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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사례 시작
♥ 체험사례를 작성하시는 분의 기본 정보를 작성해주세요.
· 연령 : 만30세
· 성별 :여자
· 직업 :주부· 통증부위 : 거북목,견갑골통증,라운드숄더,팔다리저림,두통,팔전신저림,불면증,화농성여드름
· 통증 원인 : 바르지못한자세 수면자세
· 병명/수술여부 : 무· 처음 SNPE하게 된 계기 : 친언니의권유· 운동 참여 기간 : 약11개월
· 1주 평균 운동횟수(일) : 8개월동안은 주2회 지도자과정 3개월동안 매일수련· 운동목표 : 통증치료
· 사진 첨부 시, 촬영 날짜와 간단한 설명 부탁 드립니다.· 신체적&심리적 효과를 구체적으로 기술해주세요.· 효과가 나타난 시기를 명시 해주시기 바랍니다.
▼ 체험사례 시작
딸부잣집 셋째딸 먹는것 보다 나가 노는게 좋았던 활발했던 아이
키는 그리 작지도 그렇다고 큰 편도 아니였지만 초중고 발달 사항 신체 검사에서 늘 체중미달 저체중 으로 살아 왔습니다 (손발은 항상 찬 편이였고 겨울에는 손발이 너무 시려 아리기까지 했고 30년을 수족냉증으로 살아왔습니다 )
제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의 저는 먹는 것 보다 밖에 나가 놀기를 좋아했고 여자 아이치고 정말 활발한 아이 였습니다
동트는 새벽 어두컴컴한 새벽 5시~6시 이른새벽 혼자 이불을 걷고 일어나 아침밥 한술? 뜨고 그길로 집을 나서면 엄마가 온동네 애타게 제 이름을 부르며 찾아 다니지 않는이상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어요 ㅎㅎㅎㅎ
해가 길어지는 여름날이면 더 오래 뛰어 놀 수 있어 세상을 다 가진 것 처럼 행복했습니다
제가 어릴때만 해도 지천에 메뚜기가 껑충껑충 뛰어 다녔고 저는 그 메뚜기를 잡으러 온천지 돌아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 그렇게 종일 뛰어 놀았으니 집에 오면 밥숟갈을 뜨다가 그자리에 엎어져 잠드는게 저의 일상이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후 ...
매사 완벽주의자 성격 1등을 해야만 하는 살짝 고달픈? 성격인 제가 초등학교 입학 하고서 부터 엄마께선 저를 키우는게 많이 힘들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받아쓰기는 물론 그리기 글짓기 체육활동 예체능 모두 1등을 해야했거든요
담임 선생님의 말은 곧 법이였으며 하교 후 예습 복습과 숙제를 철저히 하는 말 잘 ~듣는 학생이였습니다
특히나 그 중에서 체육활동을 좋아해 초등학교 고학년 3년은 육상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 저희 초등학교가 육상으로 주목 받던 학교였고 코치님의 열의와 열정이 상당 했기에
하교 후는 물론 방학때도 매일 2~3시간 특훈? 을 받습니다 ㅋㅋㅋ
스파이크를 신고 넓은 운동장을 10~12 바퀴 고강도? 훈련받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 그 다음날 팔 다리와 전신의 뻐근함을 즐기며 몸과 마음이 아주 건강하던 초딩이였네요 ^^*
공부는 공부대로 잘하고 싶고 예체능 욕심도 가득한 저는 매일 책가방에 많은 양의 책을 짊어지고 6년을 생활합니다
저체중이였던 제가 매일 등하교시 엄청난 가방의 무게를 짊어지고 다니는게 문제 였을까요?
