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인가 ? 아파트 문을 나서니 얼굴이 써늘하다. 삼월 초순인데도 늦겨울이 길을 잃고 귀가를 머뭇거리는가보다. 그래도 초봄 햇살은 쏟아져 내려와 정원에 질펀하고, 감나무, 벗나무, 산수유는 꽃망울과 새잎들을 가지 끝에 감춘채 조금 움추린 자세다. 인천 신포시장 횟집에서 만난다는 오늘 '인천회' 모임은 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옥수역에서 용산행 전동차에 오르니 차내 광고판에서 요새 잘 나가는 김태희 얼굴이 프렌치 카페 믹스를 들고 사달라고 아양떤다. 이 아침 우연한 만남 치고는 괜찮다. 몇정거장을 지나 띠동또동 음악과 함께 용산역이란다. 경인선 급행열차가 조금 후에 들어와 갈아탔다. 러쉬아워가 지나서인지 빈 자리가 많다. 햇볕이 차 안으로 기어들어와 차바닥을 환하게 채우고, 차창 아래 한강물은 초봄 햇빛을 섞어 하얀 비늘을 만들며 찰랑댄다. 강변로를 차들이 시원하게 빠진다. 차창 너머로는 무슨 무슨 아파트, 학원, 병원, 교회라는 간판 글자들이 나처럼 멍청한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고 야단들이다. 앞줄 좌석에는 졸거나 신문을 보거나 휴대폰에 큰소리치거나 하면서 자기식으로 편한대로 일상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이 열차의 종착역인 동인천역입니다.'라는 스피커의 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개찰구를 빠져나와 신포시장까지 걷기로 했다. 신포시장이란 생각만 해도 친구 만나러 가는 것처럼 기분 좋다. 버스 한 정거장 거리를 걸으니 신포시장이다. 인천항 개항 이래 이 땅 최초로 외래 문물이 들어오던 입구에 자리잡고 영화를 누렸던 곳이다. 지금은 구월동 신시가지, 송도 신도시등에 밀려 옛날의 영광을 잃었지만 그래도 신포시장 하면 경인지방에서는 알아주던 곳이 아니던가? 시장골목으로 한 스무걸음 더 들어가서 샛골목으로 우회전하니, 조금은 촌스럽게 횟집간판을 단 가건물 몇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 내가 찾아가는 한 집이 신포횟집이다.
신포횟집은 내가 십여년전 여기 인천에서 밥벌이할 때 이 시장골목 건물 2층에 손바닥만한 간판을 달고있었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 위에서 2층방 두개를 가지고 장사하던 집이었다. 그때는 육십대 초반의 할머니가 사장이며 주방장이었고 ,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자연산 회를 먹으러 찾아온다는 사람들로 붐볐다. 어느곳에서 사오는지는 모르지만 그 집은 양식 활어가 아닌 진짜 신선한 선어를 내 놓았다. 새벽 어시장에서 이 할머니가 오래된 안목으로 골라서 사온 선어라고 했다. 이 자연산 회에다 서해안 아낙네들이 갯가에서 깐 굴과 조개가 꼭 나오는 것은 이 집에서는 그러려니 하는 상식이었다. 큰 접시에 담겨진 이 집 회는 왜 그리 두꺼웠던지? 회 한점을 입에 넣으면 씹기가 거북할 정도로 커서 볼이 툭 튀어 나오곤 했었다. 양식하는 생선에 항생제 어쩌고 하는 뉴스라도 나올라치면 이 횟집은 만원사례였고, 꼭 예약을 해야만 차례가 왔다.
오늘 가보니 할머니는 안 보이고 사십대의 곱상한 여인이 주인 겸 주방장이란다. 옆에 앉은 기호일보 회장한테 물어보니 할머니는 몸이 불펴해 집에서 쉬시고 , 그 집 며느리인 이 여인이 대를 이었단다. 그래도 할머니의 손맛과 경영방침이 잘 전수되어 옛날 그 맛과 깔끔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겐 행운이었다. 서해안 갯바위에서 딴 굴은 그대로이고 슬쩍 말린 간재미찜도 일품이다. 거기에 장충체육관만힌 민어회 한접시가 상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나니 입이 더 이상 벌어질 수 없을 정도다. 경인일보 회장이 그 며느리사장을 불러 술한잔 권하고 뻔한 칭찬을 늘어놓으니 비워진 접시들이 다시 채워진다. 회 1인분 25,000원이란 메뉴판이 벽에서 우리를 대려다보고 있다. 시장골목 횟집으로서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모임이 끝날 때쯤에는 그럴만도 하다고 여겨진다. 또 생선회값 외에 넉넉하고 푸근한 정이 공짜인 것도 이집을 다시 찾을 때 꼭 고려할 사항이다.
첫댓글 전국 단위로 모임을 다니시는 초청장님 부럽습니다.신포횟집에 가서 장충체육관만한 민어회 한접시 구경 하고파라
인천에 그렇게 화려한(?) 횟집이 있었네요. 진작 소개해 주지..... 젓가락 장단소리가 들려 오는 듯! 감사
싱싱한 날생선 한점과 한잔 참 꿀꺽 목젖이 떨어지네유 참 맛있겠다. 손꼬락으로 집어 먹던 옛날이 그리워 더욱 먹고싶어 하노그대 참 반갑고 고맙슈 池古瓮
그리움을 찾아 자유롭게 나설수 있고, 주변을 따스한 시선으로 보듬으며 새롭게 깨달음을 얻으며 살아가는 조청장 그대! 참 부럽소,
Sinpo-hwetjip? not the Golmokjip before.... I think you've a lot of nostalgias at the seashore taverns in Incheon, doesn't you? Let's have a wonderful meeting there someday. How do you think about that? Thank you very much, and your composition is so excellent too!
대단한 표현력에 감탄합니다. 실감나게 신포 시장 횟집을 동행한 기분입니다.감사
실감나는 여행 즐거웠고 입에 군침이 돌아 끝까지 못 읽을뻔 했소..
정말 잘된 글을 읽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우리카폐엔 시를 비롯해서 자작글을 읽는 쏠쏠한 묘미가 있어서 참으로 좋다. 신포횟집 그 시각 한구퉁이에서 나도 매운탕 한그릇 먹으며 노신사들의 모임을 흘끔 쳐다보며 귀동냥 한것 같아요. 착각인가알수 없네요..
조청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