 바지 뒷부분을 보고 동료 형사가 누빈 쪽을 지적하자, 앞모습보다 뒷모습에 더 신경이 쓰일 나이에 접어든 작가가 지나간 세월을 점검하면서 볼 수 없는 곳에 더 신경을 쓰면서 살아야 하겠다는 의지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네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 하나는 작품의 전개과정이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재치가 있다는 사실이다. ▲ 둘째는 요즘과 같은 세태에서 옷을 기워 입는 이가 있는가 하는 신선감이다. ▲ 세 번째는 그것도 다름 아닌 경찰관이라서 민중의 지팡이라는 선입감 등 독자들에게 여러 가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 네 번째는 실로 하찮은 일상적 사실을 통하여 새로운 발견을 하고있는 것을 보게 된다.
[前略] 뒤를 점검한다는 것, 또 다른 나의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다. 나의 앞모습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므로 당장 어찌해 볼 방도가 없다. 그러나 뒷모습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나에 대한 인상이 뒷모습으로 결정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왜 조물주는 인간의 뒤통수에다 눈을 두지 않으셨을까? 쉽게 볼 수 없는 곳이므로 갑절 신경을 쓰라는 뜻에서였을까? [下略] - 《수필문학》 1999년 5월호 윤승원 수필 <구멍 난 양복바지> 중에서 -
우리는 누구나 남이 보는 앞에서는 잘 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고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 하지만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가 세상에 알려진 사실보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공개되었을 때, 그에 대한 보다 정확한 새로운 평가가 내려지기 마련이다.
살아있을 때보다 죽은 후에 위대한 인물로 평가된 예는 얼마나 많은가. 종교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살아서 남으로부터 핍박을 받더라도 그의 숨은 선행이 사후의 심판에서 표상되어, 천상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된다면 결국 그는 승리한 인생이 됐다 할 것이다.
그래서 윤승원 수필가는 「자동차를 타게 되더라도 뒤에 앉은 사람이 내 뒤통수를 보게 될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어깨에 비듬이 몇 점 떨어져 있는 것도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뒷모습을 잘 챙겼기로 흠잡을 데가 없는 산뜻한 수필이 되었다. - 《月刊文學》 1999년 6월호 '이달의 수필평'에서 / 문학평론가 하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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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옷장을 살펴본다. 현직 경찰관 시절에 사 입었던 낡고 허름한 양복밖에 없다. 20~30년 전에 입었던 양복도 많았다. 검은색 여름 정장은 상가 문상용으로 오랜 세월 입어서 그런지 유난히 후줄근하고 허름해 보였다.
신발장의 구두 역시 마찬가지였다. 퇴직 후 간편 복장으로 운동화나 등산화만 즐겨 신다 보니, 과거에 신었던 구두는 모두 밑창에 균열이 생길 정도로 낡았고, 걸을 때마다 고무 재질이 파편처럼 떨어져 나갔다. 대부분 현직 경찰관 시절에 지급 받은 경찰화(警察靴)였다.
당시 일선 경찰관들에겐 연간 1켤레 정도의 구두가 지급됐다. 나는 주로 사복부서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경찰화(靴)가 신발장에 남아돌았다. 경찰화는 시중의 고급 유명 메이커 신사화 못지않게 품질이 좋아 퇴직 후에도 수년간 신고 다녔다. 하지만 이제 다시금 신으려고 하니, 뒤축부터 떨어져 나갔다. 오랫동안 신지 않아 자연 부식된 현상이다.
서두가 길었다.
갑작스럽게 옷장과 신발장을 번갈아 열어 본 까닭이 무엇인가.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