초6 봄방학 ...(근막통증증후군을 진단받다 내 삶을 앗아간 질병)
불현듯 갑자기 어마어마한 통증이 찾아옵니다
봄 방학이라 집으로 교과서와 사물함 짐을 전부 가지고 가야 했는데 전과목을 들고 낑낑 거리며 걷다가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 지면서 어지러움으로 잠시 의식을 잃게 됩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흐른것 같았고 집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책을 버리지도 못하고 힙겹게 집에 왔고 그날 이후로
토하고 어지러움 메스꺼움 구역질로 그 한달을 생활하게 됩니다
부모님께서는 셋째딸 걱정에 전국으로 좋다는 병원을 수소문해 이리저리 함께 다녔고
대구에 있는 큰 1차 병원은 밥먹듯이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수차례 MRI와 CT, X-ray를 찍었고 한약 신경외과 통증의학과 재활의학과 전국 병원을 샅샅이 쫒아 다녔으나 병원에서는 크게 문제가 없다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먹으면 좋아질 것이다
병원에서 이렇다 할 뚜렷한 병명도 없었으니 ... 엄마께선 용하다는 점집에 점을 보러 다녔어요
무당이 하는 말이 조상신이 딸의 어깨에 내려 앉았다 굿을 하면 괜찮아 질 것이다 그 당시 비용도 500~1000만원 가량 헀던걸로 기억합니다 ...처음 통증이 발병하고 1년 정도는 적극적으로 병원을 수소문해 다니던 부모님께서도 특별한 병명과 진단이 없는 상태에 지치셨는지 이젠 아프다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셨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통증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 아플때마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한테 밟아라 주먹으로 쎄게 쳐 달라 트리거 포인트 부분을 정확하개 짚어주었고 트리거 포인트에 벗어난 지점에 마사지를 했을시 동생에게 아주 모진 말을 뱉어냈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이쁜 내동생... 저 하나로 가족들의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일상 생활하는데 인상이 펴지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였기에 가족들에게 자주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겨울이면 몸이 차 웅크리고 있다 보니 항상 통증은 겨울에 더욱 심했습니다
초 중학교 때엔 공부양이 많지 않아서 그럭저럭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
위로 제 언니는 의대 진학을 앞두고 학교에서 촉망 받는 우수한 학생이였고 저희 학교의 자랑이였습니다
그런 언니 밑에서 몸 아픈 저는 아픈 손가락이 아니라 그냥 아프고 공부까지 못하는 같은집에서 전혀 다른 자매 였어요 학교 생활이 무척 힘들었어요 심리적 부담감이 엄청 났었고 저를 보는 선생님들은 전부 한마디씩 합니다
언니만큼은 못하더라도 어느정도 상위권은 유지해야 언니와 선생님 체면이 서지 않겠냐구요 ...흑흑
맞습니다 ... 학교 다닐땐 우수한 성적이 최고지요 (하지만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데 저의 꿈은 예체능 이였습니다 예체능이 하고 싶었습니다 그땐 부모님께 예체능을 하고 싶다는 말을 입밖으로 꺼내지 못한채 공부를 해야했어요)
신이시여 !!!!
고등학교 진학을 하니 공부 양이 어마어마 하게 많더라구요 야간 자율학습 자율학습까지 더해지며 머리가 그렇게 좋은편이 아니라서 남들보다 더 오래 앉아 많이 봐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자정을 훌쩍 넘기는 일이 허다 했습니다
독서실 아저시께서 " 이렇게 잘거면 그냥 집에 가라" ㅎㅎㅎ 할때 집으로 터덜터덜 갔던 일이 눈에 삼삼하네요
오래 앉아 있는다고 다 공부를 잘하는건 아니잖아요ㅎㅎㅎ 그냥 앉아 있을뿐 !!
남들도 다 가는 대학 안가기도 뭣하고 아무 생각 없이 대구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합니다 열정이 없으니 대학생활은 갔다가 왔다 갔다리 왔다리 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사회로 내동댕이? 쳐 졌지만 낙동강 오리알이 바로 저를 두고 하는말 같았습니다
화려한 스펙을 가지고도 취업의 벽 앞에서 무너지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다시 편입이라도 해야하나 다시 어렵게 편입을 결정하고 생명화학과 준비 합니다 .. 그 중간 중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불면증으로 수면제 복용도 잠깐이지만 했었고 심한 부작용도 겪었어요
스트레로 인해 피부 트러블은 절정을 찍게되고 항염증성 약물과 로아큐탄 스테로이제 과다 복용합니다
아르바이트란 아르바이트는 가리지 않고 다 했었어요 서비스직 금융계 교육업계 판매 등등...
회사에 입사하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 죽기 보다 힘들었습니다
입사 당일 급체를 해 화장실에서 종일 토해내고 안색이 안좋으니 이래서 사회생활 하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듣게 됩니다 그리고 호주에 지내던 남편을 만났습니다
26살 꽃다운 나이 한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가 되다
로아큐탄과 스테로이제 불면증 가끔 수면제도 복용했었고 약이 떨어지면 불안불안해 하며 살아오던 제가 남편을 만나 임신을 하게 되면서 약을 끊는 계기가 됩니다
첫 임신 열달 ... 정말 힘들었어요
60kg에 육박하던 체중이 입덧으로 10로이상이 빠졌고 출산 전 몸무게가 5키로 초반대 였습니다
임신 초기엔 그냥 평지를 걸어도 산행을 하는듯 숨이 헉헉헉 거렸고
임신 중기에 접어 들면서 배가 나오기 시작 바르게 누워 잘 수 없게 되고
밤낮으로 화장실을 들락 날락 거리며 얼굴을 눈과 입 빼고는 알 수 없는 화농성 여드름으로 밖에 나가는게 매우 불편헀습니다
보통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게 되면 호르몬이 변해 더이상 여드름이 나질 않는다는데 왜 저는 줄어들기는 커녕 학창시절 보다 더 해져만 가는가 ... 거울속에 비친 제 자신을 보면서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배 속에서 생명을 품고 태동을 느끼며 아가를 생각하며 열달 견뎌 냈습니다
산고의 고통 출산보다 더 힘들었던 모유수유
내 인생 최절정 극한 고통 (젖몸살,유선염, 2년의 수유)
출산만 끝내면 내인생 꽃길이 펼쳐 지리라
봄바람 휘날리며 휫날리는 벗꽃잎이 마음속 한구절 ...현실은 달랐어요
출산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초특급 고난이 펼쳐 졌습니다
출산후에 가능한 한 빨리 젖을 물려야 1년 완모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자연 분만 1시간뒤 부터 시작된 모유수유 !! 신생아들은 뱃골이 작아서 조금씩 자주 모유를 먹기에 24시간 24번의 모유수유! 말이 열두번이지 하루에 밥을 열두번 먹는 일 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ㅠㅠ
고개를 떨군채 두 팔로 아이를 안는 자세 앞근육은 단축 뒤 근육은 과하게 늘리는 시키는 자세
두아이를 2년간 완모 하며 매일 눈물을 훔치며 살았네요 여기저기 온몸 어디 하나 성한곳 없었어요
갈수록 야위어가 저는 첫아이를 낳고 인간 미라 라는 소리까지 듣게 됩니다 ...제가 봐도 인체 뼈 모형을 보는듯 했습니다
( 임신해서 일부로 살뺀거냐 남들은 그냥 가볍게 하는 말이였지만 저에게는 슬픔이였습니다 아기를 품고 .. 병원에서 산모의 건강이 위험하다는 소리를 들어 가면서도 지켜낸 아이인데 모르시는 분들의 말이 큰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
수유와 함께 시작된 이유식 시판 이유식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던 저는 제아이 밥은 제손으로 먹인다는 원칙으로 하루종일 아이를 업고 청소 빨래 가사일 수유 이유식 허리가 휘청 휘청 해질 정도로 억척같이 살아왔어요
보기에는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게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저는 천상 억척 아줌마 였습니다
남편 그리고 제 목숨같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었지만 너무 힘든 날엔 애들 앞에서 눈시울을 붉힌적도 있었어요 말은 못해도 엄마의 감정을 고스란히 읽는 저희 아들은 저를 안아주기도 하고 ... 어린 아들이 저를 안아줄때에 저는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흐르는 거라고 거짓말도 했습니다 ......
엄마라는 무게로 버텨온 6년
snpe를 만나기전 내가 근막이완으로 썼던 도구 소개
학창시절에 저의 통증유발점을 만져 주었던 사람은 친여동생이였고
6년전 남편을 만나고 부터는 남편의 손이 제 근막이완 도구였습니다 ......
아침일찍 출근해 일을 하고 돌아와 아픈 아내를 위해 살림을 돕고 밤이고 낮이고 저를 주물러 주던 남편...
제가 임신을 한 순간 부터 snpe 바른자세 척추운동을 만나기 전까지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저를 만져 주었습니다
새벽에 자다가 팔 다리에 쥐가나서 나도모르레 소리를 지르면 옆에서 자던 남편은 "어디 어디아픈데 어디 만져줄까" 였어요
남들은 스포츠 마사지와 마사지를 다닌다는데 저는 남편 마사지를 받으며 5년이란 시간을 버텨 왔네요 .......
밤에는 통증으로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손가락 마디는 아침마다 고무장갑처럼 부풀어 오르고 통증으로 밤을 지새는 날이 부지기수 였는데 그때마다 제 옆에서 말없이 저를 챙겨주던 남편 이제와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니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지고 마음이 저려 옵니다 ......
그리고 여러가지 마사지 도구와 전신 안마기 방망이 등으로 아픈곳을 습관적으로 두드리며 살았습니다
snpe 근막 이완도구를 만나고 나서 이십년간 써왔던 도구들은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
snpe를 만나게된 계기....
친언니의 권유로 snpe에 대하여 알게 되고 친언니는 바른자세 척추 운동을 배우고 센터 수업의 경험이 있었기에 저에게 snpe운동을 한번 해봐라 하는 권유를 받게 됩니다
교수님을 만나면 나을 수 있을거다 시간 내서 한번 찾아가 봐라며 얼마동안 저를 설득했습니다
처음에 제가 센터에서 처음 접하게 된 도구가 snpe벨트 였는데요 도대체 저 밧줄도 아닌 저 기이한 벨트는 무엇인가 ? 저것을 다리에 묶고 무얼 한다는건가 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저런 벨트로 몸매 교정과 채형 교정이 된다니....!! 말이나 되는가 했었거든요
(무지했던 저였습니다 이자리를 빌려서 저희 snpe척추운동 창시자이신 최중기 교수님과 윤지유 교수님께 사죄의 말씀 올리겠습니다 꾸벅꾸벅)
첫 수업 50분을 들었을뿐인데 !!!!!!!!!!!!!!!! 아주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여름에도 수족냉증으로 몸이 차고 찬 몸때문에 근육통증도 심했던 저가 벨트 운동 만으로 몸에서 후끈후끈 열이 올라오더니 경직된 근육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며 퍼드러지는 느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SSG(신세계) 아닌가요 ?!
그날 저는 마음속에 작은 꿈 하나를 새겼습니다
이 운동은 나를 살리는 운동이 될 것 같다 하는 생각과 함께 snpe를 적극적으로 배워보자 하는 생각말이예요
어딜가나 함께하는 도구 (꼬맹이들과 함께 하는 snpe )
20대 꽃같은 나이에 엄마가 되어 앞자리가 3으로 바뀌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것에 후회는 없지만 한번씩 20대 초반 나이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중학생때 부터 시작된 여드름은 작년 7월 SNPE만나기 전까지 함께했습니다
snpe 운동을 시작한 뒤로 안색이 맑아졌다 여드름이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졌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물론 요즘도 가끔 두어개씩 여드름이 올러오긴 하지만 얼굴을 뒤덮을 정도의 여드름은 통증 때문이였던것 같습니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면 몸매 라인이 이뻐졌다고 많이 물어 옵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snpe운동 덕분이라고 말하면 아파트 이웃은 물론 유치원 엄마들 어린이집 엄마들
또래 친구들 모두 눈을 반짝이며 저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3개월간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기차 안에서도 옆자리에 앉은 분들에게 살포시 도구를 건네기도 하고
벌써 제 가족들은 물론 친구들도 하나씩 도구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제 몸이 아프거나 찌뿌둥 할때에도 저는 당황스럽거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snpe 벨트와 snpe 도구만 있으면 제 하루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 올 릴 수 있으니깐요
저희 집 꼬맹이 들은 매일 저와 함께 snpe도구들을 친구삼아 놀이 하고 있습니다 *^^*
선택 집중 반복 (S.C.R)
처음에는 시원하니까 막연하게 했었던 운동인데 지도자 과정 등록후 수업시간에 앞자리에 앉아 교수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정말 솔직 담백하게 살아온 경험 이야기를 풀어나가셨고 그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저는 참 좋앗았습니다 최중기 교수님은 정말 인간적시이고 따뜻한 분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다 제 얘기 같기도 했습니다 1시부터 수업이 끝날때 까지 고개를 끄덕 끄덕 거렸습니다
X-ray 사진을 찍어 제출하게 되면서 제 목 상태를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이렇게 나쁜 상태로 30년을 살아 온 제가 참 답답했습니다
교수님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C무브만 한달가까이 S.C.R 선택 집중 반복 하였습니다
C무브를 2주쯤 풀었을까요 ? 목이 좌우로 돌아가지도 않고 얼얼한 통증이 찾아와 그주 4일 정도는 목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목뼈가 잘못 된게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엄습해 왔지만 저는 교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겠지 교수님의 말을 믿고 무소의 뿔처럼 매일 새벽 수련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다 재워 놓고 교수님의 말을 떠 올리면서요 3주차 접어 드는 어느날에 목에서 우두둑 뻑뻑 거리는 소리와 함께 로테이션 후방 변위 되었던 목뼈가 제자리를 잡았습니다 아픈 사람들의 대부분은 목이 뭉쳐져 있고 굳어져 있다는 말이 제 수련으로 입증 되었습니다
수련의 힘을 믿습니다
효과
1. 피부개선 (화농성여드름과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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